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애인전쟁**
이날 저녁 H는 좋지 않은 기색으로 트럼프 패를 떼고 있었다. 1억원을 아직 받지 못해 울화가 치밀고 있는데다가, 요즘 애인에게 애인이 생겨서 한바탕 다투고 왔다는 것이었다. 애인이 자기 돈 1천만 원을 이미 써버리고 또 돈을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육백만원을 달라고 한다고 했다.
“내 애인은 미남자야, 잘났다구!”
평소에도 H는 애인자랑을 많이 했었다. 한국인남자라고 했다. H는 자신이 잘 난 여자가 아닌 것을 항상 통탄하곤 했다. 자지지명(自知之明)은 있는 여자였다. 사실 그녀는 내가 보기에도 예쁜 데가 없었다. 인물이 수수해도 순수하고 착한 면이 있다면 인간은 아름다워 보일수도 있다. 그녀는 워낙 잘 생기지 못한 얼굴에 패륜패덕한 정신상태 때문에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녀는 결혼등록을 했다는 애인에게 자기 셋집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알지, 내 돈 뜯어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장사 잘하고, 돈 잘 쓰는걸 알고 있거든, 그렇잖으면 나를 왜 좋아하겠어.”
그녀의 판단은 이처럼 냉철하기도 했다.
그녀는 비지니스 천재였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만큼 시장을 잘 보는 여자는 드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 눈에는 세상 천지에 돈만 널려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애인에게 복수를 하기로 했다. 밤을 자지 않고 현금차용명세서 등 애인과 싸울 내용의 목록을 작성했다. 그녀는 이튿날 차용금 1천만 원을 받아내려고 다방에서 애인과 옥신각신 싸웠다. 애인은 애인대로 보복을 했다. 그녀의 호적을 말소해버린 것이다. 그녀 말로는 말소된 호적은 한국 돈 3-4만원을 내면 다시 등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인간성’이 없는 것에 열 받는 거라고 했다. 그녀가 화가 나 팔팔 뛰고 있을 무렵 낯 설은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관하지 마세요. 좋으나 궂으나 내 애인인데, 그냥 살거유.”
라고 하며 H는 전화를 팍 끊었다.
나는 H의 드라마에 또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했다는 느낌에 귀가 벌쭉해졌다. 그러나 물어볼 필요는 없다. H는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미다. 아니나 다를까, H는 핸드폰을 동댕이치기 바쁘게 말했다.
전날 다방에서 애인과 한바탕 싸웠는데 그 때 옆에서 차를 마시던 한국인 남자가 지금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명함장에 모 부동산회사 사장이라고 씌어 있더라고 했다. “애인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돈을 찾아줄 수 있다”라고 하더라고 했다. “틀림없이 나쁜 목적이 있는 남자야!”라고 했으므로 나도 그의 판단에 동감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취재를 끝마치고 지친 몸으로 낮다란 반 지하 셋방에 들어선 나에게 그녀는 또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날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다. 식사를 하고 여관을 거쳐 잠자리까지 같이 하고 돌아와서 기분이 좋아했다. 아주 잘난 남자고 자기에게 잘해주더라고, 돈도 20만원 주더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인정하는 경호원증이 있는 친구를 소개하더라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이처럼 삼류 드라마같은 이야기도 있을까?
자정에 오는 여자와 통화를 하는 것을 듣고 나는 더 많은 사정을 알았다.
“.......그 사람하구 같이 장사를 하자고 했어. 관광단을 조직해야지. 관광비자라는게 보름이니까, 불법체류가 들통나는 동안(여행사에서 일차 관광단이 도망치는 동안에 두 번째 관광단 초청을 하는데, 그때쯤이면 1차 관광단 일행의 비법체류가 들통나기에 곧 여행사를 그만둔다는 뜻.)에 두 번은 해먹을 수 있어, 진짜 사장은 말고, 바지 입힌 사장 만들라, 돈 줘서 사장 하나 만들면 당신 나서지 않아도 되잖아, 당신은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니 나섰다가 들통나면 많이 밑지니까, 나서지 말고 그렇게 하라고 그 사람에게 방법 대줬어. 좋아서 난리야.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는거야.... 금년은 한국 관광해잖아. 빨리 먼저 장훈을 쳐서 남들이 먹기 전에 냉큼 큰 떡을 먹어야지...... 난 장사만은 날구 뛰는 여자지, 그 외는 쩨로야, 쩨로. 인물도 체격도 없는 여자야. 그런데 그 사람 아니라는 거야, 나를 이용하려는 본질은 속에 슬쩍 감추는 거야, 몇 백명 초청해 돈 벌고, 차 하나 사주겠대...... 나 돈 못 받은 거 있잖아, 자기가 경호원 소개해 주겠다니까, 그 경호원들에게 수고비용이야 주어야지.....”
그 ‘경호원’들을 애인에 대한 보복용으로 썼는지에 관해서는 H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채무자를 청산하는 일에 한차례 잘 써먹다는 것은 그녀에게서 들은 사실이다. ‘경호원’ 2명을 데리고 갔는데 2백70만원을 질질 끌며 주지 않던 한국인채무자가 쩔쩔 매더라고 했다. 당장 언제 주겠다는 각서를 써서 주더라고 했다. ‘경호원’들은 그녀 말대로라면 꽤 ‘인정’이 있는 편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노고에 답례하기 위해 식사를 사기로 했다. 그들은 한국 와서 고생하는 중국조선족여자인데 너무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며, 싼 삼겹살을 먹자고 하더라고 했다. 그녀는 역시 그녀답게 ‘비싼 차돌배기’를 샀다고 했다. 식사 후에는 스탠드바에 가서 ‘애모’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잘 놀았다고 했다. 경호원들은 또 룸살롱에 가자고 했으나 몸에 많은 돈을 지닌 그녀는 술을 마시고 정신이 없어질까봐 사양했다. 그 남자들은 그녀를 성격이 남자같이 시원시원하고 착하다고 칭찬했다. 그녀는 “나는 좋은 여자는 아니에요. 한잔 샀다고 좋은 여자로 보았다가는 골탕 먹을 거예요. 그러나 장사 하나는 잘하니까, 장사를 하려면 함께 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 ‘경호원’들에게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통화 중에 나오지 않아 나도 모른다.
“.....그 영감(1억원 차용자)도 정 맞갖잖으면(시끄럽게 굴면) 경호원들을 데리고 가서 해버리겠어. 미리 뒤를 밟아서 집을 알아둬야지. 한 번 혼쌀이 안 나나 보자, 그 경호원들 얼마나 장군체격인지....”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아서 떠들었다.
성격이 이야기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녀의 가치관에 의해 그 녀 주변에는 이처럼 그녀에게 걸맞는 인물들만 나타난다. 다음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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