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와 과학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이 그동안 제법 여러 권 나왔지만, <할리우드 사이언스>(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굴곡진 현대사와 과학기술의 궤적 그리고 그로 인해 느닷없이 새롭게 열린 낯선 세계와 일상의 풍경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기술사를 전공하고 SF, 대중과 과학기술, 과학기술 운동 등의 주제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실천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세 가지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하나는 냉전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탄생한 세상에서 과학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관점과 가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합, 그리고 마지막은 누가 과학기술을 하는가의 주체 문제이다.
먼저 <할리우드 사이언스>의 1부인 ‘핵, 우주, 컴퓨터’는 모두 전쟁과 뒤이은 냉전의 산물이다. 냉전 시기가 우리 세계와 과학에 미친 영향은 요즈음 시내버스 옆구리나 지하철역 벽면을 한가득 채워서 도무지 시선을 피할 수 없이 도배하고 있는 '비포 애프터'의 표상 방식을 연상하게 한다. 성형 수술 광고는 과장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최소한 냉전이 과학기술에 미친 영향의 면에서는 '비포 애프터'의 설명 방식을 채택해도 무방할 것이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현대 세계와 과학은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특히 1945년 히로시마에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되고 뒤이어 강대국들 사이에서 벌어진 핵 군비 확장 경쟁은 그 이전에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낳았다.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거대한 괴물 개미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뎀>, 핵 군비 경쟁 과정에서 충분히 벌어짐직한 통제 불능 사태로 핵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그린 <핵전략 사령부>는 그런 불안감을 잘 보여준 작품들이다.
이 책이 과학이나 SF에 대한 논의로 그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주제인 냉전 과학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영향이 미국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구소련이 미련하게 벌였던 우주 경쟁과 유인 우주 프로그램은 최근 중국에 의해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고, 심지어 우리 정부까지 달 탐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더구나 냉전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당사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닌가. 계속되는 분단 상황과 북 핵의 위협, 그리고 안보를 빌미로 다양한 가치와 관점들이 억압당하는 신 매카시즘의 상황은 따지고 보면 모두 냉전이라는 자궁에서 나온 기형아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러 차원의 경계 넘기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 정치, 이념 갈등, 불안과 불확실성. 이들은 별개의 무엇이 아니라 실은 모두 한 몸이다.
또 다른 경계 넘기는 이 책이 SF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그동안 익숙해있던 과학의 지배적인 관점, 즉 과학자나 과학 정책 입안자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흔히 과학은 전문가, 남성, 정부와 같은 상대적으로 힘 있는 집단들의 관점을 대변하곤 해왔다. 그렇지만 이 책에 포함된 여러 장들은 여성,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거대 조직에 대항하는 공익 제보자 또는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혜택은커녕 항상 소외당하고 핍박받는(최근 밀양 주민들과 같은) 시골 사람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객관성과 보편성이라는 신화를 굳게 믿고 있어서 "과학에 무슨 남자 과학 여자 과학이 있어?"라고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동안 과학은 오로지 남자들의 활동으로 인식되었고, 논리, 분석, 환원 등의 방법론을 기초로 하는 근대 과학은 그 자체가 남성성(masculinity)의 표상이며, 그동안 자연의 개발과 개척, 환경 파괴를 뒷받침하는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제공해왔다.
전쟁으로 남정네들이 모두 동원되어 공백이 된 컴퓨터 개발 과정에 기여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지워져야' 했던 여성 과학자들을 다룬 <극비 계획 로지>나 여성적 과학하기의 의미와 문제점을 보여준 <정글 속의 고릴라>는 그동안 가려졌던 여성들의 역할과 관점, 그러나 남성주의로 인해 이러한 역할마저 또다시 왜곡되는 측면을 잘 드러낸다.
최근 과학기술의 새로운 소통 및 표상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과학 다큐멘터리에 대한 저자의 관심도 이 책의 내용과 문제의식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한다. 그동안 행성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명왕성이 2006년 국제천문연맹에서 논쟁 끝에 투표로 행성의 지위에서 퇴출되는 과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코믹하게 구성한 <명왕성 파일>에 대한 저자의 글은 이 책의 의도와 접근 방식의 축도와 같다.
'행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일견 간단해 보이는 주제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과학계는 명왕성을 처음 발견한 미국인 클라이드 톰보의 고향 사람들 눈에 무능하고 미심쩍게 비쳐진다. 항상 뭔가 다르다고 여겨졌던 "과학적 사실이 언제부터 투표로 결정되었냐"고 항의하는 지역주민, "누가 뭐래도 우리 주 상공을 통과할 때는 여전히 행성이다"라고 고집을 부리는 주 의원들은 과학 지식을 둘러싼 상황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명왕성 파일>을 통해서 과학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며 과학 지식의 구성 과정이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점을 비롯한 사회적 영향을 충분히 받으며, 그동안 쌓여온 역사적 무게가 과학 활동 자체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냉전의 부산물로 탄생한 거대 과학이라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실행 양식은 그동안 과학기술의 주체로 여겨졌던 과학기술자들의 지위와 행위 능력에서도 큰 변화를 낳았다. 과학 연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돈의 흐름을 좌우하는 정치경제학이 연구의 주제와 방식을 결정하게 되고, 개별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얻기 위해 자신의 관심사보다는 정부나 거대 자본의 요구에 휘둘려 주도권을 상실하고 거대한 연구의 한 부속으로 전락한다.
<차이나 신드롬>은 핵발전소 사고를 은폐하려는 거대 조직의 음모에 맞서는 과학자의 극한 행동 속에서 통제권을 잃고 무기력해진 과학기술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F 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도 과학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정치화, 상업화, 군사화 등 과학자들을 둘러싸고 거의 미쳐 돌아가는 상황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2부에서 많이 다루어진 생명공학과 나노 기술 등의 이른바 신흥 기술(emerging technology)은 누가 연구를 하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즉 "누가 저자(author)인가"라는 깊은 문제를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참신함은 이러한 주제의식 뿐 아니라 저자가 시도하는 글쓰기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에 각주를 단 이유가 언젠가는 '각주 달린 영화 칼럼을 쓰겠다'는 자신의 작은 약속, 감상이나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내실 있는 칼럼을 쓰겠다는 다짐을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얼핏 지나가는 말인 것 같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논문과 같은 글이 진짜고 대중을 상대로 한 글은 덜 진지한 글, 심지어는 허접한 잡문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겨들을 대목이다.
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대중적 과학 글쓰기를 어렵고 중요한 내용은 대충 생략하고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로 간주하는 풍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재미있는"이나 "흥미로운"이라는 제목을 단 대중 과학서들이 즐비한 우리의 상황에서 꼭 각주를 달지는 않더라도 공을 들여 충실한 내용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 이 역시 또 다른 경계 넘기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