1월 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온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맞다, 통일은 분명 대박이다. 그러나 어떠한 통일이냐가 문제다. 통일의 방법이나 과정에 따라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고 쪽박을 찰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 대박’이란 말은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나 믿음에서 나왔고, ‘북한 붕괴’는 장성택 처형에 따라 초래될지 모를 체제 불안정에 근거한 것 같다. 국가정보원장이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의 조국 통일”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 붕괴에 따른 통일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무너질 것 같지 않고,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흡수통일 되더라도 대박보다 쪽박이 되기 쉬우리라 예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1990년대 초부터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 붕괴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1990년 동독이 무너지고 서독에 흡수되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독보다 못한 북한도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둘째, 1994년 김일성이 죽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50년 동안 통치해온 지도자가 사라졌으니 북한 체제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셋째, 1995~96년 북한 식량난이 세상에 알려지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곧 식량 폭동이 일어나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무렵 미국의회에서는 “북한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이라는 증언이 나왔고, 이를 받아 남한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북한은 지금 붕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넷째, 1997년 평양의 지식인들과 외교관들까지 탈북 대열에 합류하는 가운데 주체사상을 다듬었다는 황장엽의 망명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체제를 탈출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주체사상에 의해 지탱되는 북한이 더 이상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전망을 낳게 했다. 그때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 사이에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통일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다섯째, 2008년부터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퍼지면서 10여 년 만에 다시 북한 붕괴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뜬금없이 ‘통일세’를 언급했고 통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통일 항아리’ 사업도 전개했다. 역시 북한 붕괴를 내다본 것이었다.
이렇듯 북한 붕괴론은 북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예상이 아니라, 북한은 망해야 한다는 적개심이나 증오심에 바탕을 둔 ‘희망사항’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을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을 압박하며 붕괴를 유도하거나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
우선 ‘붕괴’라는 말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 정권 붕괴, 체제 붕괴, 국가 붕괴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에 따른 사회 불안이나 동요가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불러올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체제 붕괴나 국가 붕괴로 발전하고 흡수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남한에서 1960년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1979년 부마항쟁에 따라 박정희 정권이 붕괴됐지만, 체제가 사라지고 국가가 무너져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말이다.
설사 북한 체제나 국가가 무너지게 되더라도 남한에 고이 흡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 위기에 맞닥뜨리면 미국과 남한은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가동해 북한을 점령하려 하겠지만, 중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까. 미국은 북한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를 구실로 그리고 남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북한 점령의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중국은 안보와 경제를 이유로 북한에 먼저 들어갈 것이다. 약 1500 킬로미터의 국경을 마주하며 북한 구석구석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세운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1950년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중국 아닌가.
이런 터에 미국과 남한 군부는 ‘1~3월 북한 도발설’을 흘리며 군사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중국은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반영한 듯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백두산 근처에서 대규모 동계훈련을 실시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되는데, 다시 만에 하나 중국이 개입하지 않아, 남한이 흡수통일을 이룬다 한들 대박이 터질까. 우리는 혼란을 수습할 능력도 부족하고 탈북자들을 껴안을 의지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2만여 명의 탈북자 가운데 약 80%가 극심한 빈곤으로 정부의 기초생활 보호를 받고 있는데다, 남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냉대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이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현재의 남한 생활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캐나다나 호주 등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고, 합법적으로 북한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듯 2만여 명의 탈북자도 제대로 껴안지 못하는 터에 북한이 붕괴되면 생길 2천만여 명의 ‘빌어먹을 사람들’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은 대박보다 쪽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북한 붕괴와 바람직하지 않은 흡수통일을 추구하며 중국과의 무력충돌까지 빚을 수 있는 대북 압박 정책은 바꿔야 한다.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 통일만이 진정한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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