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본> 완역으로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에 한 획을 그었던 강신준 교수는 지난 3년간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자본> 번역을 마무리 지으면서 머릿속에 구성해 놓았던 또 다른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바로 총 114권 분량의 방대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의 번역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 논문, 초고, 메모, 편지 등 모든 저술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는 MEGA는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문헌 정리 작업이다. 애초 소련과 동독이 주도해서 진행되던 이 사업은 냉전 이후, 1990년 설립된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이어받아 2012년 말 현재까지 총 114권 중 61권(69책)이 출판되었다.
<자본>을 번역하면서 MEGA를 소개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강신준 교수는 도서출판 길과 함께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으로부터 판권을 확보하고, 1차로 3권(6책)을 계약했다. 그를 포함하여 독일어 번역이 가능한 여섯 명의 학자가 2015년 상반기 출판을 목표로 번역 중이다. 그는 1차분 이후에도 MEGA 114권 중 4부(발췌, 주석)를 제외한 나머지를 80권(90책)으로 모두 출판할 계획이다.
마땅한 후원자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MEGA 번역이 순탄할 리 없다. 시장에서 초판 1000부 판매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강신준 교수를 포함한 여섯 명의 번역자는 거의 번역료를 받지 않고서 MEGA 번역을 진행 중이다. 강 교수는 "두 사람을 제외한 넷이 비정규직 강사인데 막대한 노력이 들어가는 MEGA 번역에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제공하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강신준 교수가 더 걱정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MEGA 번역을 계속 이어갈 학문 후속 세대가 전무하다는 것. 강 교수는 "독일에서 마르크스를 주요 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공부한 젊은 학자가 거의 없다"며 "가능할지 모르지만 독일에서 마르크스를 전공할 젊은 학자를 위한 장학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이런 일이 강신준 교수의 혼자의 노력으로 될 리 없다. 강 교수는 이번 <프레시안> 강연에 참여하는 독자 중 일부가 이런 계획에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 은퇴를 6년 앞두고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 강신준 교수를 지난 7일 서울 합정동 프레시안 협동조합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강신준 교수는 2010년 완역 <자본>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대한 소회, MEGA 번역이 왜 필요한지, 또 지금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결정적으로 '이것이 진짜 마르크스다'라는 강연을 자청하게 된 배경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음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의 주요 내용.
(☞관련 기사 : 23년 만에 <자본> 완간한 강신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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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동아대학교 맑스 엥겔스 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100년의 분투, 진짜 마르크스를 찾아라!
프레시안 : 2010년에 <자본>을 완역한 이후에 다양한 모습의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선생님께서 직접 반론도 했었죠. 오늘은 그 얘기부터 시작해보죠.
강신준 : <자본> 완역 이후 문제 제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자본>의 대본으로 쓰인 문헌을 둘러싼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마르크스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일단 문헌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이후에 마르크스 문헌 작업을 둘러싼 논의가 거의 없었죠.
그나마 정문길 선생님께서 외롭게 주의를 환기시켜온 정도였습니다. <자본>을 최초로 번역했던 저조차도 이 문제를 놓고서는 무심한 편이었어요. 그러다 한창 <자본> 완역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이던 2009년 1년간 독일 베를린에 가서 연구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을 작업하던 이들과 교류를 했었죠.
MEGA 작업을 하던 이들과의 대화하면서, 당시 제가 <자본>의 대본으로 삼았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의 심각한 문제를 깨닫게 되었죠.
프레시안 : MEW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전에 일단 용어 정리부터 해보죠. 마르크스 문헌의 역사를 살피면 MEGA-MEW의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더군요.
강신준 : 네, 그럽시다. 원래 MEGA는 1918년 카를 마르크스 탄생 100주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대로 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획한 작업이죠. 이들은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마련할 양으로 1920년에는 기획안까지 마련하죠. 이걸 '비엔나 구상'이라고 하는데, 실제 작업으로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MEGA 작업의 닻을 올린 건 러시아였어요.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태두였던 카를 카우츠키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을 놓고서 논쟁을 벌이죠. 그런데 레닌이 카우츠키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카우츠키는 사회주의 운동의 대선배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잖아요.
볼셰비키 혁명의 존폐가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레닌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이었죠. 레닌은 이런 상황을 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헌을 확보하는 일로 돌파하려고 합니다. 마르크스 엥겔스 문헌 연구의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다비드 리야자노프(1870~1938년)가 이런 레닌의 구상을 현실로 옮기죠.
리야자노프는 1918년 소련에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를 설립하고, 1921년부터 1931년까지 이곳을 이끌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마르크스 엥겔스 원고를 고서 시장을 통해서 모읍니다. 한편으로는, 독일 사회민주당과 협력하여 마르크스 엥겔스의 원고를 모두 집대성한 완전한 형태의 전집을 발간하는 작업을 수행하죠. 물론 이 과정에서 레닌과 소련 공산당의 재정 지원이 큰 힘이 되었고요. 이 작업을 흔히 구(舊) MEGA라고 부릅니다.
프레시안 : 고서 시장을 훑을 정도였다면, 마르크스 사후에 문헌이 체계적으로 관리가 안 되었던 모양이군요.
강신준 : 마르크스 사후에 그가 남긴 문헌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뉘어 보관됩니다. 한 곳은 엥겔스의 손을 거쳐 독일 사회민주당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가족의 손을 거쳐 고서 시장을 떠돌게 되었는데, 리야자노프가 바로 이 고서 시장에서 떠돌던 마르크스 엥겔스 원고들을 모은 거죠. 그 덕분에 현재 마르크스 엥겔스 문헌을 두 번째로 많이 확보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 서고입니다.
가장 많은 분량의 마르크스 엥겔스 문헌이 보관되어 있던 사회민주당 아카이브는 1938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사회사 연구소로 매각됩니다. 당시 나치를 피해서 망명 중이던 사회민주당이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서 마르크스 엥겔스 문헌을 팔아버린 것이죠. 서독 사회민주당이 이후에 이를 다시 구입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죠.
프레시안 : 리야자노프의 구 MEGA 작업은 순탄치 않았군요?
강신준 : 그렇죠. 1930년대 초반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잡으면서 리야자노프도 1931년 숙청을 당하죠. 당연히 그가 하던 작업도 중단이 되었죠. 결국 구 MEGA 작업은 1936년 완전히 중단되죠. 대신에 스탈린은 MEGA와 별도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을 구상합니다.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가 주관해서 1928~1947년까지 총 28권 3책을 발간하죠(제1소치데니야).
스탈린 사후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연구소가 이를 보완해 1954~1966년까지 39권을 완간하고, 1966~1981년까지 11권의 보충본도 발간합니다(제2소치데니야). 북한에서 나온 <자본론>, <잉여가치학설사> 등과 같은 저작은 모두 이걸 대본으로 삼은 거죠. 그리고 이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을 독일어로 다시 편집해서 내놓은 게 바로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입니다.
프레시안 : 선생님께서 2010년에 완역한 <자본> 역시 MEW가 대본이었죠?
강신준 : 맞아요. 그런데 이 MEW와는 별개로 스탈린 사후에 소련과 동독을 중심으로 과거 리야자노프가 시도하다 중단된 구 MEGA 작업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진행됩니다. 이것을 바로 구 MEGA와 구별해 신(新) MEGA로 부르죠. 총 163권(172책)으로 계획된 신 MEGA는 1975~1990년까지 43권이 출판되었지만, 1989년 동독 붕괴, 1991년 소련 해체로 중단이 되었죠.
이 신 MEGA 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1990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을 설립하죠. 이로써 신 MEGA 작업은 애초 계획에서 1995년 114권(122책)으로 축소되어 독일 정부 등의 후원으로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입니다. 2012년 말 현재 총 114권 중 61권(69책)이 나왔습니다. 독일 정부의 지원은 2025년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강신준 : 방금 얘기했듯이 MEW는 스탈린이 주도해서 만들었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입니다. 그런데 스탈린이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을 편찬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정적을 숙청하고, 민중을 괴롭혀서 권력을 얻은 스탈린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단을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죠. 그래서 MEW에는 스탈린주의와 모순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마르크스 엥겔스 문헌이 누락되었습니다.
또 중요한 문헌의 경우에는 스탈린주의를 지지하게끔 해석되도록 주석을 달았죠. 본문 자체의 왜곡은 거의 없긴 합니다만, 일부 편집상의 왜곡은 여러 차례 지적이 되었습니다. 제가 번역해서 내놓은 MEW판 <자본>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MEGA 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과 대화하면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죠.
프레시안 : <자본>만 국한해서 본다면, 마르크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본>이 어떤 판본인지도 논란거리잖아요.
강신준 : 맞아요. 사실 마르크스 생전에 출판한 <자본>은 1867년에 나온 <자본> 1권뿐입니다. 나머지는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 등의 손을 거쳐서 나왔죠. 더구나 이 <자본>은 한 호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간 한 권의 독립 저작이 아니거든요. <자본> 1권 전에도 세 개의 초고가 있었고, 또 그 초고를 마련하고자 마르크스가 썼던 무수한 메모가 있었죠.
프레시안 : 그러니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실제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이런 초고를 다 검토하면서 그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시죠? 그런데 그런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에도 왜 MEGA가 아닌 MEW로 <자본> 번역을 계속했습니까? <자본> 완역 이후의 몇몇 문제 제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더군요.
강신준 : MEW 판 번역은 기왕 시작을 한 것이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었죠. 더구나 MEGA 번역 작업은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일단 MEW 판 <자본>을 먼저 내놓고서, MEGA는 더 큰 프로젝트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과거의 마르크스 vs. 미래의 마르크스
프레시안 : 그런 MEW 판 <자본>을 둘러싼 논란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MEGA 번역에 뛰어드셨죠? 정작 '왜 MEGA 판이 아니냐'고 투덜댔던 이들 중에서 번역에 나선 이는 없더군요. (웃음)
강신준 : 일단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과 2012년 6월에 3권(6책)의 한국어 판권 계약을 마무리하고, 현재 저를 포함한 여섯 명이 번역을 진행 중입니다. 2014년 2월까지 초고를 완성하고, 2015년 상반기에 MEGA 한국어판 1차분을 출판하는 게 목표죠. 현재 약 80권(90책) 분량을 한국어판으로 출판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프레시안 : 80권(90책)이라면 대단한 분량인데…. 어떤 독자들은 마르크스가 쓴 글을 연대기별로 정리하는 이런 작업이 과연 지금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아해 할 것도 같습니다.
강신준 :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저작은 고전입니다. 지난 2013년 6월 유네스코가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과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친필 초고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마르크스 엥겔스의 원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고전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시급하겠죠.
MEGA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판본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고,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고전으로서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에 대한 제대로 된 대접이겠죠. 더 나아가 이렇게 고전을 제대로 정리해 놓는 일은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마르크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의 삶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르크스의 영향력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선 자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에 음성적으로 이뤄졌던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가 1987년 이후 반짝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사실상 방치되었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마르크스가 부활하자, 마르크스 연구에 관한 한 우리의 초라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우리가 마르크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요.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는 진짜 마르크스가 아니었죠. MEGA를 펴내는 일은 바로 이런 답답한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 줄 거예요.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르크스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여기서 아까 못했던 얘기를 더 해보죠. 아까 <자본> 완역 이후에 나온 문제 제기 중 하나를 한국 사회에서 현재 마르크스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와 관련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프레시안>에서 진행하는 강연 이름도 '이것이 진짜 마르크스다'입니다.
강신준 : 과거의 마르크스와 미래의 마르크스 중에서 전자의 유산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황이죠. 개인적인 경험부터 얘기합시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74학번) 때만 하더라도, 마르크스는 대개 일본어판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우노 고조(1897~1977년)를 좌장으로 하는 우노 학파를 중심으로 1930~4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쓴 것이었죠.
그런데 그들은 스탈린주의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죠. 당시 일본 공산당이 코민테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그들이 쓴 마르크스 해설서를 가지고 공부를 한 우리로서는 그것이 마치 마르크스의 모든 것인 양 이해했죠. 저 역시 다르지 않았고요.
그리고 그런 학문 풍토는 1987년 마르크스 연구가 해금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까 얘기했듯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그 상태에서 정체되었고요.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또 다른 문제도 있었죠. 1991년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남 지역의 노동 운동가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현장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상의를 구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주로 영남 지역에 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동조합과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보았죠. 당시 노동 운동 조직의 위원장 등이 제일 무서워했던 말이 뭔지 압니까? '수정주의', '개량주의' 이런 딱지가 붙는 게 제일 무서웠대요. 물론 그렇게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나, 또 비판을 받는 사람이나 도대체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죠. 그냥 그런 딱지를 붙이는 게 노동 운동에서 흔히 벌어지던 일이었던 겁니다. 딱지 붙이기에 능한 이들이 자신이야말로 '진짜' 마르크스주의라고 자처했던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김성구 선생님(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도 <미디어오늘>에 쓴 칼럼에서 선생님의 <경향신문> <자본> 지상 강의를 '수정주의'라고 딱지를 붙였죠. (웃음)
강신준 : 그랬죠. (웃음) 더 나아가 "무조건 머리박고 싸우는" 것만이 마르크스가 원래 얘기했던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고요. 노동 운동이 발전하려면, 노동자를 조직하고 그렇게 조직된 노동자에게 미래 비전을 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반대의 소모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이 마르크스의 노동 운동이라니요? 이렇게 노동 운동 현장의 비전을 가로막는 것이 마르크스라면, 그런 마르크스는 없어져야 마땅했죠.
그런데 제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진짜 마르크스는 절대 이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마르크스와 미래의 마르크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노동 운동이 힘들어지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절실해졌죠. 과거의 마르크스가 지배하는 노동 운동으로는 절대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노동 운동에 미래의 마르크스를 적용해 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마르크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작업한 대표적인 작업이 임금 체계 개편이었습니다. 그것은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임금을 적용하는 '직무급 임금 체계'였죠.
이것은 기업별 구조인 우리 노동 운동을 초기업적인 구조로 바꾸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고용 문제에 밀려 이 작업은 결국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후 우리 노동계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이 현재 좌초해 있는 것은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부터는 미래의 마르크스를 노동자, 시민에게 직접 소개하는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 청중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과거의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이 생각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그렇죠. '그렇게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면, 왜 그 마르크스에 기반을 둔 사회는 망했냐?'
프레시안 : 마르크스의 비전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일 뿐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죠.
강신준 : 1991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과거의 마르크스에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거였죠. 이런 분위기가 아까 앞에서 얘기했던 스탈린주의에 오염된 과거의 마르크스 또 노동 운동을 질식시키는 과거의 마르크스의 모습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프레시안(최형락) |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하는 두 가지 열쇳말
프레시안 : 그럼, 선생님께서 새롭게 조명할 미래의 마르크스는 과거의 마르크스와 결정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요?
강신준 : 저는 미래의 마르크스와 과거의 마르크스, 그러니까 스탈린주의에 오염된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이에 두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생산력',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죠. 우선 생산력부터 살펴보죠. 마르크스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생산력을 꼽습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그 이후의 체제로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생산력이겠죠. 마르크스는 생산력이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본주의 이후로 이행할 수 있다고 봤죠. 거꾸로 자본주의가 바로 이런 생산력의 한계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망하지 않겠죠.
그런데 이렇게 생산력이 이행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있습니다. 생산력은 항상 그에 조응(correspond)하는 상부 구조가 있죠. 자본주의는 봉건제에서 고립되어 생산 활동을 수행하던 수공업자와 같은 독립적 생산자를 묶어서 (공장에서) 사회적으로 조직하죠. 다시 말해 자본주의 생산력의 본질은 '사회적 생산력'인 것이죠.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조직해서 생산력을 발전시키지만, 그 생산력의 성과를 혼자서 독차지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생산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그 의사 결정을 혼자서 독점하려 합니다. 소위 독재적 방식이고 우리나라 재벌들에서 흔히 보는 제왕적 경영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한계에 봉착하죠.
사회적 생산력은 생산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런 독재 방식은 바로 그 참여와 협력을 가로막아 버리거든요. 바로 이 지점이 자본주의 생산력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가 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적 생산력이라는 토대는 그것의 독재적 방식이라는 상부 구조와 모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 생산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자본주의 독재 방식을 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 식으로 자본주의 이후 체제로의 이행을 꿈꾸는 이들은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이를 위해서 상부 구조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대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생산 체제로의 이행은 이처럼 보다 높은 생산력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요소가 긴밀하게 결합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인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어요. 인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1869년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아우구스트 베벨 등이 주동해서 만든 독일 사회민주당이죠. 왜 자기 정당의 이름을 사회민주당이라고 했겠어요? 자본주의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당명으로 명확하게 밝힌 것이죠.
반면에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조건은 이런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었죠. 봉건제 수준의 수공업에 익숙한 노동자와 농촌에 파편적으로 편재해 있는 다수의 소농 등 사회적 생산력이 매우 낮은 조건에서 억지로 사회주의로 이행을 하려다 보니, 민주주의는 언감생심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죠.
독재를 하니 사회적 생산에 기반을 둔 생산력은 더욱더 낮아지고, 생산력이 낮으니 더 독재를 하게 되고….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레닌이나 스탈린이 볼셰비키 혁명의 정당성을 강변하려 내세운 방법이 반대파에게 '배신자'니 '배교자'니 '수정주의자'니 '개량주의자'니 하고 딱지를 붙이는 거였죠.
그리고 마르크스 사회 변혁 사상의 출발점이었던 1848년 <공산당 선언>의 그 '공산당'을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항해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는 수단으로 전유하죠. 그러니 우리가 알았던 과거의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소련의 볼셰비키들이 자신과 진짜 마르크스와의 불일치를 메우고자 했던 매우 유치한 변명과 왜곡의 집대성일 뿐입니다.
프레시안 : 방금 미래의 마르크스의 핵심을 사회적 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력과 그에 대응하는 민주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점을 염두에 뒀을 때 지금 세계 자본주의는 어떤 상황인가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당장 자본주의가 몰락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자기 갱신 능력은 탁월해 보입니다.
강신준 : 공황이 뭡니까? 공황은 토지 자원 기계 같은 생산 수단이 남아돌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도 남아도는데 정작 대다수 사람에게 필요한 재화가 공급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창고에는 먹을 게 쌓여서 썩고 있는데, 대다수 사람은 그것을 못 먹고 굶주리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이런 공황은 왜 발생할까요? 바로 토지 자원 기계 같은 생산 수단을 극소수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 수단을 가진 극소수는 자신에게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생산 수단을 노동력과 결합해 재화를 생산하는 일을 포기하게 되죠. 공황은 이런 현상이 극도로 팽창하여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병리 현상인 이 공황을 극복하려면 극소수가 독점한 생산 수단을 민주화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의 통찰이었죠.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우리는 참으로 낯 뜨거운 모습을 보았죠. 공황 발발 이전에는 자본가나 주류 경제학자들이 입에 달던 주문이 '국가는 물러가라'였었죠. 자본의 독재를 공공연하게 주장한 것이었죠. 그런데 막상 공황이 발발하자 이젠 국가보고 나서라고 합니다. 공황의 책임을 국가가 중심이 되어 사회 전체가 같이 지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구하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또 한 번 마르크스의 예지를 볼 수밖에 없는 거죠.
프레시안 :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국 또 북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자본주의로 이행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라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곳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세기 영국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자본-임노동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죠.
또 이미 조지프 슘페터가 얘기했듯이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는 자본가의 혁신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려서 자본주의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만약 마르크스가 이런 상황을 본다면, 여전히 자본주의 이행을 전망하기에는 섣부르다고 명토박지 않았을까요?
강신준 : 그렇죠. 자본주의는 처음 영국 맨체스터에서부터 점차 그 착취 영역을 넓히면서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지금도 자본은 중국,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로 계속해서 그 착취 영역을 넓히면서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죠. 방금 지적한 대로 자본가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자본 축적 전략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있고요.
그러니 지금 당장 자본주의가 망할 거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국, 유럽과 같은 지역에서 공황이 발생하고 있죠. 그리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 해결 수단이 사회화 외에는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본주의 이후 체제의 단초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긍정적인 자극을 줄 거예요. 단적으로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한 예죠.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생산의 사회화와 또 그것의 민주화가 비교적 앞선 나라들입니다. 이들 나라의 노동 시간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짧으면서도 임금과 사회적 복지가 오히려 더 두터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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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실패에 또 실패를 거듭하겠지만…
프레시안 :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또 유럽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생산의 사회화로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이 나타났죠. 이 대목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부활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강신준 : 사실 국가를 내세워서 생산의 사회화를 조정하는 방법은 이미 20세기에 파산했죠.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소련에서는 국가(관료)가 결국 또 다른 '자본가'가 되어서 자본주의 자본가 못지않은 패악을 부렸어요. 반면에 1929년 공황 극복을 위해서 케인스가 국가를 중재자로 끌어들여서 자본주의 모순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데 성공했죠.
하지만 결국 케인스 식의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화도 한계에 봉착하고 결국 1970년대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합니다. 마르크스는 생산자 개개인의 참여가 전제되는 민주주의 없이는 생산의 사회화가 결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어요. 그런 점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20세기 사회화 실험이 실패하리라는 걸 마르크스는 이미 예견했던 것이죠.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 체제는 관료가 일종의 독재를 행사하는 체제에 다름이 아니고 따라서 생산자에 의한 진정한 민주주의(혹은 사회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프레시안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다시 케인스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시도가 별반 효과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강신준 : 그렇습니다. 케인스주의는 이미 1970년대에 그 자체의 약효가 떨어져서 몰락했어요. 그러니 신자유주의가 몰락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이미 한계가 드러난 케인스주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되살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죠.
케인스는 기본적으로 공황의 핵심이 소비 부족에 있다고 보았죠. (마르크스는 이와 반대로 생산의 과잉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공 사업 심지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유효 수요가 창출되면 공황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죠. 케인스가 새로운 경제 주체로 국가를 호출한 것도 이 때문이죠.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국가는 소비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주체였으니까요.
하지만 생산 과잉이라는 본질적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소비만을 팽창시키려 마구 찍어낸 화폐가 1970년대에 결국 소비 팽창을 유도하기는커녕 물가 상승만을 야기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발생시킵니다. 물론 지금 케인스를 얘기하는 학자들은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의 문제를 새로운 경제 이론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와 반대로 생산을 문제의 원인에서 제외시킨 케인스의 처방으로는 결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또 다른 방향의 사회화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강신준 : 아까 얘기했듯이 마르크스는 생산자 개개인의 참여가 전제되는 민주주의가 생산의 사회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이후 체제의 전제 조건이라고 여겼죠.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 운동이 자본주의에서 다음 체제로 가는 이행기에 꼭 필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은 생산자 또 소비자가 연대했을 때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생산력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수록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럿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런 흐름이 조직화된 마르크스주의 정치 세력과 연대하면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될 수 있겠죠.
프레시안 : 어떤 이들은 협동조합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본주의에 기름칠을 하는 역할 정도라고 비아냥거리죠. 그래서 '개량주의'라고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요. (웃음)
강신준 :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실천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죠.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실천을 해본 사람은 그런 얘기를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 한 방향을 적시하는 운동이죠. 사적 독재 때문에 발생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동 소유로 극복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게 자본주의 이후로 가는 길이죠.
물론 그들의 지적처럼 협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혁은 예수의 기적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핏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수히 많은 실천들이 조금씩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기업 중에서 자본주의 기업 논리뿐만 아니라 협동조합과 같은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기업이 많을수록 새로운 희망의 단초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에 맞춰서 이런 강연을 자처한 것도 그런 가능성 때문이고요.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이번 강연에 어떤 분들이 왔으면 좋겠습니까?
강신준 : '우리 세대는 끝났다' 이런 생각을 한 지 몇 년 되었습니다. 1970년대 반독재 운동,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또 민주 노조 운동에 참여했던 우리 세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 세대가 앞으로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좀 더 나은 미래의 한국 사회를 꿈꾸는 20대 대학생, 또 30대의 직장 초년생이 와서 그분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좌표를 마르크스에게서 단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으면 딱 그만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밝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한 기대입니까? (웃음)
프레시안 : 그런 후배 세대가 이번 강연에서 어떤 희망을 얻어가길 바랍니까?
강신준 :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가 있죠. 마르크스가 알려준 사회 변혁은 당장 촛불 들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것만으로는 곧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선동하는 이들에게 마르크스는 100년 걸릴 변혁을 준비하고 시작하자고 권할 거예요. 실제로 독일에서는 지금과 같은 비교적 돋보이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 경제가 마련되는 데 150년이 걸렸죠.
지금 젊은 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바로 이런 변혁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혁은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고작 활동 기간이 20년 정도에 불과한 한 세대로서는 눈에 띠는 성과를 거
ⓒ프레시안(최형락) |
이것이 제가 파악한 마르크스의 변혁론입니다. 이 강연을 통해서 후배 세대에게 당장의 눈부신 성공의 희망을 준다고 약속하진 못하겠어요. 다만, 비록 당장에는 성공이 보이지 않고 실패만 보인다 하더라도 그 실패의 너머에서 결국 희망의 혁명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설파했던 마르크스의 메시지는 최선을 다해서 전해볼 생각입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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