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한국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목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인민일보>는 4일 3면 국제포럼 코너에 중국 국무원의 싱크탱크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조선반도 연구실의 천샹양(陳向陽) 연구원이 쓴 '냉정과 자제가 더 요구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입장을 드러내는 <인민일보>가 그동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직접적인 주장을 피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기고문이 나온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글은 전문가들의 말, 러시아의 견해 등을 소개하며 '간접화법'을 쓰고 있지만 중국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기고문에서 천 연구원은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한국 내외의 불신 사례를 소개하고 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또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의 대북 강경 조치들이 한미동맹 강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위축시키고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을 하락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안함 '라쇼몽' 된다면 한국 명예 훼손"
천샹양 연구원은 기고문 첫머리에서 한국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한·미가 최근 동해에서 나흘간 군사훈련을 한데 이어 이번 달 16~26일 다시 합동훈련을 하고 연말까지 매달 훈련을 한다고 한다"고 운을 뗀 뒤 "한국은 이 훈련의 주목적이 천안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고 조선(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사실상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지난 5월 20일 조사 결과에 대해 많은 의혹의 목소리가 있었다"면서 "6월 말 합조단은 자신들이 발표했던 북한 어뢰의 도면에 잘못이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여론은 천안함 사건이 일종의 '라쇼몽(羅生門)' 사건이 된다면 한국 정부에도 큰 충격이 됨은 물론 한국의 명예를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쇼몽이란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쓴 단편소설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사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말은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세계무대에서 유명해진 뒤로부터 '진실은 없고 단편적 주장이 난무하는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천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이러한 우려 때문에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러시아는 '북한의 어뢰 공격설은 천안함 사건의 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은 천안함에 대한 공격 행위만을 규탄했을 뿐 결코 북한을 특정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천안함 사건을 한국 정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미 훈련, 천안함에 쏠린 시선 분산 위해서?
천 연구원은 이어 "지난달 20일 한미 양국은 합동 군사훈련 일정을 확정했고, 미국은 핵확산 등 불법 활동에 연루되는 북한의 자금줄을 겨냥한 대북 추가 제재 조치를 선언했다"면서 한국 언론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한·미 양국의 불만 표시라고 분석한다고 소개했다. 또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목적과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동북아 문제 전문가들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천안함 사건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훈련 목적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그러나 (전문가들은) 훈련이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 연구원은 아울러 지난달 31일 북한이 한미 합동훈련에 대해 '제2의 한국전쟁 전주곡'으로 한반도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몰아가는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한국의 몇몇 분석가들은 이러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한미동맹 강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위축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에 있어서 천안함 사건과 그에 따른 영향을 관리하는 것은 국내 정치와 관계된다며 정부가 6.2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는 분석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경제 문제에 대한 집중으로 집권에 성공했다면서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전임 두 대통령이 취했던 햇볕정책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엔 경제 문제보다 안보 문제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됐고 따라서 북한에 대해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펴게 됐다고 평가했다.
천 연구원은 북한 선박의 한국 해역 출입 금지 조치 등 이른바 '5.24 조치'의 내용을 나열하면서 "7월 28일 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해 여당은 다시 주도권을 잡았지만 만일 한미 군사훈련을 통해 한반도와 지역 정세가 악화되면 한국 정부는 다시 부진한 지지율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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