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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없는 '악마', 그를 조종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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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없는 '악마', 그를 조종하는 건…

[프레시안 books] 사이먼 배런코언의 <공감 제로>

인디애나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동네 길을 따라 조깅을 하던 소방관의 아내는 운전 실수로 부딪힌 차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길에 쓰러졌다. 차에서 나온 운전자는 잠시 상황을 살펴보다, 부상을 입은 그녀를 길에서 숲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것만으로도 별다른 사건 사고 없는 이 마을에서는 엄청난 일이었을 텐데,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무려 8시간 후에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운전자는, 그녀를 성추행한 다음 가지고 온 나이프로 수십 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인한 뒤 다시 자리를 떠났지만 곧 차량 추적과 수사에 나선 경찰에 의해 붙잡히고 만다. 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사건은 물론 그 마을 뿐 아니라 인디애나 주 전체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 <공감 제로>(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이 책, <공감 제로>(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는 이와 대동소이하게 무시무시한 사건들의 사례가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저자의 일차적인 목적은, 그 동안 전통적인 개념에서 '악'이라고 다루어져 온 인간의 이러한 불가해한 행동들의 신경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공감 제로>는 최근 이 주제와 관련된 신경 과학의 발달을 생각해 볼 때 매우 시의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특히 즐거운 경험이었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산하 국립 정신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에서 내 지도 교수로 있는 분이 이 책에서도 그 연구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제임스 블레어이고, 이런 공감 회로의 손상으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품행 장애(Conduct Disorder)가 내 관심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로 책에서도 잘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공감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 회로에 대한 연구의 최근까지의 성과는 매우 괄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제 공감이라는 행동, 감정적 현상에 관여하는 뇌의 회로, 신경 전달 물질, 유전자,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 작용 등에 대해서 꽤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점들을 여러 사례와 다양한 정신과적 진단을 들어가면서 친절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특히 여러 정신과적 진단들(다양한 성격 장애와 자폐 스펙트럼 환자들)에서 기능 장애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공감 회로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현재까지의 분류적 진단 체계인 정신과 진단명들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최근 미국 국립 보건원 산하 미국 국립 정신 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원장 토머스 인젤 박사가 제시한 연구 도메인 진단 편람(RDoC: Research Domain Criteria)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무척 흥미롭게 생각되었다.

이 진단 시스템은 지금까지 증상들을 묶어서 분류하던 정신과 진단 체계와는 달리, 뇌의 다양한 신경학적 회로의 손상과 기능 장애로 정신과적 질환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신경 과학적 연구와 발견이 정신과 진단 체계의 정교화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최근 인젤 박사가 특히 임상 학계로부터 강력한 반발과 저항을 사고 있는 점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소개하고픈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지점이기도 하다.

책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러한 신경학적 회로의 손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해서, 공감의 손상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뇌 영상 기술과 결합한 다양한 약물 및 행동 치료의 품행 장애에 대한 치료 효과의 연구가, 이러한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다.

다만 저자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인지적 공감 장애'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나 품행 장애 등의 '정서적 공감 장애'와 구분한 것은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지만, 이를 '남성적인 뇌'나 '체계화 기능'과 연결한 '긍정적 공감'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다소 무리한 설명의 확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실제로 며칠 전 제임스 블레어 교수에게 <공감 제로>의 서평을 맡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을 때, 저자의 최근 연구의 문제점을 바로 그 부분에서 지적했다는 점도 밝히고 싶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황금 단지'로 묘사한 건전한 초기 애착 관계가 공감 능력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일견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해가 가는 가설이지만 실제로는 신경 과학적으로 광범위하게 검증된 바가 없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이 가설은 정치-사회적으로도 조심스러운 것이, 범죄자나 행동 장애가 있는 환자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그 문제를 – 명확한 과학적 증거 없이 – 기인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살벌하고 자기 본위적이고 이기적인 세태와 사회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공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류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설득력 있고 시의 적절하다. 그뿐 아니라 어쩌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사례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부가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나와 절친한 동료가 법 정신 의학 감정을 맡기도 했던 이 사례는, 사실 그 나이까지 한 번도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않은 (못한) 심각한 자폐증 사례로 결론이 났다.

운전자는 정말 실수로 소방관의 아내를 차로 치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이나 괴로움에 공감하기는커녕 그녀를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다른 생물이나 사물과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야말로 책의 제목대로 '공감 제로'인 사례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조언을 요청하기 위해 8시간 동안 부모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하던 그는, 자신이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는 정도의 인식은 있었다. 그리하여 그 자신만의 논리대로 '증거를 처리하기 위해' 8시간 만에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갔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숲 속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8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녀의 고통과 공포에는 완전히 무지한 채로. 왜 그녀를 성추행했는가 물어봤을 때 그의 대답은, '어차피 버려질 건데 왜 기회를 낭비해야 하는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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