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자정에 오는 전화**
거의 매일 밤 12시경에 오는 전화가 있었다. 목소리는 여자였고 H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내 귀에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연변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연예인이었다.
H가 그녀 위장결혼을 알선했지만 그녀는 H에게도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신비한 여자였다.
“지금 수억이 있는 영감이 있는데, 77살이야. 예쁜 여자를 소개해주면 1억을 그 여자 앞으로 세워주고, 다방 하나를 차려주겠대. 한국에 와서 아무리 잘 벌어도 언제 1억에 다방을 차리겠어. 안 그래? 그리고 그 영감 살면 어느만큼 더 살겠어! 빨리 잡으라구, 아직 미정일 때 빨리 채라구!”
그녀는 송수화기 속의 여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거듭 했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날 나는 속이 덜컥했다. 그 연예인여자가 걸려든 것이다. 선을 보았고 그 한국인 늙은 남자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안달복달한다는 것이었다.
여자 쪽에서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눈치였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하라구, 먼저 그렇게 눅잦혀 두고 더 생각해봐도 돼.”
그 쪽에서는 밤이 깊었는데 전화하면 실례가 아니냐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실례가 아니지. 너무 좋아 잠도 못 잘 거야.”
잠시 후, 그녀에게서 그 한국인 노인에게 문안전화를 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모두들 환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를 팔아먹을 만큼 처지가 어려운 여자도 아니었고 남들처럼 체력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여자도 아니었다. 자신의 예술지식으로 돈을 버는 여자였고 그 수입이면 다른 조선족여자들보다는 더 쉽게 더 짧은 시간에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중국의 남편을 이혼하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욕심이란 사람을 아둔하게 만든다.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H의 구슬림의 얼토당토않한 부분을 곧 알아보게 될 것이다. 사랑도 아니고 다만 색을 잡기 위해 자기 자식보다도 더 어린 젊은 조선족여성을 정부로 만들려고 망녕이 든 할아버지가 어찌 돈 1억원이요, 다방이요, 내놓을 것인가? 그만한 화대를 지불하려고 작심한다면 하필 왜 말 한마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여성을 사지 않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조선족여성을 사려고 할 것인가? 정말 H의 말대로 일지라도 77세의 노인이라고 하여 10년을 더 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동안 정신적 육체적 굴욕을 참아가노라면 자신의 소중한 청춘도 소모되기 마련이다...
밤중에 걸려오는 전화마다 나는 귀가 벌쭉했다. 그녀가 근심스러웠던 것이다. H는 그녀를 구슬려내고 싶은데 그녀 전화번호를 몰라서 안절부절하곤 했다. 마침 전화가 왔는데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던 H는 불쑥 언성을 높이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마레주의를 풀지 말라구, 돈만큼 값이 있는 거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못 봤다구. 돈이 얼마나 좋아. 양심, 양심, 양심이 몇 근이나 돼. 난 돈 없으면 못살아.”
그 한마디에는 예술인여자가 ‘마레주의’를 풀었다는 정보, 그러니 거부상태라는 정보가 깃들어있었다. 나는 일단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H가 하는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가 그 한국인노인을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내 욕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깍쟁이영감쟁이가 글쎄 5만원을 주었대잖아. 한 번 만나고 5만원을 주고 누가 넘어가나.”
H가 분해했다. 그 예술인 여자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개보다는 자기가 넘겨준 먹이에 대한 상대자의 몰이해와 몰인식에 대한 분개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 77세의 한국인노인이 큰 돈을 바라고 간 여자에게 실망을 준 모양이다.
나는 참다못해 H에게 이런 일을 그만둘 것을 권고했다. 그 말에 H의 기색이 보기 싫게 변하더니 소개업과 관련되는 전화는 항상 내가 없는 주방이거나 밖에서 했다.
우연히 엿들은데 의하면 이번에는 봉녀라는 30대의 여자가 그녀의 미끼였다. 봉녀라는 여자의 운은 완전히 그녀 자신의 면역력에 관계된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면역이 있어야, 아니 남자를 핑계로 한 금전에 면역이 있어야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족여자들은, 특히 젊은 여자들은 무엇보다도 성실하게 일해 돈을 벌겠다는 마음의 준비와 자기 면역의 호신부부터 잘 갖추고 한국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살던 사람들이 한국의 인력시장에 적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에 무척 힘든 일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일 노동량은 중국의 5배 또는 그 이상에 달한다. 이는 체제문화와 관계된다.
중국은 등소평의 개혁노선이 실시되기 전까지의 반세기를 계획경제 속에서 살아왔기에 회사가 잘되거나 못 되거나 개인에게는 아무런 직접적인 상관이 없었다. 밑지면 국가에서 밑지고, 모든 것은 국가의 책임이었다. 국가에서 밑지면 그만큼 사회의 발전이 더디겠지만 그것을 개인의 이익관계에 연계시켜 생각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교육비, 의료비, 탁아소, 유치원 비용에 노년의 생활비 등 모든 사회복지비용까지도 국가에서 부담했다. 가난하게 살아도 다 같이 가난하게 살았고 잘 살고 싶어도 잘 살수 있는 개인의 능동성이 활성화될만한 사회구조가 아니었다. 직장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기관의 구조도 방대했다. 사람들은 똑 같은 월급을 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해왔다.
등소평의 노선에 의해 중국은 개혁개방이 실시되고 상품경제로 넘어가면서 이른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실시하였는데, 본질적인 의미로 보면 그것은 경제면의 자본주의 경영방식의 도입, 사회주의 의식구조의 결합이었다. 양자의 모순의 갈등이 심한 것은 물론이다. 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국영기업의 비례가 낮아지고 개인기업의 비례가 높아가면서 대량의 실업인구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임에도 현유 직장인들은 물론 실업당한 사람들까지도 계획경제구조 및 사회주의체제의 평균분배에 익숙했던 게으르고 편안한 삶의 미련에서 해탈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식으로 인간의 한계에까지의 최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해 돈을 번다는 것은 피나는 경험일 수밖에 없다.
모든 조선족들은 한국에서의 첫 며칠의 노동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조금 과정적일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일년 노동량이 중국에서 그동안 살아오며 했던 노동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일하러 간 조선족들은 반년이란 시간을 적응하기가 가장 힘들고, 1년부터는 점점 습관이 된다고 했다.
‘코레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조선족들은 이런 체제문화의 갈등 속에서 모든 고생을 감내하며 성실하게 돈을 버느냐, 아니면 고생을 적게 하고 많은 돈을 버느냐 하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H가 주역을 하는 ‘드라마’ 2,3집에서 보다시피 한국돈벌이의 힘든 현실 앞에 조선족 여성들에게는 ‘선보기’와 같은 타락의 함정이 나타난다. 모든 사회에는 기생이 있기 마련이다. 중국은 공화국 창립 후 거의 40년은 기생이 없는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그러나 폐쇄정치가 폐지되고 문이 열리면서 좋은 공기 나쁜 공기가 다 같이 들어왔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문이 열려서 들어온 것이 아니고 문이 열려서 원래 고유했던 인간의 본성이 활성화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선보기’에 동원된 여성들이 중국의 상황에서는 몸을 팔고 다닐 여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문의 모 병원에 근무했던 여성이나, 연길의 모 ‘연예인’이나, ‘봉녀’라는 여성,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선보기’에 동원되었던 여성들이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H는 한동안 나까지도 동원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만큼 돈의 존재가 극단적인 상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코레안드림’이란 이 특정된 주제 속에서 잘 살아보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꿈이 쉽게 ‘일확천금’의 허황한 꿈으로 변질하기 쉽다. 더구나 한국이란 사회에서 조선족 개인은 완전히 하나의 익명의 존재로 표현될 수 있다. 익명의 존재는 사회와 자신에 대한 무책임성으로 변하기 쉽고, 그것은 한 민족, 적은 범위에서는 조선족의 이미지를 쉽게 변질시킬 수 있다.
나는 가치관의 타락이 우리 한국체류 조선족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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