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40대):
대림동교회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김진성씨는 애인현상에 대해 30대의 배문석 씨와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20%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한국사회 차별을 당하며 돈벌기가 너무 힘들고 외로우니까 애인을 찾습니다. 너도 집 잡고, 나도 집 잡기보다 같이 있으면 집세를 반 절약할 수 있죠? 남자들은 셋집에 많이 있지 않고 떠돌며 돈을 법니다. 그러니 그 집을 비우기보다 함께 이용하면 셋값도 덜고 좋겠지요. 여자는 대부분 식당에서 일하니까 반찬이라도 들고 오겠지요. 멀리 중국의 가족을 떠나 힘들게 일하다가 셋집이라도 돌아오면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너 좋고, 나 좋고, 경제는 같이 부담하고, 그러나 번 돈은 각각 챙기고, 다 벌고 나서는 서로의 관계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각각 집으로 가는 겁니다. 어떤 나쁜 여자들은 남자에게 돈을 달라고 하죠. 돈 주면 살고 안주면 안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런 부류는 극소수지요. 여기는 한국식으로 '묻지마'입니다. 성이 뭐냐, 묻지마, 이름이 뭐냐, 묻지마, (이름을 마음대로 지어 불러요. 이름이 네댓 개씩 돼서 자기 절로도 구분을 잘 못해요.) 중국주소 어디냐, 묻지마, 중국 전화번호, 묻지마....서로 느낌만 좋고 믿음이 가면 합숙하지요. 말하자면 신용원칙의 동거지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애인 있으세요?"
라고 내가 농담했다.
"저의 상황은 아까 말씀했잖아요. 여러 번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집에서도 혹시 여자에게 돈을 다 처 넣고 있지 않나 오해하는 때도 있었거든요. 저는 운명이 여하하든 한국에서 가족에 미안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도 미안하지 않게, 조선족의 이미지도 생각하면서 착실하게 일해 돈벌려고 합니다."
김진성씨는 조선족사회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별을 안 받으려면 명분을 지키고, 체면을 지켜야 합니다.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난 척 하고 소리 높은 사람은 불법체류자라고 기소를 당할까봐 현장의 오야지에게와는 당하기만 하고 꼼짝도 못합니다. 대신 교회에 와서는 헌금도 안냅니다. 금년에 교회에서 조선족의 체불임금 2, 3천만 원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화 한 통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거나 다름이 없던 체불임금 1천만원을 교회에서 받아줬습니다. 2백만원을 내도 8백만원은 찾은 셈이 아닙니까. 20만원도 헌금을 안해요. 외국인 보호소에서 강제출국을 당하게 됐을 때 교회에서 빼어 줬는데, 기본으로 50만원 보증금은 본인이 내야지 않습니까! 그 돈 교회에서 냈는데, 자기는 모르는 척 하는 겁니다. 한 번 다시 한국 나오자 하면 1천만원이 깨져야 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50만원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전부는 아니고, 통이 크게 3백만을 낸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어 김집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삼촌이 한국에 돈 벌러 나왔다가 평택에서 간암복수로 셋집에서 사망했다. 장례를 치러야 하겠는데, 병원에서 사망하지 않았기에 사망진단서가 없어 친지를 초청할 수 없었다. 현지 파출소에 신고하고, 해당 법원 판사가 와서 병사를 확인해야 하는데 친구가 불법체류자여서 파출소, 법원에 갈 수 없었다. 김집사는 상황이 딱해 중국영사관에 가서 장례를 치르게 해줄 것을 제기했다. 중국영사관에서는 담당영사가 중국에 갔으니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다. 김집사는 성남의 김현식 목사에게 전화했다. 목사는 약을 산 영수증이 있으면 사망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때 이미 오후 세시가 됐다. 이튿날에 김현식 목사는 먼저 시신을 화장터에 가서 태우고 서류는 후에 만들었다. 골회함은 성남 조선족납골당(지금 골회 함이 40개정도 있음.)에 놓았다. 김목사는 또 사망자 친지 두 명을 초청해 한국에 나오게 했다.
"이 얼마나 목 메이게 고마운 일입니까! 종교에 대한 태도는 둘째로 치고, 양심적으로라도 감사는 표해야 할 게 아닙니까! 왜 헌금을 조금이라도 못 하는 겁니까!"
김집사는 안타깝다는듯 머리를 저었다.
"조선족들은 대부분 지하방, 반 지하방이거나 골방에 셋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에 술병이 쌓여있으면 무조건 조선족 집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리봉, 구로동, 대림동 노래방은 조선족 때문에 살아간다고 한다면 과분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조선족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친구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핸드폰을 하루 평균 한 번밖에 안치는 정도입니다. 모두들 너 애인 사귀었냐, 라고 합니다만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착실하게 살려고 합니다. 연변의 나훈아라고 할 정도로 노래도 잘하지만, 친구도 만나지 않고 노래방에도 안 갑니다. 그런데 쓸 돈이 없어요. 돈을 버는 것도 재간이지만 잘 쓰는 것부터 배우고, 헛소리 치지 말고, 더 머리 숙이고 잘 벌어 집에 가서 멋있게 쓰며 살자, 한달 30만원이 중국서는 큰돈이다, 술 먹지 말고 그 돈으로 집에 가서 멋있게 살자, 이렇게 친구들과 말합니다. 돈 없다, 비 온다, 집 생각이 난다, 슬프다, 외롭다, 화가 난다, 이런 생각에 쫓겨 노래방에 가고, 이 어둡고 지루한 방에서 너도 집이 없다, 나도 집이 없다, 집 없는 놈들끼리 술집 가서 술이나 마시자, 이렇게 살면 불법체류생활 끝이 없어져요. 한 친구는 어떤 좌절을 이기지 못해 몇 달간 번 돈 400만원을 며칠사이에 다 아가씨방에 처넣었어요. 쓰고 나서야 정신 드는지, 그놈 아편보다 더하구나, 라고 한탄을 하더라구요.
어떤 친구들은 밤새도록 와락와락 소리를 내며 마작을 놀아요. 노는 사람은 네 사람인데, 구경꾼은 가득하고, 옆집 한국인들 성질 나 신고해버리죠. 우리 집 도박 붙었다, 전화 한 통이면 다 잡아가요, 교포야, 집에 가, 이렇게 되죠. 누구 탓이죠? 자기 탓이잖아요. 금년에 고스톱을 세 번 논 적이 있었어요. 놀다보니 길림, 서란, 흑룡강 사람이 놀게 됐어요. 처음에는 재미로 만원만 가지고 놀았는데, 놀다보면 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길림 사람이 지면 자기네들 길림사람에게 '연변사람에게 다 털렸다'라고 전화하고, 그런 식으로 길림사람, 흑룡강사람, 서란 사람이 지역감정 때문에 와르르 달려와 놀다보니 서로 성질 나 옥신각신 티각태각 했거든요.
휴식 일이 오면 저는 교회에 나가 시간을 보냅니다. 조선족교회인데 조선족끼리 모이면 위로도 받고, 봉사도 하고, 컴퓨터도 배우죠. 현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비와도 휴식, 눈이 와도 휴식, 일당 7-8만원씩 받고 노는 날이 많은데, 시간을 보낼 줄 몰라 술만 마시다보면 돈은 벌어도 날리기만 하고 집에 가지고 갈 돈은 모여지지 않지요. 돈은 못 벌고 생활방식만 나쁘게 변해 가지고 돌아가거든요."
한국체류 조선족실상에 관한 책을 쓴다는 말에 그는 이 점만은 꼭 기록해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 오면 금덩이가 툭툭 튀여 나오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틀려요. 집의 사람들이 돈을 잘 써야 합니다. 어떤 여자들은 생일날에 친구들을 불러 2천원씩(한화 30만원) 깨면서 마시고 쓰는데, 우리가 여기서 그 30만원을 저금하자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한국에 와서 나는 두 번 생일을 쇤 적이 있는데, 한 번은 함바집에 가서 혼자 술을 마셨고, 한 번은 누나가 불러줘서 식당에 가 먹고 노래방에까지 갔습니다. 가족들은 한국이란 나라에 오면 공짜 돈이 생기는 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란현에서 온 50세가 넘은 사람이 있는데, 지금 7년째 있습니다. 6년 동안 26만원을 집에 보냈는데 아직도 빚이 4만원이 있다고 하니 이 사람 환장하는 겁니다. 1년 동안에 빚을 다 갚은 걸로 생각했는데, 7년째가 돼도 빚이 있다니, 말이나 됩니까? 집에 돈 보내봤자 한강에 돌 던진 격이라고 한탄하더니 지금은 타락해버렸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써버립니다. 쩍하면 밤에 문을 두드려옵니다. 난 담배 값도 없는 놈이니까, 자주 술을 얻어먹습니다만.....심양 사람은 중국 돈 십여 만원(한국돈 천수백만원)을 아내에게 보냈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달아나서 역시 타락했습니다. 요즘 중국의 가족들은 돈을 어떤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오면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돈이 없으면 다른 여자와 붙어 놀아난 걸로 생각합니다. 두 나라에 갈라져 있다보니 서로의 아픔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고, 가정에 쩍하면 금이 생깁니다...."
이도율(30대):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이도율씨도 조선족사회 '애인현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 금방 온 사람은 애인이 거의 없어요. 한국에 온지 오래된 사람들은 애인이 있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가 있어요. 저보다는 한 살이 어리니까 32세쯤 되죠. 저의 기타를 수리해줘서 인연이 되어 통화를 하곤 하는데요, 친구가 '너처럼 사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이 이렇다'라고 하면서 애인을 찾으라고 하더래요."
이도율씨는 아직 미혼이었다. 자기는 가정이 중국에 있다면 애인은 가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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