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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주인공으로 한 '미드'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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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주인공으로 한 '미드' 어떨까?

[2013 올해의 책]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대하드라마 소설로 묘사된 경제학자의 인생과 그의 시대

지금 창밖에 흰 눈이 날리고 매서운 시베리아 북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초 절정 폭염의 날씨에 모두가 헉헉거리던 지난여름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이 책을 읽을 때의 몰입과 감동이. 보통 책의 두세 권에 해당하는 700쪽에 이르는 두께인데도 낮이고 밤이고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잘 쓰인 책은 요즘 읽은 적이 없다. 더구나 지난 200년간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제학 역사 관련 책 중에 이렇게 대하소설 형식으로 쓰인 책은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 <사람을 위한 경제학>(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펴냄). ⓒ반비
내가 올해 읽는 최고의 책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반디 펴냄)은 지난 200년의 자본주의 역사에 등장하는 맬서스와 마르크스, 먀살과 웹 부부, 케인스와 슘페터,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새뮤얼슨과 조앤 로빈슨, 그리고 아마르티아 센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하드라마 논픽션이다.

나는 아직 게을러 못 읽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실비아 나사르는 '죄수의 딜레마'와 내쉬 균형의 게임이론으로 유명한 수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자인 존 내쉬의 생애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한국어판 신현용·이종인·승영조 옮김, 승산 펴냄)도 썼다고 한다. 그 실화 기반 소설을 시나리오로 하여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제작되었다. 이처럼 실비아 나사르는 경제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데 있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이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읽다보면, 경제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그들의 시대적 배경과 가족적 배경, 친구 관계와 연애에 관한 자료 수집에 매우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다면 도저히 묘사해낼 수 없는 아주 세심한 소설적 묘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본래 대학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빼어난 심리 묘사와 성격 묘사, 인간관계 묘사는 놀라울 정도이다.

예컨대 이 책에서 저자는 케인스와 웹 부부, 그리고 슘페터 등의 사적 대화와 편지들까지 속속들이 자료로 인용하면서 그들의 속마음과 사생활, 개인적 야망과 그 인물의 성격과 사상, 견해와 시대에 대해 묘사한다. 예컨대 슘페터는 외출하기 전에 매일 1시간씩 외모 치장하는 데 공을 들이며 항상 승마 바지를 입고 강의실로 갔으며, '신사' 엥겔스는 늘 원고 마감을 어기는 마르크스를 헌신적으로 수호했다. 어빙 피셔는 폐결핵에서 살아남은 것을 계기로 건강 전도사가 되어 낙관적 세계관과 함께 건강 및 사회복지에 관한 국가개입주의 경제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들의 욕망과 야망, 열정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차가운 수학 공식이 아니라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과학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묘사는 세세한 자료 수집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거의 문학 작가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문학 작가가 경제학을, 게다가 지난 200년간의 경제학의 역사와 그 이론을 이해하고 포착하여, 그것을 장편 대하소설처럼 쓸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시나리오로 하여 경제학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TV 대하드라마를 제작, 방영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인공은 경제학자들이지만 이 책에는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디킨스와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 <투명 인간>을 쓴 허버트 웰스, 웹 부인의 처녀 시절 멘토였던 사회다위니즘의 스펜서, 케인스와 평생 어울렸던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문인들과 철학자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이 책은 경제학과 그 이론에 대해 잘 모르는 인문학 전공자들과 일반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맬서스를 비판했다. ⓒ반비 제공

역사 속의 경제사상, '삶'으로의 경제사상

물론 경제학과 경제사상의 역사, 경제학설사에 관한 책들은 이미 꽤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그런데 그 책들은 '이론에서 이론으로, 개념에서 개념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학설사로서 다룰 뿐,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그들이 살았던 '삶에서 삶으로, 실천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의 역사, 실천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그 드문 성취를 이뤄내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론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야망과 열정을 가지고 세계사적 격동의 한가운데에 뛰어든 실천적 경제학자들을 주로 다룬다. 성직자로서 일체의 복지를 반대했던 맬서스와 국회로 뛰어들어 사회 개혁을 위해 나섰던 존 스튜어트 밀, 영국 의회 의사당에 살다시피 한 웹 부부와 착한 자본주의를 설파한 알프레드 마샬, 자본주의의 전복을 꿈꾸었던 마르크스와 자본주의의 영원함을 설파한 하이에크, 영웅적 자본가를 찬미하면서도 사회민주주의 공화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출세주의자 슘페터와 비참한 인도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사회개혁가 아마르티아 센. 이런 주인공들의 삶과 생각, 실천과 이론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세계 대불황의 시대에, 속편을 기다리며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세계 질서 하에서도 가난한 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맬서스와 마르크스는 ―서로 정반대되는 입장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 반해 이 책의 저자인 실비아 나사르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디킨스와 마샬, 케인스이며, 또한 오늘날의 아마르티아 센이다. 이 책은 디킨스로 시작하여 센으로 끝난다.

이 책에는 새뮤앨슨과 토빈, 힉스 등이 전개한 정통파 케인스 학파의 이야기도 없고,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야기도 없다.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이론도 없고, 하이먼 민스키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도 없다. 당연히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의 경제학도 없고, 폰 노이먼과 존 내쉬 같은 현대 게임이론의 대가들도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는 1950년대를 전후하여 끝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와 그것을 전후하는 오늘날 격동의 세계사도 없다.

실비아 나사르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현대 경제학의 역사와 그 중심 학자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지난 50년간의 세계 역사에 관한 논픽션을 쓴다면 700쪽 분량의 책이 두세 권 더 나올 것이다. 그녀는 그 작업에 벌써 착수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올해 66세인 그녀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 그런 책들을 써주면 좋겠다.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며, 또한 지금까지 경제학과 경제사상의 역사에 관한 책 중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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