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시험**
이화는 차장이 까다로운 사람이어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으나 사무실의 자리가 통역에게는 명분에 맞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차장에게는 그로서의 계산이 있었다. 차장은 중국 쪽에 있는 회사에도 실무가 있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이화는 수강비를 내지 않고도 수시로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인 셈이었다.
"컴퓨터를 아세요?"
차장이 물었다. 이화가 모른다고 하자 사무실의 여직원더러 빠른 시간 내에 알도록 배워주라고 했다. 이화가 새로운 도전에 흥분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차장과 과장이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이화가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는 일과 관련해 과장과 주임이 다 동의하지 않았다.
"......여태껏 한국인도 입사 20일만에 라인에서 사무실로 옮기는 일은 없었어요. 컴퓨터도 모르고 무슨 실력으로 사무실에 앉히느냐구요. 황차 이화 씨는 중국어는 A급이지만 한국어는 B급이어서 난 알아먹을 수도 없는 말을 하는데 어찌 사무실에 앉히느냐 이거예요....."
그 소리를 들으며 이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난 이 꼴 당해 싸다. 컴퓨터도 모르고, 한글도 잘 못하니 할말이 없다. 중국에 있을 때에 컴퓨터를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게을러 배우지 않았으니 이 꼴이 됐지. 그렇지만 그냥 이 꼴로 살아서는 안 된다.'
"분공은 어떻게 되었기에 차장이 그만한 권리도 없어요?"
라고 내가 물었더니 이화가 설명했다. 차장은 생산 선을 전부 책임졌고, 과장은 <<인력지원팀>>의 담당으로 연수생을 책임졌고 부장은 행정을 책임졌다.
아무 쪽에서도 이제 이화더러 사무실로 옮기라, 옮기지 말라 말하지 않았다. 이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자 차장에게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과장과 물어봐요, 인력지원 중심팀에서 그런 입장으로 나오니까 나도 모르겠어요."
이화는 생각을 오fot동안 하고나서 과장에게 전화했다. 점심때였다.
"과장님, 저 면접 실에서 과장님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예의 상 어긋나겠지만 할 수 없군요."
과장이 면접실에 왔다. 표정이 좀 굳어있었다.
"과장님, 면접 실에서 저를 시험보시고 입사시켰어요. 그렇게 만나 인연이 생겼으니까요, 이제 면접실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워낙은 두 사람이 통역해야 할 일을 제가 혼자 다 했고, 그 동안 연수생 교육도 질서가 잡혔으니 이만하면 인간적인 처사는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에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사직의 명분이 생긴 듯 합니다. 가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과장님은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기 사람들 워낙은 컴퓨터도 몰랐다, 나도 몰랐었는데, 뭐든지 열심히 배우면 된다, 라고 했지요. 그런데 왜 저한테는 배울 기회를 안 주세요? 한글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배우면 되잖아요?"
"이화 씨가 정말 헐치가 않네. 그러나 한가지는 잘못했어요. 왜 나의 허락이 없이 작업복을 벗고 외출복을 입었어요?"
과장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점심시간에 외출복 입는 것도 안되나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에 와요."
과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이화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로 갔다.
"좋아요, 이화씨가 하면 된다고 했으니 일주일간 시간을 주겠어요. 4층 인력 지원중심팀 사무실에 와서 해봐요. 그러나 시간은 이 한 주일뿐입니다."
이화는 눈이 화등잔이 되었다. 회사 4층은 전부 기관이다. 한국인 기관 직원들 속에서 사무를 본다는 것, 이것은 또 하나의 숙제였다. 과장의 말에는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실적도 없으면 그 때는 아무 소리도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 들어있었다.
이튿날에 이화는 일찍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러나 속은 황황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녀는 아직 잘 몰랐다. 사무실 직원이 의자를 주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의자는 전부 바퀴가 달린 회전용이었지만 유독 그의 것은 바퀴가 없는 사무용 걸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도 움직일 수 있지만 그만은 일이 있으면 걸상을 들고 다녀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컴퓨터가 있지만 그만은 없다. 과장도 그에게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없다. 하루, 이틀 지나도 누구 하나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 절로 생각해서 해야 했다. 일주일동안의 시험, 시험 치고 지독한 시험이었다.
'두고보자, 언제든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첫날에 곁 사무상의 인사 팀의 21살 나는 미스가 그에게 자기 일을 맡기며 여차여차 하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분명히 말하는데요, 이건 나의 몫이 아니고, 도와 주는 거예요, 알지요?"
라고 말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때 일이 생겼다. 월급이 차 나서 연수생들이 의견이 많았다. 출근했는데도 안 했다고 하고, 돈을 못 받았는데도 주었다고 해서 분분히 이화를 찾아왔다.
"일 안 했으면 몰라도 일을 했으면 분명히 받을 것은 받아야 해요."
이화는 따로 연수생 당안과 출석표를 만들었다. 컴퓨터를 몰라 줄 칸을 치고 적어서 출석 표 40장을 만들고 복사해 2부를 만들었다. 연수생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어 출석상황, 작업상황을 기록하고 보관하게 하고 주임, 대리에게도 한 부 씩 주어 기록하게 했다.
연수생들의 일상을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리와 주임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장에게 제기해도 대답은 시원스레 하지만 사실은 그녀 의견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연수생들은 연수생대로 월급이 차나는 문제 때문에 회사측에 불만이 많았다. 자기들끼리도 "한국사람에게 일 너무 잘해줘서는 안 돼, 대강 해"라는 식으로 떠들었다. 영향이 나빴다.
이화는 차장을 찾아갔다.
"우리 컴퓨터 중국에서 성망이 높습니다. 저도 우리 컴퓨터를 위해 뛰는 겁니다. 중국 애들에게 우리 회사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잘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서 우리의 ××컴퓨터가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게 하자, 이런 식으로 홍보하면서도 왜 우리 대신 가장 좋은 홍보원이 될 수있는 연수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 주는 겁니까? 그 애들이 중국에 가서 이 컴퓨터회사 인간성 제로다, 라고 하면 중국에서 우리 컴퓨터 누가 사나요? 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일을 해결하지 않나요?"
차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진득이야, 진득! 너의 말이 맞아."
일주일동안에 연수생들의 문제가 하나하나 해결되었고 질서가 잡혀나갔다. 과장은 이화가 만든 연수생에 관한 서류들을 보더니 이화의 실적을 인정했다. 컴퓨터와 의자를 새로 준비시켰다. 이화는 드디어 기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화는 빠른 속도로 컴퓨터를 배웠다.
회사의 한 직원이 기가 차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이화씨, 기어코 뻗쳐내는구나, 기어코...."
그는 이화가 견뎌내지 못하고 물러나리라고 점을 쳤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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