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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인 것이 자랑스러울 때(1)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58>

***조선족인 것이 자랑스러울 때**

7월 19일, 충무로에는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겨 오후 두시에 도착했다.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서울에서의 시간 계산은 항상 이렇게 어수선했다. 시간이 모자라지 않으면, 엄청 많이 남아돌곤 했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기다렸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충무로 지하철 입구에서 노랗고 빨간 예쁜 우산들이 3천원에 팔리고 있었다.

가까스레 세시를 기다려 이도율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도율씨는 대림동에 있는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만났었다. 교회의 무슨 책임인가 맡고 있었다. 책임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티 나서 34세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깍듯이 인사를 챙기고, 시간을 정확히 약속하는 등 언행에서 서울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서울질서가 몸에 많이 배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키에 상고머리를 한 하얀 얼굴이 순진해 보여 하마터면 아르바이트생쯤으로 착각 할 번했다. 그는 자기가 일하고 있는 갈비 집에 조선족들이 20명이 된다고, 취재를 안내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도율씨는 나를 자기 근무지인 대림정 관광식당으로 안내했다. 식탁이 15개는 될 듯한 보통식당보다는 조금 큰 식당이었다. 조선족 여직원들이 한창 마늘을 바르고 있었다. 이도율씨가 실장이라는 한국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이어 숙소에 안내했다.

숙소라는 것은 우리가 중국영화 ‘갱도전’(항일전쟁시기 백성들이 갱도를 파고 일제와 싸운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보았던 갱도와 비슷했다. 자그마한 층계를 내리니 습한 기운이 안겨왔다. 완전 지하 방인 컴컴한 숙소여서 손으로 더듬어 내려갔다. 이도율씨가 탁상등을 켜서야 방의 윤곽이 보였다. 하마터면 손으로 코를 막을 번했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들의 방이 두세 개 있었고, 여자들의 방도 두세 개 있었다. 복도에 세워 놓은 구두, 장화 등에 보얗게 곰팡이가 끼어 신의 형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방에 펴놓은 이불에 습기가 가득했다. 여자들이 이런 방에 있으면 몸이 많이 상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셋방 값을 아끼려고 이런 방을 참는 것 만 해도 대단한 인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인내라고 하기보다는 몸을 상해 돈을 벌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이런 방에 있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매일 견디는 그들이 나보다 이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해 보았을 거라는 생각에 주제넘은 권고는 삼가하기로 했다. 노동력을 파는 사람은 몸이 밑천이고, 돈이다. 어디서 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건강이 돈이다. 몸이 다 상한 다음에야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직원이 무엇인가 가지러 숙소에 들어왔다.

“누님, 이분이요, 중국서 온 작가선생님인데요, 우리 조선족들의 실상에 대한 취재를 하고 싶대요. 누님 좀 말씀해주시죠.”

이도율씨가 말하자 그 직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할말이 없소. 무슨 할말이 있다고, 없소, 없소.”
라고 연변말로 거절했다.

좀 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수백만원 또는 천만원의 빚을 내고 온 몸이고 보면, 시간이 돈인데 나와 한가하게 이야기할 여유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대림정 관광식당에는 연길, 흑룡강 쪽에서 온 조선족종업원들이 여자들은 14명, 남자는 6명, 직원의 80%가 중국조선족이었다. 첫 달의 월급은 80만원, 지금 이도율은 1백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도율씨는 1997년에 목단강성으로부터 한국에 들어 온지 3년 3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떠돌며 벌다가 정착한곳이 중고등학교 식당이었다. 처음에는 일반 종업원으로 일했으나 후에는 식당관리실장으로 있었다. 월급도 괜찮아 1백20만원 정도 받았다.

직원들은 그가 조선족인줄을 알면서도 잘 따라 줘 고마웠다고 했다. 모두가 그에게는 엄마뻘, 아버지뻘, 형님뻘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가 배치하는 대로 일을 하고 창고관리 등을 했다.

“실장으로 인정받기까지는 힘들었어요. 사장님이 저에 대해 조선족이라는 편견이 있어 기분이 언짢을 때가 많았어요.”

“어떤 면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예를 들면 똑같은 일을 가지고도 대하는 차이가 심했어요. 잘못한 일은 한국인에 대해서는 별말을 안 하지만 저에 대해서는 꼭 기분 나쁜 말을 했고, 뒤끝에는 꼭 중국의 나쁜 점들을 말해 무시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 번은 오후 쉬는 시간이어서 배식 전 간식을 먹게 됐어요. 냉면, 라면 등을 먹거든요. 영양사실에서 라면을 먹는데, 저쪽 가 먹어, 왜 여기서 먹느냐, 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저는 영양사실에서 처음 간식을 먹었어요. 주방장 등은 영양사실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먹어도 한 번 지적하는 걸 못 봤는데, 저는 처음인데도 그렇게 인상 쓰며 소리를 질러요. 직원들이 많은 자리여서 창피했어요. 너무 기분 나빠 라면그릇을 그대로 싱크대에 버리고 나왔어요. 이 회사는 사장님이 두 분이세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신데, 할아버지사장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을 거예요. 할머니 사장님이 교포라는 편견이 심하거든요. 할아버지사장님은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하더라구요.”

“직원들과는 괜찮으셨나요?”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힘들었죠. 처음 이 학교식당에 발을 들여놓을 때에는 억지로 참으며 일했어요. 이 사람, 저 사람 다 저를 상관하려 들었어요. 분명히 내가 하는 일이 맞는데 자꾸 자기들이 하는 대로 하라, 라고 하다보니 일이 처지면 사장님에게 욕을 먹곤 했어요. 말투상 깔보는 게 심했어요. 특히 ‘미친놈!’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미치겠어요. 중국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먹을 때는 참기 힘들었어요.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장님에게 욕을 먹고, 스트레스가 많았죠.”

여기에서 잠깐 한국인과 조선족의 표현의 차이를 말하고자 한다. 표현의 차이도 한국인과 조선족의 갈등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도율씨에 대한 취재에서 한국인의 욕의 표현에서 겪은 갈등을 알게 된 후, 나는 내가 잘 아는 한국인들에게 ‘미친놈’이라는 욕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미친놈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했다. 친구끼리도 농담으로 자주 쓰기에 반드시 미쳤다는 뜻으로 욕하는 것은 아니고, ‘개자식’ 등과 비슷한 일반 욕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선족들에게는 ‘미친놈’이라는 욕이 무척 낯설고, 낯선 것만큼 자극적이다. ‘미친놈’이라는 전의된 뜻보다는 ‘미쳤다’는 원래의 의미가 더 안겨오기에 크게 모욕을 당한 느낌을 받는다. 이밖에도 조선족으로는 욕을 한 한국인의 본의 아니게 그 욕을 더 과장해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의 갈등은 이처럼 욕 한마디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모르게 한국적 표현에 동화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힘들거나 시간이 바쁠 때 ‘미치겠다’의 표현을 쓰는데, 그 표현이 처음에는 조선족들에게 무척 야만적으로 느껴졌었다. 조선족들이 문명의 나라라고 선망하는 모국에서 이런 표현이 쓰이고 있다는 것부터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새 조선족들에게도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식의 부사인 ‘너무너무 좋다’ 등의 ‘너무 너무’에 대해 조선족들은 말 그대로 ‘너무 너무’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었다. ‘너무’란 조선족에게는 지나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너무’에 또 ‘너무’라니, 아마도 대단한 정도를 말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후에 보면 ‘너무 너무’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정말로’, ‘참말로’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새 조선족들도 그렇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들의 어떤 표현이 한국인들에게도 충격이고 갈등이고 오해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족들이 ‘일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은 한국인들에게는 ‘별 볼일이 없습니다’로 느껴져 불쾌감을 자아낸다. 사실은 한국인들이 쓰는 표현인 ‘괜찮습니다.’의 뜻이다. 한국인들의 ‘괜찮습니다.’라는 뜻은 조선족들에게 ‘그럭저럭 견딜만합니다’의 뜻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괜찮습니다’를 좋다는 뜻에도 사용한다. 이런 저런 갈등이 있겠지만, 어느 사회건 주류문화가 지류문화를 동화시키기 마련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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