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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자궁도 '다 판다'…만족스러운 구매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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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자궁도 '다 판다'…만족스러운 구매 하셨나요?

[프레시안 books] 앨리 러셀 혹실드의 <나를 빌려 드립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안 볼 때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탁월한 농담을 했다. 그런데 정색하고 보면 사실 '누가 안 볼 때'는 그리 완벽한 조건이 되지 못한다. 버리러 가는 도중에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그만 마음이 약해지면 어쩔 것인가. 아마 이 일을 정말로 성공시키려면 나를 대신해 이 일을 처리해 줄 다른 사람을, 이를테면 '유기 전문가'를 고용하는 게 나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실제로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어 고민이라 하더라도 그런 일을 해 줄 사람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피고용인이 겪을 심적 부담의 비용까지 쳐서 많은 사용료를 지불해야겠지만 '시장'은 어디엔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살인청부업자는 물론이요 철거민을 거리로 내쫓는 용역들, 일부러 진상 짓을 하여 직원을 암행 감시하는 '미스터리 쇼퍼', 일본에 등장했다는 친구 대여 서비스까지 '외주'가 불가능한 분야는 이제 없어 보인다. 법적, 윤리적, 상식적 벽을 '나-의뢰인' 대신 넘나들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력이 모든 분야에 걸쳐 존재하는 것이다.

사적 외주의 아주 흔한 사례를 들어 보자. 둘 다 전일제로 일하는 로라와 트레버 커플은 결혼을 6개월 앞두고 웨딩 플래너 클로에를 고용한다. 로라는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일 등 중요한 일은 본인이 하되, 그밖에 덜 중요한 소소한 일들은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보충 차원의 분업을 원해 시장을 찾았다. 그런데 커플이 웨딩 플래너를 고용했다는 사실엔 부족한 준비의 n퍼센트를 채워주는 것 이상의 거래와 의미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클로에는 결혼 준비에 자신은 일절 관여 않겠다는 듯한 남편 트레버의 태도에서 "(준비에) 관심을 쏟는 일마저 아웃소싱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점을 의식하며 트레버에게 좀 더 신경을 쓰도록 독려해야 했다. 실제로 트레버뿐 아니라 '뺀질거리는 남편 상대하기'는 이 웨딩 플래너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한편 클로에는 이 커플의 결혼식을 위해 그들의 연애담을 차용한 '레몬나무의 전설'을 만들어 식장 바깥의 자리마다 세팅했는데, 이 일의 핵심은 그 전설이 돈으로 거래된 생산물이 아니라 시장 바깥에서 온 의뢰인들 고유의 이야기라 믿게 만드는 데 있었다.

웨딩 플래너가 평소에 하는 일들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상식에 맞는지, 지금 제대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지 확신을 얻으려고" 찾아오는, 즉 '신뢰'를 아웃소싱하려는 예비 신혼부부들을 상대하는 일이기도 했다. 클로에의 노동은 일종의 감정 노동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그 점이 그녀와 수많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을 먹여 살린다. 그녀는 말하자면, 결혼 준비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감정과 걱정과 스트레스를 흡수하거나 배출할 공간으로서 아웃소싱되는 것이다.

▲ <나를 빌려 드립니다>(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류현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이 일화가 등장하는 <나를 빌려 드립니다(The Outsourced Self)>(류현 옮김, 이매진 펴냄)는 <감정 노동>(이가람 옮김, 이매진 펴냄)으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2012년에 쓴 책이다.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라는 한국어판 부제를 보고 순간 떠올린 것은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 그러나 이 책의 관심과 목표는 극단적 시장화가 야기한 윤리적 문제를 묻거나 그 도덕적 한계를 논증하는 데 있지 않다. 혹실드 역시 '(과거에는)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정말 팔아도 되는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래의 태동 조건과 그 노동에 켜켜이 스며드는 감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목표 지점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은 왜 하필 외주라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아웃소싱된 노동자들은 왜 그 일에 뛰어들으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할까?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가졌거나 억눌렀을까? 아웃소싱 사회의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 측면에서 이 노동 시장의 견고함을 관찰해가는 혹실드의 솜씨는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을 방불케 한다.

이 책은 결혼 파트너를 맺어주는 러브 코칭 산업을 다룬 1장에서 시작해 웨딩 플래너, 결혼 생활 상담 치료사, 인도의 대리모, 육아와 여가를 돕는 서비스와 아이들을 위한 파티 플래너, 기업의 경영 분석을 '가정 경영'에 도입한 기상천외한 점수 측정 서비스, 필리핀에서 수급되는 유모, 집안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하우스 매니저, 노인 요양 서비스를 거쳐 장례사에서 끝난다. 한 쌍의 성인들이 커플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늙어 죽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며 구매하는 서비스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가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익숙한 것들이며, 노동 내용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이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꿸 때의 문제의식은 그 직업이 생소하든 아니든 윤리 차원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든 아니든 공통적이다. 몇 세대 전만 하더라도 스스로 혹은 공동체의 돌봄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그 곤란의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이, 이제 완전히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수요자들에게 있어 시장은 매우 편리한 선택지다. 여기에서는 누군가의 애인, 남편(아내), 부모,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 친구 등 다양한 정체성을 그때마다 충실히 연기할 필요 없이 '의뢰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만능 패스로 사용할 수 있다. 호텔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글로리아는 의지할 데라곤 가족과 공동체가 전부이던 시절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더 불행했을 거라며, 조언이나 가정 관리 등 가능한 한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의 유료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혹실드의 말대로 글로리아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나름의 분명한 논리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면 자동차는 중국에서 만들고, 대신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기술 투자에 집중하는 편이 모든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76쪽)

"마이클은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이나 게임을 고르는 안목은 있었지만, 마이클의 크로커다일 던디는 소피의 파티 플래닝 서비스하고는 비교도 되지 못했다. 전문가가 달리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시장의 작동 방식이다." (210쪽)


잘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하고, 곤란한 일은 말끔하게 시장의 힘에 맡기자는 주장은 이 거래가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이 믿음을, 책에 나오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일 인도 대리모의 '자궁 임대'(4~5장)로 끌고 가보면, 의뢰인인 팀과 릴리 부부는 "이 인도인 대리모들은 아주 가난합니다. (…) 불쌍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라 반문한다. 이들은 '자유 시장'에서 만난 상대와 적절한 대가로 원만한 관계를 맺고 "홀가분하게 되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서비스 공급자에게는 어떨까. 혹실드가 인도에 가서 만난 대리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그동안 만져볼 수 없었던 큰 수입으로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그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고 고백했다. "자신들의 자궁을 물건을 담는 자루나 여행 가방처럼 몸 밖에 존재하는 단순한 운반 수단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그녀들은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건조한 서술이 가능하기까지의 사정은 제1세계 중산층 부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매끄럽지 못하다.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곱지 않은 시선부터 얼마나 받느냐를 둘러싼 대리모들 간의 시기, 9개월간 함께 한 경험이 주는 '내 아이'라는 의식과 험난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 여성들이 대리모가 되는 이유가 가난 때문이라 할 때, 그들이 "공개된 시장에서 활동하는 자유로운 행위자"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기업들이 더 싸고 온순한 노동력을 추구하고, 소비자들이 더 싼 재화와 서비스를 추구하면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가 약화되는 현실을 감내하는 '바닥으로의 경쟁'이 이 영역에서도 일어나게 된다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서사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싶은데, 이곳이 전 지구적인 불평등한 노동력 이동의 축소 지도인 한편 자신의 일부를 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의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시장 조건에서 거래한다는 환상을 대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 출산을 앞둔 인도의 대리모들. ⓒStephanie Sinclair/Ⅶ Photo, 이매진 제공

물론 아이를 위해 파티 플래너를 고용하는 것과 대리모에게 자궁을 임대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책 전체에 걸쳐 암시되는 문제는 전문가의 케어 안에 있다는 감각과 손쉽게 착장하는 의뢰인이란 정체성이, 그들로 하여금 생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에 있는 듯하다. 사실 멈추는 것은 생각만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퇴화는 물론이고,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여러 의미들을 담고 있는 발걸음, 즉 과정을 경험해 내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는 '시력'도 일부 잃는다. ("제 고용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게 약국에 가서 콘돔을 사오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침실에 가보면 쓰레기통에 사용한 콘돔이 버젓이 버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고용주야말로 '볼 수 없게 된 사람'이다.)

그들이 봉착하는 가장 우스운 아이러니는 그렇게 수많은 것을 아웃소싱해도 결국 제자리라는 사실이다. 바깥일은 남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다양한 전문가를 고용해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 주부 에이프릴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 편히 지내는 사람이 누가 있죠? (…) 저도 그렇지만 집수리, 세탁, 요리, 육아를 아웃소싱하고 직장에 나갔다가 퇴근해서 남편이랑 예쁜 정원에 나가 오붓이 앉아 칵테일 한 잔 마시는 이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1950년대 이야기 아닌가요? 요즘에 이렇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아웃소싱한 인생을 다시 자신의 수중으로 돌려놓을 방편으로 '홈 메이드' 느낌이 나는 순간들을 연출"하는 이들마저 있다. '역자의 말'에 지적된 것처럼 자본주의적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힐링' 서비스를 구매하는 게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책에는 어느 의뢰인이 돌봄 도우미와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은 훈훈한 사례와, 그렇게 '비시장적 가치'가 발현되는 경우 같은 크기로 도사리는 노동 규약 위반의 문제와, 아픈 고모를 돌봐줄 노동력을 구매하려 하는 저자 자신의 시도가 모두 언급된다. 그렇다. 더 이상 '마을의 시대'가 아닌 사회에서 낯선 타인에게 사생활을 아웃소싱하는 사정 모두가 나쁘거나 무용하다는 게 아니다. 흔히 말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바로 그 무수한 경우를 따져보기 위해서라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책을 통해 숨을 고르고 생각을 진행시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뻔한 자본주의 이야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나, 그 이야기를 여러 시점에서 촘촘하게 다시 써보고 있기에 독자의 노동/고용 인생에서 조응하는 단면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실드는 결말에서 우리가 무조건 시장으로 달려 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비시장(공공) 영역의 재건과 관리를 '살짝' 주장하며 책을 맺는다. 여러 기사에서 저자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눈에 띄는데, 책이 대안이나 교훈의 외주자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책에 나오는 직업과 사례들은 결코 놀랍지 않지만 '맺음말'에 등장하는 직업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다. "고객이 지금 마음속으로 절실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결정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원래 경영 쪽에서 물건을 살 때 그게 정말 회사에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재차 점검하려고 고안한 방법이라는데, 확대되어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도록 돕는 심리요법 비슷한 게 된 모양이다. 비공인 자격증도 교재도 유료 서비스도 있는 엄연한 시장이다. 살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만큼 '사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도, 팔다 못해 파는 걸 막게 하는 시장도 생겨버린다는 점에서도, 허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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