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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중요한 것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54> 똑순이 이화(1)

전 회로 한국내 조선족의 불법체류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다룬 3부 ‘문이 열리면 좋은 공기 나쁜 공기 다 들어온다 - 어물전 꼴뚜기들’이 끝나고,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선족들을 그린 4부 ‘우산을 들면 비를 원망하지 않는다’가 시작됩니다. 편집자

***취재수첩 4**

비는 오기 마련이다.

비를 맞고 있노라면 세상천지는 보이지 않고 대줄기같은 비만 보인다. 비에 당하는 분노, 쫓기는 황황함, 비에 젖은 모습에 초라함을 느낀다.

우산을 들면 비를 원망하지 않는다. 자기를 보호할 힘이 있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름다움도 있고 추악한 것도 있다.

조선족들에게도 우산이 필요하다.

고국과 문이 열린 지 벌써 십여년이 흘렀다. 혈육간의 감격적인 상봉이 지나간 뒤 수많은 진통을 겪었다. 체제갈등, 문화갈등을 겪어야 하는 한국에서 약한 군체에 속해있는 자신을 보호하고 정직한 조선족이 되기 위해, 그리고 조선족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우산이 필요하다.

일본의 소설 ‘빙점’을 읽었던 생각이 난다. 인간의 어두운 구멍,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인간 구원의 방법을 종교의 구원으로 모색했다. 우리 조선족은 무엇으로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조선족은 중국에 삶의 터전을 일떠세우고, 독립군을 지원하고 항일을 하고, 민족공동체를 지켜 1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외 동포 중에서도 우리말, 우리 글, 우리 문화를 가장 잘 지켜온 군체이다. 한국에 와서 열심히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근면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자신의 신분이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이런 조선족의 자긍심을 가지면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다. 불법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이지만, 현 상황에 있어 이는 한 개인의 도덕표준이 될 수 없으며, 우리 조선족에게는 국가적인 차원, 역사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조선족에 있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 자신의 일거일동이 조선족의 이미지에 관계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정확한 가치관과 자존심을 지키는 면역력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나라 생리를 알도록 한다. 자본주의 나라의 신용제일 등 우수한 점을 배우고, 아울러 시장지배력경쟁을 위한 자본증식목적의 자본가와 노동력간의 마찰은 있기 마련이라는 점도 기억한다. 분별력을 키워 사기거나 임금체불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한국은 자본주의 신용사회이며 사회주의식 눈물은 인정하지 않는다. 자포자기하여 자신을 병들게 하지 말고, 방어력과 면역력이 있는 자신의 우산을 들도록 하자.

***똑순이 이화**

그녀는 컴퓨터를 배우려고 후암동 셋집으로 찾아왔다. 나이는 33세,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해바라기 씨 형’의 갸름한 얼굴, 중등 키를 넘는 키에 머리를 길게 드리웠고 허리는 날씬했다. 컴퓨터에 관해 내가 아는 정도밖에는 알려 줄 수 없었다. 학원을 다닐 시간이 없으면 모르는 부분은 당분간 PC방에 다니며 배워도 좋을 거라고 알려줬다.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에는 자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창한 서울말을 구사했고, 연변 말은 습관적으로라도 한마디도 튕겨 나오지 않아 신기할 정도였다. 두 번의 만남에서 어느새 나에게 호감이 생겼는지, 쉽게 자기 이야기를 안 하는 타입이라는 그녀가 다섯시간이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인상은 똑순이-, 바로 그거였다. 그녀가 모 컴퓨터회사 통역시험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는 바로 2000년 2월초였다.

***돈보다 중요한 것**

입사시험에 참가한 40여명 중에서 2명이 남았는데, 그녀도 그 중의 한 명에 속했다. 다른 한 명은 흑룡강여자였다. 흑룡강여자는 소학교 교사출신이고 이화는 연변 텔레비전 대학 기계 전업 출신이었다. 면접 실에서 과장의 면접이 있었다. 과장은 회사측의 월급표준은 일당 2만7천원에 만근비 까지 1백만원 가량이 된다고 했다. 각자 요구사항을 말하라고 했다. 면담 중에 흑룡강 여자에게로 핸드폰이 자꾸 걸려왔다. 흑룡강여자는 두 가지 요구를 제기했다. 첫째는 애인이 있어 회사에서 숙식을 못하겠다, 둘째는 일주일에 한 번 시내(회사는 안산에 있었다)에 갔다 와야 하는데 토요일이 되겠는지 일요일이 되겠는지 모르겠다, 라고 했다.

과장이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지금 내가 댁을 면접하는 겁니까, 아니면 댁이 나를 면접하는 겁니까? 예의상 틀리잖습니까? 숙식은 회사에서 해야 하고, 통역은 우리가 요구하면 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라인 가서 일해야 합니다.”

과장은 이화에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저는 돈벌러 왔기에 힘든 것 다 견딜 수 있어요.”

이화는 이렇게 대답했다.

과장실을 나오면서 흑룡강여자와 이화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이화는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냐 라고 했고, 흑룡강여자는 “한국사람들과는 너무 디싼쓰쩬(低三四濺, 굽신거리지 말라는 뜻.)하지 말고 분명하게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을 쓰면 월급을 얼마나 높게 줘야 하는데, 조선족들을 쓰니 월급도 적고...”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과장은 그들에게 모레면 중국연수생들이 들어오겠으니 강습준비를 잘 하라고 했다. 이화는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흑룡강여자는 핸드폰에 대고 누군가와 뭐라고 옥신각신 다투더니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가겠다고 했다.

“그만두겠으면 과장에게 맺고 끊고 이야기하고 그만두세요. 한국인들이 워낙 조선족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일을 그렇게 처사하면 조선족을 어떻게 보겠어요. 저도 같이 어려워지잖아요.”

이화가 그렇게 말했지만 흑룡강여자는 그냥 가버렸다. 이화는 그 여자가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갈 때라도 똑 부러지게 이유를 말하고 갔더라면 통역의 위치가 더 높아졌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후에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통역원이라고 이름은 좋지만, 사실은 부르면 가고, 부르지 않으면 라인에서 일하는 통역도, 노동자도 아닌 사람으로 돼버렸잖아요! 한국인이 두 가지 말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면 저 같은 대우를 받았겠어요?”

이화의 처지는 몹시 어려워졌다. 회사에서는 이화를 믿어주지 않았다. 흑룡강여자처럼 아무 때건 소리 없이 가버릴까봐 걱정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따라 철새처럼 회사를 옮겨다니다보니 신용제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회사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화는 흑룡강 여자에게 전화하여 그녀가 조선족의 이미지를 너무 흐리게 하였기에 자신까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흑룡강여자는 그렇게 가버리면서도 면접 본 것을 하루로 쳐서 일당 보수로 계산해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조선족을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비하시키고 있으니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이화는 생각했다.

이화는 어이없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일당 얼마를 받으신 적 있으시기에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3만 5천 원이요.”

대단히 많이 받았던 줄로 알았는데, 대답을 듣고 보니 어이없었다.

이화는 가구 집에 있을 때 일당 7만5천원까지도 받아보았다고 했다.

“우리 조선족은 돈보다 좀 더 중요한 걸 추구하면 안돼요?”

이화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한국이란 사회는 받을 것 다 받아야 해요. 안 받는다고 좋게 볼 줄 아세요? 바보로 본다구요.”

흑룡강여자는 오히려 자기 쪽에서 이화를 닦아세웠다.

이화는 과장에게 전화를 해 한 사람이 회사를 떠나갔다고 했다.

“어느 여자, 머리를 올린 여자예요, 아니면 머리를 내린 여자예요?”

당시 이화는 머리를 풀었고, 흑룡강여자는 머리를 올렸었다.

“머리를 내린 여자는 있구요, 머리를 올린 여자가 갔어요.”

과장이 그녀더러 사무실로 올라오라고 했다.

“모레부터 연수생 교육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떡할 겁니까?”

“요구를 말씀하세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워낙은 통역원 두 사람이 밤과 낮에 서로 교대하면서 하기로 했는데, 지금은 혼자여서 어떡하지요?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휴식하고 저녁에 또 일하면 어떻겠어요?”

“해보겠습니다.”

“이화씨도 아무 때건 힘들다고 도중에 가버리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할 겁니다. 가더라도 분명하게 말하고 갈 거니까 근심하지 마세요.”

이화는 오전에는 라인에 가서 일했다. 오후에는 숙소에 가서 휴식했다. 회사와 숙소의 거리는 무척 멀었다. 오후에 숙소에서 자고 또 밤 작업을 나갔다.

이화는 이를 악물며 결심했다.

‘언제든 내가 이 회사에 중요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연속 밤과 낮을 일하며 통역을 섰더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럼증이 났다. 얼굴도 까맣게 되었다.

‘인력 지원 중심팀’의 과장이 동료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쓸 사람도 아니고, 우리 회사 사람인데, 이렇게 써 되겠어요?”

과장은 야근은 라인에서 일하는 조선족노동자 2명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이화는 낮에만 출근하도록 했다. 그러나 낮과 밤의 두 팀 연수생들에 대한 관리는 여전히 이화가 했다. 이화의 휴식 일에는 한국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시켰는데 일당 5만7천원이었다. 이화는 일당이 2만7천원이었다.

회사에서는 이화더러 라인준비작업실에서 근무하며 통역을 서라고 했다. 준비작업실에 가보니 50만원짜리 부품들이 있었다. 잃어버리면 근무자가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화는 그 자리에서 차장을 찾아갔다.

“저는 통역과 준비작업중 한가지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작업은 처음부터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일단 부품이 잃어지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저는 과장님이나 차장님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잖아요? 그 동안 잃어진 것은 제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시 라인에 배치되었다. 일하다가 부르면 달려가고, 부르지 않으면 라인에서 일하는 일들이 하루하루 되풀이되었다.

그녀 회사의 직무호칭에 대해 내가 헛갈려하자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차례로 부장이 높고 다음은 차장, 과장, 대리, 주임이거든요.”

라인에서 일할 때면 대리나 주임이 괴롭혔다. 과장은 통역일이 있을 때면 주임에게 통보하고 오라고 했는데, 정작 주임에게로 찾아가면 주임은 좋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대체 일하러 온 거야, 통역하러 온 거야?”

통역하러 뛰어가도 과장의 태도 역시 불만이었다.

통역을 뛰고 오면 일감이 수북히 쌓이곤 했다. 그녀의 자존심으로는 남들이 쉴 때에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감이 쌓이니 할 수 없었다. 눈총을 받기 싫어 휴식시간에도 일했다. 때로는 밀린 일을 다 하고 과장에게로 가면 통역이 늦어졌다고 과장의 기색이 변하곤 했다.

통역과 라인작업 어느 쪽으로도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일간 일하고 나니 스트레스와 과로가 겹쳐 쓰러질 정도였다.

이화는 결국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이화가 이렇게 계속 나가다가는 몸을 버리겠다고 했다. 이화가 쉬는 바람에 통역의 자리가 비이게 되자 연수생과의 소통문제가 엉망이 되었다. 연수생들이 주역인 직장의 생산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화는 이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게 된 셈이었다. 병이 나아 출근하자 차장이 심각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화씨, 사무실 내 곁에 자리 하나 필요한데 와 해보겠어요?”

참으로 뜻밖의 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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