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우리말에는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들 합니다. '올 래(來)' 자와 '날 일(日)' 자가 합쳐진 말 말고는 따로 이것을 바꾸어 쓸 수 있는 우리의 본딧말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레'나 '글피' 같은 내일 뒤에 오는 날을 가리키는 말은 있는데, 오늘과 모레 사이에 있는 날을 표현하는 단어가 좀체 찾아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아침 들판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사달의 나라"가 아침 해가 뜨는 기쁨을 나라 이름에까지 뚜렷이 아로 새긴 바가 있는데, 그렇게 해가 저물고 뜨면서 다가오게 되는 때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내일'이라는 한자말이 단지 외래어가 아닌, 점령군이 되어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그만 축출해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말을 잘 살펴보면 그 내일을 떠올리게 하는 말의 자취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제', '그제' 하면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 때를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가령 "어버이 살아 실 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라는 말에서도 "살아 실 제"의 "제"가 등장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여 '제'란 '때'를 뜻하는 우리의 본딧말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 '제'에 거리의 멀고 가까운 것을 말하는 '이', '그', '저'를 붙이면 그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이 됩니다. '이제'는 지금이라는 뜻이고, '그제'는 어제보다 앞선 지나간 때이며, "이제나 저제나"에서 '저제'는 '그제'와 대칭되는 다가올 때라는 말이 됩니다. "이제나 저제나"는 지금이나 또는 지금을 막 지나서 오는 시간의 때이거나 라는 뜻임은 다 아는 바입니다. 어느 때인가를 묻는 "언제?"에도 이 '제'가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의 어원은 "모두 또는 하나로 완전한"을 의미하는 아래 아를 붙인 " "에 "날" 합치거나 또는 "오다"의 과거형 "온"에 "날"이 결합해서 "온날"또는 "오날"이 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한때는 연설 투의 말에 장황하게 표현하느라고 "오날날"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오늘은 이미 와서 하나로 이루어진 시간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이제의 그 다음인 '저제'나 또는 '오다'의 미래형 '올'을 붙여 오늘의 형식을 본뜬 '올날'이나 때를 의미하는 제를 붙여 '올제'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림유사(鷄林類事)>라는 책 혹시 아십니까? 이 책은 우리 고어연구에 중요한 문헌입니다. 이 책은 11세기 경 중국 송나라의 손목(孫穆)이라는 학자이자 관리가 고려에 머물면서 고려시대에 쓰인 말 300여 개 가량을 모아 설명해놓은 기록입니다.
놀랍게도 이 <계림유사(鷄林類事)>에 "명일왈할제(明日曰轄載)", 다시 말해서 "내일은 <할제>라고 일컫는다"라고 증언하는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할제"가 "올제"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발음은 "올째") 이 말을 어느 결엔가 쓰지 않게 되면서 본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만 사라진 말이 되고 말았지만, 우리가 고려시대에 분명히 사용했던 말인 것입니다. 이 '올제'가 얼핏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올해', '올 겨울' 등에 남아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낡고 헐어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고물이나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을 "옛날 고릿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가만히 풀면, "고려 쩍", "고려 때"의 물건이나 사건 아니냐 하는, 중국 문명이 위력을 떨쳤던 조선조의 고려 폄하 인식이 이 말에 나타나 있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이 '올제'라는 말도 '내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6자회담이 곧 열리게 됩니다. 우리의 '올제'는 이제 진정한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올제>가 누려야 할 권리와 지위를 다른 누구의 힘으로 앗길 수는 없는 겁니다. 코리아의 원어 고려는 "옛날 고릿짝"으로 모멸되어야 할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다가오는 올제의 때에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우리의 아침 벌판의 나라 '아사달'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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