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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박근혜 뽑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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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박근혜 뽑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내가 기다리는 책] 한국형 <민주주의 독본>, 혹은 '백과사전'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 민주주의는 '5년에 한 번 왕을 뽑는 것'인가


지난 몇 년간 우리는 한국의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기초가 부실하며 쉽게 깨어지는 것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한때 우리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한 아시아의 보기 드문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여기에 상당한 과대평가와 자만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87년 이후의 민주주의 진전의 성과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이전 독재 시절의 지배 세력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바꾼 바가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의 많은 숫자 또한 이러한 세력을 그대로 지지한다. 그리하여 묻지 않을 수가 없다. 87년 6월 항쟁이 남긴 유산은 도대체 무엇인가?

슬프지만, 지인 중 한 사람의 표현을 빌자면 오로지 '5년에 한 번씩 왕을 직접 뽑는다'는 것이란다. 분명히 한국인들에게 대통령과 정권을 국민들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정도의 의식은 확고하게 심은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존재와 행동양식은 여전히 독재 시대와 다르지 않고 또 많은 이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이긴 쪽은 자기들 사람을 권력 요직과 꿀 발린 자리에 좌르륵 앉혀놓고, 국가의 운영을 자기들 세력의 이권 확보쯤으로 여긴다. 여기에 대해 반대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누가 선거 지래?'라는 맹랑한 말투로 조롱하며, 시쳇말로 '쌩까버린다'.

이런 식의 혼란이 5년에 한 번씩 반복되면서 나라 전체는 소위 대권 주자들의 세력으로 여러 쪽이 나버린다. 그 지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친다. '이건 사실상 5년에 한 번씩 내란이 벌어지도록 제도화 해놓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 2013년 2월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5년에 한 번 왕을 뽑는 편이 유신 시대나 5공화국 시대와 같은 절대 권력자 아래에서 신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하지만 고작 이것이 민주화요 민주주의인가? 여기에서 87년 6월 이후의 소위 '민주화' 세력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87년 이래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실상 바로 '자신들이 집권하는 것'과 동의어를 만들어 버렸다. 보수 여당의 구태와 해악이 두드러질 때마다 이들은 이것이야말로 자기들이 왕 자리에 올라야 하는 이유라도 되는 듯 '민주 시민'을 외쳐댔다.

이 피로증이 누적된 결과, 사람들은 민주주의니 민주화니 하는 말에 진저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냥 5년에 한번 왕을 뽑으면 그걸로 족하다. 특히 자기들 삶에 무언가 보탬이 될 만한 세력이라면 더 좋다. 그것으로 그만.

2.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정신이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시민 전체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일컫는 말이기에 그것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은 어느 새 이런저런 규칙이 지켜지는가 아닌가로 민주주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먼저 실행에 옮기고 발전시켜온 서양 여러 나라의 여러 제도를 하나의 규범이나 표준으로 삼게 했고,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를 닮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게 된다. 누군가 '이걸 왜 따라야 하지?'라고 의문을 품으면 사실 딱히 대답할 길이 없다. 여기에 권력과 이권에 눈이 먼 지배층이 간단하게 몇 가지의 대중 조작만 행한다면 민주주의 여러 제도들은 금방 껍질만 남게 될 것이고, 실제의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전혀 규제할 수 없게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권력의 담지자인 모든 시민들의 마음과 머리에 파고들어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몽테스키외가 말했듯이, 이러한 '정신 (l'esprit)'은 나라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라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에 맞도록 민주주의의 정신을 해석하고 설파하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 페리클레스가 그 유명한 장례식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아테네 사람들의 독특하고도 자랑스러운 생활방식으로 설명했던 것이 그 중요한 모범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이 마땅히 해야 했음에도 충분히 이루지 못한 임무이다.

물론 루소, 로크도 이미 100년 전부터 소개되어 있고 정치학 박사도 넘쳐나는 한국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 민주주의는 일자무학의 '무지렁이'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깨어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루소를 읽지 않아도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가 스스로의 생활 속에서 깊이 뿌리박을 수 있는 정신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한국인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낸 <민주주의 독본>이 필요하다. 어느 연령 누구라 할 것 없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제도나 정치 용어로서가 아니라 정신과 이념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혼자서도 또 함께 토론하면서도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읽을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외국의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도 이미 훌륭한 책들을 낸 바 있으니 이를 적극 참조하여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 전통에서도 멀게는 동학 등 민족 종교의 '후천 개벽' 사상도 있고 가깝게는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 등의 토착적 전통이 있으니 이 또한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난 몇 십년간의 지난한 민주화 운동의 전통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열고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사건들과 역사도 있었으니 이 또한 중요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면, 시장 근본주의의 지구화 가운데에서 갈수록 양극화와 삶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어가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정신을 이제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 영역으로도 확장해나가야 한다는 현재 및 미래의 과제도 풍부하게 이해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책이 구성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백과사전'이 필요하다

▲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18세기 프랑스의 <백과전서>. ⓒ(출처 Wikimedia Commons)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범으로 삼아야 할 책은 아마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던 '백과사전'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이정표가 되었던 것은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바, 사람들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도록 바꾸어 놓는 작업이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이래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계몽의 작업이 외국 사조의 수입 이외에 토착민의 정신을 담은 토착민의 글과 말로 이루어진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필자의 무지 때문이겠지만, 중국의 루쉰(魯迅) 정도 이외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한 두 사람으로는 힘에 부치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처럼 우리도 뜻과 생각을 함께 하는 이들을 모아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는 방식이 있지 않겠는가.

정말로 사람 위와 아래에 사람 없고, 모든 이들이 모든 이들을 고귀하게 받드는 정신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따라 세상을 보고 세상의 질서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7000만 겨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책이 몇 번이 나오고서야 아마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불퇴전(不退轉)의 현실로 굳게 자리 잡을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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