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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라져도 박근혜 지지율 하락하지 않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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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라져도 박근혜 지지율 하락하지 않은 이유는?

[김윤태 칼럼] 복지 태도와 정당 전략의 중요성

최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복지국가’가 사라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1년 만에 대선공약이 완전히 실종되어도 유권자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부 정치평론가는 작년부터 ‘안보 프레임’으로 보수층이 강력하게 결집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전문가는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복지확대’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었다고 분석한다. 과연 그런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직도 국민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복지확대’를 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의 문제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10명 중 6명이 대통령이 말한 ‘증세 없는 복지’는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지 위한 증세’를 지지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 태도의 숨겨진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구집단별 응답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놀랄만한 일은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서민층이 증세에 대해 반대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서민층이 복지국가를 외면하는 이유는?

사회학에서는 국민의 복지에 대한 반응이나 견해를 ‘복지태도(welfare attitude)’라고 부른다. 서구의 학자들은 사람들의 계급 위치에 따라 복지태도가 달라진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스웨덴 사회학자 스테판 스발포르스는 스웨덴의 노동계급이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에 부유층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경향이 약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계급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효과는 미약하다. 저소득층이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탈계급성’의 성향이 강하다. 복지 태도의 탈계급성은 전체적으로 국가 복지에 대해서는 관념적 지지를 보이면서 복지에 필요한 증세와 사회보험 기여금의 인상에는 소극적 태도를 만든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낮은 수준의 복지 인식은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정당과 노동조합 등 이익집단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1987년 이후 한국 정당은 지역주의 기반을 토대로 성장했으며, 복지와 재분배를 둘러싼 ‘계급정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정당은 지역구 유권자를 유혹하는 지역개발 공약만 되풀이한다. 다른 한편 기업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후생복지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연금, 주택, 교육은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중산층이 되면 보수화된다고?

정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다르게 투표하는 성향을 ‘계급배반투표’라고 부르는데, 이에 관한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1959년 미국 사회학자 세이머 마틴 립셋과 레너드 벤딕스는 <산업사회의 사회이동>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상향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보수적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지향하는 계급과 동일시하는 열망이 ‘과잉동일시’와 ‘과잉순응’의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에서 중간계급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더 보수적일 가능성이 크며, 노동계급 출신 중간계급 유권자는 자신의 부모가 지지했던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많다. 상향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욱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가정은 한국과 같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중간계급의 확대를 경험한 사회는 자동적으로 보수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관한 경험적 연구는 충분하지 않아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면 반대로 부모 세대보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최근 한국에서 스스로 ‘서민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증가하여 50퍼센트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곧 바로 복지태도의 변화를 유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동시장의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저소득층의 불만은 커지고 있지만, 복지 확대와 증세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복지가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같은 거대 정당도 겉으로는 복지확대를 지지하지만 (그들의 진심은 의심스럽지만) 증세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계급정치는 사라졌는가?

1960년대 후반 서유럽과 미국의 정치에서 계급정치가 지속적으로 쇠퇴했다는 이론적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급이 더 이상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통계분석의 정교한 방법이 등장하면서 ‘무경향적 변동(trendless fluctuation)’을 주장하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치학자 마이클 하우트는 계급의 중요성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계급이 유동하고 있다고 본다. 정당을 지지하는 사회적 토대의 변화보다 정당의 전략에 따라 계급투표가 변화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 초계급적 호소와 인종주의의 호소가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유럽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우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치에서 계급이 계속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숙련 노동자들이 ‘비일관적’ 투표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조세, 복지 재정 등 공공정책보다 정치적 스캔들의 영향을 받는다. 최근 미국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인종주의와 종교적 가치에 영향을 받아 오히려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익과 반대로 복지 삭감과 감세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복지가 주로 흑인을 돕는다는 인종적 편견이 미국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막는다고 보았다.

정치적 기회가 없다면 계급정치는 없다

나는 한국인의 복지태도의 변화에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조건과 정당의 선거 전략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정치적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보면, 대중의 불만, 조직적 의식,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고 ‘정치적 기회(political opportunity)’를 갖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사회운동이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적 기회란, 1998년 <운동의 권력>을 출간한 미국 정치학자 시드니 태로우에 따르면, “사람들이 논쟁적 정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정치투쟁의 지속적 차원”이다. 정치적 투쟁은 반드시 국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 시민사회의 캠페인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정치적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중은 자신들의 불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정치적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의 경우에도 대기업의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사갈등이 빈발하게 발생하는 현상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발견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없거나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정치적 기회가 없다면 계급정치는 없다. 정치적 기회의 관점은 정치 과정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이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유권자의 태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차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념 성향의 효과가 나타나는가?

나는 2009년 이후 3년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복지태도의 변동을 분석하였다.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2013년 9월호)에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복지 태도가 비일관성과 모순성을 가진다는 (2010년 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한) 과거의 분석과 다르게 복지태도가 소득 수준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과 복지공약이 전면적으로 부상되면서 사회적 균열과 정치적 기회가 변화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복지태도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여성의 복지와 증세에 대한 지지율이 증가하면서 복지 태도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이 분석 결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진보 성향을 가진 응답자가 복지와 증세에 관한 긍정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복지와 세금을 이념적 차원으로 인식하면서 정책 선호와 선택에서 일관성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적 기회의 변화가 이념 성향과 지지 정당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복지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복지확대와 증세에 대한 지지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당 전략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복지 의제보다 지역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강고하며, 사회경제적 의제가 부각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확대도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제도적 제약이 반드시 비관적 전망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도 정치적 의지에 따라 복지제도의 점차적, 누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사회 불평등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 정의당, 안철수 의원 등 한국의 진보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제 설정(agenda-setting)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과 ‘북한 인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국 유권자의 가슴에 불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복지국가야말로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는 또한 서민층과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복지공약이 사라져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진보세력이 대안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정당에 유권자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결국 중요한 문제는 정당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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