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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생각이 나게 하는 나라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48>

***언니생각이 나게 하는 나라**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 가서 스님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언니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저 신들린 듯한 종소리, 북소리는 속세와의 해탈을 의미하나요? 아니면 인간고뇌의 해탈을 의미하나요?”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언니가 이승을 떠나 저 세상에 가셨으니 이제는 편안해 졌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숙소에 와 달력을 쳐다보니 이튿날이 언니사망 1주년 제사 날이었다. 언니가 당신이 떠나셨던 날을 기억하라고 그런 슬픔을 느끼게 했을까? 나는 불교방송을 틀어 스님이 경 읽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에 집에 전화했더니 동생의 목쉰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에게로 갔다 왔으며 어머니는 지금 슬픔 때문에 편찮아서 누우셨다는 얘기였다.

비행기가 한국의 상공에 들어설 때, 나는 7년 만에 한국에 또 왔다는 기쁨보다는 우선 언니생각에 슬펐었다. 언니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 이 땅의 어느 곳엔가 숨을 쉬며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니는 1992년도에 한국초청사기사건에 말려들어 장장 7년을 고생했다. 연변일보사 기자 차모씨가 한국에 든든한 친구가 있으며, 그 사장에게 돈을 맡기면 한국초청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언니와 친구들은 함께 돈을 모아 차씨에게 주었었다. 차씨는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떼어 언니와 친구들에게 주었고, 언니네들은 한국에서 초청이 오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그 한국인이 차씨에게서 돈을 받고 잠적하는 바람에 차씨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물론, 언니도 친구들에게 차씨를 소개해준 것이 피할 수 없는 책임이 되었다. 직장에서 간부였고 언제나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던 언니였는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결국 벅찬 빚과 불쾌해진 인간관계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차씨는 그 한국인을 한국 법원에 고소했다. 이 때 그 한국인은 이미 러시아동포들에게서도 엄청나게 사기를 친 것이 드러나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으니, 돈은 찾을 길이 없어졌다. 차씨는 빚 독촉을 피해 온 집의 재산인 집문서를 언니와 친구들에게 맡겨놓고 잠적했다. 그러나 그 집을 다 판다고 해도 값은 얼마 되지 않았다. 차씨의 사모님은 고혈압에 시달렸고 차씨의 딸애는 정신병에 걸렸으니 그런 집을 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언니는 마음고생만 하다가 45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언니를 부축해 1년이란 시간을 북경, 천진, 장춘 등지의 병원으로 눈물 속에 전전했던 악몽 같은 나날이 이제는 지나갔다. 하지만 언니의 유품인 필기장에 원주필로 초청사기피해자명단이 적혀있던 그 또렷한 글발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유물을 보며 형부가 내가 돈을 벌어서 갚아야지, 라고 했던 말씀도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형부도 언니가 사망해 1백8일이 되는 새벽에 갑자기 뇌출혈로 급급히 언니 뒤를 따라갔다.

이런 개인적인 슬픔 때문에 나는 한국체류조선족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개인적인 감정이 지배했다. 조선족이 한국인에게 당하고 있다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되는 데에는 나의 노력이 필요했다. 문이 열리면 좋은 공기 나쁜 공기 함께 들어온다는 것, 조선족이나 한국인이나 인간의 군체에는 꼭 동류를 먹이로 하며 살아가는 기생충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이처럼 간단하고 지극히 일반적인 도리임에도 그것을 깨우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조선족의 삶이, 그리고 조선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한국인 및 한국사회 실정이 나에게 올바른 인식을 주었다.

중국경제가 한국경제와 엇비슷해지기 전까지는 조선족한국초청사기라는 이 신물나는 드라마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브로커주역은 한국인과 조선족이 같이 맡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체류 조선족들이 당하는 일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처음에는 동족끼리 사기를 쳤다는 이 일반 도덕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격동했고 격분했고 부끄러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다. 군체는 격동도 부끄러움도 없어졌고 운명과 고통은 그 한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과 조선족 사회의 도덕불감증을 깨우쳐야 한다. 부끄러워할 줄도 격분할 줄도 알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이 이 면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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