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출근길의 청두 시민. 쓰촨은 서부대개발의 관문이고, 청두는 쓰촨의 중심이다. 현재 이곳에 총영사관이 있는 나라로는 미국이 유일하지만 올해 말에는 우리나라도 총영사관을 둘 예정이다.
***세 상인의 상술**
중국에는 ‘다자란(大柵欄)의 세 상인’이라는 얘기가 있다.
쓰촨ㆍ광둥ㆍ저장 세 지역 출신 상인이 베이징의 유명한 상가인 다자란에서 나란히 약종상을 열었다. 성실하고 정직하기로 소문난 쓰촨상인은 전적으로 좋은 약재만 구입하여 팔려고 했다. 구입한 약재나 약품은 모두 최상급이었다. 판매가는 구입원가에 약간의 비용과 이윤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당연히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장사였다.
순종 상인종(商人種)이라고 정평이 난 광둥상인은 약재의 품질이 좋든 말든 무조건 사들였다. 가격의 높낮이는 고객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맞추어 팔면 된다고 생각했다. 품질이 좋고 때깔이 고운 약재를 사려는 돈 많은 손님들에게는 가격을 높게 붙였고, 가난한 손님들에게는 품질이 떨어지는 약재를 헐값에 팔았다.
또한 중국상인의 꽃이라 불리는 저장상인은 좋은 약재만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품질의 약재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품질 높은 약재는 한푼도 깎아주지 않는 이른바 ‘긍지가격'전략을 폈고, 중ㆍ저질의 약재는 ‘박리다매'전략을 적용했다. 손님이 좀더 달라고 하면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더 챙겨주었다. 사람들은 뒤질세라 저장상인의 점포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일년도 안 되어 저장상인은 큰 부자가 되었다.
광둥상인도 저장상인에 비해 단골은 좀 적었지만, 2년쯤 후에는 차츰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약재만을 고집한 쓰촨상인의 점포에는 대낮에도 캄캄한 밤중처럼 사람들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게는 파리를 날렸고 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광둥상인과 저장상인의 점포가 고객들에게 환영을 받은 이유는, 손님이 보다 값싼 상품을 찾는 심리상태를 꿰뚫어 보고 수요의 다양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지불능력이 약한 경우는 물건값이 비싸지면 손님의 발길은 뜸해지는 법이고,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값이 싸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이치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그들은 상품의 고급ㆍ중급ㆍ저급을 모두 갖추어 놓고, 손님들이 마음껏, 능력껏 골라잡게 했다. 그러니 자연히 환영을 받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두 상인 중에서도 특히 저장상인이 가장 먼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비결은 손님들이 보다 싸고 좋은 상품을 좀더 대량으로 구입하고 싶은 구매욕구를 자극한 점이다. 반면에 쓰촨상인은 얼핏보면 성실하고 공평하고 고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지만 고객의 다양화와 소비자들의 염가 추구 심리를 몰랐다.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가격할인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것에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으니, 결국 손님이 외면하는 점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옆집 두 상인의 점포가 날로 번성해지는 것을 보고 부러워만 해야 했다.
이처럼 쓰촨상인은 광둥상인이나 저장상인에 비하면 상업에 대한 의식도 열성도 뒤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우량예(五糧液)와 졘난춘(劍南春) 등 중국 최고의 명주를 만들어내는 쓰촨은 주당의 본산지일 뿐이지 큰부자를 배출하는 고장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여전한 평판'이다. 개혁개방시대 중국이 급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평판은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 ‘중국진출 주요 고려사항'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쓰촨 진출에 성공하려면 이러한 쓰촨상인의 취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단일 브랜드를 고수하는 것은 중국 어디에서도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변했다. 특히 쓰촨에서는 상품가격에 적절한 융통성을 가미하고, 브랜드와 홍보 채널의 다양화에 더욱 중점을 두는 차별화 전략이 요구된다.
이쯤에서 잠시 우리는 덩샤오핑의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기만 하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명언을 되새겨 보게 된다. 원래 이 말은 쓰촨 지역에 널리 전해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하나다. 실질적이고 실효성을 중시하는 쓰촨상인의 가치관을 잘 대변해주는 격언이기도 하다.
2000년 중국질량검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27개 성 가운데 쓰촨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가짜와 불량품의 비율이 제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쓰촨 생산의 음료수는 15퍼센트, 가전제품은 9퍼센트만이 가짜거나 불량품이었다. 전국 평균 각각 43퍼센트와 17퍼센트에 비교에 본다면 아주 탁월한 성적이다. 행여 누군가 쓰촨상인을 그저 성실ㆍ정직하고 과묵하기만 했지 장사에는 젬병이라고 얕잡아보았다가는 큰코 다칠지 모른다. 그들은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특유의 상술을 구사한다. 사실 쓰촨요리가 무작정 매운 것만은 아니다. 매운맛이 단연코 으뜸이지만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달고 시큼하며, 고소하고 쓰고, 향기롭고 짭짤한 맛이 어우러진다.
쓰촨상인은 말 많고 실속 없는 베이징상인과는 사뭇 다른, 과묵하지만 의리심이 강하다. 배신을 당하면 돌연 난폭해지는 기질도 있다. 입이 무거운 그들은 협상할 때 자신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게 필요한 정보를 상대방보다 먼저 내놓지 않는 편이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경솔하게 먼저 해서 얼치기 상인 취급을 받는 일이 없게 각별히 주의한다. 또한 평소에도 고분고분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어서 지나친 감이 들 만큼 순종형이다. 그러나 한번 성이 나면 걷잡을 수 없는 기질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진 10-2> 2003년 8월 27일, 쓰촨 청두 공항에 도착하고 있는 인텔의 크레이그 베럿 회장(CEO).
***용의 꼬리, 쓰촨의 힘**
중국사람들은 창장(長江)을 용에 비유하면서, 상하이가 ‘용의 머리’라면 쓰촨(충칭 포함)은 ‘용의 꼬리'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업체 인텔은 상하이 조립 테스트 공장에 5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 8월 27일 3억 7천5백만 달러를 투자해 쓰촨 청두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발표했다.
인텔이 용의 꼬리 쓰촨에 공장을 짓기로 한 까닭은 무엇일까?
쓰촨 방문만 벌써 세번째인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회장(CEO)은 이날 청두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쓰촨은
숙련된 인력자원이 많고 물류수송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한 뜻을 밝혔다.
용의 힘은 꼬리에서 나온다고 했다. 중국의 힘도 용의 꼬리 쓰촨에서 나오는 것일까. 쓰촨은 예나 지금이나 양귀비와 측천무후, 이태백과 덩샤오핑 등 절세가인과 영웅호걸들을 많이 배출해왔다. 용의 꼬리 쓰촨은 개혁개방시대인 오늘날에도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가장 풍부하게 보유한 성(省)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쓰촨의 임금이 얼마나 싸냐 하면 동일 직종의 임금수준이 상하이나 선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다. 또한 값싼 노동 인력만 풍부한 게 아니다. 쓰촨은 대졸 이상의 학력자와 과학기술 인력의 비율이 높기로 중국 27성(자치구 포함)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쓰촨의 각급 연구소와 개발연구기관의 수는 1,625개나 되고 과학기술발명품과 각종 특허신안출원이 해마다 수만 건에 이른다. 그러나 쓰촨 내부에서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성과를 진정한 현실 생산력으로 바꾼 예는 매우 드물다.
그들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도 맨밥만 먹는 꼴이다.
설령 과학기술의 성과를 실제 생산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상품화하는 데까지는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렸고, 결국 시장을 따라잡지 못한 채 반거들충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례로 쓰촨 남서부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어느 회사는 1980년, 당시로서는 경쟁력이 엄청난 신제품 하나를 발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고서와 예산심사, 허가 등 각종 복잡하고 미묘한 절차를 거치는 데 장장 5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85년 신제품을 시장에 처음 내놓았을 때, 이미 그보다 더 값싸고 좋은 광둥의 제품이 전국을 휩쓴 뒤였다.
쓰촨의 국내기업은 지금까지 고급과학기술 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과학기술 인력을 한직으로 배치하여 낭비하는 현상은 놀라울 만큼 심각했다. 약 50퍼센트의 과학기술 인력이 외지나 외국으로 빠져나갔으며 30퍼센트는 사장되어버렸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쓰촨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풍부한 인력자원과 잠재력, 광대한 내수시장의 보고' 쓰촨은 서부대개발 정책을 발표한 이후 최근 몇 년 간 전국 평균성장률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과학기술 인력의 성(省)이라는 자원을 바탕으로 서부지역 첨단산업의 총본산이라는 고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텔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외자기업들에게 각광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에 매혹되어 쓰촨 진출을 고려하던 시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쓰촨의 요즘 모습은 마치 강물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오랫동안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가 먹이(외국기업)가 나타나는 순간 또아리를 풀며 날아가는 새를 재빨리 낚아채는 용(또는 악어)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촨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인력자원이 풍부한 쓰촨 시장의 특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다양하고 정확한 시장정보를 수집하고 적합한 돌파구를 모색하며 쓰촨의 소비생활 습성에 맞추어 나가면서 적시에 사업의 방향과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다른 외자기업들처럼 IT산업이나 제약관련 업종에 진출하는 것도 괜찮지만 저렴한 임금과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한 가공수출보다는 내수시장을 목표로 투자 진출하는 전략도 고려해볼 만하다.
최근 몇 년 간 쓰촨에서는 의류 소비가 패션화ㆍ개성화되고 있고 가전제품의 다기능 유명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로 고가품 판매가 증폭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주택건자재, 인테리어 시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추세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쓰촨에 가면 쓰촨법을 따라야 할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고 했다. 사람이 남의 고장이나 나라에 가면, 마땅히 그곳의 풍속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입경수속(入境隨俗)이다.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중국에 가면 중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의 중국생활에서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망했던 사연을 수도 없이 접해왔다. “관공서 업무처리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 일을 못해 먹겠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등 우리나라에서 하던 대로 우리 식을 고집하다가 망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한국식 표준을 만들어 놓거나 미국과 일본, 서구의 것을 맹목적으로 모방하여 만든 이른바 ‘한국적 선진국 표준'에다 끼어 맞추려고 애를 쓴다. 중국 전체, 중국 각지의 제도나 관습, 역사와 문화를 알려고 하지 않고 현지의 특성은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그러니 현지의 관공서 직원들은 물론 종업원들이나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고 급기야 쫄딱 망해버리는 참극을 맞을 수밖에 없다.
쓰촨성의 약자는 ‘천’(川)이다. 중국사람들은 쓰촨으로 갈 때는 유독 입천(入川)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는 중국사람이 수도 베이징에 갈 때 쓰는 입경(入京)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중국의 여느 지방도 쉽게 누리지 못하는 쓰촨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방이 산맥으로 가로막힌 분지라서 그만의 독특하고 오래된 풍속과 관행이 많았던 덕분이었을까. 중국의 다른 지방사람들은 쓰촨에 들어가면(入川) 응당 그곳 습관에 맞추는데(隨俗) 유달리 신경을 쓴다.
내국인들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외국인들에게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일단 중국에 가면 중국법을 따라야 하고 쓰촨에 가면 쓰촨의 풍속에 따라야(入中隨俗,入川隨俗) 한다는 것을 쓰촨 진출 제1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쓰촨에서는 돈을 빌리더라도 입에만 의존하는 뚜렷한 관습이 남아있다. 저장이나 광둥에서처럼 차용증이나 영수증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빌린 돈은 채권자가 갚을 기일이 다 되었다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갚아버린다. 친척이나 가족 간에 사사롭게 빌렸다고 해도 반드시 갚는다. 쓰촨에서는 금전거래와 빚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적은 편으로 계약서 없이 구두(口頭) 계약으로 진행되더라도 거래는 빈틈없이 이행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과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쓰촨상인과 거래할 때는 일단 그들의 품성을 존중하고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에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속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은 다른 지역 상인에 비해 쓰촨상인에게는 절반만 해도 괜찮다. 그리고 사소한 소액 거래에서 차용증이니 변제 영수증이니 하며 서류에 의한 거래관계를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들을 믿지 못해 지나치게 의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거래관행도 딱 여기까지다. 제아무리 계약을 구두로 대신하는 것이 쓰촨상인의 오랜 관행이라지만 거래액이 큰 무역계약이라면 그 대처방법은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반드시 서면형식에 의한 요식계약이어야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쉴새없이 권해지는 중국 최고의 배갈 우량예에 취해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가 필요할까?정직과 신용의 쓰촨에서는 무형의 언어로 유형의 종이를 대신해도 괜찮겠지” 따위의 호기를 부리다가는 큰일난다. 보따리장수라면 몰라도 무역거래에서는 거래가 있을 때마다 계약서를 갖추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거래액이 상당한 무역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는 조금의 부주의에도 큰 손해가 발생하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반드시 서면 계약을 해야 한다. 이럴 경우에는 ‘쓰촨법이 아니라 세계 통용법에 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피차간 얼굴 붉히는 일없이 둘 다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10-3> 충칭의 번화가(2003.5.30 필자 촬영) 사스가 창궐하던 시기라서 행인의 숫자가 적은 편임. 충칭은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청두와 함께 쓰촨 성의 중심도시였으나 세계 최대의 직할시(남한 전체면적보다 조금 적은 8만1천평방 킬로미터, 인구 3,600만 명)로 분리되었음. 미국이 청두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곳에 총영사관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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