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안을 5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자, 정치권이 다시 한 번 들썩이고 있다. 이번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헌정사상 첫 사례인 만큼,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8년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이 이끌던 진보당이 공보실에 의해 강제 해산된 적은 있지만, 헌정사상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거나 수용한 사례는 전무하다.
통합진보당은 당장 "유신 망령이 부활했다"고 격하게 반발했다. 당 지도부는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날 오전 서울 대방동 당사에서 의원총회와 투쟁본부 회의를 잇따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투쟁본부 회의에서 '정권의 몰락'까지 경고하며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사상 유례없는 정당 해산이라는 사문화된 법조문을 들고 나와 진보당을 제거하려는 음모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유신시대로 돌려놓는 것"이라며 "유신시대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해산시키고, 긴급조치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했던 어두운 과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망령을 불러들여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정의를 난도질하고 있다"며 "이것은 진보당에 대한 탄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 행위다. 정권의 몰락은 필연적이다"라고 질타했다.
온도 차는 있었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일제히 정부의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가 유지돼야 하고, 모든 정당의 목적과 활동도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간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은 극단적인 좌우 대결을 넘어서서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이제는 극단적인 이념 투쟁을 수용하고 녹여내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면서 "정당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도 민주주의의 성숙도, 국민의 눈높이, 선거제도의 올바른 작동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국무회의의 상정이나 처리 과정이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나치게 조급하게 처리된 점 또한 되짚어볼 대목"이라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책임 있는 역사의식에 기초한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통합진보당과의 분당 사태를 겪었던 정의당 역시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이정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정당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당 해산 청구는 통합진보당 문제를 뛰어넘어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대한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며,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일"이라며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정당의 존재 유무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면서 국가와 정부가 나서 특정 정당의 해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안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일호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아무쪼록 이번 사건이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다시 굳건히 수호해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며 소속 의원과 당직자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헌법을 무시하는 정당은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영철 의원 역시 "헌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진보당의 활동을 계속되고 국민 세금을 계속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고보조금 지급, 재산 처리, 비례대표 승계 등 진보당의 여러 정당 활동을 정지할 수 있도록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당 차원에서 진보당의 정당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률적으로 고민해주길 요청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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