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가 일반화된 덴마크, '방과 후 교실'은 필수
덴마크에서는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의 90%이상이 양쪽 다 일을 하기 때문에 직장이 끝나서 데리러 갈 때까지 누군가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방과 후 교실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동네의 마글고 학교에 있는 방과 후 교실을 방문해 보았다. 약속된 시간인 12시 30분에 맞춰 찾아가자 방과 후 교실 총 책임자인 리스벳 옌슨씨가 맞아서 안내했다. 그 학교는 거의 100년이 된 학교로 2000년에 내부를 대대적으로 현대화 시켰다고 했다.
1~9학년까지 총 학생 수는 700명인데 이 중 학교에 부설된 방과 후 교실은 1~3학년까지의 저학년생 320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했다. 나머지 더 큰 아이들은 걸어서 10분 걸리는 방과 후 클럽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오전, 정규 학교…점심 시간, 정규 학교와 방과 후 교실 공동교육…오후, 방과 후 교실
이 학교에서는 1~3학년이 사용하는 건물을 오전에는 정규 학교로 쓰고 오후에는 방과 후 교실로 쓰고 있었다.
8~12시까지 정규 학교시간이고 12~2시까지는 정규학교와 방과 후 교실이 섞이는 시간, 그리고 2~7시는 방과 후 교실 시간이라고 했다. 따라서 오전에는 정규학교 교사가 2시 이후에는 방과 후 교사가 아이들을 맡게 되고 12~2시 사이는 양쪽의 교사가 동시에 있게 된다고 했다.
이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오전의 정규수업에서 오후의 방과 후 교실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는 정규학교와 방과 후 교실 모습을 다 볼 수 있도록 일부러 12시 30분으로 약속 시간을 잡은 것이었다.
교실 속에 주방이 있다
안내자와 학교를 돌아보는데 1~3학년이 쓰는 2층짜리 건물 안에는 우리처럼 책상 걸상이 놓인 교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정집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 주방 시설이며 아이들이 뒹굴고 놀 수 있는 코너, 유치원 비슷한 실내 놀이 공간, 다양한 공작실, 땅바닥에 앉을 수 있는 방 등이 교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8시에 등교하여 아침 11시에 점심(각자 싸온)을 먹고 오후 2시에는 방과 후 교실에서 다시 점심을 준다고 했다. 부엌에서 점심 준비 상 차리는 것은 교사와 아이들이 도와서 같이 한다고 했다.
교사와 아이들이 공부할 내용을 자율적으로 정한다
특이한 것은 어떤 아이는 아직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또 어떤 아이들은 교실 바로 앞 노는 공간에서 뒹굴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하는 등 제각기인 점이었다.
정규교사와 함께 비디오를 보며 아직도 수업 중인 반이 있는가 하면, 방과 후 교실 선생님을 도와 부엌에서 빵을 만드는 아이들, 부엌 앞의 책상에 앉아 무언가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밖에서 운동을 하고 들어와서 교실바닥에 모여 앉아 무언가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 그룹도 있었고 공부가 끝나서 소란스레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 틈 속에서 선생님과 책장을 하나한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기를 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읽기가 늦은 아이를 선생님이 도와주고 있는 중이라 했다.
이 학교는 매일 아침 교사와 아이들이 그날그날 공부할 것을 정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날의 공부를 빨리 끝낸 아이는 12시 이후에는 방과 후 교실이 되어서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 보낸다
방과 후 교실에는 만들기, 그림 그리기, 컴퓨터 다루기, 레고 맞추기, 퍼즐 놀이, 구슬 꿰기, 음악교실이나 무용교실에 가기, 도서실에 가서 책 읽기, 혹은 책 빌리기. 혹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기, 운동장에 나가서 놀기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 그리고 전문교육을 받은 교사가 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부엌 근처에 칠판이 하나 있었다. 칠판에는 방과 후 교실의 여러 장소와 운동장을 나타내는 칸이 쳐져있고 아이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아이들은 뒤에 자석이 붙은 자기 사진을 현재 자기가 있는 칸에 붙여놓았다가 운동장으로 나가거나 다른 곳으로 가면 사진을 해당 칸으로 옮겨 놓도록 돼 있었다. 그러면 부모가 찾으러 와서 아이가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안내하던 옌슨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날그날 프로그램을 짜서 스스로 하게 한다. 날로 새 지식이 쏟아져 나오므로 학교에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없다. 단지 어떻게 공부하나. 어떻게 배우나 그 방법을 가르친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또 아이마다 배우는 시스템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책을 읽으며 배우지만 어떤 아이는 몸을 움직여야만 하고 어떤 아이는 눈으로 봐야 더 빨리 배운다. 1학년 때는 주로 이런 것을 파악해서 그 아이에게 맞게 배우게 한다.
가만히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 창의력을 기를 수 없다.
덴마크에서도 아이들의 산수 성적이 뒤떨어졌다며 옛날 식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있으나 옳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노는 것 하나 하나가 다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시험은 없다. 등수를 매기지도 않는다.
숙제가 없느냐 묻자 저학년은 거의 숙제가 없고 정상적으로 공부를 따라가면 학교수업시간에 충분히 할 수 있거나 혹은 아무리 많아도 30분 이내에 다 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했다. 또 시험도 없다. 따라서 그 결과로 등수를 매기는 일도 없다고 했다.
우리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먼, 그러나 진정으로 어린이를 위하는 교육임에 틀림없었다. 이 정도의 방과 후 교실이라면 엄마들이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한편 어린이 자신도 어려서부터 자립심이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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