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한민족이지만 한국인과 조선족은 서로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갈등이 생기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가슴이 아픈 일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상호 조화의 초점은 없는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나와 있는 교환교수와 학자들을 취재했다.
***김호웅 박사**
(연변대학 조문학부 전임 학부장, 박사, 현재 한국백제대학교 객원교수, <중국조선족문학의 이해>, <북한문학의 이해>, 그리고 <북한문화의 이해> 테마로 강의, 2003년 4월 11일 서울에서 취재)
문: 현재 한국인과 한국에 나온 조선족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요, 조선족은 어떤 면에서 마찰의 소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세 가지에서 마찰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부동한 경제구조간의 갈등입니다. 조선족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았습니다. 한국과 만난 초기를 보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개인 소유권, 즉 말해 생산자료 소유권이 없었습니다. 국가명분의 소유, 국가와 개인의 공동 향수의 원칙이었습니다. 국가에서 노동에 따라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지만 노동이 유일한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자본주의는 재산이 중요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력 잣대로 배분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평등하여 단순노동과 복잡한 노동, 체력노동과 정신노동이 구분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모두들 균등하게 살고, 실업위험도 없고 빈부격차에 의한 위화감(違和感)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한국 국민과 조선족동포 사이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런 것을 소유하지 못한 자의 갈등 형태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참 충격적인 현상이지요. 모국인들은 자산과 기업을 가지고 있기에 조선족형제들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조선족은 생산수단에서 소외당했기에 계급적인 차별감을 느끼는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착취와 피착취, 고용과 피고용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우리 조선족형제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혈연, 친지의 감정을 뛰어넘어, 단순히 자산을 빙자해 동포를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우선 괴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사장은 일을 안 하고 호통을 치고, 돈은 자신의 노동가치 이하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기업인들은 임금체불까지 합니다. 한 뿌리에, 한 혈통인 동포인데 하나는 착취하고 하나는 착취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괴롭기만 합니다.
둘째는 부동한 제도문화의 마찰입니다. 우리는 잘 살지는 못했어도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늘 주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우리는 하루 아침사이에 정치면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제도에는 피와 정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선거권이 없고 외국인 취급을 당하며 심지어는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당당하게 법정이 나서서 산재ㆍ의료 보험마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악덕주에 의해 착취당하고 임금 체불을 당해도 법의 힘을 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족은 갈등하고 분노합니다.
처음 김포공항에 들어섰을 때 저희도 크게 놀랐습니다. 모국이라고 찾아왔건만 우리는 눈이 파랗고 코가 큰 사람들과 함께 외국인 개찰구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법무부에 외국인 등록을 할 때는 열 손가락에 검은 먹을 칠하고 날인까지 해야 합니다.
셋째는 생활문화의 마찰입니다. 우리 조선족의 문화는 중국문화와 모국문화의 '쨤봉'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중적 생활문화를 영위하고있지요. 우리는 김치도 먹지만 중국요리도 먹고 있습니다. 조선족 산재지구에 가보면 '캉-구들'에서 사는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제도문화를 보면 관혼상제 등에서 중국화된 부분이 많습니다. 또 행위문화를 보면 조선족은 한국인에 비해 느긋한 편입니다. 정신문화에 있어서도, 우리는 인생관, 미감 등에서 많이 중국화되었습니다. 조만간에 닥쳐올 위기를 감안하고 평소에 근검절약하고 자신의 희노애락을 분명하게 표출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한국인들이 볼 바에는 불쾌하지요. 너희들은 왜 중국인 됐냐? 왜 우리말도 똑똑히 하지 못하고 우리의 풍속과 습관도 모르냐? 야만인이 다 됐구나 하고 한국인들은 조선족형제들을 비난합니다.
문: 조선족들이 조금 촌스럽기로서니 그 정도로 비하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없군요?
김: 그렇습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사실 한국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약자에게는 괄시와 수모를 퍼붓습니다. 미국 앞에서는 벌벌 떨고, 일본은 "죽일 놈, 죽일 놈!" 하면서도 일본의 자본과 기술, 예의와 질서 의식에는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후진국에 대해서는 비하합니다. <해외 동포법> 등을 보아도 동포 중에서도 약자는 차별합니다.
한국의 어느 한 교수는 서방을 놓고 말하면 한국은 후기식민주의정책의 피해자이지만 동방의 약소민족을 놓고 말하면 한국은 오히려 후기식민주의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탈식민주의 문화이론에 의하면 후기식민주의자들은 동방의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을 비하하는 기행문, 기록영화 등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서방의 독자와 관객들에게는 문화적인 우월성을 부여하고 동방의 독자와 관객들에게는 문화적인 열등감을 조장시킵니다. 쉽게 말하면 인도의 뉴델리 거리에서 소가 다니고 음식을 손으로 쥐어 먹는 장면을 자꾸 영상을 통해 보여주면 서양인들은 인도인들을 개화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할 것이고 인도인들은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새로운 동방의 신화라는 것이지요. 이런 신화를 자꾸 만들어 퍼뜨리면 총 한 방 쏘지 않고 식민지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숭늉이 아니라 커피를 마셔야 문명인이고 배갈이 아니라 위스키를 마셔야 품위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후기 식민주의의 마술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한국은 미국과 같은 서방 선진국의 앞에서는 전전긍긍하지만 동방의 약소국 앞에서는 큰 어른으로 자부하고 후기식민주의자들처럼 행세를 합니다. 이는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의 분열을 의미할 뿐입니다. 전통을 지키지 못했다고 조선족을 힐난하지만 한국도 서방문화를 많이 받아들였으니 짬봉입니다. 한국은 어디를 가나 교회당 천지인데 기독교가 어디 한국 고유의 종교입니까? 실은 한국이나 조선족공동체가 모두 변했습니다. 한국은 경제실력을 믿고 자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자신의 변화는 인정하지 않고 동포사회만 변했다고 힐난하고 있는데 이는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문: 쌍방이 다 변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반드시 쌍방이 다 반성하고 쌍방이 다 같이 변해야 합니다.
저는 문화상대주의 시각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동포들은 고국에서 가지고 온 가치관과 문화를 거주국의 가치관과 문화에 융합시켜 이중문화, 또는 이중정체성을 획득했습니다. 다른 문화와의 교접, 접목을 통해 색다른 꽃을 피운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 그 필연성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이 색다른 꽃을 질시하고 혐오합니다. 이는 일부 한국인들의 전근대적인 시야를 말해줄 뿐입니다.
오늘은 문화다원화시대입니다. 문화상대주의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조선족은 고국의 전통문화의 영양을 많이 흡수하여 자신의 문화를 더 풍부히 하여야 합니다. 조선족의 문화와는 다른 한국 문화의 이질적인 부분에 대해 존중하고 우수한 점을 배우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이원길 작가**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언어문학대학 부학장 겸 조선언어문학학부 학부장. 국가 1급작가. 현재 국제교류재단의 펠로십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문학연구소에서 <개방시기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문학의 비교>를 테마로 연구 중. 1월 9일 이화대학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이원길 교수를 이화대학 앞 커피숍에서 취재)
문: 조선족 문제를 살피면서 중국 조선족도 한반도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 예, 그렇습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 조선족에게 있어서도 세기적인 숙원입니다. 중국의 조선족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남과 북이 하지 못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면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개혁개방을 제일 처음으로 하였으며 지금까지 제일 잘된 나라의 하나입니다. 자기의 기본적인 이념을 내세우면서도 정치상에서는 많이 자유로워지고 민주와 법제가 전보다 많이 민중 속에 자리잡게 되었고 경제상에서는 일련의 심도 깊은 개혁을 진행하여 20여년간 지속적인 급증장을 해왔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조선족들도 지금 중국 56개 민족 중에서 생활수준과 지식수준이 상등에 속하는 민족으로 되었습니다. 같은 사회주의권내에 생활하지만 극히 어려운 처지에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국민들에게는 흠모와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많은 사색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변화는 개혁 개방에 대한 그들의 절박한 기대를 증대하여주고 정신적으로 남한과의 동질성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정신적 거리를 점차 가깝게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중국 조선족공동체는 남한과 북한을 이어주는 중간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분단 50년이래 남과 북은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으로 가리워져 있어 국민간의 내왕이 지금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6.15 공동성명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겨우 몇 차례 있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선별적인 사람들이 공식 지정 장소에서 며칠 만나는 데 불과하기에 남북한 상호 내왕과 상호 이해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은 북한과 인접한 곳에서 살고 있고 북한 민중과 혈연적인 친족관계들이 있기에 여러 가지 도경과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하여 북한과의 내왕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북한 관리들과 무역인원들, 북한 학자ㆍ예술가들도 한국보다는 퍽 자유롭게 중국을 내왕하면서 중국 조선족들과 같이 무역도 하고 학술토론회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한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 지간의 내왕이 중국의 조선족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도경과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도경을 통하여 남북한의 무역인원들이 함께 앉아 무역을 상담하게 되고, 남북한의 학자ㆍ교수들 그리고 남북한의 문학예술가들도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마련되곤 하며, 남북한의 일반 대중들은 또 중국 조선족을 통하여 친척의 소식과 상황을 알게 됩니다. 적지 않은 남한 민중단체가 북에 보내는 식량지원도 중국 조선족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한국과의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한국의 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에 대한 중국 조선족의 이해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족은 이런 이해를 북한에 전해 주고 있습니다. 남한에 대한 중국 조선족의 평가 여하는 남한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이해와 관념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민중들은 남한에 대한 적대감이 많이 해소되었으며 남한의 경제성장과 국민생활에 대해서도 눈을 뜨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에 대비하는 민중지간의 이해와 공조 그리고 물질적 지원에서 중요한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마디 부언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 와 일하는 중국 조선족에 대한 한국 정부 대책과 한국 국민들의 태도도, 이것이 단순히 중국 조선족과 관련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안목에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원인으로 중국의 조선족은 지금 중국 국민이지만 혈연적으로는 한반도가 고국입니다. 지금 중국 조선족들은 남한에 와서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지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한국인들보다 적은 노임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이것은 한국에 대한 조선족의 기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을 먹여 살린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고용주가 피고용인들을 먹여 살린다고만 말하고 피고용인들이 고용주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자기 피땀으로 돈을 벌어 중국에 가서 잘 살게 된다면 북한 백성들에게도 개혁 개방의 유익성과 실효성을, 남한의 우수한 부분을 더 잘 보여주게 되고, 따라서 통일을 대비한 정신적 변화를 더 빨리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에 와서 일하는 중국 조선족들의 노동에 곱지 않은 시선 혹은 천시의 시선을 던진다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명호에 비해 그 흉금이 다소 옹졸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직업적 관계로 나는 한국의 교수, 학자 그리고 작가들을 더러 접촉하게 됩니다. 나는 그들과의 한담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곤 합니다. 한국에 나와 일하는 중국 조선족이 기껏해야 10만도 되나마나 한데, 그리고 그나마 모두들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들조차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면 이천만이 넘는 북의 동포들은 어떻게 포용하겠느냐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다운 포용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문: 고국인들과 조선족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이 : 글쎄 이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지요.
우선 ‘고국인들과 조선족들의 갈등’이란 민족적 갈등이나 종교적 갈등, 지역적 갈등이나 문화적 갈등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는 한국에 일하러 나와있는 조선족들과 그들을 고용하는 한국인들과의 갈등을 주로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갈등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국 조선족들은 오로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수요를 만족시키려고 많은 빚을 내어가며 불법체류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도 불사하고 한국으로 나와서 피고용자가 되었고, 한국인 고용자는 한국인보다 저렴한 인건비로 그들을 고용할 수 있기에 기꺼이 그들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고용자와 고용자간의 고용관계는 생산자료의 유무에 의하여 이루어진, 주관적인 차원에서 보면 기본상 상호‘자원’원칙에 의하여 이루어진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산자료를 점유하고 있는 고용자가 잉여가치를 점유하는 것은 상품경제인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합법화되어 있으며 고용자는 영원히 자기가 창출한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을 고용자에게 점유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본주의 분배방식에서 생기는 기본적인 모순과 갈등은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사회는 더 말할 것 없고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민영기업 내에서는 영원히 없앨 수 없는 모순과 갈등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없애겠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완화시켜 될수록 적게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갈등을 적게 하려면 고용자가 점유하는 잉여가치를 제한하는 것밖에 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 제한 방법 중의 하나가 파업을 비롯한 피고용자들의 투쟁입니다. 자본주의사회는 잉여가치에 대한 고용자의 점유의 합법성과 과잉 착취에 대한 피고용자들의 투쟁의 합법성으로 이 심각한 사회모순을 완화시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은 대소 파업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노사간의 투쟁과 고용자의 양보로 인한 타협이 그냥 파도식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나와 일하는 중국 조선족 피고용자들에게는 자본주의사회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다가 불법체류자라는 멍에까지 쓰고 있어 많은 경우 악덕업주들은 중국 조선족에 대한 과잉 착취를 마음대로 자행합니다. 조선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견디면서 적은 돈이나마 벌 수밖에 없는데, 이런 모순과 갈등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고용자의 양심과 선심 그리고 자비심에 호소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두 가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현실적인 것으로, 한국에 나와 일하는 중국 조선족들에게 정부 차원에서의 그 어떤 인권 보장과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악덕업주들의 과잉착취와 불법행위를 제어하고 그들과 투쟁할 수 있는 그 어떤 보장이 있어야 하며 그 어떤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 조선족공동체의 존재와 발전이 남북 통일 등 여러 면에서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감안하고 이 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미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경제템포를 계속 가속화하여 중국에 있는 조선족의 연소득과 생활수준을 선진국 국민의 생활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혈족지간도 자기가 잘못 살면 다른 친척들에게 업수임을 당하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우리 조선족의 연소득과 생활수준이 지금의 두 배만 되어도 이렇게 늙은 부모를 멀리 두고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멀리 두고 한국에 나와 불법체류를 하면서 눈물겨운 고생들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한국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들의 땀과 피 그리고 한숨과 눈물이 우리 중국 조선족 자신의 미래를 당겨오는 고생임을 감안할 때 그들의 애타는 노력에 숭경지심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한국의 질서를 잘 지키고 조선족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며 미래를 내다보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중국의 조선족 목민지관(牧民之官)들이 민초들의 하정을 더 자세히 굽어 살피며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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