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 아시아의 운명은 냉전에 의해 규정되고 있었다. 전쟁 중인 베트남, 문화대혁명 광풍 속에 휘말려 들어간 중국, 독재정권 하의 한국의 시계는 여전히 전시였다. 그러나 일본만은 냉전에 의해 지탱된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60년 안보 이후 '정치의 계절'은 끝났다고 이야기되었고, 사회는 고도성장을 거쳐 누구나 중류의 꿈을 누리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노동 운동이나 좌파 정당은 더 이상 가능성을 갖기 어려웠고, 새 시대의 정치적 변혁의 주체가 되고자 했던 신좌익 청년들은 파벌 간의 항쟁과 함께 과격주의로 치달았다.
1972년 2월, 수백 명의 기동대가 설산의 한 산장과 총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일본 전국으로 열흘간 생중계되었다. 산장 안에서는 과격 신좌익 단체의 청년 다섯 명이 관리인의 부인을 인질로 잡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는 범죄 행위였으나 궁지에 몰린 반체제 활동가들이 국가 권력에 맞서고 있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응원과 공감을 불러왔다. 캠퍼스에서는 지지 선언이 울려 퍼졌고 팸플릿이 뿌려졌다. 경찰의 진압이 성공하여 이들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흠뻑 젖은 채 파괴된 건물에서 걸어 나왔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그들을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달리 인식했다.
그러나 며칠 후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이해 불가능한 암흑"과 마주하게 된다. 이 청년들이 속한 단체 '연합적군'이 함께 하던 동료들에게 혹독한 린치를 가해 무려 12명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련의 폭력·살해 행위는 아사마 산장 농성이 있기 직전, 1971년 12월부터 72년 2월에 걸쳐 그들이 숨어서 혁명을 도모하던 군마 현의 산악 기지에서 일어났다. 땅 속에 묻힌 시체가 발굴됐고, 자백을 통해 지옥 같았던 당시의 정황이 알려졌다. 사회에는 찬물을 끼얹는 듯한 경악을, 보수 정당에겐 좌파 세력을 일소할 근거를, 몰락해가던 좌파 운동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 영화 <실록 연합적군 - 아사마 산장에의 도정> 중. ⓒ와카마쓰프로 |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안 것은 2008년 봄, 도쿄 나카노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실록 연합적군 - 아사마 산장에의 도정>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영화는 관련자들의 수기와 증언을 토대로 3시간에 걸쳐 무시무시한 숙청 상황을 재현했으며, 감독 와카마쓰 코지 본인이 동시대 좌익 운동의 당사자이기도 했기에 그동안 매스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사건을 제대로 짚어내겠다는 강력한 동기도 드러냈다. 그러나 왜 청년들이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못한 채 의미 없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빠져들어야 했는지는 정리되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올해의 책으로 꼽은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 <적군파>(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는 바로 그 빈 공간에 대한 세밀한 근거와 함께 인상 깊은 의견을 제시해 준 책이다.
'대다수의 미국인이라면 그들이 미쳤다거나, 마약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지적대로, 불가해한 살인 사건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주로 범죄자 개인의 장애나 성장 과정 등을 문제 삼는 설명에 기댄다. 연합적군의 숙청 사건 이후 쏟아진 이야기 속에서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모리 쓰네오나 그를 부추겼던 2인자 나가타 히로코를 악마화하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스테인호프가 보기에 이런 손쉬운 방법은 물론이고 이후에 시도된 당사자의 수기, 저널리스트들의 르포나 사건을 모티프로 한 픽션 등 그들을 이해하려는 나름의 노력에도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갑자기 생활에 스며든 기묘한 독을 저지하고 봉인하려는", 즉 사건을 내 일상에서 멀리 치워 놓으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설명은 스스로 책임을 지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는 일종의 책임론이기도 했다.
▲ <적군파>(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 ⓒ교양인 |
숙청 사건의 전후에 벌어진 다른 사건들의 연쇄까지 꼼꼼히 이어가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겪거나 읽은 모든 비극들과 같은 논리를 지닌다.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릴 수 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 여기서 뛰어내리지 말았어야 할 눈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속해 있는' 개인이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인 상황 자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었을까? 이 극단적 사례를 읽는 일은 '나는 그런 상황 속에 있지 않다'라는 안전한 감각을 끊임없이 추궁 당하는 경험이다.
당시 일본의 좌익 학생들은 경제 논리에 흡수되어가는 시대에 조급증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연합적군은 수세에 몰리던 두 급진 단체(혁명좌파, 적군파)가 자금과 무기 등 현실적 문제로 합체하게 된 케이스였다. 투쟁 이론도 성격도 역사도 전혀 달랐지만, 혁명적 변혁에 대한 의지와 그것을 위해 총과 폭발물의 사용도 불사한다는 아슬아슬한 공통점이 그들을 묶어 주었다.
1971년 12월 시작된 공동 군사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동안 따랐던 노선이 아니라 새로운 의식과 이데올로기, 더 큰 대의를 수행하기 위한 전사로 거듭나는 일이었다. 애초에 산 속에 들어온 것 자체가 어떤 형태로든 혁명적 변혁에 가담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기에 "혁명이 과연 실행 가능한지, 무장 투쟁이 정말 혁명으로 가는 길인지" 같은 의문은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해주는 이론은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고,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도 바로 이 이론에 있다.
훈련 중 2인자 나가타가 도야마 미에코라는 여성의 '자신이 여성임을 의식하는 행동'을 비판했고, 이를 계기로 지도자 모리는 '공산주의화'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혁명에 앞서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달성해야 할 목표'로 제시된 공산주의화는 그 정의와 기준이 무척이나 모호했으나 "여하튼 각자 자신의 부르주아적인 행위를 자기 비판하여 일소하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가 처음에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구타나 폭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미 '브레이크 없음' '기준 없음' '출구 없음'이라는 특징이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총괄(공개적인 자기 비판)' 요구를 받고 있던 남녀 멤버 두 명이 불성실한 태도와 성적으로 미묘한 관계를 보이자, 지도부의 제안에 의해 구타가 시작됐다. "때려서 바른 길로 이끄는 거다. 기절할 때까지 때린다. 깨어났을 때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공산주의화를 받아들일 거다."(모리 쓰네오) 주저하던 멤버들은 구타가 그들을 돕는 길이라는 모리의 말에 따랐고, 구타가 심해질수록 남녀는 더 많은 관계의 비밀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구제하려 한다. 그러나 고백의 결과는 모리에게 "공산주의화 달성을 향한 효과적 수단을 발견했다는 확신에 깊이를 더해"줄 뿐이었다. 두 사람은 기둥에 묶여 화장실, 식사를 금지당한 채 방치된다.
며칠 뒤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다른 문제로 총괄을 행하던 중 체격이 큰 멤버와 결투를 강요받았던 오자키 미치오라는 청년이었다. 구타 뒤 "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한 이유로 '어리광'을 지적 받아 기둥에 묶이고, '눕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유로 다시 얻어맞은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나가타가 약사였고, 멤버들 중 간호사도 몇 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화라는 이데올로기는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었을 심각한 상처에 대한 판단도 흐려놓은 뒤였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누군가 충격을 받고 판단력을 되찾아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폭력성을 논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멤버들의 심적 불안을 구제한 것은 모리의 입에서 나온 '패배사'라는 이론이었다. "자신이 공산주의화를 이룩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충격으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조감하는 우리에게 이 설명은 너무나 우습고 빈약하지만, 긴장과 죄책감으로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모리의 정당화는 공산주의화 이데올로기를 전보다 더 강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 왔다.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는 말한다. "(새로운 제도에) 관련된 우발적 사건이 늘어날수록 제도에 저항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도 사건에 부여된 특별한 의미였다. 사건이 극단적인 형태를 띨수록 모리는 공산주의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세심하게 다듬었고,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엄청난 각오를 가지고 산 속으로 들어와 규칙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살인 행위마저 추가되자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준 이론을 버리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따라서 폭력은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또한 폭력을 주저할 경우 공산주의화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고 지적을 받을 것이며, 그렇다면 다음 희생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두 달에 걸쳐 12명의 젊은이가 그렇게 동료의 손에 죽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때리라는 끔찍한 요구를 수행한 끝에 죽은 여성 멤버,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처형된 멤버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정말로 공포를 느낀 대목은 사건 이후, 체포된 이들이 자기가 저지른 명백한 잘못에 대한 '책임'에 직면하게 되는 장면이다. 나가타는 취조 중 형사로부터 "왜 그들을 죽였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그들을 정말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리의 옥중 수기에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론을 말로 꺼냈을 때 얼마나 큰 힘이 생겨나는지 숙청 당시에 모리가 전혀 깨닫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뒤늦게, 자신들을 지배하던 이데올로기의 외부와 만나고 나서야 스스로가 살인자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내게는 바로 그 장면을 읽는 순간이 진짜 지옥과의 대면으로 느껴졌다.
그토록 잔인한 행위를 하게 한 동력이자 책임에서도 해방해 주었던 '사상'은 사정없이 허물어진 뒤였다. 오로지 거기에만 의존해 자신의 행위를 변호할 수 있었던 이들은 바닥과 끈을 잃은 채 홀로 남겨졌고, 결국 그 행위들이 '중대한 착오'였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데올로기 구조의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착오'라는 말로 이 사건을 정리하는 것은 문제를 어이없이 축소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구조 안에서 착오에 의해 혁명을 잘못 이끌었다는 것은 참으로 중차대한 문제다." 전전(戰前) 일본 공산당 정치범의 사상 전향 문제를 연구한 바 있는 스테인호프는 이 대목에서,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혁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이론과 사상이 완전히 망가진 채 스러져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생존 멤버들은 옥중에서 살해한 동료들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이제 자신의 잘못을 집요하게 파고들게 되었다. 특히 죽음의 이데올로기를 발명한 장본인인 모리는 외부로 공개하기도 어려운 기나긴 '심리학적' 비판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왜 살아 있는가?"를 묻기에 이르렀다. 10개월에 걸친 가학적 자기 검증 끝에, 연합적군 기지에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지 꼭 1년이 되던 날 모리는 독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이제 죽을 수 없다는 것,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한 나가타의 지옥은 2011년 2월 그녀가 지병으로 옥중 사망하면서 끝났다.
<적군파>에 찜찜함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읽는 동안 '내가 왜 이런 미친 자들을 굳이 이해해야만 하는가'라는 참담함을 느끼는 순간과 억누르기 어려운 '소설적 재미의 초대'를 받는 순간을 왕복해야 했다. 또한 사건을 사회심리학의 언어로 번역하여 인간 사회의 보편성으로 끌어 올리는 스테인호프의 접근 방식이 절대적인 해답이라고 할 수 없으며, 군데군데 서구와 일본 사회의 특징을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특별히 기억에 남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본 현대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독자로서, 이를 소재로 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은 당시에 일어난 일들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없는 외국인으로서 혹은 역사의 뒤에 온 자로서 구경하듯 우리 사회의 반면교사로 삼는 행위가 가장 비겁한 형태의 관심이 아닐까라는 의심이었다. 두 나라 현대사의 밀접한 관계, 유사한 사회 문제를 일본이 먼저 겪었다는 점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적의'가 더해지면 이야기는 항상 그들의 실패에 대한 비웃음과 우리를 향한 각성 촉구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우리의 사건'과 '그들의 사건'을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 조건을 얼마나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보편성을 도출하려는 스테인호프의 접근은 미약하나마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듯했다.
거기에 단숨에 읽게 하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적군파>를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이슈 ― 한 사회에서 일어난 일, 일국의 역사적 맥락을 다른 사회로 옮기거나 다른 장소에서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윤여일의 저작들도 언급하고 싶다. 올해 4월 <사상을 잇다>(윤여일·쑨거 대담, 돌베개 펴냄) <사상이 살아가는 법>(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돌베개 펴냄) 출간을 계기로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 역시 각별한 경험이었다. (☞기사 바로 가기 : "아베 싫어" 넘어선 동아시아! '고뇌의 연대'를 묻다) 그의 2012년 말에 나온 <여행의 사고>(돌베개 펴냄) 세 권이 2개월만 더 늦게 출간되었더라면 내 '올해의 책'도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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