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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집-새로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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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집-새로운 남자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44>서울역 셋집 드라마의 주인공 H(5)

***제5집-새로운 남자**

자정의 통화중에 또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한 남자가 돈 천만 원을 메고 H의 애인을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엽기적인 이야기가 많은 여자는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H가 흥분해하며 ‘애인’이 될 남자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자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남자가 아주 잘나기는 했지만 옛 애인보다는 못하다고 했다. 옛 애인은 배짱이 세서 자기와 싸우기는 해도 매력이 있으나 이 남자는 너무 만만해 자기가 마구 손안에 쥐고 흔들어도 괜찮을 상 싶다고, 그래서 매력이 못하다고 했다.

며칠 후 그녀는 화를 내며 전화를 동댕이쳤다. 자정에 통화하는 여자가 그녀에게 글쓰는 여자(나)를 경계하라고 했으므로 H는 나에게 더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통화를 들으면 역시 이 두 번째 애인도 사기꾼이었다. 가지고 온다던 1천만원은 사실 중국조선족 가짜 공무초청 투자예산이었는데, 여차여차 사연이 있어 잠시 가져오지 못했으니 그녀더러 먼저 선대하라고 한 것이었다.

“글쎄 그 머저리가 말이야, 그 너른 전주 땅에서 그만한 돈을 얻지 못할 상황은 아니잖겠어. 그런데 애인이랍시고 만난지 며칠밖에 안 되는 나더러 돈을 대라는 거야. 말이나 돼? 아니올시다, 했지. 이젠 정 떨어졌어. 만나지 않겠다고 했더니 어제 전화가 여덟 번이나 왔어. 내가 바보냐? 이제는 코오밸짠(靠邊站, 물러서게 하다.)시켜야지!”

H는 부지런히 가짜 공무수속서류들을 만들었다. 모 한국회사에 사람 당 3백30만원을 주고 공무초청장을 받아온다. 그것을 중국에 보내 초청에 성공하면 무조건 중국돈 7만5천원(한화 1천만원)을 받는다. 돈이 없지만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은 믿음직한 보증인을 내세워 먼저 한국회사에 바칠 한화 3백30만원을 받고, 나머지는 기한을 일정하게 늦추어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H는 텔레비족이었다. 자나깨나 텔레비를 켰고 소리 또한 작은 셋방을 진동했다. 비좁은 방이었으므로 텔레비와는 코를 맞대고 살았다. 나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텔레비죤의 무차별세례를 받아야 했다. H의 이런 괴상한 기호에 대해 말했더니, 서울에 오래 있은 나의 친구가 뜻밖에 그것은 외로운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도 중국에서는 없는 습관이 새로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눈만 뜨면 텔레비죤을 켜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혼자를 느끼기 싫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H도 역시 외로운 사람이었다.

남자에 대한 그녀의 집착이 강할수록 한 여자로의 외로움이 더욱 노출되곤 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커질수록 그녀 가슴에는 점점 더 큰 구멍이 생기고 있었고 정신의 빈곤과 금전에 대한 탐욕은 또한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듯싶었다. 그녀가 자신의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는 이 세상에 돈밖에는 없고, 그 밖의 도덕이요, 가치관이요, 법이요, 인간성이요 하는 것은 전부 허황한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더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보였다.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돈의 노예였다. 그녀를 보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역 셋집을 떠나기로 했다.

오리는 오리무리를 따르고, 다리 불거진 노루는 한데 몰린다는 말이 있다. 동류가 서로를 흡인한다는 도리를 충분히 보여준 속담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어에 취미상통(臭味相通)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호흡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녀와 그녀 애인도 서로 근사한 면이 있어 어울렸으나 역시 근사한 면 때문에 서로 원수로 되었다. 그녀 주위에는 이런 동류들이 많았다. 한국인 ‘부동산’, ‘경호원’들, 합작해 가짜공무초청돈벌이를 하는 한국인회사나, 자정에 전화해오는 조선족‘연예인’이나, 그녀 소개에 걸려들어 한국인 할아버지에게 몸을 파는 조선족 여자들이나.... 다 동류였다.

그녀는 땀흘려 일하여 돈을 벌려 하지 않고 한국 늙은 남자들의 성노리개로 되어 쉽게 돈을 벌려는 조선족 여성들이나, 그런 여성들을 사려고 줄레줄레 선보러 오는 한국인 늙은 남자들이나, 조선족여성의 1억원을 점유하고도 배포유한 ‘대리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돈을 떼먹으려는 ‘부동산업 사장’, ‘경호원’, H를 등쳐먹는 한국인 애인과 사기군인 ‘새 남자’, 가짜공무초청을 사업으로 일삼는 한국회사들 등을 배경으로 부각된 인물이다.

서울역 셋집 드라마의 주인공 H의 존재는 조선족사회를 허물어지게 하는 한국바람의 ‘일확천금’의 헛된 꿈과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족은 물론 한국인들까지도 같이 반성해야 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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