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한국 유학에 적응할것인가?**
권혁률씨가 한국 유학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점을 단숨에 이야기하고나자, 그 후부터는 내가 질문할 차례였다.
***1. 생활경비**
나는 행운스러운 케이스다. 인연이 좋아 교수님의 추천으로 입학했는데, 등록금은 면제되고 월 생활비까지 보조받고 있다.
지역이나 학교, 또는 교제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지원이 없다면 한달에 한화 50만원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집세는 보통 15만원에서 30만원, 보증금 수백만원에 10%가 월세 내는데도 있다. 책이 한권에 거의 1만원(중국돈 67원)씩 하기에 공부에 필요한 책값이 많이 든다. 여럿이 제본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공에 꼭 필요한 도서는 원본으로 사게 된다. 자료 복사비도 많이 든다. 책값이 가장 큰 지출이다. 그 외 하루에 아무리 적게 써도 식사비에 5천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 외 교통비, 통신비, 회식비 등도 감안해야 한다.
금방 온 유학생이라면 한국 상황을 모르기에 학교 유학생회를 통해 여러 방면의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다. 장학금을 타서 일부를 해결하는 외 교수님이나 친구들의 소개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허락되면 간혹 동시통역 같은 것도 한다. 가정교사로 초빙된 적이 있는데, 한달을 하다가 사양했다. 애들이 눈앞의 영어를 더 절실하게 생각하는데 미래를 보고 중국어 공부를 시키는 부모의 마음과 공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공부시키는지라 애들이 힘들어하고 헛돈을 쓰고 있는 것이 속에 걸려 좋은 조건이었지만 부모들을 설득해 그만 두었다.
박사과정이 수료되면 학력이 인정되어 강사자격을 얻게 된다. 또 상황에 따라 연구프로젝트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어 전공과 가까운 업종을 선택할 수 있다.
***2. 공부**
우리 대학교에는 중국 유학생이 꽤 많다. 각자 바쁘기에 만나기 힘들다. 열심히 공부만 하라, 그러면 꼭 성공한다라는 것이 나를 가르친 교수님의 부탁이다. 공부하러 왔으면 반드시 공부로 성공해야 한다.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은 서생에게 힘을 준다(書中自有黃金屋, 書中自有顔如玉).
중국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해온 한국학생들과 비해 배우지 못했던 부분도 더러 있기 때문에 백배의 노력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열심히 하는 사람 앞에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생각으로 한다.
인문과는 특히 책을 많이 읽는다. 대학원 강의는 한 교시가 3시간, 그 강의를 잘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읽고, 논문을 준비하는 등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학기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독서도 하고, 논문도 쓴다. 박사 학위 제출자격을 가지려면 적어도 부논문 두 편은 가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학원 강좌는 토론 분위기가 활발하다. 대개 학생들은 청강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논문도 발표하게 된다. 청강자 수대로 복사해서 나누어주고 발표를 한 뒤, 같이 토론하게 된다. 철자법, 글의 구성, 글의 논리 등 여러 면으로 그 글을 검토하게 된다. 아주 도움 되는 시간이다. 그러니 한편의 글도 책임을 갖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모로 공을 들여야 한다. 학문에 대한 책임적인 자세를 배우게 된다.
학문과는 동떨어진 말이지만 우리 조선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이라도 열심히 책임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조선족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성실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 스스로가 항상 조선족 군체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한국에서의 조선족의 이미지는 여기 있는 개개인에 의해 바뀌어 지고 만들어져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힘든 중에도 점차 길이 보인다. 튼튼한 기초를 닦아야 한다. 만리의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수확이 있다. 중요한 것은 배움의 태도와 자신이다.
***3. 한국인들과의 관계**
유학생끼리 지내기보다는 한국인들과 더 많이 접촉하고 친구를 만드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공부이고, 객관적으로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동포적 유대를 만들어가는 데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한 태도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실하게, 예의 있는 모습을 보이면 한국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한국인들과는 동포의 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어울리기 쉬운 점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중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중국에 궁금증이 많다. 둘째, 사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많다. 셋째, 유학이 일반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신뢰감을 쌓아갈 여유가 있다. 이 세 가지는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편안한 만남을 이루게 한다.
경제적이거나 공리적인 원인으로 사람을 친하려 한다면 오히려 좋은 인연이 생기지 않으므로 반드시 인격을 지켜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좋은 인연이 나타나고 순수한 동포적이고 인간적인 우정을 얻을 수 있다. 조선족이거나 중국에 대해 비하의 표현을 대할 때도 있으나 대개는 사정에 어두워서 하는 것이지 악의의 경우는 많지 않다. 중국이 낙후하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사정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중국을 북한처럼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우리도 옛날 남조선이라고 하면서 그 곳은 헐벗고 굶주린다고 늘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의 실상을 알려주면 된다. 우리 조선족에게는 자랑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소박한 인정이 살아 있어 순박하고 다정한 면이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극복해 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외국어를 일본어로 했기에 영어를 모르는 것이 큰 약점이다. 중국에 있을 때 직업적인 관계로 한국 교수, 작가들을 많이 만났고, 한국책도 많이 읽었었다. 그래서 한국공부에는 꽤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전공 공부를 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실로 學然后知不足이다. 영어를 모르는 것 때문에 공부도 힘들었지만, 우선 교제를 위해 보편화된 영어를 빨리 터득해야 했다. 지하철에서도 외래어사전을 익혔다. 책을 읽을 때면 반드시 사전을 갖추고 열심히 찾아 뜻을 익히며 읽으면서 빠른 시간 내에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국의 현실과 한국문화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대학 내지 전반 사회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실하고, 예의 갖춘 태도는 어느 사회에서나 환영받을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 허위와 허풍을 삼가야 한다. 공부와 생활에서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점은 시인하는 솔직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知爲知之, 不知爲不知).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배워 자신을 충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가 됐을 때는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반드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사항이지만, 특히 공부하러 온 유학생으로서 전반 유학생 대오에 피해가 가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허물지 말아야 친구를 포함해 남들도 깍듯하게 대해주고 존중해준다. 외부적인 형상문제가 제기 될 때는 자기를 한 개인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조선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좋은 한국인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석사를 하는 동안 왕십리에 있는 민간 연구소의 도움으로 기숙했다. 민족대통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연구소는 한국인친구들이 뜻을 모아 꾸린 민간단체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넉넉지 않은 형편에 무보수의 봉사로 중국 조선족의 문화, 교육을 무상 지원했다.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여러 대학의 조선어과(한국어과)에 도서와 홍보용 전자제품들을 기증했다. 동포의 정에 넘치는 그들로부터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좋은 만남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하대학 근처로 거처를 옮겨 박사공부를 시작하면서 1년간 기숙 생활을 했다. 아침에 나갈 때 가끔 얼굴을 보는 주인은 외국인 학생임을 알고 여러 모로 보살펴 주었다. 방학간에도 집세를 전액 수거하는 관례를 깨고 상징적인 요금만 받았다. 명절에는 객지에서 고생한다고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댁에 가게 되거나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사절했지만 그 따뜻한 정은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도 끼니를 거를까 늘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필요 되는 서적을 구입하여 보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시기도 했다. 또 어떤 분들은 꿈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사두었던 책들을 선뜻 기증하기도 했다. 모두 그리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다. 정은 돈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분들이었다. 물심양면의 지원에 대해 지금은 다만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보답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선배 친구들이 마련한 공부방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회비로 운영하고 있는 쾌적한 장소이다. 학교에 올 때마다 식사를 거르나, 생활용품이 떨어졌나 하고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기 위해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맡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힘든 유학생활을 이길 수 있는, 뭐로든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우정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용 분류상 다른 부분에 넣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권혁률씨에게 공부가 끝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중국에 돌아가 한국학과 교수로 취직해 중국학생들에게 배운 바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권혁률씨와는 신촌 지하철역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연희동에 있는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자정이 지났다. 하지만 좋은 취재를 했다는 성취감에 나는 피곤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 조선족 유학생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유학, 한국대학의 분위기이므로, 한국유학의 꿈에 젖은 조선족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정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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