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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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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8>

중국 양대 출판사(하)

<사진1>

***은밀하게 내일을 도모하라**

“내년에도 중국에 황제가 남아 있을까?”

1911년이 되자 대청제국의 숨통은 곧 끊어질 듯 말 듯 간들간들 하여졌다. 청 황실은 학 울음소리나 바람소리나 세상의 소리란 소리 모두가 황궁을 향해 진군하는 혁명군의 함성으로 들리기라도 하듯 엄청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상무인서관은 그해 여름을 비상대책회의로 보냈다. 회의 주제는 ‘대청국민독본(大淸國民讀本)’을 그대로 펴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교과서를 편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청국민독본’은 전국 교과서 시장의 90% 이상을 수년 동안 농락하여왔던 출판사 최대의 효자 책이었다. 장웬지 사장을 비롯한 간부 대부분은 “무대책이 상책이다”라며 그대로 가자는 편에 섰고, 젊은 직원들은 ‘전면개편’을 주장했다. 루페이퀘이 편집부장은 자신의 의견을 특별히 표시하지 않고 관망하는 쪽에 섰다. 마치 세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용히 관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항하지 않고 단지 관찰만 하고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다만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던가. 혁명이 성공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만은 실패한다면 자신이 빠져나갈 퇴로 하나는 남겨두어야 한다.

루페이퀘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직감하였다.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 지속된 제국이 망하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들어선다. 그것도 예전처럼 황제의 성씨만 다른 제국이 아니라 평민 백성이 주인 되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이 온다.

하지만 그날이 오긴 올 것이로되 언제 어느 날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조정의 감시와 상무인서관 편집부장이라는 감투는 그에게 관망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워두었다.

그는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가는 ‘불온한 꿈’을 꾸고 있었다. 즉 만천과해(瞞天過海)!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병서의 정수를 모은 책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제1계다. 은밀하게 내일을 도모하라, 어떠한 계략도 이 만천과해에 바탕을 두지 않고 꾀할 수 없다. 은밀한 계략과 공개적인 형식은 서로 상반되지 않고, 반대로 음모는 밖으로 드러난 공개적인 행위 속에 감추어져 하는 법이다.

1911년 8월 30일 돌연 루페이퀘이는 상무인서관을 나왔다. 하늘(청황실)을 속여 바다(상무인서관)를 건너자마자 그는 새로운 출판사 창사를 준비하였다. 9월 초 상무는 구판을 그대로 내는 것으로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다음달 10월 10일 신해혁명의 신호탄인 우창(武昌)봉기가 터졌다. 역사발전에 동떨어진 상무의 오판은 중화에 절호의 찬스를 안겨주었다. 역사는 루페이퀘이가 예측한 방향대로 발전했다. ‘불행’은 다행스럽게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중화서국의 성공은 천운이었다.

<사진2,3>

***도전자는 홀가분해서 좋다**

루페이퀘이는 중화민국의 건국과 그 이후 세태의 흐름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전통적인 봉건교육의 속박을 깨고 새로운 교육열이 성행하리라 확신했다. 그간 내밀하게 규합한 중화의 직원들은 낮에는 평소와 같이 작업하고 밤을 새워 새 교과서 편찬에 힘썼다. 매일 자정이 넘어 퇴근하거나, 철야작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1912년 1월 1일, 제국 아닌 공화국, 중화민국이 정식으로 개국하였다. 출판사 중화서국도 같은 날 정식 창립을 선포했다. 중화서국은 그해 2월, 신학기 개학에 맞추어 ‘신학제교과서(新學制敎科書)’와 ‘신편국민교육교과서(新編國民敎育敎科書)’ 두 질 총 45권을 발행하였다. 출간 보름 전부터 중국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선바오(申報)’에 연일 대대적으로 광고하였다. 책 표지에 난징(南京) 소재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오색국기가 인쇄된 이 새 교과서는 학교와 가장들의 열화와 같은 호평을 받았다. 중화는 혁명의 시대에 ‘교과서 혁명’의 구호를 외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도전자 중화는 챔피언 상무에 대해 선제공격을 개시하여 기선을 제압하였다. 상무가 미처 발을 내딛지 못한 교과서 출판의 진지를 선점하여 단숨에 거함 상무를 격침시켰다.

기업이 커지면 점차 모험보다 안정을 지향하게 된다. 이것도 겁나고 저것도 두려워 이것저것 걱정이 많아 소극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기업인의 보편적인 속성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생 중소기업의 경우 걸리적거릴 게 없다. 상황이 좋으면 공세로 가고 여의치 않으면 수세로의 전환이 편하다. 거인 상무에 비할 수 없이 몸집 작은 도전자는 부담이 없었다. 한마디로 홀가분해서 좋았다. 근대 중국 출판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대형 출판사는 안정과 보수지향적이고 중소규모의 출판사는 변화와 개혁추구형이다. 중국의 혁명서적은 대부분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소형 출판사에서 나왔다.

상무가 역사의 사거리에서 헤매면서 수구의 길을 택하지 않고 과감한 혁신의 길을 택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넉넉한 자본과 초호화판 편집진과 막강한 발행역량을 갖춘 상무는 책을 사려고 고객들이 중화 앞에 진을 치는 공전의 호황이 일어나는 사태는 막고도 남았으리라. 혁명전야 1911년, 상무는 이미 천 여 명의 식구가 딸린 대기업이었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장웬지는 언제 어느 방향으로 불어닥칠지 모르는 폭풍우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잘못될 경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 쪽박을 찰 수밖에 없으니……. 1911년 상무의 실책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유생 출신인 장웬지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수구적이었다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당시 불투명한 정국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당시 상무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장웬지의 결정은 뼈를 깎는 고뇌에 찬 최선의 결단이 아니었을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근대중국의 시대상황에 출판은 정부의 엄밀한 감독과 간섭을 받게 되어있다. 출판업의 최대의 적은 정치바람을 맞는 것. 정치적 격변기에는 정부와 충돌을 피하여 우선 살아남고 봐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은가.

1919년 5·4운동이 일어났다. 중화는 이번에도 ‘신문화총서(新文化叢書)’, ‘소년중국학회총서(少年中國學會叢書)’ 등 과학과 민주를 선전하는 번역전집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해방여개조(解放與改造)’, ‘소년중국(少年中國)’ 등 새로운 정치논단 계간지도 펴냈다. 그중에서도 ‘소년중국’은 완전히 새로운 사상 언론지로서 중국 지식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였다. 인재, 추세, 광고 이 세 가지에 중점을 둔 중화의 출판물은 풍미하였다. 중화는 또 한번 상무에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상무가 1911년 공화정의 새로운 교재를 편찬하지 않고 또 1919년 쑨원의 저서 ‘쑨원학설(孫文學說)’의 편찬을 거절한 까닭은 정치적으로 초연하여 정치의 역풍을 타지 않으려고 한 안전우선 전략이었다. 기실 중화도 5․4운동을 계기로 상무와 필적할 만큼 커지자 그 역시 정치적 암초를 피하면서 출판사를 보수와 안정으로 꾸려나갔다.

<사진4>

***맛만 좋으면 그만인가?**

중화서국이 상무인서관을 따라잡기 위해 채택한 경영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남이 없으면 나는 있고, 남이 있으면 나는 우수하다(他無我有, 他有我優).

이 중국상술의 잠언을 루페이퀘이는 경영비법의 첫머리에 두었다. 여기서 '남'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 없이 중국출판계의 챔피언 상무인서관이다.

둘째, 광고를 중시한다. “술맛만 좋으면 골목이 아무리 길더라도 무섭지 않다. 품질만 좋으면 손님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올 것이다.” 이 말은 장웬지가 책 광고를 하자고 보채는 사람들의 입에 물리던 재갈이다. 루페이퀘이는 그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었다. 술이 아무리 좋다 한들 골목이 너무 길면 손님들은 불편할 것이다. 술 마시러 오는 사람과 또 술이 좋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적을 것이니 장사가 잘 되겠는가? 술맛만 자신하고 손님이 앉아서 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경영방식은 출판계의 ‘맏형’라는 교만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무섭지 않다'는 소극적인 기다림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판매하는 행동으로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술을 직접 손님 집에 배달해주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술 맛을 보이면 어떨까? 손님들은 술맛도 좋고 값도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면 먼 길을 좀더 걸어와도 억울하다는 느낌도 덜 들 터인데, 오히려 술꾼들의 입을 거쳐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고 더 많은 돈을 벌일 터인데?

술집에 이르는 ‘긴 골목’을 ‘짧은 골목’으로 단축시키는 가장 좋은 무기는 광고다. 광고는 상품과 고객 간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고객들로 하여금 친히 좋은 술맛을 보게 하여 더욱 강렬한 구매욕구가 생기게 한다. 상품이 술이라면 광고는 누룩이다. 중화서국이 상무인서관에 비하여 가장 다른 특징은 광고, 특히 신문광고를 많이 내는 점이다. 그리고 상무에 비해 책의 장정과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해외 독자들의 수요량이 큰 것도 특징이다. 중화는 특히 대외도서무역을 중시하여 해외시장 개척에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타이완과 일본시장뿐만 아니라 1993년에는 한국시장을 개척했으며 미국과 유럽 등 60여 개국에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셋째, 인재지상주의. 인재를 우선시하는 장웬지는 “출판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강조해왔다. 루페이퀘이는 이에 한 술 더 떠 인재지상주의를 구현했다. 저자를 초빙하고 직원을 채용할 경우에는 특히 라이벌 상무인서관 경력을 우대했다. 루페이퀘이는 평소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예를 다하여 상대방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보다 백 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들게 된다.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면 자신보다 열 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들게 된다. 상대방과 대등하게 행동하면 자기와 엇비슷한 인간밖에 모여들지 않는다. 좌석에 기대앉아 막대기를 잡고 지시한다면 아첨꾼밖에 모여들지 않는다. 무조건 화를 내며 혼을 낸다면 노예들만 모여들 뿐이다. 이것이 인재 초빙의 상식이다.” 이런 인재지상주의에 따라 량치차오(梁啓超), 장원티엔(張聞天), 쉬즈모(徐志摩), 수신청(舒信城) 등 대학자와 당대의 명사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중화서국의 저자가 되었다.

<사진5>

***경쟁만세**

상무는 더 이상 중국 출판계의 장자로서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상무는 영인본으로 승부했다. 사진촬영기법으로 인쇄를 하여 거의 원본과 동일하게 만드는 영인본의 최고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원본에 충실함’이었다.

장웬지 사장의 직접 진두지휘 하에 ‘사고전서(四庫全書)’ 등의 대작을 연속으로 출판했다. 중화의 공세가 멈칫해졌지만 순순히 백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중화 역시 루페이퀘이 사장의 총지휘 아래 ‘사부비요(四部備要)’를 편찬하고, 대량의 광고와 선전공세를 펼쳐 상무와 극력 맞서 싸웠다. 사운을 건 회심의 한판 승부를 벌였다.

상무의 영인본에 맞서 중화가 치켜든 무기는 교열본(校閱本)이었다. ‘원본 그대로’의 영인본과 달리 교열본은 하나 이상의 권위 있는 문헌을 대상으로 하여 명백한 오기의 교정, 수정, 종합을 가미한 것이다. 중화는 ‘사부비요’에서 오자나 탈자를 찾아내는 독자들에게는 거액의 상금을 준다고 내걸었다. 마치 전국시대 ‘일자천금’의 여불위가 써먹었던 수법까지 동원되었던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출판사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치렀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중화는 상무 옆구리에서 삐져나왔다. ‘교육입국’, ‘표신입이’와 ‘만천과해’, ‘일자천금’의 깃발과 전략으로 강력한 상무를 몇 번이나 격파했다. 중화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용맹으로 맞서 싸웠다. 상경계에서 경쟁은 반드시 일방만 유리한 것만이 아니라 둘 다 좋은 것이다. 도(道)가 한 자 높아지면 마(魔)는 한 장이 높아지는 기백으로 남보다 약하다고 스스로 기죽지 말고 자신의 첨단병기를 개발하여 맞서 싸우다보면 모두 좋은 것이다. 중국 출판계의 영원한 맞수 상무와 중화는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보니 천하의 대작을 출판한 결과를 빚었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전쟁처럼 이익과 손해를 합하면 ‘0’이 되는 게임, 이른바 제로섬 게임일 수가 없다. 합법적이고 공평한 경쟁을 통해 상호간의 이익을 키웠다면 둘 다 이긴 윈윈(win-win)이다.

‘사고전서’와 ‘사부비요’의 격렬한 교전을 벌여온 상무와 중화. 이 중국의 양대 출판사는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일찍이 천하를 놓고 항우와 유방이 한판승부를 벌였던 초한전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패자가 없는 승자뿐인 윈윈이었다. 거기다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했고 두 출판사 돈도 많이 벌었으니 모두 다 좋은 것이 아닌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장자는 “나와 나의 사상은 친구 혜시 때문에 형성되었다”라고 했다. 장자는 그의 맞수 혜시로 인하여 사상적으로 분발되고 영향을 받았다. 경쟁은 즐겁다. 한쪽만 웃고 한쪽은 우는 것만은 아니다. 경쟁적 요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활력이 넘치는 행복한 사회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의 경쟁, 그렇다하더라도 경쟁이 없는 세계, 승부를 다투는 일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죽은 사회일 것인가? 경쟁이 악덕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공평과 합리의 경쟁이라면 음으로 싸워도 좋고 양으로 싸워도 좋다. 광명정대하게 자세를 차려 값을 내려팔던가 물건을 더 많이 주든가 품질을 높이든가 경품을 주든가 하는 등등의 수단은 다 공평과 합리에 속한다.

그런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상대방이 약자라도 궁지에 몰리게 되면 죽음을 각오하고 맞설 것이다. 설사 이기더라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궁지에 몰린 상대를 굴복시키려면 급박하게 몰아붙이기보다는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느슨하게 풀어주면 상대의 힘은 약화되고 싸울 의지도 마비된다. 이때는 적은 힘으로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 한 발 물러남으로써 나아가고, 억압하고자 하면 먼저 풀어준다. 이 전략을 쓰는 기업가는 멀리 내다보는 눈과 남다른 인내력을 지녀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면 성공할 수 없다. 노자는 “장차 빼앗으려면 먼저 주라”고 했다.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오히려 발악하므로 그대로 두었다가 처치하는 것이 상책이다. 군사상의 전쟁과 상경계의 경쟁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상경계에서는 적을 궁지의 절망상태로 빠져들게 하든지 씨를 말려서는 안된다. 지혜로운 기업가는 라이벌의 잔명을 살려둔다. 경쟁이긴 경쟁이되 유한경쟁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상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자를 격퇴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게 공평정대한 방법의 경쟁이라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다. 공평경쟁은 기업에게도 판매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모두에게 다 좋은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라, 앞날은 밝다. 경쟁 만세! 만만세!

<사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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