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국가정보원 '댓글부대'가 지난 대선 기간 열심히 단 댓글과 직접 쓰고 퍼 나른 트위터 글이 지난 대선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논란이 분분하다.
여권에서는 대선 직전 4개월간 생산된 트위터 글 5만5000여 건은 같은 기간 전체 2억8800만 건의 0.02%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닷물에 국물 '한 숟갈' 떨어트린다고 바다가 오염되느냐"는 논리다. 검찰 수사 결과 5만5000여 건은 122만 건으로 늘어났지만, 여당 방식의 계산대로라면 국정원의 트위터 글은 여전히 전체의 0.44%로 바닷물에 국물 '한 그릇' 흘린 정도다.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는 "영향력도 별로 없는 트위터에 국정원이 예산과 인력을 낭비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발표된 <동아일보>의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승패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63.7%로, '대선 승패를 뒤집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응답(29.1%)의 배를 넘는다.
반면 야권에서는 '충분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건이 됐건 121만 건이 됐건 불법은 불법이라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영향을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국정원이 집중적으로 트위터 글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시점에서의 여론 변화를 살펴야 하는데, 대선 여론전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있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찾아내 분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국정원의 트위터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느니 안 미쳤느니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여당과 보수단체의 '프레임'에 갇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만약 경찰이 대선 투표일 전에 국정원의 대선 개입 혐의를 제대로 수사해 발표했다면?"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보자. 2012년 12월 11일 민주당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국정원 직원 김모 씨의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황급히 댓글을 지우고 있는 김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댓글을 채 지우지 못한 김 씨의 컴퓨터 두 대를 압수했다면?
컴퓨터의 로그 기록을 분석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김 씨는 40여 개의 아이디를 갖고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사이트에서 야당 후보를 비방한 글을 올린 흔적을 발견한다. 경찰이 12월 16일 밤 11시 대선후보 토론회가 끝난 직후 이런 내용의 긴급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국정원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발뺌하지만 정국은 요동을 치고, 즉각 수사를 확대하라는 야당 지지자들의 요구가 빗발친다. 국정원 앞에서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광화문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이 와중에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댓글 개입 의혹도 폭로된다. 일각에서는 "진상 파악이 끝날 때까지 대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이랬다면?
이런 '만약'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가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만약 지난 대선 직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누구에게 투표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984명 중 86.6%는 '그래도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9.7%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으로 나타났다.
리서치뷰는 "9.7%를 박근혜 후보 득표율 51.55%에 대입할 경우 5.0%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 값을 두 후보가 얻은 득표율에 반영할 경우 박근혜 후보는 '51.55% → 46.55%', 문재인 후보는 '48.02% → 53.02%'로 문재인 후보가 6.47%포인트 앞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련 자료 보기)
리서치뷰는 지난 10월 말 조사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래도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86.8% → 86.6%'로 0.2%포인트 소폭 하락한 반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8.3% → 9.7%'로 11월 조사에서1.4%포인트 상승했다. 그 당시에도 대선 결과가 뒤집어지는 여론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 격차가 한 달 사이에 더 벌어진 것을 보면 박근혜 후보 지지층에서도 국정원 등의 대선개입 문제를 점점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한다. 역사에서 '만약'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사건은 수많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필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것, 이를 수사한 경찰이 엉터리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 어쨌거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 모두 역사적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 또한 필연이다. 2012년 대선의 과오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앞으로 만들어갈 필연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사실이 하나 둘 씩 드러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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