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프랑스와 멕시코에 노골적인 통신 감청을 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스노든 파일' 파문이 다시 세계를 흔들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강한 반감을 표시한데다 멕시코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도청이 조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우방들과 해당 사안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세계 각국의 반감을 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전 미국 방산업체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에게서 미국 첩보망에 대한 기밀을 대량 넘겨받은 언론인 글랜 그린월드는 대형 폭로 보도를 추가 예고했다.
오바마, 올랑드의 직접 항의전화에 진땀
오바마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감청 파문에 대해 해명하며 '강한 반감'(deep disapproval)이라는 항의를 들어야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 행위는 프랑스 시민의 사생활 침해인 만큼 친구나 우방 사이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이 같은 뜻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프랑스 AFP통신이 전했다.
미 백악관의 제이 카니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언론 폭로 중 일부는 우리의 (첩보) 활동을 왜곡했다"면서도 "다른 폭로는 우방 입장에서 미국 첩보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정당한 질문을 제기했다"고 문제를 일부 시인했다.
카니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정보수집 방식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미국·프랑스 정상이 외교채널을 통해 이번 사안(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한 논의를 계속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린월드와 함께 전 미국 방산업체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첩보 기밀문서를 분석해 'NSA가 프랑스에서 지난해 12월10일부터 약 한 달 사이 7천30만 건의 전화를 녹음했다'고 보도했다
멕시코의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인 2010년 5월 미국 첩보당국이 자신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개인적 차원을 떠나 조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스노든 파일을 인용해 NSA가 칼데론 당시 대통령의 이메일 서버와 엔리케 페냐 니에토 현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를 뒤져 국가정보를 수집했다고 20일 폭로했다.
그린월드 "르몽드급 대형폭로 또 나와"
현재 러시아에 임시 망명 중인 스노든은 미국이 민간인과 테러 용의자, 적성국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마구 전화·인터넷 정보를 수집한다는 사실을 폭로해 올해 6월부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마저 감청 표적이 됐다는 폭로 내용을 접한 유럽의회는 21일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전송하는 과정에 대해 규제 강화안을 통과시켰다.
이 '데이터 보호 규약' 개정안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의 인터넷 업체들이 유럽 당국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사생활 정보를 유출시키면 최대 1억 유로(약 1천452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스노든 파일 특종의 주인공인 그린월드는 최근 르몽드 기사에 맞먹는 비중의 폭로 기사를 대거 추가로 내놓겠다고 21일 밝혔다.
그린월드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이트리스와 함께 세계에서 스노든 파일 2만여건을 전량 보유한 유일한 언론인이다.
그는 이날 미국 기자들에게 전달한 비디오 메시지에서 공익에 부합하는 스노든 파일은 모두 기사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태생인 그린월드는 현재 고국과 영국 첩보당국의 추격을 피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거주하고 있다.
같은 해명 반복…'美통신망 못 믿어' 반응도
미국 당국은 지금껏 '감청 일부 시인'과 '정당성 호소'라는 태도를 되풀이해 현지 시민 사회 일각에서는 '해결 의지 자체가 없다'는 빈축마저 나온다.
대규모 통신감시가 국내외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對)테러 감시 등의 감청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중동 회담 때문에 21일 파리를 찾은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이번 감청 파문과 관련해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채 '프랑스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우방 중 하나다. 각국과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케리 국무장관은 "지금 세상에서 미국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세력이 여기저기에 너무 많아 안보 업무는 불행히도 24시간, 365일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인 다이앤 페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캘리포니아)도 21일 USA투데이 기고문에서 "NSA의 (감청) 업무는 미국과 동맹국을 노린 테러 음모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NSA의 전화 감시는 통화내용 녹음도 아닌 만큼 감시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잇따른 감청 파문은 구글, 페이스북, 야후 등 미국의 인터넷 업체들의 신뢰도도 끌어내렸다. 스노든 폭로에 따르면 이 업체들은 비공개 법원의 영장만 떨어지면 즉각 서버를 열어 이메일, 메시지, 공유사진, 연락처 등 고객 정보를 첩보 당국에 넘겨줘야 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도이치텔레콤 등 독일의 IT(정보통신)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틈타 '독일산(Made in Germany) 이메일은 안전하다'면서 역발상(逆發想) 마케팅을 벌인다고 21일 보도했다. 독일은 정보 보호 규정이 미국보다 훨씬 엄격해 첩보기관이 사생활 정보를 엿볼 위험성이 없다는 점을 '판촉 포인트'로 내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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