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인의 두 번째 함정(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인의 두 번째 함정(1)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27>

***미인의 두 번째 함정**

한강에 밤 강태공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TV에 나오던 7월 6일이었다. 구의동의 작은 반 지하 셋집에서 온 밤을 선풍기를 켜놓고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TV 화면을 보니 새벽 한시를 넘겼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더위를 피해 밤 시장에서 붐비고 있었다. 전력 과부하로 변압기 등이 사고나 10여건의 전기신고가 접수되었다. 열대현상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들로 어느 식당에서 모기장을 설치해 고객을 끌고 있었고, 수박이 잘 팔려 수박장수들은 더위만세를 부를 지경이다. 밤 할인매장들에서도 물건이 잘 팔려 업주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물을 너무 마시거나 수박을 너무 많이 먹어도 숙면을 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의 수박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선이 선명해 우리가 그림에서 보던 수박들과 같았다. 마치도 애들의 수박춤에서 예쁘게 단장하고 나온 수박배우같이 꼭지 옆에는 애교스런 빨간 액세서리 - 상표가 달려있어 신기했다. 신기한 것만치나 비쌌다. 수박 하나에 만원이라니, 중국에서는 한국수박보다는 엄청 더 큰 수박도 제철에는 하나에 십여 원, 한화로는 2천원 정도이다. 한창 철에는 6-7원정도, 한화로는 1천원이면 살수 있다. 한국의 물건들을 볼 때마다 중국에서는 얼마나 싼데, 라는 생각을 하면 호주머니사정이 안 좋아도 큰 위안이 되곤 했다.

예외 없이 무더운 날씨지만 오후에는 소나기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힘을 얻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한국에 시집을 온 김보경씨를 취재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취재에 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까이 지내고 있었던 모 선생의 부탁이 있다고 일단 만날 구실을 만들었다. 거짓말을 했는지라 나도 속은 어지간히 불안했다. 취재라고 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였다.

오후 3시 반에 신도림 역에서 만나기로 한 김보경씨는 오후 네 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서로 얼굴을 몰랐기에 우리는 신도림 지하철 역 화장품 가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놀랍게 예쁜 여자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길게 날리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가슴에는 하얀색의 깜찍한 핸드폰을 걸었고, 손에는 반짝반짝하는 깜찍한 빽을 들었다. 날씬한 몸매에 북방미인답게 얼굴은 둥글었고 커다란 쌍겹눈이 매력적이어서 여자인 나지만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한국의 어느 탤런트보다도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그녀가 출근하고 있는 삼성에서 내려 한 다방에 들어갔다. 나의 취재의도를 듣고 나서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썩 달갑지 않은 기색을 지었다.

쥬스를 청해놓고 한참 주저하더니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처럼 예쁜 여자에게 이처럼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금방 33세였다.

한국결혼은 첫사랑과의 슬픈 이별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억 속에서 그 남자를 지울 수가 없어 국경을 넘기로 했다.

그녀는 두만강을 사이 둔 도문에서 살았다. 고중을 졸업하고 나서 반의 남학생이 찾아와 사랑한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20세의 꽃나이, 유치원교사를 했다. 남자는 대련 모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의 중요한 간부 요직에 배치 받았다. 남자는 집의 생활이 가난했다. 어머니는 경제생활이 유족하지 않다고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6년이란 세월을 열련했다. 그녀가 미녀였듯이 남자 또한 미남이어서 체격, 인물이 다 출중했다. 둘이 일찍이 연애하다보니 여자의 언니도, 남자의 누나도 약혼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들의 결혼은 양측 언니, 누나의 결혼을 기다려야만 결정이 될 수 있었다.

눈썹 밑에서 화가 떨어졌다. 남자가 어느 우연한 술 장소에서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친구를 칼로 찍어 죽이는 사고를 빚어냈다. 일은 그렇게 갑작스러웠고 비논리적이었다. 그 날이 1993년 6월 20일이었다. 남자는 직장의 중요한 간부였고, 평소에 정직해서 평판이 좋았었는데, 인간이란 자기도 모르는 구석에 그렇게 무서운 에너지가 숨어있었는가 싶다. 직장에서는 사건 자체가 우연한 돌발사고이고, 남자가 피해자와도 극진한 친구였던 것을 고려해, 피해자 가족의 조건을 다 받아주는 것을 전제로 남자를 형벌에서 빼내려고 피해자가족과 협상을 했다. 피해자가족에서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남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을 잊을 수 없어 3년을 고통 속에서 헤맸다. 친구들은 그녀더러 좋은 남자 만나 아이를 낳고 마음을 정리하고 살라고 했다. 잘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선보러 중국에 온 한국 강릉의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키가 좀 작고 잘 생기지 못한 편이였고, 그녀보다 11살이 이상인 40살이었다. 그 때 그녀는 29살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말을 되게 잘하고,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편이였어요. 자기가 강릉시장도 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이런 사람과 재미있게 살수 없을 것 같아서 소개자를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사람을 처음부터 어찌 아냐, 처음에는 싫다가도 후에는 마음에 들지도 모르니 잘라버리지 말고 지내보라고 했어요. 그러나 지내볼 사이도 없더라구요. 금방 만나서 일단 결혼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첫사랑을 잃었으니 인생은 다 망쳤는데, 라는 절망감에서 그 강릉남자와의 결혼을 결정했어요. 저는 어서 연변을 떠나고 싶었어요."

철창 속에서 한 생을 다 보내게 된 첫 남자를 잊기 위해 김보경은 결국 이 한국남자를 따라 떠나기로 작심했다. 어머니에게 한국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고 전화했다. 그 때는 이미 서류를 한국에 다 보낸 상황이었다. 엄마는 통곡을 하더니, 네 인생이 그렇게 됐으면 엄마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러나 오빠는 술을 마시고 엄마와 한바탕 따지고 들었다. 엄마가 한국이란 나라가 잘 산다는 것만 보고 동생을 무책임하게 한국사람에게 팔아먹는다며 화를 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그 한국남자는 중국에 올 때의 여비를 겨우 해 가지고 왔을 뿐이었다. 강릉시장을 하게 될 거라고 허풍을 치던 사람이 한국에 돌아가게 되자 여비가 없다고 했다. 결국은 엄마가 여기저기에서 꿔서 여비를 마련해주었다.

1996년 3월 30일, 한국 강릉에 도착해서 보니 남자는 72세 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남자는 "삼척 가서 배타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강릉시장을 하게 될 거라던 남자는 직장도 월급도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은 땅까지도 다 팔아먹은 사람이었다. 형은 회사를 차려 잘 살지만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동생과는 사이가 안 좋아서 서로 내왕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화가 나면 형의 가게에 가 가구들을 때려 부수기도 했다. 직장을 가졌다가도 번마다 얼마 가지 못하고 동료들과 싸우고는 그만 두었다. 그녀는 후에야 자기가 재혼자리인줄을 알게 되었다. 첫 여자와는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떠나갔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자기가 망했다고 하며 목과 팔의 동맥을 끊은 허물자리를 보여줬다. 그 때 보경씨는 솔직히 많이 겁났다고 했다.

생활이 좋아지면 결혼식을 하겠다고 해서 결혼식도 못 올려보고 시집 문턱을 넘었다. 그렇게 몇 일이 안돼서부터 빚군들이 쫓아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결국 보경이도 삼척을 따라갔다. 보경이는 결혼 한 달만에 임신했다. 입덧이 심해 구역질이 났지만 고기 배를 따서 남자에게 안주를 만들어 주곤 했다.

시형은 "제수를 봐서는 도와줘야 하는데, 동생은 고생을 해야 할 사람이니까, 도와줄 수 없어요"라고 했다.

남자의 월급은 겨우 60만원이었다. 어서 잘 살고 싶어 보경이는 임신한 몸으로 일을 했다. 중국에서는 유치원 교사를 1년 반, 병원 간호원을 3년 한 것이 그의 직장경력이다. 귀여운 외동딸이다보니 매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한껏 단장을 하고 출근하곤 했다. 산골구경도 해보지 못한 그가 한국에 와서는 삼양축산회사에 들어가 산골을 따라다니며 방목을 했다. 입덧 때문에 먹지도 못한 상태로 산을 뛰어 다니며 소를 몰고 다니다가 어떤 때에는 쓰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4개월을 산에서 헤맸다.

"한국이란 나라가 아니면 제가 언제 소를 다 몰아봤겠어요. 상상도 못해봤던 일이에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