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퓨어의 글은 순수해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돌답지않게 '작금'이란 오래된 한자어가 구사됐고 이를 보도한 매체는 뜬금없는 퓨어의 선행과 2집 타이틀곡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11월 5일 박은선 논란 발화 후 일주일이 넘도록 분이 풀리지 않아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지 궁금하다. 새로울 바 없는 퓨어의 SNS 글이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언론은 또 고양대교 유동관 감독 사임이 박은선 논란에 대한 책임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이상하다. 연합뉴스는 '유동관 감독이 박은선 논란에 책임을 느껴 사직했다'는 구단의 발표와 "여자축구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는 유 감독의 배경 설명을 함께 보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유 감독의 사퇴를 박은선 논란과 연결지었다. '박은선 성별 논란, 여자축구 감독 추풍낙엽'이란 제목까지 등장했다. 박은선 논란이 이슈가 된 이상 무엇이든지 박은선과 연관지어야 얘기가 되는 모양이다.
▲ 7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시체육회에서 시청 여자축구단 박은선 선수 성별 논란에 관한 기자설명회가 열렸다. 김준수 서울시체육회 사무처장이 박은선에 관한 출전여부를 판정해 달라는 여자축구 실업 감독 간담회 문서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가 박은선 논란을 보도하자 언론은 이를 두고 국제적 망신이라고까지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국제축구연맹(FIFA)조차 관련규정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스포츠인의 성 정체성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국제적 망신'이란 표현엔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6개 팀 감독은 이미 꼬리를 내리고 백기투항했다. 이성균 수원시설관리공단 감독은 자진사퇴하며 "박은선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언론은 항복한 감독을 향해 끝없이 총을 쏘아댄다. 이 또한 인권침해 아닌가? 이슈팔이용 기사장사 아닌가? 6개 팀 감독은 그들이 의문을 품었던 진짜 이유, 박은선의 호르몬 수치를 끝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감독들이 호르몬 수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박은선을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대표팀엔 왜 선발되지 않았는지?', '성별검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향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소수의 기자들만이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 버스 무릎녀사건 등의 사회적 논란거리마다 언론은 늘 본질과는 무관한 폭발성에 주목한다. 이슈의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과 악의 구도, 공공의 적을 만들어낸다. 분노와 질타를 쏟아내며 한 번 쓰고 버리듯 이슈를 상품으로 생산한다. 이렇게 쓰고 버린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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