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철새다 어쩔래"**
1988년 늦가을, 리샤오화가 '101 대머리 치료제 일본 독점 판매'로 떼돈을 벌고 있을 때 홍위병 시절의 죽마고우가 그를 찾아왔다. 둘은 일본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규슈(九州)의 남단 이즈미(出水)로 갔다.
이즈미 시는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수만 마리가 월동하는 서식지를 관광자원화하였다. 지금도 매년 50여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서 민박과 기념상품을 판매해 지역주민들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붉게 타는 늦가을의 석양 무렵, 바람결에 쓰러지는 하얀 갈꽃 위에서 무리지어 날개짓하는 철새들의 군무는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리샤오화는 갈대밭에서 쌍쌍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낭만어린 정경을 보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추억에 젖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여보게 샤오화, 우리 참 많이도 변했네. 그 철없던 시절,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고 부자들을 원수처럼 여겼는데 말이야… 특히 지금 너의 모습은 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가는 한 마리 철새 같아. 여기 머나먼 섬나라 일본까지 날아왔으니…"
"그래, 가끔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곤 해. 넌 나를 알아보는 둘도 없는 친구냐."
"......."
"또 자주 이런 생각을 해본다네. 기업가에게 천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범이라고 생각해. 평범하면 앉아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 기업은 만성자살의 길에 들어서지. 그래서 평범은 혁명아의 천적도 되지 않은가? 혁명아와 기업가, 모험과 기회, 이 둘은 일란성쌍둥이 같은 생각이 드네. 전심전력으로 기회를 잡으려면 기꺼이 모험을 감수할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야, 기업가로서 나의 전략은 아주 간단해. '철새전략'. 어디에 장사될 만한 게 있다면 곧 거기로 날아간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적합한 기후와 먹이가 있으면 철새는 곧 어디든 날아간다. 그래 난 한마디로 철새야. 기업철새야!"
그러고는 리샤오화는 입을 굳게 다물고 갈대밭 여기저기서 쉼없이 비상하는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을 바라만 보았다.
1989년 6월 4일 여름, 톈안먼사태가 일어났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황상태에 빠진 홍콩의 부자들이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도래지를 떠나는 철새처럼. 세계 최고의 부동산 시세로 유명한 홍콩은 전대미문의 대폭락사태를 맞고 있었다. 갓 신축한 빌딩이 시가의 5분의 1도 안 되는, 심연을 알 수 없는 바닥상태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폭락의 제1원흉은 다름아닌 심리적 공황이었다. 중국의 미래를 비관하였던 것이다. 남은 홍콩 시민들은 이 비참한 현실이 백일몽이길 바랐다. 국제도시 홍콩은 철새가 모두 떠나버린 황량한 철새도래지로 전락할 일보직전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업철새' 리샤오화는 홍콩으로 찾아들었다. 계절을 잊었는지 잘못 찾아들었는지, 그 많은 도래지를 놔두고 하필이면 다들 떠난 홍콩인가?
그러나 리샤오화는 확신 하나를 굳게 세웠다. 세계 최다 인구, 국토면적 세계 3위의 중국은 그리 쉽사리 멸망하지 않으리라. 개혁의 총설계사 덩샤오핑과 그를 추종하는 개혁파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있는 한 중국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그는 미련스러울 만큼 모든 비관적인 여론을 물리쳤다.
그 동안 모은 전재산을 털어넣었다. 헐값으로 굴러다니는 부동산을 사재기했다. 모두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리샤오화는 속으로 자문자답했다.
"이건 투기가 아니야, 투자야. 이 폭풍우가 지나가면 청량한 푸른 창공이 펼쳐지리라."
반년이 지났다. 대전환의 U턴이 일어났다. 중국의 정세는 안정을 되찾았고 대외개방 정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1국 2제' 방침도 불변이었다. 사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오락가락했을 뿐이다. 사람들의 심리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홍콩을 등지고 떠났던 가진 자들의 역이민 사태가 벌어졌다. 홍콩의 부동산 시세는 89년 이전 수준으로 반등한 것을 넘어 폭등을 거듭했다. '세계적인 기업도래지' 홍콩은 제모습을 되찾았다. 수십만 마리의 새떼가 몰려와 장관을 이루는 철새도래지처럼 예전의 호황을 다시 누렸다.
리샤오화는 철새이되 아주 영리한 기업철새였다. 남들이 못보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매우 뛰어난 기업가였다.
사람들은 리샤오화의 홍콩 부동산 투자를 '부동산 대첩'이라고 치켜세웠다. 지금도 부동산 투자의 하나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백만장자에서 일약 억만장자의 행렬에 뛰어오른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어찌 그렇게 과감할 수 있었는가?"
"부동산 투자의 최고 명당자리는 어디인가. 첫째 땅 좁고, 둘째 사람 많고, 셋째 자본주의체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 홍콩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조국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이 정치에 지나치게 탐닉하거나 추파를 던지는 것은 위험하지만 국내외 정세 판단과 정보수집에 기울이는 노력은 아무리 많이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참 매력적인 신문지 내음**
홍콩 부동산 대첩을 승리로 거둔 리샤오화는 광활한 미래의 국제대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찰을 떠났다. 시찰 도중 한 중소도시에서 도로부지매도 및 도로보수공사 프로젝트의 공개입찰 공고를 보았다. 하지만 거기다 섣불리 투자하려는 국내외 기업이 없었다. 도시 외곽의 변두리 노선이라 보수공사 이후에도 예상 교통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리샤오화는 심장이 떨릴 만한 첩보를 하나 입수했다. 그 도로 주변에 매장량이 엄청난 대형 유전이 발견되었는데 아직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
헛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실제로 유전 발견이 대외에 공포되고 또 정식으로 채굴된다면 투자자가 도로 부근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유전과 관련 깊은 화학공업과 운수업도 폭발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전도는 양양하리라.
유전 발견이 정식으로 공포되는 순간, 이 프로젝트의 투자가치는 급상승할 것이다. 내밀한 조사와 사전 준비를 거쳐 리샤오화는 '투자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이제까지 번 돈의 전부를 투입했다. 또 자기집을 포함해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저당잡고 은행에서 3억 8천만 달러를 대부받았다. 반년 만에 이자와 원금도 상환해야 하는 단기대부금이었다. 만일 반년 만기가 되도록 도로보수공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또 돈을 갚지 못한다면 리샤오화는 빌딩에서 투신자살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이번 사업의 위험도는 실패한다면 재기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투자였다.
그의 아내 장지윈은 걱정으로 밤잠을 못이루면서 말렸다.
"이번이야말로 투자가 아니라 순전히 한탕을 노리는 투기예요. 만일 당신이 투기를 한다면 나는 당신과 이혼하겠어요!"
리샤오화는 그런 일로 아내가 이혼을 청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몇달 간을 도시락과 라면으로 때웠다. 비행기는 이코노미 좌석을 끊었고 홍콩에서는 택시조차 탈 수 없어 6전짜리 삼륜차를 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매일 신문기사만 나길 기다렸다. 사람이 멍해지고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다섯째 달이 지났다. 대부돈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무일푼이었다. 5월 16일, 리샤오화는 잠에서 깼다. 그의 눈동자는 백열전구처럼 번쩍 빛났다. 신문지의 대문짝만한 글씨가 그의 눈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00도로 부근 대형 유전 발견."
흥분과 격정으로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보고 있던 신문으로 얼굴을 아예 감쌌다. 그 순간 만큼 신문지의 인쇄내음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었다. 일주일 만에 리샤오화가 매수한 도로부지의 땅값은 다섯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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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돈바다로 나가자**
파도가 거세면 거셀수록 탁월한 서핑기술이 돋보이는 파도타기의 선수라고나 할까. 리샤오화는 위험이 컬수록 더욱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기업가다. 대박이 잠을 자고 있는 침대(프로젝트)를 잘 찾아냈고 대박을 잘 불러깨웠다. 그는 우수한 관리자를 잘 발탁하는 데도 도통했다. 야전사령관보다는 총사령관감이다. 그는 위험의 서핑을 즐긴다. 위험한 듯 하지만 그에게는 짜릿한 쾌감, 즉 이윤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소매가 길면 춤도 잘 춘다. 위험과의 동침에서 환희를 맛보자꾸나."
리샤오화는 힘을 주어 말한다.
"저기 저 돈바다로 나가자. 그까짓 위험의 파도를 두려워하랴! 맨손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부와 같다. 나의 돈은 위험의 파도를 무릅쓰고 위험의 거센 격랑과 맞서 끝까지 싸워 얻어낸 것이다."
리샤오화에게는 그 어떤 이익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승승장구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보다 계산이 정확하고 빨랐으며, 보다 많은 인내력을 지불한 대가였다.
"인생은 일련의 선택이다. 한번 잘못된 선택은 일생을 망쳐버릴 수 있다. 인생의 성패는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부자가 되는 완전무결한 비법은 없다. 그러나 자신만 확고하다면 부자가 될 확률은 이미 70퍼센트다. 담이 작아서는 안 된다. 위험을 무릅쓰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제로다."
사람은 수익이 적고 확실한 것보다는 다소 불확실하지만 이윤이 더 높은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투기적인 모험을 즐기게 된다. 투자나 투기는 모두 돈을 버는 것이 목적. 사람들은 흔히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투자는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는 방법을 추구한다는 것, 여윳돈을 가지고 한다는 것,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투기는 위험을 각오하고 큰돈을 벌려고 하는 것, 여윳돈이 아니라도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는 것, 단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베팅한다는 것이다.
리샤오화는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원래 구분이 모호한 투자와 투기를 어떻게 한칼에 구분지을 수 있는가. 나는 '투기'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를 혐오한다. 중요한 것은 확신과 결과다. 남보기에는 투기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투자다. 결과만 좋으면 투기도 투자다."
2002년 10월 현재, 홍콩화다그룹은 정오의 태양이다. 그룹 계열사의 수는 무역과 부동산, 기계제조, 가정용 전기가구, 식품가공, 음식업, 오락과 여행관광업 등의 33개사로 세계 16개국에 분포하고 있다. 리샤오화 총재는 2001년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인 부호 서열 16위에 랭크되었으며 홍콩에서 활약하는 베이징 출신 기업인 가운데 제일의 부자다. 개인재산 2.4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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