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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흔들리는 마흔, '유전자' 읽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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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혹에 흔들리는 마흔, '유전자' 읽어야 할 시간!

[철학자의 서재] 이상원의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미래 예측 산업의 복부인, 유전자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인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72쪽)

팔자가 세다. 사주가 좋다. 주변에서 흔히 들어보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사람의 운명과 관련 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운명이란 두 글자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거칠 것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왜? 만약 책 제목이 <스물,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더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글쎄다. 세상사 모두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흔 살의 고뇌다. 마흔이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유혹이 많은 시기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솔깃하게 만든 센스가 대박을 터트리는데 한몫했으리라.

그런데 사실 공자는 자기 나이 쉰을 돌아보면서 지천명이라 했다. 천명을 알았다. 하늘의 명을 알았다.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고백이다. 다른 말로 자기 운명을 알았다는 뜻이다. 자기 운명을 알았으니 귀가 순해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수밖에. 나중에 누군가 <쉰, 논어를 읽고 나니>라는 책을 쓴다면 장안의 지가를 높일 수도 있겠다. 흐흐.

소위 명리학을 논하는 이들은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단언한다. 년·월·일·시라는 네 개의 기둥[四柱]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단다. 정말 그럴까 싶으면서도 한 번쯤 귀 쫑긋해지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래서인가. 미신이라 치부하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용하다는 사주쟁이를 찾는다. 키보드만 두드리면 수많은 점집들이 어서 오라 반긴다. 한 해 우리나라 운명 상담 규모가 수 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웬만한 제조업 뺨 두어 번 치고도 남는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사주가 미신이다 아니다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 운명 상담이라는 '미래 예측 산업'의 주역은? 사주나 점이 아니라 '유전자'가 담당하지 않을까. 현재 생물학의 발전 속도를 보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유전자' 하면 떠오르는 지성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다. 그가 서른다섯 살 때 쓴 <이기적 유전자>는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도킨스는 말한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그에 의하면 사람과 동물은 유전자가 창조한 기계이다. 사람의 몸, 동물의 몸은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운반체에 불과하다. 몸은 유전자가 대를 이어 살아가는 생존 기계이다. 핵심은 사람도 몸도 아니다. 유전자다.

이러한 주장은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다. 주자학을 연상케 한다. 율곡 이이는 주자 성리학을 설명하면서 기발리승(氣發理乘)을 주장한다. 기발리승은 기가 발하고 리가 거기에 올라탄다는 뜻이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는 이치를 실어 나르는 운반자이다. 세계를 설명하는 틀이 유사하다.

몸은 이기적 유전자의 운반체

▲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상원 지음, 한울 펴냄). ⓒ한울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상원 지음, 한울 펴냄)은 친절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도킨스의 본문을 가져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설한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 책은 도킨스의 유전자 별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독자를 안내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귀곡산장처럼 끝에 가서 뒤통수 한 대 친다.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생물학 결정론의 전형이라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도킨스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도킨스에 입문할 수 있다. 분량은 짧지만 내용이 알차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선택'으로 압축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의 단위가 종이냐 개체냐에 따라 학설이 갈린다. 도킨스는 다윈이 말하는 자연 선택의 단위는 집단이 아니라 개체라고 못 박는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다. 도킨스의 주장대로라면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유전자 운반체이다. 생존 기계이다. 생물학자가 유기체인 동물을 '기계'라고 표현한다. 은유적 표현치곤 참 섬뜩하다. 그렇지만 명쾌하다. 유전자 보존을 위해서라면 터미네이터처럼 행동한다는 뜻일 게다.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을 원한다. 유전자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한다. 따라서 도킨스의 유전자는 도덕을 모른다. 인정사정이 없다. 유전자는 이기성이라는 성질을 바탕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같은 종이라도 내 영역에 들어오면 무조건 공격한다. 그래서 생존 기계는 경쟁자를 죽이기도 한다. 심지어 먹기까지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는 말은 유전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거짓이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도 싸운다. 형제자매도 싸운다. 생존 기계는 위장술을 사용해 부모 자식 간에도 거짓말을 한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는 말할 것도 없다. 피식자도 포식자도 둘 다 거짓말을 한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만들어 낸 탓이다.

그런데 살신성인이 있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현상이 버젓이 있다. 하지만 이타성도 알고 보면 이기성의 한 가지 형태이다. 도킨스는 해밀턴의 혈연 선택 이론과 트라이버스의 상호 이타성 이론을 계승한다. "개체의 이기성과 개체의 이타성 둘 다 유전자 이기성이라는 근본 법칙에 의해 설명된다." 도킨스의 말이다. 성선이라는 도덕적 본성은 도킨스의 생물학적 본성 앞에선 설 땅이 없다. 이런 도킨스 앞에서 공자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도킨스에 의하면 사람의 이기적 행동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유발된다. 저자는 이러한 도킨스의 주장이 사회생물학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적 유전자>에 나타난 도킨스의 견해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인간까지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유전자와 연결시킨 현대적 형태의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표본이다."(<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88쪽)

생물학적 결정론이라.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어떠한 생물학적 특성과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입장이다."(75쪽) 이 입장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은 어떤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를 어떤 생물학적 성질을 타고 났다. 가난뱅이는 가난뱅이가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생물학적 성질을 타고 났다. 뭐 이런 식이다. 저자는 이런 입장과 관련된 이론들 몇 가지를 소개한다. 19세기를 풍미한 골상학(骨相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유행한 사회 다윈주의, 우생학, 범죄 유형 이론 등이다. 또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적 결정론도 거론한다. IQ주의, 가부장제 옹호론, 정신분열증의 유전 결정론 등이다. 인간 사회의 계급, 성, 인종 간의 지위, 부, 권력의 불평등이 죄다 각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주장이 바로 생물학적 결정론이다.

그리고 이 생물학적 결정론의 연장선상에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생물학이 있다. "사회생물학이란 개미와 같은 곤충류에서 시작하여 인간을 포함하는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성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이다."(78~79쪽) 동물 행동에 대한 '유전 결정론'인 이 이론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1975)이라는 책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사회생물학을 대중화시킨 역작이라고 평가한다.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의 미덕은 <이기적 유전자>를 찬양하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으면서 도킨스의 이론이 지닌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생물학은 종교나 신화가 아니다. 사회생물학은 과학에 속해 있는 한 학제적 분야의 입장에서 결정론적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88쪽) 현대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도킨스의 빼어난 말솜씨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쏙 빠져든다. 아마 저자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전자를 거부하는 힘, 의식

▲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나 <사회생물학>을 모두 과학적 산물로 파악한다. 다만 과학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저어한다. 저자는 과학이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사회생물학을 들고 있다. 그래서 걱정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 즉 사회 현상과 사회적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현재의 사회적 배치, 즉 인간의 현 상태는 자연에 의해서 고정된 것이 된다." "사회적 불평등, 남성 지배 등등은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므로 이것을 탓하거나 바꿀 수 없게 된다."

동양의 전통철학도 저자의 이런 염려를 비켜 갈 수 없다. 하늘은 높다. 땅은 낮다. 하늘은 양이다. 땅은 음이다. 남자[凸]는 양이다. 여자[凹]는 음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이렇게 남존여비의 이론은 자연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인간 사회 질서가 꼼짝없이 자연에 의해 고정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게 아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도킨스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유전자 운반체에서 어느 시점에선가 신경계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뇌가 생겨났다. 뇌는 일정한 방식으로 동물의 행동을 통제한다.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서. 기억도 생겨났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유전자 보존에 유리한지를 저장하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 뇌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사고실험 기능이다. "시뮬레이션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발생으로 정점에 달한 것 같다."(도킨스) 물론 뇌의 시뮬레이션 기능과 주관적 의식의 출현 또한 유전자 보존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주관적 의식의 발생은 현대 생물학이 직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이다."(도킨스) 의식의 발생으로 뇌는 "미래 예측 능력뿐 아니라 유전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는 힘"도 갖게 되었다. 놀라운 반전이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더 많은 자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식은 아이 낳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도킨스의 출구전략인가? 저자는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을 그가 생물학적 결정론에 완전히 갇혀 있지 않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여지를 남겨둔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중 하나가 잡과다. 잡과에 음양과가 있었다. 시험 과목이 천문학, 지리학, 명리학이다. 사주로 팔자가 결정된다는 명리학이 국가 공식 시험 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이기적 유전자>로 대표되는 진화생물학 내지 사회생물학은 현대가 공인하는 과학 이론 가운데 하나다. 옛날에는 '명(命)'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유전자'라고 한다. 우월한 유전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이미 시작되었다. 유전자 조작 영화도 인기다.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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