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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미국인, 너희들은 한국어를 나만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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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이 미국인, 너희들은 한국어를 나만큼 하냐?"

[취미는 독서] 두번째 날

2014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코너 '취미는 독서'입니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김용언, 성현석, 안은별 기자와 함께 천문학자 이명현,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정승일, CBS 정혜윤 PD, 자유기고가 노정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의 최근 독서 목록'을 공개합니다.

☞'취미는 독서' 지난 기사 바로 보기

▲ <기드온의 스파이>(고든 토마스 지음, 이병호·서동구 옮김, 예스위캔 펴냄).ⓒ예스위캔
성현석(<프레시안> 기자)
: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을 보며 다시 꺼낸 책이다. 첩보원, 그러니까 간첩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필독서로 꼽힌다. <기드온의 스파이 1, 2>(고든 토마스 지음, 이병호·서동구 옮김, 예스위캔 펴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역사가 잘 정리됐다. 멀쩡한 사람들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이 잘 묘사된 책으로, 내겐 읽혔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한 보수 신문사 간부는 국정원이 모사드를 모범 삼아 개혁을 해야 한다며 이 책을 권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만 있으면, 벌레 잡듯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 모사드다. 맙소사, 국정원이 모사드가 된다면 나는 그냥 이민 가련다.

노정태(자유기고가) : 요리책이나 사전처럼 특정 항목을 찾아내어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빠르게 읽어야 하는 경우, 종이책은 전자책이나 인터넷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르고 닳도록 읽어서 단번에 펼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검색창에 '제육볶음'을 치는 것은 대체로 요리책을 뒤적거리는 것보다 빠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요리책을 읽는다. '읽는다'는 동사가 중요하다. 참고삼아 펼쳐본다는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세상에 어떤 요리가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작하여 만들어지는 것인지, 내 머리 속의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해야 할 필요가 느껴질 때마다 그렇게 한다. <진짜 기본 요리책>(월간수퍼레시피 지음, ㈜레시피팩토리 펴냄)도 그런 맥락 하에, 요즘 읽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은 과학적인 태도로 요리에 대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가령 1인분을 2인분으로 만들 때 물은 90퍼센트만 더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끓이는 동안 증발되는 양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온 다른 요리책을 많이 찾아본 편은 아니지만, 예쁜 척 착한 척할 지면을 줄여가며 정확한 계량과 함께 306개의 레시피를 꽉꽉 채워 넣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늘도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현(천문학자) : "이름 모를 여성에게 이 책을 바칠까? 아니면 이름 모를 남성에게 이 책을 바칠까?"

<무엇WHAT?>(마크 쿨란스키 글/판화,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의 내지에 적힌 글이다. 이 책의 부제가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궁극의 질문'인데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하다. 삶의 의미를 찾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는 남성과 여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별에는 양성,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불확실, 불특정 그리고 기타도 있다(태국 비자 신청 서류 성별 확인란에서 인용). 이 책의 헌사는 이 모든 이들을 향했어야 마땅하다. 아쉽다.


(박해천 외 기획, 구동회 외 지금, 스펙터 프레스 펴냄). ⓒ스펙터프레스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종합 문화체육관광 무크지
(박해천 외 기획, 구동회 외 지음, 스펙터프레스 펴냄)를 읽었다. "육체-기술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이자 사회현상으로서 '체육'에 정진한다"는 모토로 꾸며진 무크지에 참여할 때 가장 단순하고 쉬운 길은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크지를 읽을 독자들이 여기 실린 스포츠(보디빌딩, 체조, 프로레슬링, 야구, 축구, 볼링 등)를 전부 좋아할 순 없다. 결국 취향의 취사선택의 경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내게는 윤원화의 '달의 공놀이', 노정태의 '스테일메이트', 잭슨홍의 '탈출기(脫出機)', 이태웅의 '높이 쌓을 것인가, 길게 이어갈 것인가', 정윤수 Rmx의 ''박종환구락부' 해단식 전말기'가 특별히 흥미로웠다. 제목들을 죽 써놓고 보니 내가 고른 글은 직접적인 스포츠 자체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에 살짝 맞닿은 이야기, 혹은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스포츠에 가까운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혹시 스포츠 팬이 아니었던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 뜬금없는 외국 생활을 앞두고 '외국어 필살기'를 배울 수 있을까 해서 손에 든 <언어의 천재들>(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민음사 펴냄). 하지만 누구나 짐작하듯이 그런 필살기 따위는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한국인인 내가 영어 따위는 잘 못해도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 '그래, 너희들은 한국어를 나만큼 하냐?'

정승일(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안병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의 앞부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이 붕괴하고, 역사상 최초의 오스트리아 민주공화국이 사회민주당 주도로 수립되다. 사회민주당은 수도 빈(Wien)만은 확고하게 '붉은 빈'으로 시정을 운영한다. 사회민주당과 노조,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결합된 시민단체(시민사회)는 하나의 독자적 생활세계, 생활정치를 구축한다.

67쪽 내용의 요약. 하층계급 대다수는 사민당이 통치하는 지자체가 제공한 공공주택에 거주하며 사회민주주의 정치신문을 읽고 사민당과 연계된 여가클럽, 취미클럽에서 활동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사민당 통치 지자체가 제공한 공립유치원과 공립학교에 다니며, 청소년들은 일찍부터 사민당원이 이끄는 레저-스포츠 클럽에 가입하여 빈의 숲속에서 노닌다. 이들이 장성하면 노조에서 활동하며, 죽으면 사민당이 통치하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재로 되어 사라진다.

한국의 진보 정당은 '노동' 정치만을 내세우는데, 서구의 진보 정치는 노동계급의 '생활세계' 전체 속에 파고들었다. 축구와 배드민턴, 등산과 캠핑, 살사와 탱고는 진보적 '생활정치'의 블루오션이다!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오에 겐자부로의 SF 중편 '치료탑'(<치료탑·치료탑 혹성>(김난주 옮김, 고려원 펴냄) 게재)을 봤다. 21세기 초 핵전쟁으로 오염되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지구, 인류는 '선택받은 자'와 '잔류자'로 나뉘어 있다. '선택받은 자' 백만 명은 스타십을 타고 '새로운 지구'로 나갔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지구로 귀환하는데, 이 이유와 계획엔 과학행정과 종교적 맹신, 식민주의와 휴머니즘이 뭐라 할 수 없게 뒤섞여 있다. 아베 고보는 오에한테, "그건 SF가 아니잖아"라고 했단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나'는 잔류자인 여성으로, 스타십 공사 일본 대표의 아들(물론, '선택받은 자') 사쿠와 결합한다. 그 세계와 사랑 이야기다. 표제 '치료탑'이 과학자들이 믿는 신의 "도박 같은 수정"이라면, 주인공 리쓰코와 사쿠의 사랑은 "도박 같은 순정"이겠다. 계몽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는 소재를 그렇지 않게 배치해 나가는 한편, 대중성·통속성도 피해 나가며 독특한 온도로 인도하는 소설. 같은 세대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크린에서 펼치는 세계관도 생각난다.


▲ <곰>(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정혜윤(CBS PD) : 포크너의 소설들에 빠져있는 중이다. 한 소년의 성장소설인 <곰>(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이 소설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것은 '흑인도 백인도 아닌 그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의지와 배짱과 겸손과 생존하는 기술을 가진 사냥꾼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 마리 사냥개와 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최고의 사냥, 최고의 호흡, 최고의 경청에 관한 이야기.' 한 소년이 남자가 되는데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곰>의 주인공 아이작에게는 올드밴이라는 전설적으로 무자비하고 용감한 곰, 인간이 아니라 그 곰에게 우정을 느끼는 고독한 노인, 그리고 세월이 필요했다. 곰은 생존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유를 위해서도 기꺼이 자신을 위험에 던져 넣을 줄 알았다. 소년에게는 곰 ,노인, 세월이 스승이었다. 가족 연대기를 신화로 만들 수 있던 시대의 소설이다. 연대기를 잃어버린 우리 세대는 어떻게 자신의 성장담을 쓰게 될까? 무엇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을까? 무엇을 듣고 기억하면서 자신의 이상향을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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