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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의 신부**
“우리가 결혼한 지 엿새째 되던 날 아침 당신은 광저우(廣州)로 떠났었지요. 내가 아이를 낳을 때도 당신은 하이난(海南)에 있었지요. 여자의 일생 중 남자가 꼭 필요한 두 시기에 당신은 제 곁에 없었어요. 올 설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희는 부모님께 또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요.”
우이지엔(吳一堅)은 전화기를 힘없이 내려놓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내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가슴팍을 할퀴며 파고들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아니면 모자를 하이난으로 불러들여 아이의 젖비린내라도 맡고 싶었다. 책상에 고개를 묻고 서른이 넘은 사내는 겨우 울음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우는 것은 여자의 몫이고 일은 남자의 몫이라 했다.
그는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거금 1백70만 위안어치의 물품을 발송했었는데 상대방이 제때에 송금해 오지 않았다. 마침 설날이 내일 모레였고 직원들은 설을 쇠러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자신의 저축을 몽땅 꺼내 귀향하는 직원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음력 섣달 스무이렛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 혼자만이 텅 빈 공장을 지켰다.
그에게 남은 돈은 단돈 50위안. 불필요한 근심을 더해 줄까봐 자신의 처지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설날 연휴기간에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대보름이 되어 설날 휴가가 끝날 때까지는 18일간. 그는 50위안 전액을 털어 찐빵 100개를 샀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공장직원들은 얼굴조차 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여윈 사장의 모습에 어쩔 줄 몰랐다.
2001년 말 현재 개인재산 5억불로 중국의 여덟번째 거부이자 시안(西安) 최대의 민영기업인 금화(金花)그룹의 우이지엔 회장은 ‘찐빵 1백개만으로 18일을 버틴 일화’에 대한 소감의 끝을 이렇게 매듭짓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는 고난이 인생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는 도리를 실감합니다. 고생의 막다른 골목에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어요. 인생의 참 맛을 알려면 먼저 고생의 쓴맛을 맛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1985년 새벽 시안의 한 오두막집 세 평 반의 공간에 신부를 혼자 놔두고 떠난 새신랑 우이지엔의 지갑 속에는 1백 위안짜리 여섯 장이 전부였다. 그는 남쪽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로 가서 막노동으로 1년을 보냈다. 이듬해 어렵사리 번 돈의 절반가량으로 광저우의 최고급 양복점과 제화점에서 신사복 두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장만했다. 그 다음 그의 발길은 북쪽의 고향 시안이 아니라 남쪽 섬으로 향했다. 바다를 성큼 건너 하이난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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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와 수상개화**
우이지엔의 고향 시안(장안)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들 중국의 과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이징을 중국의 현재, 상하이를 중국의 미래라고 부른다. 베이징 사람은 대개 자존심이 강하고 권력과 명예와 예의를 중시하는 편이고 상하이 사람은(주로 2, 3세대 전에 저장성에서 이주한 사람들) 계산에 밝고 사업성이 강하고 기업정신이 뛰어나다.
이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하는 지역 사람들에 비해 중국의 과거에 살고 있는 시안 사람은 충실하고 정직한 편이나 문화적 우월감에다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 이런 평가는 대충 그렇다는 것이지 칼로 두부 가르듯 규정지으면 곤란하다.
앞에서 살펴본 천진페이와 천진이가 각각 베이징과 상하이(저장) 기업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기업가라면 우이지엔은 시안 기업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또 앞의 두 천(陳)씨 기업가들의 대표적 경영전략이 금선탈각과 고육지계라면 우이지엔의 그것은 수상개화(樹上開花)라 할 수 있다.
수상개화는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남의 병력을 빌려 적을 굴복시키는 책략을 말한다. 사람은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수상개화는 바로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나무에 갖가지 색깔의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조화를 붙여 놓으면 웬만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수상개화는 다시 허장성세와 금상첨화의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전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 위에 더 좋은 것을 덧붙이는 후자는 실제 사회에서는 드문 편이다. 아무튼 허장성세나 금상첨화로 상대를 놀라게 해서 겁을 먹게 만든다면, 군사상이나 상업 판의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니 최상의 계책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도 수상개화를 활용했다. 그는 마을의 부녀자들에게 남장을 시키고 승전고를 올리며 산중턱을 감싸듯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빙빙 돌게 하였다. 이때 바다 건너편에서 이순신 장군의 진영을 바라본 왜적들은 무수히 많은 조선의 군사들이 행군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겁을 먹고 줄행랑을 쳤다.
이러한 수상개화는 마치 손에 손을 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 춤을 추듯 중국의 다양한 층위에 걸쳐 광범위하게 만연되어 왔다. 자신의 실력보다 ‘꽌씨’(關係)의 힘을 과시하거나, 권력층을 빙자해서 사기를 치고, 학력과 경력을 조작하거나, 제품의 질량과 영업실적을 부풀리는 등등 모두 꽃을 만들어 붙여서 상대를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술수로 쓰여 왔다.
중국최대의 경제특구인 하이난에서 우이지엔은 자신만만했다. 가진 돈은 없었지만 남들이 없는 그만의 자산이 있었다. 불굴의 의지와 총명한 두뇌는 물론 당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시안대학 경영학 석사학위의 고학력자로서 체계적인 경영학 지식과 함께 유창한 영어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그의 ‘나무’였다면 잘생긴 외모에 고급스럽고 깔끔한 옷차림,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미소는 그의 ‘나무껍질’이었다. 지금도 그는 현대중국의 민간기업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로 손꼽힐 만큼 외모와 옷차림과 매너는 빼어나다.
한 그루 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면 아름드리 낙락장송이든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꽃나무이어야 한다. 돈 많은 자가 으레 낙락장송으로 행세하는 상림(商林)계에서는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돈 없는 그의 나무는 키 작고 볼품없는 관목일 뿐이다. 그렇다면 관목에 꽃이라도 달아야 한다. 우이지엔은 자신의 경쟁력을 나무로 삼아 하이난의 외자유치부서 관리들과 투자환경 시찰을 나온 외국의 기업인들과 끈끈한 꽌씨(關係)의 꽃을 피워나갔다.
***꽌시의 꽃술, 라오펑요우**
중국에서의 사업은 돈과 꽌시의 2차 함수로 풀린다. 중국인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꽌시를 맺고 또 그 꽌시를 심화하고 확장하려고 애쓴다. 꽌시의 고속도로망을 닦고 그 위를 달려야만 돈을 제대로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꽌시는 한자 그대로 관계(關係)다. 하지만 ‘꽌시’와 ‘관계’가 갖는 뜻과 쓰임새, 사회적 메커니즘은 미묘한 차이를 갖는다. 꽌시는 우리말 가운데 문화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는 ‘인맥’에 더욱 가깝다. 영어의 ‘릴레이션쉽 ’(relationship)도 영미식 개인주의가 물씬 풍기는 단어로 ‘꽌시’와는 다른 의미다.
꽌시가 인맥이나 릴레이션쉽과 비교하여 가장 다른 점은 의무의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일단 꽌시가 형성되면 상대방은 언제든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공통 인식이 형성된다. 만일 꽌시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 이를 거절한다면 상대방은 꽌시가 파괴됐다고 여긴다. ‘인맥’이 의무보다는 도의적 성격을 강조하고 의무나 도의적 성격이 없는 ‘릴레이션쉽’과는 다른 점이다.
<표 1>
연못에 돌을 던지면 원을 그리며 퍼지는 동심원처럼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된다는 것도 꽌시의 특징 중 하나다. 정부관료와 꽌시를 구축한 누군가를 내편으로 끌어들인다면 그 정부관료도 내편이 된다.
또한 중국의 꽌시는 우리 나라의 ‘백’ 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의 ‘백’은 높은 사람의 권력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인 반면에 꽌시는 실무담당자를 통한 직접 해결방식이 주류다. 중국에서는 한국식의 ‘백’은 잘 통하질 않는다. 고위층에게 가라오케에서 술을 몇 번 사고 뇌물(또는 선물)을 주었다고 해서 꽌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한국식의 백을 쓰다가 호되게 망신만 당하는 예가 부지기수다.
꽌시는 주로 개인 대 개인 사이에 형성되지만 조직 대 조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 조직이 다른 한 조직에 큰 도움과 신뢰를 주며 꽌시를 구축하면 그 조직은 대부분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 꽌시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으로써 사업할 때나 개인 적인 일을 볼 때 그 위력을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잘하는 것은 꽌시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또는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꽌시를 오랫동안 유지하면 ‘라오펑요우’(老朋友)까지의 단계에 이를 수가 있는데 이 정도면 꽌시의 구축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라오펑요우는 꽌씨의 꽃 한가운데의 꽃술과 같다. 라오펑요우는 오랜 친구의 일반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애 이상의 믿을 수 있는 친구,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함께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라오펑요우인 것이다. 라오펑요우의 꽃술 주변에는 또 다른 라오펑요우가 있기에 서로서로 아름다움의 힘을 곳곳에 뻗친다.
***2년 만에 50만 배의 재산증식**
우이지엔은 홍콩의 한 유명 전자회사 사장을 라오펑요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둘은 합작하여 연간 20만 대의 컬러TV수신기 생산이 가능한 대형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하이난성 정부에 제출했다. 이 일은 꽌씨의 동심원 바깥사람들의 눈에는 ‘아라비안 나이트’ 속 알라딘 램프 이야기와 같은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짓일 것이다.
그 시절 중국 전역에서 연간 생산되는 컬러TV댓수는 전부 20만 대에 불과했었다. 우이지엔은 중국 내수시장의 컬러TV 공급물량의 절대부족과 그것이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하이난의 특수상황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꽌시의 동심원 안쪽 깊숙이 들어온 하이난성의 당국자들은 스마트한 대륙 청년의 ‘나무’에 활짝 핀 홍콩 자본의 ‘꽃’에 매료되었다. 결국 우이지엔은 ‘25년 경영 후 공장과 설비 환급’조건으로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불하받았다. 공장건설은 ‘3퍼센트의 품질 보증금’을 선불하는 방식으로 건설회사에 도급을 맡겼다. 또한 ‘부품의 80퍼센트를 생산가로 공급’하는 조건으로 합작 파트너인 홍콩기업에 투자를 책임지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고급 신사복을 벗어 던지고 허름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외제 유명브랜드의 구두를 신발장에 처박아두고 싸구려 중국산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그는 전자제품 판매상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배가 고프면 음료수 한 병에 빵 한 개로 요기하고 그것도 사먹을 돈이 떨어지면 물만 죽자 사자 마셔댔다. 신발 밑창이 다 닳아빠져 아예 떨어질 판이었지만 끈으로 아래위를 묶고 또 일주일을 견뎠다. 판매상들에게는 그런 궁상맞은 차림이 오히려 수상개화 전략의 적절한 운용일 것이다.
하늘은 전력을 기울이는 자를 우대한다고 정말 전국의 전자제품 판매상들은 그의 성심과 정열에 가슴이 찡해졌다. 그들은 저마다 구매계약금을 선불했고 10개월 후의 상품을 사전 주문하였다.
이렇게 외부환경을 다스려 놓고 난 우이지엔은 다시 내부의 공장건설에 전념했다. 보수가 제때에 지불이 안 되자 건설 노무자들은 게으름을 부렸다. 그는 일일이 그들을 달래고 설득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의 주머니 돈을 몽땅 털어 주었다. 일전 한 푼 없어서 끼니도 굶었다. 열 며칠씩이나 반찬 하나 없이 맨밥만 먹기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노무자들은 조금씩 감동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공식을 거행한 지 10개월 만에 당시 중국 최대규모의 컬러TV수신기 생산공장이 완공되었다. ‘6일의 신부’의 눈물을 뿌리치고 집을 나올 적 그의 전 재산 6백 위안은 어느덧 3억 위안(땅값 포함)으로 변해 있었다. 2년 만에 무려 50만 배가 는 실로 놀라운 재산증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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