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문제, 키 없는 자물쇠인가?**
불법체류자인 동서가 모처럼의 휴가를 가지게 되어 셋집으로 찾아왔다. 나의 셋집이면 마음대로 다리를 펴고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상상 밖이었다.
취재를 갔다가 돌아와 문을 당기니 문은 안으로 잠겨있어 열리지 않았다. 내가 동서를 불러서야 문을 열어 주었는데 얼굴에는 가득 공포가 어려 있었다. 나를 보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는 혼자 있지 않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었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는데 겁이 나서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이 아니었을까?”
라고 동서는 걱정했다.
동서는 경찰에 잡혀 갈까봐 화장실도 못 가고 TV도 못 켜고 있었다고 했다.
셋방 주인이 무슨 일 때문에 찾아 왔을 수도 있는 무심한 일 때문에 동서는 모처럼의 휴식일을 검문이 두려워 하루 종일 불안에 떨었다. 한국 천지가 경찰이 돼 보인다고 하는 그녀 말에서 나는 불법체류자의 공포를 또 한 번 피부로 경험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취재하는 동안 스스로 냉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감정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문제가 불법체류자 문제였다. 냉정해졌다가도 검문 당해 수갑을 차고 강제추방을 당했다는 조선족들을 만나게 되면 또다시 흥분하곤 했다. 이런 감정적인 갈등과 그 갈등의 반복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었지만 나는 필경 조선족이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문제, 대안은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인 지명인사들을 취재했다.
***이윤기:**
한국 해외 한민족 연구소 소장
2000년 9월 5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당수동 19 삼한빌딩 401호 사무실. 무더운 날씨, 에어콘 소리가 특별히 요란함.
필자(이하 ‘필’): 선생님은 어떤 동포관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셔요? 제목이 너무 크지요?(웃음)
이윤기(이하 ‘이’):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되어왔던 지난 한국사에 대한 회고 생략)지금까지 한국의 교포 정책은 상당히 미흡했습니다. 교포관 하나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동족인 해외 교포들을 상당히 짐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 짜증스러운 대상으로 생각해왔지 않느냐 싶습니다. 지난날 해외 동포들이 그런 짐스러운 존재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의 큰 자산입니다. 동포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그런 표현을 씁니다....... 민간외교관, 우리 문화 해외 홍보원, 우리 상품의 해외 판촉원 등 우리의 해외 진출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분들입니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 쪽, 그러니까 따스겐타, 알마따 등을 나가 보면 일본 등 나라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진출을 시도했지만 이룩하지 못했고, 우리 기업은 진출했습니다. 적어도 60년 이상 정착한 한민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고, 상당히 차원이 높은 공무원 직에 있어 정보, 문화, 기업진출의 도움이 큽니다. 이런 것은 동포 도움으로만이 가능합니다.
필: 선생님은 해외 민족 연구를 하시기에 다른 나라 해외 민족 상황도 잘 아시겠지요?
이: 가령 일본, 독일의 경우를 보면, 해외 3대, 4대가 거의 그 나라 쪽에 귀화하다시피 해도 본국으로 돌아오면 그 날부터 바로 내국인과 동등한 지위, 똑 같은 대접을 받게 합니다. 재산권, 사교활동, 정치 대우 등 다 같은 대우입니다. 특히 독일 같은 나라는 1941년 독소 전쟁시에 모스크바 근교 볼가강 유역에 살던 독일인들을 중앙아시아 쪽으로 강제이주를 시켰었는데, 상당한 시간 후 고르바초프가 즉위하여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할 때에 재빨리 상의해 소련 독일인들을 다시 볼가강 유역에 재집결시켜, 제2도이치 공화국을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교포들의 요구에 따라 독일 본국에 갈 사람은 다 데려 갔습니다. 일본도 남미교포들이 많은데, 언제라도 본국에 돌아오면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습니다. 일본계 대통령이 되기까지 일본이라는 모국의 튼튼한 배경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도 해외 화교가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데, 등소평, 강택민 등 지도자들이 교포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을 보면 해외 화교들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이 나라에서 몇 세대를 살아도 자랑스러운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이라고 하면서 화교라는 긍지를 갖도록 합니다. 항상 화교들과 조국 관계를 돈독히 하여 화교들이 중국의 든든한 경제 뒷심이 되고 있습니다. 중화경제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필: 선생님은 최근에 수정된 ‘재외 동포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재외 동포 법’ 제정과정에 불행하게도 중국, 구소련 교포들이 재외동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외 동포 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물론 정책당국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만, 제정과정에 중국 교포들은 지금 이미 중국 국민으로 귀화된 사람들이기에 그 나라 공민 신분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하고, 외교관계에 마찰이 생기기 않게 하다보니 제외동포로 밖에 될 수 없는 법으로 되었습니다. 정책 당국에서는 법은 그렇게 됐지만, 장래 앞으로는 개정하되, 임시는 시행법만이라도 잘 해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배려하고 있다는 것은 각별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연구소 입장에서 제일 관심 갖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 교포들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 상당한 수는 독립군 후예들이고, 어렵게 이민 간 사람들인데, 그러다가 어느 날 국경이 닫혀 오도 가도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미국, 유럽 타 지역에 간 사람들은 선택에 의해 이주해 살고 있고, 중국, 러시아 쪽의 교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필: 선생님께서는 불법체류자 해결의 대안이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이: 가령 동남아 여러 나라 노동자들, 가령 필리핀, 인도네시아, 타이, 말레시아에 노동 기회를 줄 바에는 우리 교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거든요. 중국 2백만 조선족 중 노인, 청소년, 공직자들을 빼면, 실질적으로 노동력을 가지고 돈벌어 가려는 수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령 연령적으로 단계를 나누어 입국시킨다, 단기일은 안되므로 1년가량 일할 기회를 주고, 별 탈이 없이 아무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때는 1년간 더 연장해준다, 이렇게 2년만 되면 실제상 상당한 돈벌이를 할 수 있고, 중국 돌아가서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단계식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가지고 따져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가능성문제를 타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면에는 불법체류자들의 잘못을 불문에 붙이고, 일정한 기간을 설정해서 열심히 돈을 번 다음에는 돌아가게 하되, 다시는 불법체류를 엄금하도록 엄하게 요구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 하는 방법입니다.
필: 한국 정부에서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의심하는 이유는, 한국에는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에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어느 자료에서 보았는데, 약 6만명의 인력이 수요된다고 하는데요, 그 비어 있는 자리에는 불법체류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불법체류자 조장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요?
이: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사회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필: 정부입장으로는 불법체류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출국을 실시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 그럼요.
필: 그런 방법을 쓰다보면 감정을 상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결코 불법체류자를 막아낼 수가 없지요? 한국 정부측에는 오히려 그만한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지요? 이렇게 악순환이 생기거든요. 경기대 한 교수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는 조선족이 임금체불, 사기를 당하는 것의 중요 요인은 불법체류 문제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그럼요, 불법체류가 약점이 되니까.
필: 현재 상황에서 보면 조선족들의 불법체류를 필요로 하는 한국의 노동력시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불법체류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에 강제출국을 시킵니다. 그렇지만 불법체류 노동력시장이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를 막아는 내지 못하고 다른 불법체류자를 만들어냅니다. 새롭게 만들어낸 불법체류자들도 결국 강제출국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해외동포들의 감정을 많이 상하게 하는 이런 하책밖에는 없는건가요? 이런 하책을 상책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을까요?
이: 불법체류자 문제는 세계적인 넓이에서 보면, 남북관계 문제, 즉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남쪽 여러 나라에서는 북쪽 선진 산업국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미국, 멕시코 관계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취업해 일하다가 이민 당국 축출을 당하면 미련 없이 갑니다. 그러나 10일이 지나면 바로 다시 들어오죠. 밀입국하고, 막 헤엄을 쳐서도 들어옵니다. 조선족 문제도 불법체류 문제라고만 보지 말고 큰 안목에서 남북관계 문제라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 라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계적인 측면에서 보면 근로자가 산업화 국가에 가서 돈벌이하는 문제를 국제법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인류 생존권문제에서 보려 합니다.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가는데 무슨 잘못이냐, 라고 보는 관점은 국제적인 문제로 제기 되고 있습니다. 미국, 멕시코 관계도 그렇고, 독일 문제도 그렇고, 한국과 일본 관계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런 식의 큰 차원에서 보면 아직 인권적인 차원, 자연권 적인 차원, 인류사적인 차원에서 앞으로 유엔 등 곳에서 다루어야 할 차원의 문제의 성질입니다. 교포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것도 세계화의 세계사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 싶습니다.
좀 더 멀리 조망해 보면, 법규제 문제를 떠나서 자연히 해결되는 그런 시기가 올 것입니다. 가령 중국이 잘 살면 한국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아도, 지금은 솔직히 한국 여성들이 몸을 파는 일은 있지만, 한국 불법 체류자들은 많이 격감되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수입이나 한국의 수입의 차이가 줄어듦에 따라 오히려 미국 교포들의 역 이민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당국으로는 교포문제를 방치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조선족에 대해서는 단순한 불법체류 차원을 넘어서 특별한 배려를 할 수 없을까 고 생각해 봅니다.
필: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출입국 관리소에서 출국시에 조선족 불법체류자들에게 수갑을 차게 하는 것, 그것은 정말 감정이 상한다고 생각해요.
이: 불법이니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죠.
필: (농담조로)한번 차가운 수갑을 차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분이 어떠시겠어요?
이: 이건 외국인만 채우는 것도 아니고, 한국도적이든, 외국도적이든 도적은 다 채우는 겁니다. 한국인도 중국 가서 도적질하면 수갑 차게 되죠. 그렇게 생각해 야죠.
필: 한국 도적은 도적이어서 채우지만 조선족은 도적이 아니잖아요? 고향에 와 오래 있었다는 이유뿐이잖아요?
이: 체류기한을 넘었으면 그것이 바로 범죄입니다.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하면 틀립니다.
필: 물론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조선족이 생각하는 것은 이 땅에 왔으면 내 고향이고, 내 마당이라는 것, 밑바탕에 깔린 감정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겁니다. 일본이나, 미국에 가서 검문 당해 쫓겨 와도 한국에서처럼은 마음이 상하지는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이: 동족은 동족이다, 해도 국제법상에는 엄연히 중국 공민이고, 여기는 한국입니다. 조선족이 이런 저런 비극이 생기고 있지만 정체적인 흐름에서는 한국의 돈을 벌어 중국에서의 생활향상에 도움이 되는데,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면 안되죠.
필: 그런 면에서 제가 만났던 조선족들도 한국 및 중국 조선족의 현실에 입각해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외국인 보호소, 납골당 등을 보고, 조선족들의 어려운 실정을 보면 감정상에서 혼란이 옵니다. 지금도 답답한 것은, 불법체류자 문제는 개인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차원의 문제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그런 생각들을 솔직하게 쓰세요. 쓰는 동시에 여러 측면을 다 부각하면 사회 일반과 조선족, 한국인들의 인식을 바로 잡는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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