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조선족 여인들의 실태를 그린 2부 '물은 내리 흐르고 사람은 올리 흐른다 - 한국 국제결혼의 삶의 현장'이 끝나고 이번 회부터는 3부 '문이 열리면 좋은 공기 나쁜 공기 다 들어온다 - 어물전 꼴뚜기들'이 시작됩니다. 편집자
***취재수첩 3**
창문을 열면 좋은 공기, 나쁜 공기가 다 들어온다. 봄이 오면 익충, 해충이 같이 태어난다. 곡식과 풀이 같이 자라고, 식용버섯, 독버섯이 같이 자라고, 고양이와 쥐가 같이 존재하고..... 자연계가 그러하거니와 인류계도 그러하다. 좋고 나쁘고의 병행이 바로 생태균형이 아닐까 싶다. 황차 한사람의 마음도 선악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함에야.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다, 라는 것은 그 한 인간의 사회적인 외의를 말할 뿐이고, 개체일 경우에는 그 자신만을 대표한다. 그러나 모여지면 자연히 그가 속한 집단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국인초청사기사건이 많이 터졌던 것은 초청사기의 가능한 조건을 한국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임금체불, 사기사건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은 조선족을 상대로 할 때 한국인의 조건이 체불 사기 쪽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조선족의 피해를 받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한국인에 범행할 수 있는 가능하고 유리한 조건이 다른 민족보다는 조선족 범죄자들에게 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속해있는 집단의 생존조건과 관계된다. 범죄자들은 먹이라는 시점으로부터 한국인이 더 만만하냐, 조선족이 더 만만하냐, 어느 것이 더 짭짤하냐 라는 것을 판단할 뿐이다.
창문이 열렸을 때 면역력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 중국은 초기 산업화시기에 직면해있다. 가난을 개변하고 싶은 꿈이 도를 넘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도덕의 실추, 금전만능, 극단적인 이기주의 등 가치판단의 혼돈은 한국행을 둘러싼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의 수많은 사회문제를 조장하고 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그것을 구실로 인간도덕의 상실을 초래한다면 '코레안드림'은 모국과 조선족의 반목과 조선족 사회 가치관의 황폐화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중국조선족은 우수한 전통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중국에서도 우수한 민족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민족이다. 한국과의 문이 열려 여러 면으로부터 커다란 진통을 겪어 십여 년이 지났다. 모국이 우리를 잘 대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지만 말고 스스로 자신의 명분을 지키고 한국의 법을 지키고, 조선족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역 셋집 드라마의 주인공 H**
셋집을 옮기는 것도 취재에는 모처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에 대한 자위가 되곤 했다.
서울역 셋집에 이사를 했을 때였다. 여전히 셋집 선택의 원칙을 버리지 않고 합숙을 원했기에 또 한 명의 셋집주인을 알게 되었다. 한국국적을 딴 40대 후반의 조선족 여자였는데 필요상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나이가 내 사망한 언니와 비슷했기에 나는 만나자마자 선뜻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를 잃은 부분이 나에게서 너무 큰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에는 H라고 불러둔다.
H가 주역을 한 드라마가 우리 모두에게서 조선족과 한국인 사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1집-재(財)와 재(灾)**
금방 이사를 하여 짐을 옮기고 있는데 H가 누군가와 언성을 높여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달을 쓰겠다고 해놓고 이제 아홉 달이 됐는데도 안주면 어떡해요? 미치겠다니까! 언제 줄래요? 줄래요, 안 줄래요?..... 사장님만 믿는다니까!...... 안 주면 죽여버리겠다니까, 알아서 해요.... 무릎을 꿇고 빌게요,..... 안주면 나도 방법이 있어요, 깡패들을 시키겠다니까..... 그럼 내일 오후에 기다리겠어요...."
H는 을러멨다, 웃었다, 빌었다 하며 무아지경으로 연극했다. H에게는 핸드폰이 세 개였다. 핸드폰을 던지고는 화를 냈다. 1억원을 무슨 '대리님'이라는 한국인에게 꾸어주었는데 증권장사를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일 저녁에 주겠다고 하는데 정말 주겠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1억원이라니! 이처럼 초라한 셋집에서 사는 그녀에게 1억원이란 돈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자본주의강습을 충분히 받은 한국 사기꾼들은 조선족보다 단수가 훨씬 높을 텐데...)
나는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저녁에 준다니요? 1백만원도 아니고 1억원을 저녁에 준다니 말도 안 돼요. 이상한 생각이 드네요. 든든한 사람과 함께 동행 해 가세요."
나는 근심이 되어 당부했다. 이날따라 언제나 활짝 열려있고 걸개도 없는 뙤창문이 눈에 거슬렸다. 새벽 2시40분경에 소리 없는 전화가 와서 속이 뜨끔했다. H는 이튿날 저녁에도 돈을 받지 못했고, 내가 있는 동안에 쭉 다 받지 못했다. 전화는 매일했고 번마다 온 동네가 들썩하도록 소리를 질러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H는 기적이 생긴다고 소리쳤다.
"그 영감이 토요일에는 돈을 준대. 그것도 다섯 배를 준대, 5억원을 말이야. 내가 말했었지, 그 영감에게 꾸어줬던 1억원 돈을 투자해 딸라 장사를 했더라면 5억은 벌었을 거라고, 그랬더니 5억을 준대. 3억은 주택으로 계산해주고, 그 집에 살면서 나를 자기 애인을 하래. 2억은 현금으로 준대. 모르겠어. 무슨 미친 소리인지."
H가 요란스레 웃었다.
"요즘 조심하세요. 나는 돈이 없는 사람이니까 괜찮지만 언니는 달라요."
"괜찮아, 난 누구에게도 집을 알려주지 않아."
중국어에서 재물이라는 '財'와 재앙이라는 '灾'는 같은 음이다. 나는 문걸이가 없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쁜 상상들이 떠올랐다.
역시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자는 H를 보면 그가 아직도 허황한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일확천금의 '백일몽'이 흔히 사기꾼들의 먹이의 대상이 된다. 한국에서 조선족들이 사기피해를 당한 사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중 상당한 부분은 피해자 본인에게 이득을 보려는 심리가 있었고 사기꾼들이 그 점을 이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H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매일 하회를 기다렸다. 나는 이 드라마가 그래도 H가 1억원을 받는 결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H가 그 1억원을 못 받는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닌 듯싶었다. H의 정신상태라면 그 한국인 '대리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할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