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9일 오후 6시 반, 신촌역 3번 출구에서 초면의 권혁률 씨와 만났다. 인하대학에서 한국현대문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 베이지색 면양복을 단정히 입고 총총히 층계를 올라왔다. 오늘 출강한 대학교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쯤 걸렸지만 지리에 어두운 점을 배려해 강의가 끝나자 찾아 온 그가 고마웠다. 사실 그는 지금 한창 박사학위논문 준비중이어서 한 주일에 절반은 밤을 지새우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두말없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주었다.
권혁률씨는 중국 동북사범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길림화공대학에 근무하다가 장춘의 길림성화공무역회사와 CITS 길림성지사 한국부를 거쳐 한국유학이 5년째 지속중이었다.
그는 저녁식사 시간이었지만 이야기가 우선이라고 하며 먼저 이야기부터 하자고 제의했다. 초면이지만 동감을 느끼며 주저 없이 커피숍에 눌러앉았던 것은 아마 서로를 우리라는 것에 소속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족문제에 대한 대화가 그 중요한 명분이고 공통분모였다. ‘코레안드림’ 취재는 인간에게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게 하는 취재였다.
우리는 신촌 대학거리의 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다방에서 일어났을 때는 밤 열시 반, 남자이고 한창 젊은 그가 얼마나 시장기를 느꼈을까 싶다. 음식점을 고를 사이도 없이 커피숍옆의 한 분식점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마지막 지하철을 잡으면서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국유학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점**
자리를 잡자 그는 먼저 서울 모 대학의 한 조선족유학생(학부생)이 위조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사건이 보도돼 조선족유학생들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조선족유학생들이 신경이 곤두섰었다는 이야기부터 했다.
그는 뉴스에서 조선족유학생이라는 말에 관심을 갖고 바로 인터넷검색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상세한 상황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 조선족유학생은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브로커에게 한화로 약 1천만원을 주고 한국유학을 했다. 그는 공부하는 한편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고 빚을 갚아야 했다. 아무런 사회경험도 없는 고등학교 졸업생으로서는 공부하기만도 힘들었다. 그런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또 빚을 갚아야 했으니 정신적으로 큰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차 한국인 범행자가 그더러 자기 카드로 돈을 인출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유학생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해 그가 넘겨주는 카드를 받아들고 인출기로 다가갔다. 돈을 인출하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하여 왜 절로 돈을 인출하지 않고 나를 시키는가,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때까지도 그는 자기 얼굴이 카메라에 잡힐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기군은 돈을 주면 받아쓰면 되는 것이지 왜 묻냐, 라고 하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학생은 인출기에서 돈을 꺼내 주고 사기꾼이 넘겨주는 얼마의 수고비를 받았다고 한다.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위조카드 인출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제야 앞이 캄캄해난 유학생이 한국에 돈벌러 한국에 온 삼촌에게로 달려가 이 사건을 말했고, 삼촌도 깜짝 놀라 목사를 찾아 상의했다. 유학생은 목사의 도움을 받아 자수하는 한편 그 사기군의 용모특징을 제보해 경찰이 공항에서 탈출직전 주요 범행자를 잡았다고 한다.
권혁률씨는 한국 유학을 결정한 조선족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메스컴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1. 공부와 돈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 공부하면서 돈 벌기는 힘들다. 공부하든가, 돈을 벌든가, 두 가지 중에서 한가지밖에는 할 수 없다. 등록금을 벌기도 힘든데, 빚을 갚는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2. 미국이나 일본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학생들은 경제적으로 다 어렵게 공부한다. 환율 차이로 미국이나 일본처럼 돈을 벌어 학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3.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정도 기본적인 준비를 갖춘 후에 유학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에서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면 한국 유학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어려서부터 학교교육을 학원공부가 뒷받침해주는 나라다. 어려서부터 석사 졸업생의 학원강사에게 좋은 지도를 받아 기초를 다진다. 그러한 훈련을 거친 학생을 위한 교육 수준을 따르기가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 어느 정도의 기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중국 조선족 유학생, 나아가서 조선족의 대표로 간주될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될 특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생이라면 금방 19-20세,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중국사회나 한국사회에 대한 뚜렷한 주견이 전무인 상태에서 적응하기조차 상당히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4. 브로커들을 통한 유학을 하지 말라. 인터넷이 잘 돼있기에 외국유학생을 받는 학교를 검색해 교수님과 인터넷을 통해 연락하는 등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유학을 해야 한다. 학과를 선택하고 수속절차를 알아봐야 한다. 불법경로를 통해 브로커들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오는 학생이 있다고 들었다. 유학 영역만은 좀더 신성하고 깨끗함을 다 같이 지켜주기 바란다.
5. 한국대학의 정서를 잘 인식해야 한다. 학교분위기는 중국보다 자유롭다. 민주적으로 조직된 학생회가 노조처럼 학교 당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학생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총장사무실에 진입, 점거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공부와 놀기를 잘 구분한다. 중국대학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국의 풍경도 많다. 그렇지만 유학생들이 표면의 흐름만 보고 따라 한다면 공부를 망칠 수 있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한국 학생가운데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세탁기, 취사도구까지 갖추어 놓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다. 유학을 왔으면 반드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
6. 한국대학의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사제관계, 동창관계 등이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 자신의 언행이 상대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연상, 연하를 막론하고 예의를 지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국의 예의 또는 풍속 등을 이해하고 그러한 점들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분위기를 스스로 잘 터득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형편이 아니니. 성실과 예의라는 수양을 갖춘다면 어디에서나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7. 유학비자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한다. 국, 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의 경우 그 연장 수속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나 지도 교수님을 통해야 할 서류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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