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쭉 훑다 보면, 가끔씩 "올해의 책" 운운하면서 한두 권의 책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그 책은 올해의 책이 아니라 "올해 읽은 딱 한 권의 책"이 아닐까? 왜냐하면, 1년 내내 나온 수많은 책들 중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올해의 책을 꼽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배를 엮다>(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
<배를 엮다>가 책과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가리지 않고 권했던 책이라면, 책깨나 읽는 지인에게 꼭 권했던 책은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김정아 옮김, 반비 펴냄)이다. 8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하지만 제목 탓인지, 두께 탓인지 이 책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내년 여름 삼성경제연구소라도 추천해 주기를 기대해야 할까?
연말 모임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가 자주 언급하는 책은 매튜 크렌슨과 벤저민 긴스버그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서복경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이다. 이 책의 부제는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인데, 왜 한국 민주주의가 요 모양 요 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反朴지옥, 親野천국"만 외치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는 이들은 더욱더!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읽었던 올해의 독서 테마는 '중국'이었다. 그 중 가장 큰 발견은 중국의 지식인 원톄쥔(溫鐵軍)이다. <중국을 인터뷰하다>(창비 펴냄)에 실린 그의 인터뷰는 흥미로웠고, 그의 글을 엮은 <백년의 급진>(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은 충격이었다. 일본에서는 2010년에 그의 더 많은 글을 모은 책도 나왔다니, 후속작도 기대된다.
▲ <백년의 급진>(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
심지어 2006년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을 정리한 <프레시안> 기사에서도 원톄쥔이 언급됐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직접 정리했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야 그의 존재를 머릿속에 확실히 새긴 것이다. 이 아둔함이야 내가 감당할 몫이고, 이제라도 <녹색평론>과 <프레시안>을 정말로 정독할 일이다!)
아직도 언급할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작년 연말에 나와서 올해 초에 읽었던 스티븐 킹이 미국의 케네디 암살 사건을 소재로 다룬 <11/22/63>(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은 결말 부분을 읽다가 버스 안에서 눈물을 쏙 빼서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빌미로 미처 못 읽었던 킹의 전작 <듀마 키>(2008년), <애완동물 공동묘지>(1983년)도 찾아서 읽었다. 음, 킹도 자기 표절을 한다!)
반대로 올해 읽은 최악의 책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양억관 옮김, 민음사 펴냄)에 대항마로 나선 국내 소설이 그 주인공. "돌아온 오빠"의 일곱 자짜리 제목의 소설이었는데, 역시 버스 안에서 읽다가 그 자리에서 책을 버릴 뻔했다. (누군가 집어갈까 봐 참았다.) 그의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라는데, 내가 그라면 많이 창피할 것 같다.
아직도 머릿속에 몇 권의 책들이 맴돌지만, 이젠 정말로 '올해의 책'을 뽑을 때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앞에서 읽은 책들을 꿰뚫는 열쇳말을 굳이 꼽아 보면 ("돌아온 오빠"의 그 일곱 자짜리 제목의 소설만 빼놓고!) '협동' 그러니까 함께 사는 삶이다. 심지어 <11/22/63>도 아직은 공동체가 건재했던 1950~60년대의 미국을 소환하는 소설이다.
▲ <초협력자>(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
사실 <초협력자>는 제목처럼 우리가 이타심으로 똘똘 뭉친 '초협력자'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 조건만 놓고 보면 우리는 언제든 공유나 신뢰를 저버리고 탐욕과 배신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적인 우리가 어떻게 기꺼이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의 힘은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우리가 이 책에서 노왁이 제시한 다섯 가지 '협력의 법칙'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초협력자'는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지향할 미래 모습일지 모른다.
물론 <초협력자>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이 버겁다면 요차이 벤클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이현주 옮김, 반비 펴냄)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주장은 (최근에 나온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와 함께) 격렬한 반발을 부르며 과학계의 검증 공세에 시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차가운 경제학(<사람을 위한 경제학>), 건조한 정치학(<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에 이어서 과학까지 사람의 뜨거운 온기를 품겠다고 나섰는데, 그 이정표가 될지 모를 책이라면 당연히 주목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수많은 책 중에서 <초협력자>를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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