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아, 종이책은 이제 정말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하다가도 '저런 전자책으로 종이책의 독서 경험을 재연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죠. 모두가 게임이나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을 읽는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반갑기도 합니다.
아마 출판사 편집자라면 이런 상황을 보면서 훨씬 더 심란하겠죠. '전자책에서 과연 전통적인 편집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 앞으로 전통적인 책이 설 자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편집자는 또 출판사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이런 답이 없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입니다.
▲ 교보문고의 전자책 단말기 '샘(sam)'. ⓒ교보문고 |
사실 전자책 혹은 디지털 출판을 둘러싼 이런 질문이 출판계에 화두로 제시된 지는 벌써 3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자, 저자는 물론이고 출판사, 서점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나 서점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니 이런 고민 자체가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겠군요.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서 '프레시안 books'는 민음사에서 펴낸 여섯 권의 전자책 싱글북에 주목했습니다.
<출판 혁신 전략 : 아마존부터 NYT까지>(류영호 지음, 민음사 펴냄)
<디지털 출판의 다섯 가지 열쇠>(이중호 지음, 민음사 펴냄)
<책을 넘어 콘텐츠 플랫폼으로>(김지현 지음, 민음사 펴냄)
<키워드로 보는 한국 출판의 메가트랜드>(한기호 지음, 민음사 펴냄)
<콘텐츠 산업의 위기와 새로운 미래>(황병선 지음, 민음사 펴냄)
<리딩을 위한 UX 디자인의 이해>(김동환 지음, 민음사 펴냄)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30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이 전자책은 민음사에서 '디지털 출판의 미래'를 화두로 외부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은 내용을 묶은 것입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출판 혹은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를 주도적으로 고민한 이들의 사고의 알갱이가 짧은 글속에 녹아 있어서 아주 유용합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이 책들을 기획한 장은수 민음사 대표 편집인과 <디지털 출판의 다섯 가지 열쇠>의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 소장, <출판 혁신 전략>의 류영호 교보문고 콘텐츠사업팀 차장과 함께 '디지털 출판의 미래'를 한 번 더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책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 디지털 출판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파악하고 싶은 사람,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꿈꾸는 사람, 읽기 공동체의 복원이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할지 되묻는 사람 등은 세 사람의 솔직한 얘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다음은 지난 10월 30일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진행한 세 시간에 걸친 대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회는 강양구 기자가, 정리는 안은별 기자가 맡았습니다. <편집자>
▲ 장은수 민음사 대표 편집인(왼쪽),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손문상) |
국내 전자책 3년, 충격만 있고 진전은?
프레시안 : 전자책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출판이 출판계의 화두가 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하지만 혼란이 해소되기는커녕 독자, 저자, 출판사, 서점 등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더욱더 커진 듯하다. 다들 변화가 목전에 왔거나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오늘은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가능하면 대안도 모색해보고자 마련됐다.
▲ 장은수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
책의 콘텐츠가 모바일 플랫폼 등에서 음악, 영화, TV 등 다른 콘텐츠 비즈니스와 경쟁하면서, 북 비즈니스와 콘텐츠 비즈니스가 겹쳐지는 환경으로 '갑자기' 변해버렸다. 이 '갑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판계가 그런 상황에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북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지켜온 관성이 있는데, 여기에 안주하고픈 마음(설마 종이책이 사라지겠어!)과 한편으로는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아무도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몰라!)는 지속적인 불안이 엄습한다.
민음사가 이번에 디지털 출판의 미래를 모색하는 연속 강연을 기획하고, 또 이 강연을 여섯 권의 디지털 싱글 북으로 펴낸 까닭은 이런 상황을 정리해보고 싶어서다. 앞으로 북 비즈니스가 디지털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내부의 미래 전략을 논하기 전에 외부의 일급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여기 두 분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출판의 미래를 고민해 온 이들에게 디지털 환경에서 북 비즈니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프레시안 : 지금 출판과 같은 전통적인 콘텐츠 비즈니스가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 하는 전제다. 그런데 정작 디지털 출판 등을 놓고서 담론의 거품이 끼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인상도 받는다. 과연 디지털 충격이 얼마나 가시적인지, 그 여파가 얼마나 강한지 묻고 싶다.
류영호 : 지난 3년간 종이책 성장은 지체 혹은 감소했다. 그런데 전자책이 그 감소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현재까지는 전자책 산업의 발전이 종이책의 외연을 넓혀주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책은 잘 읽지 않지만 디지털 환경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전자책을 통해서 책이라는 콘텐츠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종이책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 전자책도 구입하고 읽는 편이다.
도서 유통 채널 관점에서 보면, 시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직접 만져보고 훑어본 뒤 구입하는, 지난 수백 년간 이어져 왔던 책 구매의 행동 패턴이 이제 바뀌고 있다. 독자뿐만이 아니다. 저자, 출판사, 서점 등 시장 참여자들 모두 수익 모델을 온라인과 디지털 콘텐츠에서 찾고 있다. 해외 출판 시장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중호 : 한국에서 전자책이 모바일로 서비스되기 시작한 건 2009년 말부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성장 가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고 있다. 전자책의 힘은 아직도 종이책에 비해 굉장히 미약하다. 최근 국정 감사에서도 전자책이 왜 전체 출판 산업의 2%밖에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국회의원도 있었고,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국내 종이책 독서율이 11.3%인데 반해 전자책은 0.9%밖에 안 된다고 발표했다.
물론 전자책 성장이 가속화되었던 미국도 올해는 상반기 전자책 매출이 2012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면서 성장 속도가 꺾였다. 하지만 이미 미국 출판사는 전자책 매출이 전체 도서 매출의 약 25%가 되었고, 실제로 생산, 유통, 소비에서 전자책의 비중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반면 국내 출판사는 아직도 전자책 비중이 2~3%밖에 안 되어 출판사의 매출과 수익에 대한 기여도가 너무 낮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은 국내 독자에게 '전자책을 꼭 봐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건 왜일까? 내 생각엔 전자책에 '소유'라는 느낌이 없어서가 아닐까. 전자책 값이 비싸다는 불만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또 종이책은 독자에게 동일한 유아이(UI, User Interface)와 유엑스(UX, User Experience)를 제공하지만, 전자책은 단말기나 뷰어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전자책이 아직은 담론처럼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다.
길고-무겁고-깊은 콘텐츠
프레시안 : 이번에 민음사가 낸 싱글 북 여섯 권이 처음으로 완독한 전자책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머리에 잘 남지 않더라. 밑줄을 그어둔 것을 나중에 보면서 다시 정리를 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디지털 환경이 '독서' 경험과 궁합이 맞을까, 이런 의구심이 든다.
이중호 :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인 책이 아닐 뿐 이미 거의 모든 읽기를 디지털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뉴스든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카카오톡이든, 스마트 기기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 짧은 글을 읽는 행위에 익숙해 있다. 그러다 250~300쪽쯤 되는 전자책을 정독하려면 쉽지 않은 거다. 특히 젊은 세대는 디지털 리딩엔 익숙해도 콘텐츠의 길이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책을 그대로 디지털 환경에 옮기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뭔가가 달라야 한다. 그 중 하나가 기존 출판의 형식과 질은 유지하되, 양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신문이나 웹에 연재되는 소설을 생각해 보라. 매회의 호흡이 짧다. 이번에 낸 싱글북도 이런 디지털 출판의 한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출판 혁신 전략: 아마존부터 NYT까지>(ebook, 류영호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그 외의 분야, 즉 인문·사회·자연과학 등의 300~400쪽 이상의 종이책은 아무리 전자화해도 종이책의 독서 느낌을 그대로 재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자책의 가장 큰 특성인 휴대성을 생각하면 200~300그램밖에 안 되는 디바이스에 무거운 책을 수천 권 담을 수 있는 매력도 상당하다. 이런 점에서 이런 책들 역시 전자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충분하다.
장은수 : 방금 말한 것처럼 디지털 환경에서는 '깊이 읽기'가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독자들은 깊이 읽기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깊이 읽기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종이책에서 행간, 자간, 서체 따위의 깊이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지 않나. 전자책을 만들 때도 이 점에 주력해야 한다.
아까 이중호 소장이 '기존의 책을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얘기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전자책에 적합한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게 디지털 환경에서 출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와 관련된 근본적인 고민이다. 디지털과 출판이 만났을 때 기존에 있던 것들과는 다른 무엇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만약 이 소장이 언급한 '연재' 형식을 염두에 둔다면, 그건 잡지 출판이지 단행본 출판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것도 북 비즈니스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의 하나다.
사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런 모든 문제를 꿰뚫는 근본 문제는 종이책이든 디지털이든 관계없이 '책 자체를 접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읽기의 전자적 경험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출판을 재정의하는 것, 즉 출판이란 어쩌면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이 아니라 '읽기라는 경험'을 서비스하는 사업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류영호 :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월 평균 독서 권수가 0.8권이라고 한다. 한 권이 안 되니까 아예 안 읽는다는 이야기로 봐도 된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학창 시절에 책 읽는 습관 자체를 몸에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문제는 교육, 사회, 문화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책을 보다 쉽게, 생활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하는 일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메타데이터를 활용해 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발견할 수 있는 '그물'을 더 많이 치자는 논의가 현실적 대안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책 읽는 문화 자체가 형성되어야지 시장의 플레이어들도 과감히 투자할 것이다. 콘텐츠 속성의 넓이와 깊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 읽는 행위 자체는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중호 : 전자책도 종이책 많이 보는 사람이 많이 읽는다. 그 두 독자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다들 책 안 읽는 건 인정하고 가자. (웃음)
장은수 : 정말 근저에 있는 문제는 읽기 행위가 다른 것에 시간을 뺏기고 있다는 것 같다. 지하철 출근길에서 '모두의 마블'을 어떻게 이기나. (웃음)
같은 작업을 수십 번, 표준화가 절실하다
프레시안 : 일반 독자 입장에서 디지털 출판과 관련해 일차적으로 관심이 가는 이슈는 방금 장은수 대표가 지적한 독서 환경에 최적화된 UI, 또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디바이스(단말기)다. 아마존, 국내 서점 등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실험이 진행 중이고 또 킨들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 등 디바이스마다 자신이 최상의 독서용이라고 자랑하는데….
▲ <디지털 출판의 다섯 가지 열쇠>(ebook, 이중호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문제는 디지털 책의 파일 포맷이다. 모두 이펍(ePub)을 표준으로 채택하긴 했지만, 그 포맷을 100% 소화하지 못하는 유통사가 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디알엠(DRM, Digital Rights Management)이 다 달라서 교보문고 샘에서 예스24에서 구입한 전자책을 완벽하게 읽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러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혼란스럽다.
이건 외국과 비교해 보아도 특수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아마존이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마존 전자책만의 고유한 포맷과 DRM이 있다. 시장 지배자니 그건 예외라 치자.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마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펍으로 통일되어 있고 DRM도 동일한 제품을 사용하여 상호 호환이 된다. 그러니까 독자가 각각 다른 서점에서 전자책을 다운로드하더라도, 각각 다른 기기에서 읽는 데 문제가 없다.
장은수 : 정말 큰 문제다. 이펍이 적용되었다면 당연히 모든 단말기에서 똑같이 보여야 하는데, 각 단말기마다 보이는 게 다 달라서 수정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단말기마다 똑같은 작업을 열 번은 해야 유통이 가능하다. 게다가 어떤 기기에서는 CSS(Cascading Style Sheet)를 지원하지 않는데, 그러면 타이핑한 문서랑 다를 게 없다. 편집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류영호 : 기존의 전자책 제작, 유통은 주로 규모와 양(量)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출판사가 직접 전자책을 제작하는 게 아니라 유통사가 대신 제작했다. 유통사에서는 '빨리 1만 종, 5만 종, 10만 종으로 늘리자' 하는 식으로 접근하다보니 콘텐츠의 질(質)은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전자책 유통사들은 콘텐츠 제작 기술과 시스템 개발 기술 등에 대한 핵심을 갖지 못한 점이 많다. 해외 사업자들과는 그런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유통사는 최근에서야 뒤늦게 양보단 질에 집중하자고 전략을 바꿨다. 대형 서점 등 메이저 유통사가 최신의 이펍 포맷을 제대로 구현할 뷰어(viewer)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잘 구현되면 기존에 만들어진 것보다 멀티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출판사가 의도한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 수 있는 전자책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중호 : 현실은 심각하다. 가령 민음사와 달리 자체 제작 능력이 없는 출판사의 경우 유통사에 전자책 제작을 맡기는데, 한 권당 심하게는 2만 원 수준이다. 어떻게 질을 보장하겠나?
▲ 이중호 소장. ⓒ프레시안(손문상) |
장은수 : 디지털 환경에서도 핵심은 읽기의 경험을 어떻게 팔 것인가, 이 문제의식을 놓쳐선 안 된다. 전자책 사업에서 어느 부분을 개선시키고 무엇을 증진시켜야 할지를 물으면 결국 읽기 경험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전자책에서 스타일 문제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00년간 인류가 개발해 온 읽기에 최적화된 종이 출판의 노하우가 전자책에서도 최대한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자책 개발 회사가 다 IT 기업이다 보니, 전자책이 '읽기를 파는 서비스'라는 의식이 굉장히 약하다. 그래서 개선 방향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일 중요한 건 가독성인데, 그걸 놔두고 다른 부가적인 기능만 덧붙인다는 인상이 강하다. 밑줄 긋기, 트위터에 공유하기 이런 거. (웃음)
이중호 : 장 대표야 편집자 출신이니까 스타일을 강조하지만 나는 다르다. 가독성, 중요하다. 이왕 읽는 거니까.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게 '책의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관성 아닌가 생각된다. 스타일을 강조한다는 건 출판사가 원하는 책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기존 독자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의미인데, 전자책은 그런 차원마저도 초월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독자들을 위해 전자책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종이책에서는 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클라우드 기술이 나오면서 가능해진 서비스로 독자가 전자책을 읽으면서 표시한 북마크, 하이라이트, 노트 등을 같은 전자책을 접한 서로 다른 유저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기능 같은 것. 장 대표가 지적한 밑줄이라든지 트위터 공유 기능이야 예전부터 해 온 거고, 말하자면 그런 것은 기술도 아니다. (웃음)
프레시안 : 예를 들어, 지금도 아마존 킨들로 전자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밑줄 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읽는 독자가 제한적인 학술 서적을 읽을 때는 이런 기능이 상당히 유용하다. 관심사가 비슷한 학계의 동료들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책을 대충 읽고 아는 척 할 때도 상당히 유용하고. (웃음)
류영호 : 전자책을 한두 권 읽어본 독자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종이책 스타일을 전자책 스타일로 그대로 적용하길 원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적다. 대부분의 전자책 독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텍스트를 읽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전자책도 그 정도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는 전자책 기획과 제작은 독자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종이책과 똑같은 전자책이 아니라 저렴한 가격과, 내가 꼭 필요할 때 바로 구입해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다. 그래서 로그인 정보, 카드 번호, 주소만 있으면 결제 가능한 복잡하지 않은 결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도 시장 활성화에 절실한 대목이다. 예를 들면, 아마존이 인터넷 쇼핑 제국이 된 것 역시 '원 클릭' 서비스 때문이다.
독자들이 콘텐츠를 구입할 때 주로 소액 결제를 많이 하는데, 현재 콘텐츠 유통 사업자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수수료를 안 받는다. 그러니 전자책 등 대부분의 콘텐츠 유통사 측면에서는 불만 요소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결제 방법을 개선하고, 금융 수수료율 책정을 하는 것은 등 정부와 금융기관의 정책 등과 연계되어 있어서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 류영호 교보문고 콘텐츠사업팀 차장. ⓒ프레시안(손문상) |
프레시안 : 정책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때 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자책은 어떤가?
이중호 : 가장 상위 정부 부서가 문화체육관광부다. 그런데 내가 전자책 육성 방안, 전자 출판 5개년 계획 등 여러 계획을 만드는데 참여했는데 안타까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획을 잘 만들면 뭐 하나, 리더십과 예산이 있어야 실행을 하지. 올해 예산이 15억 원이다. 내년 예산은 오히려 줄어서 12억 원이다. 이런 예산 가지고는 턱도 없다.
만화나 게임에는 수천 억 원을 쓰면서, 원천 콘텐츠 산업인 전자 출판 산업에 대한 지출이 너무 빈곤하다. 지원 방식도 매번 교육 사업 아니면 우수 전자책 지원 사업에 그친다. 우수 전자책의 기준도 문제지만 권당 25만 원씩 지원하는 게 국내 전자책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웃음) 이런 것보다 전자책 표준 활성화나 서비스 개선을 위해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장은수 : 뷰어의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같은 전자책 콘텐츠를 놓고서 뷰어마다 다른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실무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가령 스무 군데 서점과 거래를 하면, 거래 형식이 저마다 다르다. 표준화가 안 되어 있다. 교보문고 자료와 예스24 자료의 포맷이 다른 것이다. 이걸 내부에서 변환시키려면 또 다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쪽에서 서점에 뭘 보낼 때도 다 다르게 바꿔서 보내야 하고.
특히 메타데이터의 표준 형식이 다르다. 저자, 출판사, 쪽 수, 분류 등 기본적인 도서 정보를 표기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교보문고에 올릴 때, 네이버에 보낼 때 이런 메타데이터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담당자 한 사람이 단순 작업을 수십 번 해야 책 한 권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메타데이터부터 표준화해야 한다.
이중호 : 해외에는 이미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져 있다. 메타데이터에는 오닉스(ONIX, ONline Information eXchange)라는 표준이 있어서 출판사는 물론 아마존을 포함한 전 유통사에서 쓴다. 따라서 출판사에서 ONIX 표준으로 한 번 작업을 하면 중복된 메타데이터는 다시 작업할 필요가 없다. 변화에 보수적인 일본 출판계도 오닉스를 도입했는데 왜 한국 출판계는 못하고 있나? 정부의 리더십이 이런 표준을 정하는 데 필요하지 않을까?
온라인 서점도 마찬가지다. 메타데이터를 그때그때 따로 만들고 있다. 표준화 작업을 안 해도 너무 안 했다. 주제 분류도 그렇다. 가령 교보문고의 주제 분류와 예스24의 주제 분류가 다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은 '이런 분류다'라고 가져다줘도 엉뚱한 곳에 가 있을 수 있다. 이러니까 검색도 제대로 안 된다.
프레시안 : 외국의 전자책 산업을 보면, 주도하는 쪽이 아마존 같은 닷컴 기업이다. 그런데 닷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표준' 아닌가. 국내에서는 IT와 일해본 적이 없는 출판사, 서점에서 뒤늦게 전자책을 주도하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다. 깊은 고민 없이 일단 시작은 하는데 위에서 리더십을 갖고 조정해주는 사람도 없고….
장은수 : 전자책마다 25만 원 지원하는 식의 방식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표준화 같은 작업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이 문제만 해결돼도 작은 출판사가 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출판사, 종합 기획사로 '구조 조정'?
프레시안 : 전통적인 북 비즈니스가 디지털과 만나면서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로 이행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대세인 듯하다. 그런데 과연 그 방향으로 이행되는 게 맞는 건가? 또 북 비즈니스가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로 변했을 때 어느 부분에서 과거와 같고 어느 부분에서 달라질 것인가?
류영호 :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점을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비유해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날로그의 뿌리가 튼튼해야 다른 형식을 갖춘 콘텐츠로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가시적인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 결국 양쪽이 한 쪽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균형을 맞춰가면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가 더욱 확대되더라도 종이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 등, 종이에 담아서만 표현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 그러나 빨리 읽고 넘어갈 것, 혹은 물리적 제약 시간적 제약 없이 여타의 멀티미디어와 결합한 다이내믹한 형태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있고, 그런 측면에선 디지털의 가치가 훨씬 커질 것이다. 결국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디지털을 '중심'에 두는 기획과 제작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제는 기획하고 생산할 때부터 디지털에 최적화된 경우를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이다. 그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현하는 뿌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의 속성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가진 편집자, 기획자를 통해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그 포맷이 변하더라도 부가 가치가 발생한다. 책이라는 콘텐츠를 잘 이해하고 에디팅에 뿌리가 깊은 사람이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학습해서, 아날로그 속성과 디지털 속성을 오가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방금 언급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콘텐츠가 과연 '책'일까? 전혀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손문상) |
결국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로 가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어떻게 온라인에서 서비스할 수 있을까'란 형태로 고민해야 한다. 지금 출판사에게 시급한 것은 '원 소스 멀티 유스'가 아니라 '원 소스 멀티 포맷'인 셈이다. 이 모든 것이 기존 출판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결국 출판사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서비스에 집중하는 새로운 사업자가 생기지 않을까.
장은수 : 앞에서도 지적되었지만, 우리 출판 산업은 전부 '물리적 책'을 만드는 프로세스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물리적 책을 만드는 기술과 과정만으로는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물리적 책을 만드는 건, 앞으로 유일한 선택지에서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앞으로는 하나의 정보가 책이든 강의 콘텐츠든 동영상과 이러닝(e-learning) 콘텐츠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그 본질은 원천 정보의 개발이 되겠지만.
프레시안 : 말하자면 연예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처럼 되는 건가.
장은수 : 비슷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출판사가 다른 데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결국 읽기 경험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다. 가령, 동영상 강의와 연계할 때 읽기 경험을 증진시킬 수 있는 교재를 만든다든지…. 어쨌든 앞으로 사업의 기본 구조가 크게 바뀔 것이다.
민음사의 경우 1년에 400~500권의 책을 낸다. 다른 말로 하면 콘텐츠 사업을 400번 하는 것이다. 원천 소스를 이용한 멀티 콘텐츠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보면 1년에 기획, 생산, 유통의 완결된 구조를 갖는 사업을 400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업의 기본 구조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중호 : 이제 출판은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콘텐츠를 다양한 포맷으로 생산하고 해당 분야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버티컬 시장을 찾아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자. 요리책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는 요리책을 출판해서 판매하는 것과 함께 차별화된 서비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에 출판했던 요리책에 실린 많은 레시피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면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레시피만 선택해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요리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여 책뿐만 아니라 요리 동영상 및 교육 콘텐츠를 서비스하거나 요리 기구나 재료를 판매할 수도 있다. 이제 출판사도 특화된 시장을 위한 버티컬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런 성공 사례는 찾아보면 많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세계적인 IT 전문 출판사 오랄리다. 국내에서는 한빛미디어가 오랄리와 비슷한 대표적인 버티컬 기업이다. 컴퓨터 및 IT 관련 책을 서점에 공급하지만 온라인으로 소바자에게 직접 판매도 한다, 또 교육 센터를 설립하여 온오프라인 IT 교육 사업도 진행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구축을 통해 IT 분야의 버티컬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 듣고 보니, 버티컬 전략은 <프레시안>이야말로 절실히 필요한 전략이다. (웃음)
장은수 : 사실 출판 산업은 어떤 부분은 이미 버티컬화 되어 있다. 문학 전문 출판사를 생각해보라. 방대한 문학 도서 목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출판사는 핵심 독자를 관리하고 작가-독자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잡지(문학 계간지)도 낸다. 편집자도 대개 그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그동안 의식은 못 했지만 한국 출판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오랫동안 버티컬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던 셈이다. 물론, 이를 의식적으로 버티컬하게 전개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류영호 : 출판사가 '북 비즈니스'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로 갈 때 자체적인 버티컬 전략도 좋지만, 또 다른 구조의 전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가령 종이책을 온라인으로만 유통하던 반스앤노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교육 전문 출판사 피어슨과 결합해 새로운 콘텐츠 컴퍼니를 만들었다. 이것도 국내 출판계에서도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스템이라고 본다.
장은수 : 디지털 충격으로 인해 '종이책'도 변하고 있다. '종이책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이 출판인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만약 읽기라는 경험을 서비스하는 것은 전자책에 더 큰 장점(싼 가격, 접근성, 보관 등)이 있다면, 대체 종이책의 가치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독자들의 소유욕을 강화하는, 얼마 전 열렸던 슈타이들 전시회에서 본 것처럼 종이의 질, 냄새, 촉감, 인쇄 및 제본 상태 등 종이 책의 물성을 강화하는 온갖 전략들이 지금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시험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이 없다면 아마도 종이책은 조만간 민속 상품처럼 철지난 유산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오늘날 출판은 종이책과 전자책, 각각의 포맷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그 상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가 '대체 지금 출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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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슈퍼스타K, '자가 출판'
프레시안 : 전자책의 대중화와 함께 자가 출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저자를 배출하는 통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중호 : 과거에도 자비 출판은 존재했다. 이제 그 방법이 더 쉽고 체계화되었다는 차이지. 나는 출판사가 이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고 본다. 자가 출판은 신인 작가의 오디션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교보문고에서 발행된 자가 출판물도 1만3000종에 달했다. 최근 미국의 ISBN 발행 기관인 보커(Bowker)는 작년에 ISBN이 발행된 책 중에 약 39만 종이 자가 출판물이며, 이 가운데 40%는 전자책으로 출판되었다고 발표했다. 자가 출판물은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거다.
문제는 결국 (원고의) 품질이고, 그게 아무리 원석이더라도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출판사다. 저자도 출판사가 한 번 더 손을 봐주는 것을 원한다. 책 만드는 게 중요한 거지 파는 건 다음 일이니까. 결국 기획 능력과 편집 능력이 있는 편집자들이 사업에 주목하고 이것을 건드려줘야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걸 지금 유통 회사만 하고 있다는 건 약간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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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장르 문학 쪽 콘텐츠이다 보니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으로 '멀티 유스'하기 굉장히 편하다. 일반인에게 저자 경험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한 사람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보통 해당 분야의 책을 수십 권 읽어야 하고, 책을 씀으로써 그 주제와 그 주제의 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출판 문화, 독서 문화 환경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보문고의 자가 출판 서비스의 경우, 주 이용자가 20~30대 젊은 층이 아니라 40~50대 장년들이다. 제2의 인생이라든지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획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자기가 즐기거나 주변 지인들과 나누는 약간은 자기만족적인 측면이 크지만, 자가 출판의 기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많은 작가들이 메이저가 될 수는 없고, 조금이라도 돈을 버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작가를 발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의 저변을 넓힌다는 기능에서는 유리하다.
장은수 : 그런 부분에선 확실히 긍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드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는 예전부터 있긴 했다. 그런데 수익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중호 : 거기에 기획, 편집이 들어가면 더 나아질 수 있다. 교보문고의 자가 출판 서비스에서 나온 자가 출판 작품 중에 베스트셀러가 없는 이유도 기획 편집이 없어서 그렇다. 그걸 위해서라도 플랫폼 자체에 편집에 대한 투자가 많아야 한다.
류영호 : 시드(Seed) 콘텐츠라는 표현처럼, 기성 출판사에서 적극적으로 열광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작가의 필력이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는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관리해주면 더 잘 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생길 수 있다. 즉 작품에 대한 투자라기보다 작가 발굴의 측면이 강하다고 할까.
프레시안 : 어째 이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과 비슷한 것 같은데. (웃음)
장은수 : 결국 출판 산업이 콘텐츠 자체보다는 '에디팅 서비스 판매'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 같은데, 미국에서는 에디팅 단계별로 단가를 책정해서 자가 출판 저자들에게 서비스 하는 업체들도 여럿 있더라.
읽기 공동체를 복원하라!
장은수 : 지금 출판에서 가장 큰 구조 변화 중 하나는 물리적 '스토어', 즉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의 제일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책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우연히 들러서 어슬렁거리다가 '괜찮네?' 하면서 사보게 되는 쇼룸 기능이 서점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기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가 그걸 보완해주었다. 책의 발견 가능성을 구성하는 두 축이 서점과 언론이었다. 그런데 이게 현재 증발하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책이 나온 사실조차 알리기가 너무나 어렵게 됐다. 발견 가능성을 높이는 데 거의 모든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고 있는 게 그 귀결이다. 한마디로 온라인 서점의 메인을 '광고판' 삼아 '구입하는' 거다. 온라인 서점 첫 화면에 돈이 거래되지 않고 북 마스터가 정말 큐레이팅해서 선정한 책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크게 잡아도 절반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날 서점은 마치 백화점에서 공간을 소매업자들한테 임대하는 식으로 출판사들한테 매대를 임대하는 사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70~80%는 목적 구매다. 서점에 접속하기 전에 이미 살 책을 정한 상태에서 들어와서 그 책들만 구입한 뒤 바로 나간다. 이렇다 보니 출판계의 큰 고민 중 하나가 신인 작가가 발견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콘텐츠는 좋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발견될 기회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자책은 물리적 형태가 없기 때문에 더 심하다.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누군가에게 발견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출판이 디지털로 넘어갈수록 이 발견성의 압박이 더 커지고 있다. 영화처럼 큰 마케팅비를 써서 누구나 알 수 있게 광고하거나 버티컬한 커뮤니티 안에서만 퍼트리거나, 어찌 보면 이 두 가지 길밖에는 없다. 발견성 문제가 버티컬 전략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기존 유명 작가들의 힘을 더 키워주기도 하고. 가령, 스티븐 킹이 책을 내면 모든 사람이 알게 되잖나.
이는 결국 출판계의 양극화, 더 나아가 저자의 양극화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다른 모든 인터넷 사업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양극화는 북 비즈니스의 역사로 보면 재앙에 가깝다. 출판계는 원래 9대 1의 구조, 즉 아홉 명의 가능성 있는 저자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한 명의 잘 팔리는 저자가 수익을 내서 장기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저자에게 계속해서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마케팅 비용이 들면 들수록 메이저 작가라 할지라도 아홉 명의 가능성을 키울 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수익이 집중되는 책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드는 게 전부고… 그러면 가능성 있는 책의 진열이나 판매에 적극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읽기 공동체'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도서관, 시민 사회도 그렇지만 서점 역시 읽기 공동체의 일부다. 버티컬 전략의 중심에 그게 놓여야 한다. 지금까지 출판계는 읽기 공동체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개는 정부, 학교, 도서관 등에 이를 의존했을 뿐이다. 물론 그동안은 큰 투자 없이도 자발적인 읽기 공동체가 유지되었던 측면도 있다. 그런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책을 넘어 콘텐츠 플랫폼으로>에서 김지현 SK플래닛 상무가 인용한 그래프를 보면, 최근 5년간 일주일 2시간 정도이던 독서 시간이 30분 정도로, 거의 4분의 1로 줄었다. 읽기 공동체의 붕괴가 본격화한 것이다. 영화의 경우, 물론 정부의 지원도 있었지만 영화인들과 관련 업체들이 영화제나 그 밖의 정기적 이벤트를 통해 시네필 공동체를 관리해 왔다. 출판계는 지금까지 그런 부분에 대한 공적 투자에 소홀했다. 어쩌면 디지털화는 아마존의 굿리즈(Goodreads)의 경우에서 보듯, 읽기 공동체의 복원에 커다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류영호 : 예전에 본 자료 중에 인상 깊었던 게 있다. 미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책을 구입할 때 주로 어디에서 추천을 받아 구매하는가를 4, 5년 전과 최근을 비교했다. 4, 5년 전만 해도 서점의 추천 이메일과 POP 알림판 등에서 추천을 받아 구매한 경험이 많다고 나왔는데, 최근 자료를 보니 '지인 추천'에 역전 당했다. 과거에는 출판사나 서점 등 업계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수준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고 협력 수준도 높았는데, 최근에 와서는 주변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많아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내가 현장에서 보니, 이 분야엔 이런 책이 좋더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늘고 그걸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서점이 전문가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읽기 공동체의 복원, 좋은 지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공동체를 오프라인에서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굿리즈 같은 커뮤니티처럼, '소셜 리딩(Social reading)'이 가능한 공동체를 온라인에서 만들고 그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장점은 실시간 의견 교환에 있을 텐데, 그건 종이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진을 찍어 보내든 몇 단락을 가볍게 인용하든 전자 출판을 토대로 한 셰어(share) 기능을 활용할 여지가 더 많다.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에는 책을 덜 읽었던 사람들도 스마트폰 앱이나 가족, 주변 지인을 통해 책읽기를 전파 당할 수 있다고 할까.
▲ 2012년 전자책 붐을 견인했다고 회자되는 로맨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
류영호 :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전자 출판 형태로 제작된 콘텐츠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자책 종수가 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독자들은 목마르다. 설문 조사에서 전자책 이용의 어려운 점을 물어보면, 언제나 '내가 읽고 싶은/사고 싶은 콘텐츠는 없다'가 1위다. 콘텐츠가 각 뷰어 별로 호환이 안 되는 건 스마트 기기 앱의 소비 패턴이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큰 문제가 안 된다.
또 자가 출판에서 전문적인 편집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은 동감한다. <허핑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등 미디어들이 자사의 탐사 보도 기획 기사들을 업그레이드해서 5달러 미만의 저가로 전자책 서비스를 하는데,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지금 유통되는 콘텐츠들을 보면 30~40대 성인 독자들이 돈을 많이 내는데, 언론사가 주로 다루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이런 주 독자층에게 소구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연결해주면 재미있는 현상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사실 이번 민음사의 전자책 6권도 비슷한 기획인데, 전자책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편안한 진입 채널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더라. "이건 종이로는 없습니다. 가격은 3000원 정도입니다"라고 소개했더니, SNS에서 정말 사봤다고 댓글 다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책 이용 경험에 좋은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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