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태 뒷처리에 직접 나선 이후 전개되는 상황만 봐도 핵발전은 "배 보다 배꼽이 큰" 출구전략이 요구되는 기이한 발전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을 발표에 따르면, 폐로가 결정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 중 4호기 원자로의 핵연료 저장수조에서 핵연료를 밖으로 빼내는 작업이 18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4호기 수조에는 현재 사용 후 핵연료봉 1331개와 미사용 핵연료봉 202개 등 모두 1533개가 있다. 이번 핵연료 반출은 향후 30∼40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과정의 출발에 해당한다.
▲ 후쿠시마 사태 이후 방사능 오염수를 임시로 탱크에 저장하고 있지만, 이미 지하수를 통해 엄청난 오염수들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연합뉴스 |
'후쿠시마 아마겟돈' 공포 부른 핵연료봉 이전 개시
핵연료봉을 이전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 자체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사고 이후 처음이다. 4호기의 수조에서 핵연료를 모두 인출해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공용수조로 옮기는 데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도쿄전력은 보고 있다.
제1원전 4호기의 수조에 담긴 핵연료봉들은 '후쿠시마 아마겟돈' 시나리오의 근거로 거론돼 왔다. 후쿠시마 사태 당시 수소 폭발로 핵연료 저장수조를 보호하는 건물이 파괴되고 지지기반이 부실해져서, 지진 등 2차 충격을 받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임계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핵연료봉 이전 작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핵연료봉 반출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반출 과정에서 핵연료봉을 떨어뜨리거나 다른 연료봉과 충돌할 경우 내부에 들어있는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에, 작업일정을 지키기보다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원자로의 설계수명이 30년 정도인데 이처럼 핵연료봉 반출 등 폐로 과정만 30~40년이 걸리며, 최소한 원자로 1기의 폐로 비용은 1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 폐로 계획과 비용 사실상 무대책
국내에서는 폐로 비용도 사실상 책정이 안된 채 이미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를 연장가동 하고 있는 중이며, 산업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국내 원전은 총 12기에 달한다.
폐로 비용과 별도로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현재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국내 총 폐연료봉은 1700여 만개로 오는 2016년이면 각 원전에서 보관 중인 핵폐기물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르기 때문에 시급히 사용후핵연료를 의미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수준은 "논의를 해보자"는 위원회 구성이 전부다.
마침내 지난 10월 30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식을 가졌지만, 그나마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자격 없는 위원장이 임명됐다면서 참석을 거부해 처음부터 파행을 겪었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제대로 '논의'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또한 원전비리 사태가 보여주듯 국내 원전도 후쿠시마처럼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사태의 심각성은 일반 국민은 제대로 알기도 힘든 채 악화될 수 있다는 것도 후쿠시마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격납용기에서 오염수 콸콸"…보수 작업 엄두 못내
일본 정부가 사태 전후로 보여준 대책은 사실상 무능은 기본이고 은폐와 거짓말로 일관해왔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제사회에 대놓고 "방사능 오염수가 원전 항만 내에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한 발언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지난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의 원자로 격납용기에 구멍이 뚫려 오염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격납용기는 원자로를 감싸고 있는 이중 안전 구조물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문제의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진행돼 격납용기까지 심하게 손상됐고,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들이붓고 있는 냉각수가 그대로 오염수로 변해 유출되고 있다고 추정해 왔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이런 상황을 부정하다가 원전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처음으로 "오염수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격납용기가 손상된 것이 확인됐다는 것은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원자로에 투입된 물이 바깥으로 모두 빠져나가 건물 지하로 흘러들며 고농도 오염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추정이 입증됐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격납용기를 보수할 수 있는지도 의문인 상태다. 유출 지점의 방사선량은 자연방사선량(1밀리시버트)의 900∼1800배인 시간당 0.9~1.8시버트(㏜)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원이 근처에 있으면 몇 시간만에 사망할 정도의 방사능이다.
유출 지점도 원격조종 카메라가 달린 로봇을 투입해 격납용기의 연결 배관 2곳에서 오염수가 새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고 누수 지점을 특정하지도 못한 상태다.
도쿄전력은 격납용기를 보수해 물에 채운 뒤 수중에서 핵연료를 꺼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나, 작업요원을 동원해 격납용기를 보수하는 방안이 실행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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