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산재지구의 조선족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산재지구의 조선족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77>문화의 벽 앞에서(1)

4월 10일, 버스가 대학가에 도착했을 때 20대 중반의 강희연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통화할 때는 한국여자와의 구별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발음, 억양, 리듬이 서울적이었는데 만나고보니 무척 중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중국 연변에 오래 살다보면 조선족 집거지구의 조선족과 산재지구의 조선족에 대해 구분되는 느낌이 생긴다. 온돌에만 살았던 80년대에만 해도 온돌에 산 조선족과 침대에서 산 조선족이 달랐다. 동북지구는 한족들도 온돌에서 살았다. 같은 온돌이라고 해도 조선족 식의 낮은 온돌과 한족식의 높은 온돌에서 산 조선족들이 달랐다. 걸음걸이와 체형, 행위방식에서 구분되는 느낌이 있었다. 한족들의 온돌은 침대처럼 높다. 한족들은 조선족들보다 먼저 침대문화를 받아들였다. 조선족들은 온돌이 낮다보니 집에 들어서자 신을 벗어야 하는 반면에, 높은 온돌이거나 침대에서 산 한족들은 80년대까지도 집에서 신을 신은 채 온돌이거나 침대에 걸터앉다보니 하루 종일 신을 신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낮은 온돌에서 산 조선족들은 허리의 유연성이 좋아 태도가 부드럽고 걸음걸이가 조심스럽지만, 높은 온돌에 산 조선족들은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태도가 대범했다. 집거지구의 조선족들이 고유적이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많이 고집하는 반면에 산재지구의 조선족들은 더 많은 분량의 한족문화를 받아들였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아파트의 보급으로 하여 주거문화로 인한 구분이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조선족 집거지구의 조선족들과 산재지구의 조선족들은 색상이거나 양식에 대한 심미관, 음식습관 등 다른 측면에서 여전히 미세하게 구분되는 점이 많았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전자는 연한 색상을 선호하지만 후자는 한족들처럼 짙은 색깔을 선호하고, 전자는 복장이거나 집안 인테리어에 있어 비교적 단순한 선을 선호하지만 후자는 복잡하고 다양한 선을 좋아하고, 전자는 억양의 톤이 좀 낮으나 후자는 좀 더 높은 등이다.

***산재지구의 조선족**

강희연씨는 한국옷차림을 했고 말씨나 행동도 조용했지만 눈빛이거나 자세에서 산재지구 조선족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녀 이야기에서 이 느낌은 곧 확인되었다. 그녀는 길림태생이었고 어려서 유치원으로부터 고등학교까지 전부 한족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저는 조선말을 거의 몰랐어요. 밖에서와 집에서 한족말만 했어요.”

중국 모 명문대학교 한국어전업에 입학해 그 때부터 가,갸,거,겨...를 익히고 한국말을 배웠다. 부모는 연변태생이었으나 주거환경이 한족지구이고 전부 한족들인 직장에 근무하다보니, 밖에서는 한족말을, 들어와서 부부사이에는 조선말을 했다. 외부환경이 전부 한족문화이다보니 자식들은 부모와 거의 한족말로 대화했다. 부모들은 큰 딸애와 조선말을 하다가 애가 커감에 따라 한족말을 하기 시작했다. 셋째 딸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애들은 자기들끼리 거의가 한족말만 했다. 집에서의 한족말의 비중은 점점 늘어갔다. 둘째언니까지는 조선말을 대충 알아듣지만 희연씨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언니들이 강희연씨와 한족말만 했기 때문이고, 딸들과의 대화를 위해 부모들도 하는 수없이 한족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가장 먼저 잃는 부류는 대개 대도시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들이다. 대도시 조선족학생들 중 80%가 우리말, 우리글을 모르고 있다. 우리의 문화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 조선족사회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에 따라 북경, 천진, 상해와 청도 등 연해지구로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다. 20만이면 조선족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된다. 이 인구는 조선족기업인들의 힘이 아직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정도로 크지 못한 상황에서 대도시로 진출했다. 체계적인 민족교육시설이 없는 것 때문에 조선족자녀의 교육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행이 부분적인 큰 도시들에 분산적이나마 점차 일정한 조선족인구규모가 형성되고 있다. 북경민족대학의 황유복교수 등 조선족지성인들이 민족공동체 상실을 우려해 중국의 대도시들인 북경, 심양, 장춘, 하얼빈, 목단강, 길림, 단동, 석가장, 위해, 해남도, 내몽골 등에 한글학교를 꾸리고, 대도시의 조선족 후대들의 언어 상실을 막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고, 실제 2천여명을 졸업시켜 좋은 성과를 보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학교 건물들 사이의 정원에서 진행되었다. 서울 모 유명대학이었고 한국어학과 박사과정을 전공하는 그녀였는데,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교의 이름을 적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오렌지 쥬스 두 개를 들고 왔다. 중국 명문대출신답게 지적인 분위기의 얼굴이었다. 20대 후반의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대조되도록 얼굴빛이 조금은 걱정기가 있어보였고, 그러나 눈빛이 침착했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무척 신경을 썼다. 나와 통화했을 때는 조선족이라는 느낌을 거의 가질 수 없도록 표준적인 서울말을 했는데, 정작 마주앉아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단어를 힘들게 골라서 표현했다. 어떤 때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면서도 한족말은 한마디도 섞어 하지 않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