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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결혼의 검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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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결혼의 검은 그림자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38>

***비즈니스 결혼의 검은 그림자**

위장결혼녀들 중 아직도 브로커들과 ‘남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애처로운 여자들이 많다. 그중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허모씨는 1997년 11월에 비즈니스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나왔다. 브로커에게 8만원, 다른 비용까지 하면 9만원(한화 1천2백만원 정도, IMF시기 가격으로는 1천5백만원 정도)이 들었다. 전부 꾸어서 냈다. 브로커는 8만원(한화 1천60만원 정도, IMF시에는 1천3백만원 정도)을 받았기에 주민등록증까지 다 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브로커는 그녀의 위장결혼을 성사시키고 한국에 나오게 한 다음에는 주민등록증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허씨의 법적 ‘남편’이었던 한국인 이영범은 주민등록증을 해주겠다는 이유로 허씨에게 끊임없이 돈을 달라, 같이 자자 등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다. 허씨는 한화 2백만원을 더 주고서야 불법 경로를 통해 주민등록증을 얻게 되었다.

한국에 나오자 금융한파 때문에 월당이 떨어져, 두 달 동안 벌었지만 1백50(중국 돈 9천원 정도)만원밖에 집에 부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허씨와 같이 위장결혼을 했던 여자가 잡히게 되었다. 사태가 불리한 것을 알고 허씨는 도망해 숨어버렸다. 먼저 잡혔던 위장 결혼녀는 경찰들이 으름장을 놓자 허씨가 숨어있는 곳을 노출시켰다. 허씨는 한 목사 집의 가정부로 있다가 경찰의 추적에 의해 창원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

허씨가 바로 나의 한 후배의 외사촌 누님이었다. 후배의 매부, 즉 허씨의 남편이 갈린 목소리로 전화해 왔다.

“빨리 창원경찰서를 가보아라!”

매부는 불법체류자여서 나설 수 없었으므로 나의 후배 친구인 처남을 동원했다. 후배는 외국인 장기 거주증이 있기 때문에 법에 나설 수 있었다. 후배는 도대체 누님이 왜 잡혔으며 어떤 경로를 통해야 누님을 구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막무가내로 창원경찰서로 달려갔다. 경찰서에서는 허모씨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한 경찰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그 경찰이 파출소의 각 부서에 가서 알아보더니 허모씨라는 사람이 있었었고, 지금은 마산 교도처에 넘겨졌다고 했다.

“누님이 억울하게 잡혔어요.”
라고 했더니 경찰은 머리를 저었다.

“억울한 것 아니겠는데?”

“그럼 누님은 대체 무슨 죄로 잡혔어요?”

“위장결혼죄요.”

경찰이 알려주었다.

후배는 마산 교도소에 찾아가서 누님을 만났다. 동생을 보고서도 그녀는 너무 긴장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죄수처럼 머리를 다 자르고, 죄수고무신을 신고, 죄수복에 203번이라고 찍혀있었다. 44살인데 할머니 꼴이 되어 있었다.

“법을 어겼으니 응당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은 꼬물만큼도 할 수 없었어요. 착한 누님이 한국에 와서 왜 죄수 돼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당했다는 느낌 때문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배씨는 교도소 직원을 찾아 누님이 억울하니 풀어달라고 애걸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억울하면 자료에 나올 것이고 법이 해줄 것이다.”라고 했다.

배씨는 누나를 구하자면 소개인(브로커)을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님과 물었는데 누님은 황황해서 전화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한참동안 기억을 살려서야 누님은 전화번호 3개를 알려주었는데 그 중에 다행이 누님과 같이 일하던 여자의 번호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위장결혼자여서 이미 도망하고 없었다. 단서가 끊어지자 후배는 누님이 일하던 음식점의 한 아줌마에게로 달려갔다.

“누님이 위험하게 됐습니다. 누님의 법적인 남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그 사람이 드문드문 음식점에 오니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일이 막연했다.

후배는 하는 수없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재판한다고 하니 그때나 가 봐야지, 하고 절망했다. 셋집에 금방 들어서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허씨아줌마 동생이세요?”

낯설은 목소리였다.

“누님의 소개인이세요?”
라고 되물었다.

“음식점에 갔다가 허씨아줌마에 관한 상황을 듣고 전화하는 조선족입니다.”

낯설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는 브로커가 노 사장이라는 사람이고, 법적인 남편은 이영범이라는 사람이며, 노 사장이 먼저 잡혔는데 위장결혼을 시킨 두 여자를 불어버리는 통에 누님이 구속되었다며 노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노 사장을 가끔 식당에서 만나곤 했다고 하면서 누님의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후배는 그제야 누나가 잡히게된 경위를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강남의 김진한 변호사 사무소를 찾아갔다. 김진한이란 변호사는 없고, 그 밑의 직원이 그를 맞아주었다. 그는 누님의 상황을 듣고 자기들이 손 쓸 범위가 아니니 헛돈을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후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라는 절망을 안고 누님을 재판하는 날 창원법원으로 갔다.

그 날 누님의 위장결혼을 알선한 브로커 노 사장과 누님의 ‘법적’ 남편 이영범을 처음 만났다. 노 사장은 50세가 많이 넘은 사람인데 30대의 조선족여자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재판이 끝난 후 창원 역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노 사장은 무슨 방법을 썼는지 이미 구속에서 풀려 나와 계속 브로커를 했다. 그는 위장결혼녀들을 신고하고 이 기회를 타서 위장결혼녀들에게서 돈을 벌 궁리를 했다.

“누님은 돈만 내면 빼내올 수 있어요.”

노사장이라는 브로커는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후배는 돈은 꼭 주겠으니 누님을 빼내만 달라고 부탁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누님의 법적 ‘남편’ 이영범도 평소에 누님에게서 50만원씩 여러 번 갈취해갔다고 한다.

후배는 이영범에게 자기가 허모씨의 사촌동생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영범의 얼굴에 경멸의 표정이 떠올랐다. 화가 났지만 후배는 누나를 위해 힘써달라고 재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재판 날에야 후배는 국선 변호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만나서 사정이야기를 하면 누님의 일이 풀릴까 싶어서 창원법원에 국선 변호사를 만나고 싶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혼자서 애타게 문들을 기웃거리며 찾아 헤맸으나 직원들은 그렇게 찾는 게 아니라고, 안 된다 고 했다.

마지막 재판 날, 누님과 누님보다 먼저 잡혔던 여자가 죄수복을 입고, 수쇄, 족쇄를 차고, 팔을 묶인 채 피고석에 올랐고, 노 사장, 이영범이 좌석에 앉았다. 누님을 보니 너무 슬퍼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후배는 변호사 좌석에 앉은 국선 변호사를 보았다. 이번 누님의 사건에서 국선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마이크가 좋지 않아 국선 변호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판사가 누님에 관한 판결서를 읽었는데 ‘....사회봉사 3개월, 유예집행 2년.....’이라는 구절만 들려 왔다.

후배는 노 사장과 이 영범에게, 왜 돈만 주면 석방되게 하겠다고 해놓고 일이 이렇게 됐냐고 물었다. 노와 이씨는 돈 3백만원 내지 4백만원을 준비하면 6시에 자기들이 와서 석방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후배는 누나가 풀려 나오지 못하면 돈을 주고서라도 빼내올 생각으로 돈을 준비했다. 그러나 6시가 됐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배는 누님이 감옥살이를 하다가 중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한창 초조한중에 누님이 나타났고 이어 누님과 함께 잡혀갔던 여자가 원래의 옷차림을 하고 법원문가에 나타났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국선변호사의 덕분에 두 여자는 특별한 배려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할 때에 후배의 눈가에서도 눈물이 글썽했다. 그는 국선변호사에 대해 감격의 말을 수차 했다.

후배 누님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위장결혼자들이 다 그의 누님처럼 좋은 국선 변호사와 좋은 운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국선변호사가 있더라도 천시지리가 맞지 않으면 안될 것이고, 천시지리가 좋더라도 좋은 인적관계가 맞춰 주지 않으면 역시 불행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위장결혼자들 중 상당한 여자들은 아직도 ‘남편’과 브로커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돈을 갈취 당하고 있거나 육체적으로 굴욕을 당하고 있다.

한국의 법은 위장결혼을 막기 위해 국제결혼은 결혼 2년이 돼야 주민등록증을 내준다. 위장결혼녀들은 이 기나긴 2년 동안에 도덕성이 나쁜 브로커들과 ‘남편’의 갈취의 대상이 된다. 주민등록증을 얻기 위해 어떤 여자들은 위장결혼비용 외에도 브로커들과 ‘남편’들의 신고가 겁나서 뼈 빠지게 번 돈을 그들에게 바치고 있다. 육체적으로도 굴욕을 당해야 한다. 이런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빚에 눌려있고, 이미 너무 많은 대가를 바친 상황이므로 다시 돌아설 길은 이제 없는 것이다. 중국의 ‘남편’들은 위장결혼을 한 아내가 ‘고양이 앞의 생선’이 되고 있는 상황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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