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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편견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22> 인간 대 인간을 위한 노력가(5)

***사회의 편견**

이어 그는 중국조선족에 대한 한국사회 일반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중국조선족이나 미국조선족이나 다 똑 같은 사람인데 차별하지 말라는 거예요.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 등에 가보면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면 미소를 짓고, 예절 있게 대하지만 중국조선족이 가면 만랜누치(滿瞼怒氣, 온 얼굴에 노기라는 뜻.)거든요.

두 번째 결혼을 할 때에 부모님을 참석시키려고 초청서류와 관련해 법무부에 갔어요. 호적을 갖고 가니 재혼사실이 나타났어요.

“살지도 않고 왜 또 결혼해?”
라고 무례하게 힐난하는 거예요. 접수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제가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봤어요? 우리 집에 와서 봤어요?”
라고 따졌어요.

보나 안보나 뻔하다는 투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웃기는 이야기 말라구요, 법무부가 개인 집이예요? 뒤를 돌아보세요, 저렇게 봉사사항 만들어놓고, 어느 종목대로 하는 게 이런 거예요? 이것이 우리나라 대표하는 얼굴이세요?”

옥신각신하자 과장님이 왔어요.

“왜 그래요?”

“부모님 초청하러 왔어요.”

“초청하면 되잖아요?”

“접수하지 않고 있잖아요?”

과장이 직원에게 왜 접수 안 하냐 물었어요. 직원은 두 번 결혼해서 그런다고 했어요.

“두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초청해 줘야 하잖아요? 일단 서류는 받아 줘야죠.”

직원은 주민등록증을 꺼내라고 취소해버리겠다고 했어요. 저는 주민등록증을 꺼내놓으며 취소해보라고 했어요. 직원은 그것을 서랍에 넣는 거예요.

“취소하세요, 왜 서랍에 넣으세요? 지금 취소하라구요.”

제가 소리쳤더니 과장이 또 와서 차분히 말하라고 하더라구요.

“차분할 것 없어요. 이분이 무례했으니 저한테 사과해야 돼요. 사과 안하면 떠날 수 없어요.”

직원이 마지못해 사과했어요. 저는 사과를 했으면 초청을 접수하라고 했어요. 과장이 저더러 서류를 가지고 자기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저는 설명을 했어요. 접수는 일단 해놓고 심사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취소를 하든가 해야 할 것인데, 어찌 이렇게 사람을 무시할 수 있냐, 라고 했어요. 제가 밖으로 나가자 법무부에 초청을 접수시키러 왔던 중국조선족여자들이 제가 이렇게 떠들면 중국조선족들에게 피해가 온다고 원망하는 거예요. 저는 열 받던 중이라 “부파(두려워마세요)! 법을 지켰는데 떳떳해 야죠. 그 사람들 무서워할수록 더 치푸(업신여길거다)할거예요.”라고 했어요.

초청이 접수되면 보통 15일이 돼야 초청이 비준되거든요. 그런데 이튿날에 바로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비준이 됐다고 알리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큰소리를 쳐서 그 직원 창피하니까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세요.”

“제가 스스로 하고싶으면 몰라도 시켜서 하는 거는 싫어요.”

“금화씨, 위에 아는 사람 있지요? 서류도 빨리 나온걸 보면?”

그 과장의 물음에 어처구니없었어요.

“없어요. 절차상 문제가 없으니 나왔겠죠.”

그 직원을 만나면 불쾌할까봐 다른 사람을 시켜서 비준서류를 찾아왔어요. 이 한 가지 일에서 한국인의 의식을 알 수 있잖아요?

***새로운 노력의 시작**

7월 12일 서울에서 금화씨를 만나 기뻤다. 아직도 무덥기 그지없는 서울날씨였다. 금화는 체크무늬의 헐렁한 남방차림에 예쁜 밤빛 머리를 길게 어깨에 드리우고 있었다. 사무실 부근의 음식점에서 나에게 저녁식사를 시키고 나서, 시간 나는 대로 양수리에 다녀오자고, 풍경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사겠다고 했다. 좋은 취재대상을 소개해줘서 고마웠다.

금화씨를 따라 그녀가 기거하는 오피스텔로 갔다. 화장실이 따로 달리고 침실과 주방이 함께 있는 단칸방이었지만 산뜻하고 정갈했다. 한쪽에 침대가 있고 그 옆에 경대가 있었다. 맞은쪽에 사무용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서류들과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그 옆에 이불장과 옷장이 있었다. 달력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었다.

7월 14일: 러시아 관광 23명
7월 20일: 중국 관광 40명
7월 22일: 연길 관광 15명
7월 25일: 러, 중 23명
......

7월달만도 일정이 꽉 잡힌 그녀의 사업이었다. 중국조선족들을 취재하던 중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금화가 처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사무실을 쓰고,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동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지하의 손바닥만한 세집에서 목소리를 낮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중국보다는 훨씬 발전한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없어 단지 힘과 인내로 최하층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낙후한 나라에서 왔다는 열등감을 가득 짐같이 지니고, 사투리로 인한 언어장애까지 겹쳐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들은 눈물겹기만 했다. 한국사회에 당당히 발을 붙이고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는 금화씨를 바라보며 나는 마치도 내 동생을 바라보듯이 기분이 좋았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언젠가 우리 조선족들이 다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 한국 여러 분야에서 모국인들과 어깨 나란히 사업하는 풍경을 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를 지금 자라고 있는 세대들에게 걸어보고 싶었다.

내가 다른 조선족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금화는 노트북에 뭔가를 부랴부랴 타이핑하고,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전화가 자주 울려왔다. 내일 관광단 23명을 인솔해 러시아관광을 떠난다고 했다.

특별하다는 느낌이 드는 전화가 왔다. 금화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보아 용건을 주고받는 전화가 아니었다. 마음을 주고받는 전화는 느낌이 달랐다.

“좋은 분과 통화했지?”
라고 물었더니 금화가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전공한 변호사와 열연 중이었다. 자기를 잘 이해해준다고 했다. 참으로 원만한 결말이었다.

이튿날 시청 앞에서 또 금화씨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까만 원피스에 까만색의 짧은 가운을 걸쳐 입고 재빛 빽을 든 모습이 그녀 감실감실한 피부색에 잘 어울려 한결 세련되어 보였다. 맛있는 떡집이 있다고 하며 기어코 종각진로떡집에로 잡아끌었다. 떡과 과일 차를 샀다. 나는 먹다 말고 그가 먹는 모습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먼저 웃음보를 터뜨렸다. 중국말의 표현대로라면 떡을 그야말로 랑탄호인(狼呑虎咽, 승냥이마냥 범마냥 삼키다)식으로 먹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굶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과 점심을 다 먹지 못하고 이때까지 러시아관광 때문에 뛰어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 다른 한 조선족더러 많이 먹으라고 하고는 먼저 결산을 하고 나서 급급히 자리를 떴다. 사업 때문에 바삐 보내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고 고맙기까지 했다. 내 이장이 아니고는 이런 느낌이 자칫 과장적이고 건방지게 보일 수도, 심하면 내숭떤다는 혐의도 생길 수가 있다. 한국 체류 조선족의 전모 취재 중에 받은 아픔과 피곤이 그녀의 발랄한 모습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올 9월의 첫날, 서울 후암동셋집에서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금화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전화했더니 중국 연변 민속절에 관광단 80명을 인솔해 갔다가 8월 23일에 돌아왔다고 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오피스텔에서 이사를 했다고 하기에 짐작이 되는바가 있어 결혼하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후에 할거라고 했다.

“이번에는 꼭 멋있게 살아요!”

동생에게 하듯이 부탁했더니 열심히 살겠다고 하는 금화의 목소리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월요일에 시간을 내주면 꼭 멋있는 곳을 구경시키겠다고 했다. 고마웠지만 시간이 바빠 사절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기뻤다.

한국에 시집온 조선족여성들이 경제후진의 나라에서 온 열등감을 이기고 분발하는 것이야말로 모국남자들과 인간 대 인간의 평등을 이루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밖에 사전에 고국문화에 대한 공부를 잘 하고, 한민족으로의 동질감을 서로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고 이질적인 부분의 갈등을 이길 준비를 충분히 하는 것 또한 모국인과 조선족 결혼의 일차적인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금화씨의 경험에서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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