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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믿을만한 금융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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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믿을만한 금융사'는 없다

[재테크 신화 ⑤]그림자 금융, 당신의 돈을 노린다

은행은 태생부터 정부가 허가한 '합법적 사기'다. 예금자의 돈을 극히 일부만 지급에 대비해 보유하고 나머지는 밖으로 돌리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예금 인출이 한꺼번에 몰리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다. 그래도 은행은 평소에 각종 규제와 감시를 받는다. 또 정부가 뒤에 있기에 은행은 쉽게 파산하지도 않고, 만일의 경우 기본적인 예금 상품 정도는 원리금을 일정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합법적 사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대출을 해서 이자 차익을 얻는 식의 전통적인 금융상품이 아니라 금융당국은 물론 판매하는 금융사도 리스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복잡한 금융상품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금융'이다. '그림자 금융'은 '믿을 만한 금융사'가 왜 점점 존재하기 어려워지는지 설명해준다. '그림자 금융'의 실체를 알고나면, 앞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믿을 만한 금융사'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는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편집자>


▲ "당신의 돈을 안전하게 굴려준다"면서 비은행 금융사들이 투자를 권유하면, 그들을 믿기 전에 '그림자 금융'을 생각해보라. ⓒ연합뉴스


얼마나 위험한지 파는 자들도 모르는 금융상품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림자 금융'이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세계적인 대형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를 하루아침에 파산시킬 정도로 '그림자 금융'이 위력을 발휘했던 배경에는 부채담보부증권(CDO)라는 신종 금융상품이 있었다. CDO는 바로 전세계 여러 기관투자자와 거물투자자들도 호되게 당하게 만든 '그림자 금융'의 대표 상품이었다.

CDO는 대출 상환 능력이 의심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담보채권들을 '고도의 위험분산 기법'으로 묶어서 가장 안전한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꿈의 상품'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세계적인 신용평가업체들까지 가담한 사기상품으로 드러났다.

저금리 시대에 전통적인 예대마진 식의 영업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금융사들의 탐욕이 반영된 이런 상품들은 금융당국의 규제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전통적인 상업은행보다는 미국의 투자은행 등 비은행 금융사들이 주로 팔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금융상품은 여러 가지 기초 상품과 연결된 일종의 네트워크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금융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마구 팔려나가다가 어느 순간 '약한 고리'가 갑자기 끊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몰아친다.

5만여 명의 개인투자자에게 1조 5000억 원이 넘는 피해를 안겨줬다는 '동양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그림자 금융'이 본격 거론되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지난 10월 18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동양 사태에서 가장 문제가 된 금융상품이 기업어음(CP)"이라면서 "대기업 집단의 그림자 금융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그림자 금융은 국내외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라면서 "우리 경제의 '꼬리 위험(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에 해당하는 만큼 전반적인 검토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벗어난 비은행 금융사들의 금융 행위

아예 '동양 사태'의 본질은 '그림자 금융'의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익연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동양 사태는 은행권에서 자금조달이 막힌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매개로 대규모로 자금을 모은 것"이라면서 "미국에서는 그림자 금융이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해 금융위기를 불러왔지만, 동양 사태는 주로 개인이 피해자여서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고 사회문제화된 것이 차이점"이라는 진단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금융권에서는 동양 사태를 '그림자 금융'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보는 시각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또 '그림자 금융'은 금융당국이 금융업계와 한통속이 아니냐는 의혹이 집중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은행이 정부가 허가한 '합법적 사기'라면 '그림자 금융'은 정부가 '눈 감아주는' 사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의 돈을 안전하게 운용해서 수익을 올려주겠다"고 비은행 금융사들이 투자를 권유할 때, 내 돈이 실제로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고 있는가? 그게 바로 '그림자 금융' 상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동양그룹 같은 대기업이 은행권에서 자금을 조달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그룹 내에 '사금고' 역할에 동원할 수 있는 금융계열사를 통해 시장에서 직접 돈을 끌어들이는 것이다.실제로 동양그룹은 동양증권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기업어음(CP)을 판매했다.

'그림자 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는 언제나 늑장이다. 금감원은 "동양그룹은 CP 규제가 지난 5월 시행되자 전자단기사채를 대거 발행해 피해가고 대부업체를 통해 계열사간 자금중개를 하는 등 그림자금융의 새로운 수법들이 나타났다"면서 "제도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단기사채는 실물 형태의 CP를 대체하기 위한 일종의 '전자CP'로 1억 원 단위로 분할유통이 가능해 급속히 많은 자금을 끌어들인 통로가 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담보' 있다는 채권도 조심해야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도 개인투자자들을 울린 파생상품으로 역시 그림자 금융상품의 일종이다. 동양증권은 다른 계열사는 몰라도 우량기업인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한 것이니 절대 안전하다고 불과 7월부터 9월까지 두 달 사이에 개인투자자들을 설득해 1570억 원어치나 팔았는데, 바로 다음달 1일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에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눈을 감아주는 것인지 편을 드는 것인지 늑장을 부리는 동안, 미국 등 금융선진국을 중심으로 '그림자 금융'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금융당국이 앞장서서 전통적인 은행 중심의 금융에서 탈피해 다양한 기법을 허용해 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이런 논리가 국내에도 퍼지고 있다.

G20 정상회의 산하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14일(현지시간)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7위다. GDP보다 더 많다. 무엇보다 증가율이 10%를 넘으면서 한국의 그림자 금융 확대 속도는 2011년까지 14위권에서 지난해 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그림자 금융은 1411조 원 규모로 2011년 말과 비교해 143조 원 늘어났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통계).

그림자 금융,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폭증

'전세계 그림자금융 모니터링'이라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그림자금융 규모가 지난해 71조 달러로 전년에 비해 5조 달러 늘어났다. 그림자 금융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탄받았는데도 사실상 통제불능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2008년 이전 그림자 금융 규모는 50조 달러 정도로 추정됐었다.

FSB는 지난해 글로벌 금융자산에서 그림자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달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17%를 넘어섰다고 보고했다. 2011년 111%에서 6% 포인트 증가한 셈이다. 특히 중국은 1년만에 42%나 급증하고, 아르헨티나·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러시아 등이 2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FSB는 "신흥국에서 그림자금융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면서 "그림자금융이 은행권 및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림자 금융'은 또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림자 금융을 취급하는 금융사들이 고수익을 무기 삼아 고객을 늘려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글로벌 차원에서는 감독당국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헤지펀드 등의 '사적 금융조직'들이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무리하게 차입해 위험 투자를 반복하고 있는 형태의 '그림자 금융'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그림자금융은 규모와 부실 여부 자체를 파악하기 힘든 반면, 만일의 경우 곧바로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금융'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단연 미국으로 전체의 37%인 27조 달러에 달했다.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이 22조달러, 영국이 9조 달러, 일본이 4조 달러로 뒤를 이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각 155%, 468%에 달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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