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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섬나라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69>

***외로운 섬나라**

대림동의 서울조선족교회에 이르고 보니 문밖에 조선족들이 가득 모여 있는 정경이 보였다. 교회에서 마련한 ‘직업소개란’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교회에 들어서니 발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노인층은 많지 않고 젊은이들이 많았다. 중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한국에 나오지 않고 지금 바로 중국에 있다면 이들 중의 상당한 사람들은 종교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취재를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중국에서는 종교인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체제 중국에서는 맑스주의 유물론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종교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직장인들은 거의 종교를 가지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종교자유의 개념은 자본주의 체제의 종교자유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사회적으로 종교에 가담한 사람은 중용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사회에서 지위가 있는 사람은 종교인이 아니다.

서울조선족교회에 조선족이 1천6백여명이 등록되었으며 매주 일요일마다 3백명~5백명이 예배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 외 봉천동교회거나 성남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대림동의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삼백여명 조선족이 열심히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의 나라에서’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몰래 눈이 젖어들었다. 얼마나 고독했으면, 그리고 얼마나 방황했으면 이렇게 교회에 모여들었을까?

교회 동남쪽에 작은 무대가 마련돼 있고 마이크 옆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에 맞춰 찬양을 인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삼십대의 젊은 여성이 찬송가를 춤으로 인도했고 역시 삼십대의 남자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인도했다. 두 사람 다 용모가 수려했거니와 매너도 깔끔하고 세련되어 한국인인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선족이었다.

목사가 ‘섬기며의 종교’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한 시간 남짓이 그것을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취재했던 사람들보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두 가지 표정을 대조해보았다. 교인이 아닌 조선족들보다 교인인 조선족들은 어떤 희망, 아니 안전감 같은 것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고, 그러한 자신심을 보여 주는 듯 옷차림이 정갈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는 종교를 믿는 한국의 조선족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2년도에 연변대학 역사학부의 30대 강사 한 분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대부금을 내어 한국을 방문했는데 여비로 가지고 갔던 약을 전부 빼앗기고 돈 한 푼도 없어 교회로 찾아갔다고 한다. 첫 고국 행에 오도 가도 못할 궁지에 빠진 그는 저도 몰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 갑자기 기적이 생겼다. 정말 하느님이라는 분이 나타나 자기를 믿으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 말을 그는 아리송한 기색으로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였으므로 물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느님을 보았다는 그도 교인은 아닌 까닭에 그냥 꿈같은 기분으로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하느님을 보았다고 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교인이 아닌 까닭에 나는 하느님은 정신적인 지주를 필요로 하는 인간들의 절박한 생각에 의해 창조된다고 생각한다. 바다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를 보아도 손을 내밀어 희망을 잡는다. 병든 고국콤플렉스와 열등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인 한국에 나와 3D 업종 밑바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여 돈을 버는 조선족 집단에는 허둥거리는 마음을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머무를 수 있는 그들의 안신처가 필요했다.

이 곳에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조선족들은 그것을 갈망해 종교라는 개념의 지붕 밑에 웅크리고 서있다.

체제적인 갈등, 문화의 갈등, 금전의 유혹, 가치관의 동요, 불법체류자로의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조선족에게 가장 절실하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존재는 하느님, 아니 교회였다.

내가 마음이 복잡해지고 있을 때 사회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한가위 날 중국조선족 5천명 대잔치 날에 특별 초청 할 사람들을 선정하는 투표카드를 써서 바치라고 했다.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투표카드를 썼다. 한국 정부측은 대통령 부인, 법무부, 노동부 요인들이었고, 한국 측 연예인은 차례 순으로 주현미, 현철, 설운도, 최진실 등 이었으며, 중국 측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에 많이 집중되었고, 중국측 연예인은 규정된 인원수 3명에 집중되지 않고 사람마다 각각이었다.

새로 입회신청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자신을 소개하는 순서였는데 거주지는 중국의 연길, 도문, 할빈, 목단강, 길림, 심양 등 여러 곳들이었다. 그들의 신청을 환영하는 박수소리가 터졌다. 무대에 오른 신 교인들의 얼굴에서는 드디어 어떤 집단에 가담했을 때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느님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교회의 힘이었을까? 교회가 검문에 걸린 불법체류자들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에, 임금체불, 사기피해, 산재피해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것에,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해 준다는 것에, 그리고 자기와 같은 처지의 동류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에 더 현혹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봉천교회나 성남교회에서는 조선족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병을 치료해주기 때문에 일자리가 떨어졌거나 사고, 병을 당한 사람들이 장기 투숙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하느님을 인정할 수 있을까? 서경석 목사를, 윤완선 소장을, 그리고 기타 조선족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착한 교회 사람들을 하느님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선족들이 어서 하루 속히 빚을 갚게 해 주옵고....... 건강한 몸으로 있게 해주옵고....... 불법체류자로 된 그들을 그 멍에에서 어서 풀려 나오게 해 주옵고....... 열심히 일해....... 하루속히 영적으로 성숙하게 해 주옵고.......”

종교인이 아닌 나에게도 그 기도는 따뜻했다. 이런 느낌은 믿음이 아니라 위안이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었기에 종교의 처마 밑에 몰려있는 조선족들이 안쓰러웠고 불안했다. 그들이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것은 개인적인 자유와 선택이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상 내가 취재한 많은 조선족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서, 보호받기 위해서 종교에 가담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조선족에게 열려있는 문은 왜 종교뿐이어야 하는 것일까?

한국은 구소련 체제 고려인들과 중국 조선족을 해외 동포법에서도 제외했다.

노동인력이 위주인 고려인과 조선족은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조선족은 무엇인가? 동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혼란하기만 하다. 사실상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인력시장을 차지하는 중국조선족의 과다입국으로 인한 한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 외 중국과의 외교마찰도 고려사항이다.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국가현실에 비춰 이런 법을 제정한 것은 명분이 되는 것이다. 한국 국력의 한계는 도덕적인 차원에서만 힐난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처절했던 전쟁의 수난을 겪은 폐허 위에 자신의 피땀으로 아시아의 중요 국가로 부상했고 농업위주의 저개발국으로부터 신흥 산업국가로 성장했다.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력에 비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해외 동포 부담이 많은 나라이다. 난감하게도 조선족은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다.

어서 한국 국력이 커져서 조선족이 동포로 인정받을 날이 있기를 바라며, 아직은 경제면에서 모국에 의지해야 하는 조선족이 어느 날인가는 우수하게 성장하여 부유한 재미 동포처럼 모국의 보따리가 아닌 의젓한 동포로 인정될 날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도 우리 한민족사의 한부분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종교는 세계적인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동포들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에 속한다. 그러니 세계에 속하는 종교만이 조선족에게 문을 활짝 열 어 주는 것이다. 물은 에우는 곳으로 간다. 한국체류 조선족이 종교의 처마에서나마 비를 그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러나 2백만 조선족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에우는 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선족도 어서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어서 성장하여 자신의 힘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모국 사회와 대등한 입장에서 조선족 문제를 풀어 나갈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며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교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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