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 식품 산업 발달과 판매 증가로 인산염 사용과 섭취도 최근 늘어나면서 인산염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식품 첨가물이 됐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겨 먹는 콜라, 라면, 소시지, 햄, 어묵 등에는 물론이고 조제 커피(커피믹스) 제품에도 들어간다. 그 인산염이 최근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잘도 사용해왔고 많이들 먹었던 식품 속 인산염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광고, 선전을 남양유업이라는 한 식품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하면서 인산염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그동안 커피믹스를 편리하게 즐겨 마셔온 우리들로서는 기분 나쁘다는 정도를 넘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선전을 하는 남양유업은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각종 유가공 식품들과 자신들이 팔아온 커피믹스 제품에도 인산염을 줄곧 사용해온 업체여서 경쟁 업체는 물론이고 식품 안전 당국, 식품 전문가들까지 이 회사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과연 식품에 첨가물로 들어간 인산염은 인체에 해로운가? 인산염 자체가 유독 물질 또는 유해 물질인가? 그리고 커피에 사용한 인산염의 양은 인체에 악영향을 줄 정도인가? 소비자들의 궁금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쨌든 남양유업의 인산염 '유해성' 광고, 선전은 인산염의 안전성, 나아가 식품에 들어가고 있는 다른 각종 첨가물의 안전성 문제로까지 불똥이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카세인나트륨으로 재미 톡톡히 본 남양유업
▲ 카세인나트륨을 뺀 커피로 재미를 본 남양유업이 이번에는 인산염을 뺀 커피를 들고 나왔다. ⓒfrenchcafemix.com |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제품에 카세인나트륨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해대며 경쟁 상대 회사 제품들을 깎아 내려 매출 급신장과 함께 이 분야 업계 2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업계 1위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인산염을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커피믹스 신제품을 들고 나왔다.
그 전략은 그 때와 대동소이하다. 지난번에 카세인나트륨이 몸에 좋지 않은 것처럼 선전했던 것과 같이 커피믹스제품에 사용하고 있는 인산염도 몸에 좋지 않으므로 이것이 들어가지 않은 자사 제품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건강' '안전'에 매우 민감해진 우리 소비자들, 특히 최근 들어 인산염 과다 사용의 문제를 언론 등이 자주 거론하자 이에 때를 맞춰 제2의 카세인나트륨 논쟁을 촉발해 그 반사 이익을 얻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새 제품을 내놓으면서 "인산염이란 인산과 나트륨, 칼륨 등이 결합된 물질이다. 일반적으로 산도 조절제 등의 목적으로 콜라, 햄, 소시지, 라면, 치즈, 커피믹스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첨가물이지만 과잉 섭취해 불균형을 이룰 경우 골질환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인산염을 함유한 다른 식품들은 일반적으로 칼슘을 같이 함유하고 있는 반면, 커피는 칼슘이 거의 없이 인산염만을 과다하게 함유하고 있어 하루 커피를 3~4잔 마시면 무려 100밀리그램에 가까운 인산염을 섭취하게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물론 이런 설명은 부적절한 면이 있다. 인산염을 함유한 다른 식품들은 일반적으로 칼슘을 같이 함유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다. 또 칼슘을 많이 섭취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커피를 즐기기 위해 커피를 마실 뿐이지.
백번 양보해 남양유업의 주장대로 커피믹스에 들어간 인산염을 과다 섭취하면 문제가 된다고 하자. 아직 확실한 사례는 보이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인산염을 과다 섭취하면 칼슘 흡수를 방해해 골다공증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 정도로 문제가 되려면 커피믹스 제품을 하루에 수십 잔 씩 들이켜야 한다. 아마 이런 사람이 있다면 골다공증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 즉 제품에 들어간 카페인 과다 섭취로 인한 심각한 건강 이상이 훨씬 먼저 나타날 것이다.
커피믹스 속 인산염, 정말로 위험한가?
2011년 국민영양통계를 보면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해서 인(燐)을 과잉 섭취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국인의 1일 인 권장 섭취량은 700밀리그램, 최대 섭취량은 3500밀리그램 이하다. 또 우리나라 국민의 1일 인 평균 섭취량은 1215.5밀리그램으로, 권장 섭취량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쌀밥(264.9밀리그램)에서 가장 많이 인을 섭취하고 있고, 이어 우유(71.2밀리그램), 돼지고기(50.2밀리그램), 달걀(41.6밀리그램), 배추김치(39.8밀리그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커피는 11번째 인 섭취 공급원으로 이를 통한 섭취량은 18.6밀리그램이며 전체 섭취량의 1.6%에 해당한다. 인산염을 첨가물로 넣은 커피믹스 속의 인으로 인한 건강 염려는 남양유업만의 기우인 셈이다.
물론 남양유업의 새 제품을 좋게 보면 소비자의 다양한 제품 선택권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의도로 남양유업이 인산염 없는 커피믹스 제품을 내놓았고 또 그런 측면을 강조하는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남양유업이 세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일으킨 커피믹스 카세인나트륨 사건을 살펴보자.
남양유업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커피믹스 제품을 내놓으면서 천연 우유 단백질 카세인나트륨이 마치 '나쁜' 첨가물인양 광고를 했다.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들고 그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런 전략을 종종 쓴다. 특히 막대한 광고를 쏟아 부을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이른 전략을 즐겨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례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과거 파스퇴르유업이 일으킨 우유 고온, 저온 살균 논쟁이다. 이번 커피믹스 인산염 논란도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한데 당시 카세인나트륨이 좋지 않다는 남양유업의 발상은 세계를 놀라게 할 엉뚱한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다른 경쟁 회사들이 커피믹스 제품에 사용한 카세인이 화학 합성품이라는 남양유업의 선전에 카세인이라는 물질 자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것으로 오인했다. 그리고 화학 물질은 몸에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당연히 카세인나트륨을 사용한 제품도 몸에 좋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과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건강에 신경을 쓰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카세인은 단백질이고 단백질은 합성할 수 없다. 따라서 카세인은 합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남양유업은 물론이고 다른 식품회사나 생화학, 생물학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은 다 안다. 커피믹스에 들어간 카세인나트륨의 원료로 사용한 카세인은 당연히 우유에서 만들어낸 천연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1%도 되지 않는다. 99%에게는 남양유업의 선전 전략이 먹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먹혀 들어갔다. 그 99%는 아직 유효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 번 써먹은 전략임에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남양유업은 명시적으로 인산염이 유해 물질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사물이나 제품을 판단하지 않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 회사는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유해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선전기법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소비자라면 남양유업은 지금까지 왜 인산염이 들어 있는 커피믹스 제품을 '건강한 커피'라며 팔아왔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인산염이 남양유업이 이야기하는 그렇고 그런 '나쁜' 첨가물이라면 왜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들어 판, 많은 가공 식품에 인산염을 넣어왔는가도 따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사용하는 커피믹스 제품에서만 인산염을 쏙 빼고 그 밖에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치즈 등 다른 가공 식품, 특히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식품에서는 인산염을 빼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있는가를 질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이슈가 되지 않는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인산염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잊어먹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각종 식품 파동을 겪으면서 가공 식품을 포함한 식품의 안전성 문제에 매우 민감한 소비자들을 자극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산염과 같은 식품 첨가물을 악용하는 악덕 기업 또는 업자들도 한몫하고 있다. 색깔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아황산염을 잔뜩 쓴다거나 고춧가루에 색소를 넣는 불량 업체 등도 있고 자신들의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상대방을 교묘하게 헐뜯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품 첨가물을 이용해 제품의 무게를 늘리거나 별로 신선하지 않은 제품에 첨가물을 잔뜩 넣어 신선한 것처럼, 또 보기 좋게 만들어 파는 양심불량 업자들도 큰 문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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