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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못하신 거 맞죠?

[편집국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의 의미

한국기자협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하는 '저널리스트 재능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해 몇몇 중고등학교 진로교육 시간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첫 강의를 하기 전, 밤새도록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기자라는 직업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자료를 준비하다 몇몇 사진을 골랐다. 하나는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가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이다. '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으로 더 알려진 이 사진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뼈만 앙상히 남아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노려보고 있는 독수리. 사람들은 사진가에게 "왜 소녀를 구하지 않았냐"고 항의했다. 물론 사진가는 사진을 찍은 뒤 아이를 구호소로 옮겼지만 말이다. 이 사진을 통해 기자의 직업 윤리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은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이었다. 로버트 카파의 전쟁 사진은 주로 총을 맞아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 무너진 벽돌 더미 속에 깔린 어느 가족의 사진 등이다. 전차가 대형을 이뤄 진격하거나 하늘에서 비오듯 폭탄이 쏟아지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전쟁은 게임 하듯, 블록버스터 영화 보듯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다. 내 옆에서 동료가 총탄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어디선지도 모르게 날아드는 총탄과 폭탄에 바들바들 떠는 두려움 뿐 아닌가. 학생들에게 기자는 허공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서 함께 걸으며 공감하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오히려 '내가 왜 기자를 하게 됐는지' 돌아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흠뻑 감흥에 젖어 학생들 앞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기자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그리고 질의 응답 시간.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연봉은 얼마인가요?"

얼떨결에 "비밀입니다"라고 답했다. 다른 학생이 물었다.

"승진은 언제 하시나요?"

또 다른 학생이 물었다.

"기자님은 정규직인가요? 비정규직인가요?"

'기자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라는 질문도 받았지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묻는 질문은 어느 학교에서나 나왔다. 진로교육을 다닌 다른 선배는 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철이 없어 보이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솔직하다"고 설명해주었다. 미디어를 통해 보는 세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자기 부모의 고민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영되기도 한다고 했다.

한 대학생이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88만 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 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고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첫 장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학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여대생이 패널들에게 "미국이 위대한 이유를 말해달라"고 주문하자, 민주당 인사는 "다양성과 기회"라고 답하고, 공화당 인사는 "자유"라고 답한다.

주인공인 뉴스앵커 맥어보이는 두 사람을 조롱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주당 인사를 향해) 사람들이 왜 민주당을 싫어하는 줄 알아? 맨날 지기 때문이야. 민주당 똑똑한 것들이 왜 맨날 지고 자빠져 있냐고. (공화당 인사를 향해) 그리고 당신도 얼굴 빳빳하게 들고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어? 캐나다도 자유국가이고 일본도 자유국가이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도 자유국가야. 전세계 207개 국가 중 180개가 자유국가라고. 그리고 학생. 어느 날 혹시나 투표를 하러 간다면 이 내용들을 기억해둬.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라는 증거 따위는 절대 없어. 문맹률 세계 7위이고, 수학은 27위, 과학은 22위, 기대수명은 49위, 유아사망률은 178위, 중산층 수입은 3위, 노동생산성은 4위, 수출도 4위야. 우리가 잘 하는 건 딱 세 가지 밖에 없어. 인구 당 감옥에 가는 비율, 천사가 진짜라고 믿는 성인 비율, 그리고 국가 방위비. 2위부터 27위까지 다 합쳐도 우리가 더 많이 쓰지. 그 중 25개는 우리 우방국이지. 물론 이게 20세 여대생 책임은 아니야. 하지만 당신들은 지금 최악의 세대에 속한 일원이야. 그런 당신이 미국이 왜 위대하냐고 묻고 있다니. 난 도대체 네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요세미티 국립공원 때문에 위대한가?"

'미국이 위대했던 이유'를 설명한 맥어보이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거야.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야." (☞ 동영상 보기)

안녕해지기 위해서는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부터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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