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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이웃치곤 더러운 것들이다!

[親Book]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해방 일기' 작업을 위해 이 책을 증정해준 민음사가 고맙다. 전후 일본의 상황도 살펴볼 필요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더 급하게 보이는 주제가 많기 때문에 증정 받지 않았다면 언제 도서관 가서 어떤 책인가 봐야지, 하고 지금까지도 미루고 있었기 쉽다. 얼마나 참고 가치가 큰 책인지도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해방 공간의 상황을 살핌에 있어서 외적 조건에 대한 관심은 냉전으로 치달아가는 미소 관계에 집중되어 왔다. 물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배경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친 집중은 시야에 제약을 준다.

당시 한국인의 욕구가 외적 조건과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유기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제약을 느낀다. 한국인의 욕구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몇 개의 구호로 포괄되지 않는 복잡한 것이었는데, 미소 관계라는 하나의 거울만으로는 그 다양한 내용을 제대로 비쳐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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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를 껴안고>(존 다우어 지음, 최은석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해방 시점까지 조선은 일본 제국의 일부분이었고 조선인은 천황의 신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선언은 조선인이 새로운 정체성을 세워 나갈 출발점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민'에서 '시민'으로의 진화가 종전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군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천황의 항복은 일본인에게도 해방이었다.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해방되면서 미군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38선 이남의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겪은 조건이었다. 천황의 신민 노릇을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것도 두 집단의 공통된 과제였다. 궁극적 과제와 일차적 조건을 공유한다는 점은 두 집단의 반응을 비교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된다.

일본이 지배국이고 조선이 피지배국이었으며 조선에는 38선 이북에 소련군이 진주했다는 것이 두 집단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였다. 이 차이가 남반부 조선인의 상황 인식을 일본인보다 복잡하게 했다. 첫째, 조선인은 자신이 패전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둘째, 북반부의 소련군 존재가 상황을 좌우하는 하나의 큰 변수로 존재했다.

일본인은 스스로 패전국임을 이의 없이 인정했고 그 대상을 미국으로 명확하게 인식했다. 따져보면 이 점에서 남반부 조선인도 일본인과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이었는데도 그 인식은 일본인처럼 명확하지 못했다. 이 차이가 조선인의 반응을 상당히 굴절, 교란시켰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일본인의 반응을 검토하면, 패전 사회 반응의 기본 성격을 살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한 가지 전후 일본의 상황에서 한국 현대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국교 단절 상태에 있기는 했어도, 일본의 존재는 한국의 상황을 좌우하는 큰 변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해방 공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대한 정책이 대일 정책에 종속하는 측면이 컸다. 이 책에도 일본 재무장 등 이 방향의 시각이 얼마간 담겨 있지만, '해방'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으로부터 비슷한 상황 아래 조선인의 반응을 음미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소득이다.

통상적 역사서를 뛰어넘는 이 책의 장점 두 가지가 크게 느껴진다. 그 하나는 내부적 시각과 외부적 시각이 효과적으로 엇갈린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인이며, 스스로 외부인의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가 외부인의 시각을 가지고 추적하는 대상은 내부인의 경험이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패전과 점령을 일본인의 경험으로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우리는 사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산산조각 난 땅,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산산조각 난 제국, 그리고 무참히 박살난 꿈은 우리 시대가 공유하는 주된 화제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17~18쪽)

저자는 모든 현대인이 '역사의 패배자'로서 입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서 내부인과 외부인이 만나는 것이다. 공유하는 입장을 확인하는 것은 외부자의 몫이다. 설령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입장의 공유를 확인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외부자의 자세다.

또 하나 장점은 흐름의 표면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와 사회사의 관점을 통해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독자의 감정 이입을 쉽게 하는 읽을거리로서의 가치도 이 장점에서 나오는 것이거니와, 변화의 보다 본질적 요소들을 잘 부각시키는 관점이다. 같은 시기 조선인의 반응을 미루어 살필 수 있는 근거도 이 장점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본 현대사에 대한 다우어의 관점 중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패전이 일본에 가져온 변화를 통상적 인식보다 작게 보는 것이다. 그는 192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관료제적 자본주의가 일본 사회를 주도한 "하나의 큰 순환 과정"을 주목한다(730쪽). 전쟁과 패전을 겪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기본 성격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1975년 한 저널리스트의 "일본의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느냐?" 질문에 대한 쇼와 일왕의 대답이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전쟁이 끝나고 국민들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전전과 전후에 달라진 것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727쪽)

패전이 일본 사회와 국가에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면도 있었고, 거시적으로는 변하지 않은 면에서 더 큰 중요성을 찾을 수도 있다. 항복 선언 당시에는 거의 모든 일본인이 천지가 뒤집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다우어의 추적을 따라가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다수 일본인은 종래의 세계관과 태도에 최소한의 변화만으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은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이 측면을 이해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당시에도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식민 지배의 종결'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일본인이 '점령'이라는 7년간의 '신식민주의 지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 한국인은 카이로 선언의 독립 약속에 매달려 미군정의 횡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맥아더가 1951년 4월 연합군사령관에서 해임된 후 5월 5일 상원 청문회의 답변 중 일본인의 '맥아더 신앙'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아래 대목이 흥미롭다.

글쎄요, 독일과 일본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전혀 다릅니다. 독일인은 성숙한 인종이었습니다. 만일 앵글로색슨이 인간 발달 과정상 과학, 예술, 종교, 문화에서 마흔다섯 살 정도의 연령대라고 하면 독일인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인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근대 문명의 척도로 말하자면 우리가 마흔다섯 살 정도의 성숙한 연령에 있는 것과 비교해서 열두 살 소년 정도일까요?

지도를 받는 기간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일본인은 새로운 규범이나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이 되는 사고를 심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와 같이 유연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독일인은 우리와 비슷한 정도로 성숙한 연령에 도달해 있습니다. 독일인이 근대적 도덕을 포기하거나 국제 규범을 어긴다면 거기에는 그들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독일인이 세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 아닙니다. 혹은 일본인처럼 어쩌다 보니 엎어지게 된 것도 아닙니다. 독일인은 스스로의 군사력을 고려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스스로 원하는 권력과 경제 패권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정책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719~720쪽)

독일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이렇게 파악한 맥아더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인식했을까? 1853년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 이래 일본은 미국에게 언제나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나라였다. 태평양전쟁을 통해 그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슈퍼 파워로 올라선 미국의 세계 경영에서 일본은 동아시아 방면의 가장 중요한 지렛대로 떠올라 있었다. 그래서 한국 남반부 점령은 일본 점령의 부산물일 뿐이었고, "한반도 남부 및 일본 남단(오키나와 및 류큐 열도)의 미군정은 오로지 무자비한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만 그 지역들을 바라볼 뿐"(21쪽)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의식적으로 부각시킨 논점은 아니지만, 읽는 동안 수시로 '미국 예외주의와 일본 예외주의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내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참 이웃치고 더러운 이웃들 골라서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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