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시간은 무참했다. 현안들에 대해 대통령이 내놓는 진단과 해법 가운데 이치와 현실에 닿는 것은 전혀 없었다. 특히 부동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처방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하우스푸어는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이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빚을 내 집을 장만했는데 이자를 갚느라 쓸 돈이 없다 보니까 소비가 안 되고 내수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부동산 규제들은 오래전 부동산 과열기에 만들어진 규제인데 지금은 시장 상황이 달려졌는데도 계속 (규제가) 있다 보니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않고 왜곡되고 있다. 이번에 다행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취득세 영구인하, 수직증축 허용 등 부동산 관련 법들이 통과됐다. 올해부터는 주택매매가 활성화되리라 기대한다"
물론 대통령이 장기저리대출의 확대, 공공임대 확충, 주택 바우처 제도 도입 검토 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지만, 부동산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처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택매매 활성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될 것이다. 어디서 신물 나게 듣던 얘기 아닌가. 그렇다. 지난 5년 동안 재벌 등을 필두로 한 특권과 두 동맹을 제외한 대한민국 시민들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이명박 정부의 모토(motto)가 바로 '주택매매 활성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였다. 결국 부동산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완벽한 연장이라고 하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처방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일뿐더러 실현될 수도 없다.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은 후·후발 국가 혹은 후발 국가에서나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일 뿐, 대한민국 같은 볼륨과 수준의 경제 대국에서는 유효한 정책수단이 아니다. 효과에 견줘 부작용이 훨씬 클 뿐 아니라, 효과도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임대차 시장이 비정상이지, 매매 시장이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정부는 매매시장에는 신경을 끄고 임대차 시장에 관심과 정책수단을 집중시키는 것이 옳다. 매매시장은 시장에 맡겨라. 시장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가격이 충분히 하락했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가 형성되면 정부가 권장하지 않아도 매수세가 유입돼 매매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입만 열면 시장경제를 외치면서 왜 부동산 시장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의 부동산 매매시장은 부동산 시장을 규정하다시피 하는 생산가능인구, 각종 거시지표 등이 하락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안간힘을 쓴다고 해서 매수세가 살아나고 매매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주택매매 활성화 의지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닮았다. 한 마디로 헛고생이라는 말이다. 그나마 시지프스의 고역은 비장함이 있고 연민이라도 불러일으키지만, 박근혜 정부의 주택매매 활성화 의지는 실소만 자아낼 따름이다.
진정 근심되는 건 대통령이 임기 내내 부동산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불통과 무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대통령은 멈출 수 없는 순간까지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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