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임오년(壬午年) 새해, 말(馬)의 해를 맞이하여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의 ‘국풍(國風)’ 가운데 한 수를 적어본다.
숙은 사냥하러 황색 마차를 탔네 / 가운데 두 마리 힘세어 앞 달리고 양편 말이 뒤져 기러기 행렬인 듯 숲 속에서 숙은 큰 불 질러 사냥하네/ 활쏘기 솜씨랑 말머리 꺾어 달리다 당기는 모양하며 활집 채로 쏘는 솜씨 뛰어난 재간이네(叔于田乘乘黃 兩服上襄 云云)
숙(叔)이라는 사람이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노란색의 사두(四頭)마차를 타고 사냥을 나가는 정경은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친다. 2천5백여 년의 아득한 옛날, 춘추시대 이전의 나라의 풍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말을 대신한 자동차는 원래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쌍두마차의 모양새를 모방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자동차의 전조등이 둘이라는 것, 운전석이 앞 좌석의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도 쌍두마차의 산물이란다.
그래서 어떤 중국 친구는 차라리 쌍두마차 대신 사두마차를 모방했더라면, 운전자가 자동차 앞부분의 좀더 높은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앞과 옆을 잘 보면서 핸들을 잡게 되고, 더욱 신속하고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다소 독특한 견해를 내놓았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네 마리 말이 끄는 또 다른 ‘숙(叔)의 경마’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치는 그 중추기관과 최고 지도자인 공산당(장쩌민), 전국인민대회(리펑), 국무원(주룽지), 정치협상회의(리뤠이환)의 4두마차가 이끈다. 경제도 4곳의 핵심지역이 21세기 중국을 이끄는 4두마차가 이끈다.
광둥(廣東), 저장(浙江)과 장쑤(江蘇)의 장강(양쯔강)델타지역, 그리고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 톈진 포함)이다.
중국 전체 면적의 5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이곳에서 뿜어내는 경제력은 놀랍다. 중국 전체의 GDP, 외자유치액, 수출총액 등등 각종 경제지표의 65퍼센트 이상을 점하고 있다.
또한 2001년 중국 100대 업체의 기업주 가운데 이 지역 출신은 과반수가 넘는 54명이고, 본사를 이곳에 두고 있는 기업의 수는 전체의 3분의 2를 넘어선다.(아래 도표 참조).
이러한 중국 경제발전의 4개 핵심 견인지역을 경주마의 특성과 대비시켜 풀어보면 꽤 흥미롭다. 경마장에서 사람들은 대충 경주마를 주행습성에 따라 대충 선행마(先行馬), 도주마(逃走馬), 선입마(先入馬), 자유마(自由馬), 추입마(追入馬) 등으로 나눈다.
<그림1>
베이징 →추입마
상하이 →자유마
양쯔 강 델타 →선입마
광둥 →선행마
출발선에서부터 기선을 잡는 경주마가 선행마이다. 도망치듯 달리다가 추월당하면 쉽게 전의를 상실하는 말은 도주마라고 한다.
경기 초반에 두세 번째로 달리며 1착을 노리는 말은 선입마, 경기 초반 힘을 비축했다가 막판 뒤집기를 잘하는 말을 추입마라고 부른다.
끝으로 기수의 말 다루는 솜씨와 전략에 따라 순발력, 추입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말이 자유마이다.
<그림2>
***선행마는 광둥**
1970년대 말엽이다. 중국인은 아직 대부분 “누가 내 철밥통을 깨뜨린다면(해직시킨다면) 난 천안문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릴 거야” 라며 배는 곯으면서도 입으로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그 무렵 “누가 철밥통을 깨뜨린다면 나는 등용문을 향해 튀어 오를 거야"라며 과감히 팔뚝을 걷어붙인 사람들이 있었다. 광둥인이 바로 그들이다.
1979년 중국 정부는 선전(深천), 주하이(朱海), 산토우(汕頭) 등 주로 광둥지역에 경제자주권을 부여하는 경제특구를 개설하였다. 그러고는 외국 투자자에 대한 우대조치를 통해 서방의 자본 및 기술, 경영기법 등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베이징인은 외지인들을 자기의 부하로 여기고. 상하이인은 시골촌뜨기로 깔보지만, 우리 광둥인은 그들을 소비자로 대우합니다.”
필자가 광둥 출장길에서 만난 어느 백화점 여직원의 말은 특히 인상에 남는다. 광둥인은 사용하는 브랜드가 인격을 결정할 만큼 고가의 브랜드를 좋아한다.
그러나 베이징인처럼 소비계층이 일부계층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고 상하이 소비자처럼 지나치게 영악하지도 않아 상품판매에는 광둥인이 최고라고 한다.
광둥의 광고대리점인 바이마(白馬)는 1985년 광저우미술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창립하여 건강식품 ‘아폴로’의 광고를 히트시키면서 부상하였다. 이러한 신흥 성공기업인들이 광둥 경제의 주력을 차지하고 있다.
광둥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중국이 아니다. 경제 수준이 오히려 홍콩에 가깝다. 광둥인에게 신(神)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돈일 것이다.
장삿속에 밝아 가히 상인종(商人種)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중국인 중에서도 상인종 순종만이 모여 사는 곳이 광둥이다. 광둥인의 배금주의는 중국에서도 으뜸이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돈벌이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안다.
또 광둥 번영의 원동력은 외지에서 몰려온 5백만 명의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직장을 얻지 못한 외지인 중 일부는 길거리에서 유랑하고 있다.
휘황한 광둥의 이면에는 상품의 적정 가격제가 무시되고 있고 불법 상품이 난무하고 조직폭력, 마약밀매, 밀수 등 각종 사회악이 횡행하고 있다. 작년 선전에서 베이징으로 이주한 한 외국인 투자업체의 사장은 “광둥에서는 돈은 잘 벌 수 있었지요. 하지만 부녀자들은 초저녁에도 함부로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치안이 열악하여 못견디겠어요.”라고 털어놓는다.
중국의 개혁개방 20년을 이끈 선행마 광둥. 그러나 이곳의 경제 비중은 예상보다 그리 높지 않다. 투입된 외자는 주로 홍콩, 대만, 싱가폴 등 화교의 중소자본으로서 그들은 위탁가공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에만 투입되어 있다.
첨단과학기술과 고급 노동력과 지식산업의 기반이 미흡하다. 이것은 투기심리만 부추긴 반면 한 차원 높은 경제발전을 지속시킬 뒷심을 약화시켰다.
한마디로 말해 광둥은 80년대 중국 자본주의의 제한된 지역 내에서의 실험실이었다.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사업장은 아니었다.
광둥은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기선을 잡는 선행마였으나 초반엔 도망치듯 달리다가 한번 추월당하기만 하면 쉽게 전의를 상실하는 도주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썩어도 준치다.’ 어쨋든 광둥은 오늘날 중국경제 4두마차에 없어서는 안 될 준마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자유마 상하이**
덩 샤오핑(鄧小平)은 말했다.
“중국의 미래는 상하이에 달려있고 상하이의 미래는 푸둥(浦東)에 달려있다.”
그가 이토록 편애한 상하이 푸둥은 어디인가? 푸둥은 중국 경제 제1의 도시, 상하이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황푸(黃浦) 강의 동쪽 땅을 말한다. 서울의 강남인 셈이다.
중국은 상하이를 용의 머리, 양쯔강을 용의 몸에 비유한다.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으로 용의 머리를 자극, 그 힘이 용의 몸통(양쯔강)을 통해 꼬리(내륙)까지 미치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상하이는 중국을 움직이는 용두마, 푸둥은 상하이를 이끄는 용의 눈으로 변신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와서 중국 정부는 대외개방에 대한 인식을 광둥의 실험실 차원에서 실제적 차원으로 전환하였다. 상하이를 경제∙무역∙금융 중심지로 건설하여 양쯔강 델타와 강 전 유역에 걸쳐 지역경제의 발전을 촉진한다는 발전계획을 제시하였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 및 양쯔강 델타지역을 화살촉으로, 연해지역을 활로, 양쯔강을 화살로서 비유하였다.
1980~90년은 연해지역의 활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킨 시기였고 1990년부터 2000년까지는 화살촉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시기로, 다시 2010년까지는 화살을 쏘아야 할 기간으로 설정했다.
현재 상하이는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중점지구이자 도쿄, 홍콩을 제치고 21세기 아시아의 신경제중심을 선언하고 나선 핵심전략지역이다. 상하이의 최근 10년간은 하루에 천리를 질주한 천리마였다.
이제 상하이의 차원은 중국 여타 도시와 밥그릇을 다투는 게 아니다. 상하이 사람은 대부분의 정력과 흥미를 경제생활에 투입한다.
필자가 상하이에서 4년 여를 살면서 체험한 상하이 사람의 특성 중의 몇 가지는 이렇다.
상하이 사람은 확실히 대부분의 정력과 흥미를 경제생활에 투입한다. 그들은 정치에는 별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외래문물 수용에는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상하이 사람과의 상담은 힘들지만 일단 맺은 계약은 규범에 부합되고 세부내용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하기 때문에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적은 편이다.
치밀한 이익계산을 거친 ‘요령’과 자기 이익에 근본을 둔 ‘지나친 총명’은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경계와 질시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일마다 비결을 찾고 수를 쓰며 지름길을 고르고 질 좋고 값싼 것을 추구한다.
중국 각지의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상하이에 몰려 있다. 한마디로 상하이는 중국 각지에서 날고 기는 상인들의 대표가 집결하는 초대형 상설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의 동쪽 푸둥에는 반도체를 비롯한 IT(정보통신)산업기지가, 남쪽에는 중국 최대의 석유화학기지인 진산(金山)석유화학이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독일의 폭스바겐과 합작한 상하이 산타나 자동차의 국제자동차단지가, 북쪽에는 한국의 포항제철격인 바오산(寶山)강철이 자리잡고 있다.
또 ‘21세기는 금융의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상하이는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1백25개의 외국계은행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69개가 상하이에 진출했다. 상해GM. 모토롤라, IBM, SIMENS, SONY, HP, BELL 등등 세계적 첨단기업들이 전부 상하이에 모여 있다.
중국 돈은 물론이고 국제 자본과 첨단기술이 상하이로 몰려든다. 상하이는 기수의 기승술과 전략에 따라 순발력과 추입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하무비(天下無比)의 자유마라고 할 수 있다.
***선입마, 양쯔강 델타**
2001년 중국 대륙의 100대 기업 중 양쯔강 델타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은 22개사(저장 16개사, 장수 6개사)로 제1위이며 또한 그들 기업주중 이곳 출신은 25명(저장 17명, 장수 8명)으로 중국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상하이를 기점으로 사통팔달로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공장들이 물고기의 비늘마냥 정갈하고 가지런히 놓여있다. 방사형으로 쭉쭉 뻗은 산업도로는 컨테이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고 또 가도 사라질 줄 모르는 지평선에 꽉 들어찬 논밭 사이에 점점이 촌락을 이루는 농가는 전부 2층 양옥집이다.
중국 제1의 곡창지역이라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 자연환경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기에 안존하지 않고 중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란 평판을 받고 있다.
상하이의 남쪽 저장성 출신 상인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중국 상인 랭킹 1위다. 또한 중국의 실크 생산량 제1위인 저장성은 그야말로 ‘비단 장사 왕서방’들의 본고장이다.
특히 닝보(寧波), 항저우(杭州), 샤오싱(紹興), 원저우(溫州), 출신들의 상술, 보따리 상인들의 인해전술,임전불퇴, 소상품 다판매, 박리다매 전략은 천하무적이다. 중국 경제∙무역∙금융의 제1도시 상하이의 경제권은 이들 닝보인을 비롯한 저장인들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상하이 북쪽 장쑤성은 상공업 방면에서 저장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과 실적을 자랑한다. 쿤산(昆山)의 IT 부품단지, 쑤저우(蘇州)의 반도체산업단지 그리고 우시(無錫), 창저우(常州), 난징(南京)으로 이어지는 첨단산업단지는 이미 상하이를 초월했다.
광둥에서 위탁가공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중국 경제 대장정이 상하이에서 첨단산업으로 바뀌면서 빠른 속도로 양쯔 강 델타 방향으로 부챗살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2000년 한 해 동안 저장과 장쑤성의 GDP의 합계는 상하이의 3.8배를 넘는다.
상하이가 타고난 자유마라면 양쯔강 델타는 다른 경주마가 옆에서 뛰면 더욱 달리는 천성적인 기질에다가 기회가 오면 선두로 나서는 습성까지 지닌 선입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양쯔강 델타와 상하이, 이 둘은 대립투쟁형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호보완하면서 호흡을 잘 맞춰나가는 특징을 지녔다.
중국 경제 경마장 사람들의 관심은 1990년대 후반부터 양쯔 강 델타의 선입마에 쏠리고 있다.
<그림3>
***추입마 베이징**
필자가 상하이에서 살다가 베이징으로 온 후 ‘이들 두 도시와 이 두 도시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을까’ 라고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중의 하나가 택시를 탄 경우인데 상하이에서는 정치관련 화제를 꺼내는 택시기사를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온통 돈 버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베이징의 택시기사는 중국의 전∙현직 지도자와 그들의 부인과 자녀들, 심지어 숨겨놓은 애인의 정치 성향과 습성 등등 시시콜콜한 가십거리에서부터 국가 대사(大事)와 최근 국제정세까지 침을 튀겨 가며 쉴새없이 늘어놓는다. 택시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 동안 마치 정치학 강의와 중국 정치동향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나온 느낌이 들곤 하였다.
상하이가 경제와 사람의 도시라 한다면 베이징은 정치와 고적(古蹟)의 도시다. 또 베이징은 영락없는 정치문화의 수도일 뿐이다.
2000년 말로 GDP는 상하이의 60퍼센트 정도. 인근의 중국 제2의 항구도시 톈진을 합쳐야 겨우 상하이의 90퍼센트에 접근할 만큼 중국 수도권의 경제나 무역은 형편없다.
베이징 사람은 어제는 황실, 지금은 중국 수뇌부의 이웃이라는 자존심으로 살아온 탓인가, 얼마간의 기품과 함께 관료의식이 뼛골 깊이 베어있다. 베이징에서 물건을 팔려면 동사장(회장)이나 총경리(사장)등 경영진과 핵심 팀장을 만나야 한다. 직책상 구매 담당자와의 상담에 간부진보다 먼저 신경을 기울어야하는 중국의 여타 지역과는 전혀 다르다.
베이징인은 말만 앞선다. 권리 앞에는 눈에 핏발을 세우나 책임 앞에는 눈 뜬 장님이 된다. 소비도 특수계층에 한정되어 있다.
베이징의 경제력은 전체 중국 GDP의 2퍼센트를 겨우 넘고 중국 100대 기업 중에 본사를 베이징에 두고 있는 기업은 12개뿐이다. 웬만한 대기업의 본사가 대부분 서울로 몰려 있는 한국과는 영 딴판이다.
그러나 새천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수도 베이징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마치 무리의 끝에서 따라가 막판에서 그 동안 비축해 놓은 힘을 쏟아부으며 무섭게 달리는 추입마처럼 2001년 1월 18일자 중국의 ‘경제일보’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1980년대는 광둥 성의 선전, 1990년대는 상하이 푸둥이 중국의 발전을 대표했다면, 21세기는 베이징의 중관촌(中關村)이 대표할 것이다.”
지금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촌을 중심으로 중국 인터넷 산업과 컴퓨터 산업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베이징대(北京大) 칭화대(淸華大) 등 중국의 명문대학과 중국과학원 등의 두뇌집단이 몰려 있는 이곳에는 벌써 미국의 IBM, 일본의 미쓰비시 등 200개의 세계적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중관촌은 아시아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부상한 리앤샹(聯想)과 베이다팡정(北大方正) 쓰통(四通) 등 중국 첨단 소프트업체 등을 탄생시켰다.
더욱이 2001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날아든 2008년 올림픽의 베이징 유치결정 소식은 욱일승천의 중국경제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는 격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2008년을 대비하여 베이징에 3백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올림픽 유치로만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해마다 0.3퍼센트나 증가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새롭게 박차를 가하고 있는 추입마 베이징의 질주는 2008년 올림픽까지는 너끈히 지속될 전망이다.
광둥과 상하이, 양쯔 강 델타와 베이징, 이들 중국 경제 4두마차의 형세는 이 글 서두의 ‘시경’의 ‘국풍’의 시구의 ‘가운데 두 마리 힘세어 앞 달리고 양편 말이 뒤져 기러기 행렬인 듯’한 형용 그대로다.
‘가운데 힘세어 앞 달리는 두 마리 말’ 은 연해 중부지역의 자유마 상하이와 선입마 양쯔강 델타다. 그리고 이들 조금 뒤쳐져서 기러기 행렬을 이루는 두 마리 말은 남쪽의 선행마 광둥과 북쪽의 추입마 베이징이다.
그러나 이들 4두마의 역량과 그 발전추세는 가변적이다. 또한 실제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이들을 각기 독립적으로나, 모순대립의 관계로나, 적대적인 경쟁관계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들은 중국경제라는 4두마차를 이끄는 4마리의 준마로서 서로 조화하고 보완하는 관계다. 더구나 경마가 경주마들의 습성에 따라 이를 기수들이 어떻게 잘 컨트롤하는가에 성적이 달려있듯 중국 최고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에 중국 경제발전의 성패도 판가름날 것이다.
마침 올 가을에는 향후 21세기 초반 중국의 운명을 이끌 지도체제를 선출하는 16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21세기 초강대국으로 부활하는 이 노대국, 중국 경제의 4두마차를 이끌 중국 정치의 4두마차가 누구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림 4>
작년 말 중국친구로부터 연하장을 한 장 받았다. 거기에는 질주하는 네다섯 마리의 말 그림과 ‘마따오청공’(馬到成功.말처럼 신속하게 승리를 쟁취하라는 뜻)이라는 네 글자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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