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은 일요일이었다. 9시가 되자 내가 숙소로 잡았던 연희동의 오피스텔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밤 9시에 만나기로 했던 S가 오전시간을 내주어서 나는 처음으로 편안히 방에서 취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척 고마웠다. 그녀가 이름을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 이 글에서는 그냥 S로 한다.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는 그녀는 고려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유학 오기 전에는 북경민족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전공하고 중국의 모 장춘의 한 대학교에서 조교수를 담당했었다.
***유학은 고생을 각오해야**
“동창생이 소개해서 고려대 석사학위를 시작하게 됐어요. 비용은 자부담이였지요. 동창생은 유학은 고생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남들이 하는 공부를 왜 못하겠냐 생각했는데, 등록금과 생활비용 때문에 한동안은 많이 혼났어요. 힘들게 공부를 하다가 중국에서 뵜던 한국 교수님들이 걱정스러워 하시면서 장학금을 소개해줘서 그 혜택으로 일단 힘든 상황에서는 벗어났어요. 참 너무 고마웠어요.
하지만 그 장학금으로도 비용해결은 힘들었어요. 다른 애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지만, 저는 유학의 목적이 공부이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가능한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사실상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불법이예요.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되면 벌금을 내야 하거든요. 불법해서도 안 되겠지만 저는 자신의 수준을 어서 제고하기 위해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어요. 한국학생들과 비교해보니 차이가 많이 났어요.
지금은 재외동포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을 면제받고 한달 생활비를 60만원씩 받으며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어요. 공부비용과 생활비용을 해결하려면 부족하기는 해도,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될수록 공부에 시간을 더 쓰려고 애를 써요.
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지 않느냐,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능력과 인맥이 좋으면 좋은 아르바이트자리가 생겨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에, 그런 질문에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어요. 해외동포재단에서는 해외 동포들이 고국에서 덜 힘들게 공부하고, 공부를 잘 하고 돌아가 동포사회에 큰 기여를 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는 그 돈을 받을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져요. 반드시 해외동포재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박사다운 실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의 경제수준에서 자비로는 공부비용을 해결하기 힘들잖아요?”
“자비유학은 인민폐 10만원(미화 1만불 이상)의 재정보증금이 있어야 돼요. 하지만 정작 중국경제수준에 10만원을 자녀유학에 보내줄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어요. 자비로 오면 힘들기 때문에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요. 그러되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재외동포장학금재단, 민간재단 쪽으로 장학금을 신청하면 학기마다 백만, 2백만원 정도는 신청이 가능하죠. 물론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해야 해요. 소수의 해외 동포들에게만 발급하는 장학금이거든요. 우선 목적이 좋아야 해요, 돈벌이를 앞세우고 공부를 뒤전으로 하면 절대로 이런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비용을 해결하고 공부실력을 높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조선족유학생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하더군요. 장학금에 의거해 공부한다는 것은 무리잖아요?”
“그렇죠. 유학생수는 늘어나고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은 제한되어 있다보니 혜택을 골고루 받기는 힘들죠. 그러나 어떤 재단에서는 한국 경제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장학금을 늘리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장학금에 모든 기대를 걸 수는 없지요.”
“그러면 국비장학생은 상대적으로 많이 안정된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겠군요.”
“물론이죠. 국비장학생은 수준향상이 많이 빠르고 이미지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유학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유학생들은 장학금을 타고도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벌고 있죠. 어떤 유학생들은 공부수준이 낮은데도 돈 욕심을 부려 조선족유학생 이미지에 손상을 주고 있어요.”
“조선족사회의 잘못된 인식과도 관계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조선족사회에서도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학을 오면 반드시 돈도 벌 것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어 유학생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압력이 생겨요.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하면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오해를 받기 십상이지요. 사실 한국 학생들처럼 참고서적을 많이 사 보고, 먹고 입는 데도 그 정도로 쓰자면 돈이 많이 들지요. 그런데 이런 인식 때문에 가정이 있는 집에서는 돈을 벌어서 집에 보내기를 바라고,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거든요. 어떤 유학생들은 한국에서는 빚을 진 상태인데도 중국에 가서는 돈이 있는 티를 내며 식사도 사야 한다고 해요. 돈에 집착하면 공부성적은 자연히 처지는 수밖에 없지요. 선생님께서 이런 상황을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서 유학은 돈벌이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유학생들이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오는 압력을 덜 받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요.”
“유학생은 공부와 아르바이트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겠군요.”
“총명한 유학생들은 공부실력을 높이는 것이 개인에 대한 진정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시절의 선배나 동창생들 중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의 모 대학교 교수로 초빙된 분들도 있어요. 또 경영학과를 나온 학생들 가운데는 삼성 같은 유명한 회사에 취직해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유학생들도 있거든요. 돈도 벌고 원하는 일도 한다는게 얼마나 좋아요. 실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고 어찌 이런 원만한 결과가 생길 수 있겠어요.”
“학문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도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죠. 지식에 대한 존중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학문을 해도 소용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중국에서 학문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조선족은 총명한 민족이기에 중국에서 반드시 큰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수준을 조금 높이려고 공부기회를 잃는다면 그건 너무 큰 것을 잃는 겁니다. 돈에 집착하고 공부를 뒤전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조선족유학생의 이미지도 떨어집니다. 북경에서 온 후배 유학생은 서울대에서 공부하는데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요. 성적이 당연 뛰어나죠. 교수님들은 그가 중국유학생들의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다고 기뻐하세요.”
***"모국의 혜택을 받지 않는 유학생은 없을 거예요"**
“유학생들의 나쁜 이미지는 개인들에게도 큰 피해가 되겠군요.”
“물론 그렇죠. 저는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서울대 인문대로 옮기게 됐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교수님들이 제가 공부를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시는 눈치였어요. 첫 학기에 제가 리포트를 발표하기로 하고 순서도 다 정해졌는데, 교수님께서 갑자기 리포트를 발표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원인을 물었더니 리포트 발표를 잘하지 못하면 오히려 한국학생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진다고 하더군요. 조선족을 망라한 중국유학생들의 이미지가 나빴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저는 큰 압력을 느꼈어요.
저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이를 악물고 밤을 새워가며 참고서들을 열심히 읽었어요. 한국학생들과는 아직 초면이라 관계가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주동적으로 그들과 연락을 취하고 참고서 출처를 문의했어요. 다들 상냥하게 잘 도와주어 고마웠어요. 논문을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교수님에게 보였더니 이번 학기에 첫 발표를 시키더라고요. 논문은 첫 발표가 중요해요. 전체적인 분위기에 주는 영향이 크고, 특히 중국 유학생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돼 있어요. 발표가 잘 돼야만 중국유학생들도 사기가 나서 더 자신 있게 논문을 발표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발표한 후에 아무런 질문도 없었고 분위기가 조용했어요. 저는 제가 발표를 잘 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었어요. 일단 질문이 빗발치지 않아서 시름을 놓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저의 논문의 문제점을 처음부터 마감까지 상세하게 지적하셨어요. 저는 너무 얼굴이 뜨거웠어요. 하지만 이런 고비를 잘 넘기는 게 한 차원 제고하는데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진정했어요. 다른 한 과목도 첫 발표를 하라고 하기에, 저는 다시 밤을 지새우며 논문을 준비했고, 한국학생들도 주동적으로 도움을 주었어요. 그렇게 애를 써서 다시 준비해 발표했더니 담당교수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면서 이 리포트를 학술잡지에 발표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한국학생들도 많이 기뻐했어요. 교수님께서는 창의성이 있다고 하시면서, 무엇보다도 공부자세가 좋다고 고무하셨어요.
저는 나이가 다른 유학생들보다 좀 많은 편이어서 지적을 받으면 부끄러움을 많이 탔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려는 사람은 나이를 따질 것 없이 열심히 물어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 중국 유학생들 중의 한족 애들이 저에게, 언니, 나 이런 거 가르쳐 줘, 라고 하면 저는 아는 것만큼 열심히 가르쳐줘요. 중국유학생이라고 하면 한족유학생들과 조선족유학생이 다 같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한족유학생들도 공부를 잘 해야 조선족유학생들의 이미지도 높아질 수 있어요.”
“모국이기에 조선족유학생들이 많이 배려를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래요. 모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거나 중국의 다른 민족 유학생들보다 조선족유학생들이 혜택을 더 많이 받아요. 대체상 조금이라도 고국의 혜택을 받지 않고 공부하는 유학생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선족유학생들은 모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요. 한국은 능력사회이기 때문에 조선족유학생 모두가 최선을 다 하여 실력수준을 높이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면 존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 아픈 부분**
"그렇지만, 마음 아픈 부분도 있어요.”
“어떤 부분이지요?”
“조선족과 한족을 대할 때는 차별을 느낄 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세미나 같은 행사가 있을 때에는 조선족 교수들보다 한족 교수들을 더 많이 배려해주려고 하는 게 보여요. 물론 한족 교수들을 배려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조선족 교수님들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찬밥이 되는 때가 많아요. 그래서 어떤 교수님들은 너무 기분이 상해서 돌아가기도 해요. 중국과 교류하기 때문에 같은 민족보다는 한족을 더 손님으로 대접하는 거라고 스스로 이해하려 해요. 그렇지만 감정이 상하기에 조선족들은 우리는 한국인 대접도 중국인대접도 아니니 대체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 유학생들에게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유학생 모두가 성인이고, 그들이 어떤 가상을 보고 이렇게 말할 리는 없다. 그녀가 말했듯이 차별인가? 손님대접인가? 실용주의인가?
“그래서 정서적으로 많이 갈팡질팡해요. 30대 조선족유학생들은 다 집에 학령아이들을 두고 왔는데, 이런 상황에 부딪치고 나서는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들을 해요. 그래서 참 마음이 상해요.”
금방 고국과 문이 열렸을 때에는 한족학교에서 공부하던 조선족 애들이 다시 조선족학교로 전학해와서 큰 뉴스로 되었었다. 그런데 몇 해 후부터는 조선애들이 다시 한족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하는 바람이 불어 조선족사회에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족학교로 가자면 학비 외에도 3천원이상(한국 화폐가격으로 50만원가량)의 전학비용을 지불해야 하기에 어떤 한족학교들은 조선족학교에 비해 전산화가 더 잘 되고, 시설도 많이 더 좋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이런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한국과의 문이 열리면서 한국에 대해 환상적이었기에 정착의식이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족의 현실을 판단하고 정착의지가 다시 굳어지면서 극단적인 방향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산업화에 직면한 인구 대유동이다. 산업화에 직면해 중국의 다른 민족도 인구이동을 심하게 겪기는 하지만, 조선족에게 있어 인구유동의 가장 큰 계기는 한국기업의 중국 연해주 진출이다. 한국기업들이 조선족인재 초빙이 시작되면서 그 인맥을 따라 조선족인력이 대거 연해주에 몰리게 되었다. 조선족 인구의 20만명이 산해관 너머 연해주 쪽으로 움직이면서 한족지구 교육에 대비해 자식들을 한족학교에 보내게 되는 것이다.
조선족사회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에 의해 피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불안하다.
중국 조선족 사회는 동화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국과의 교류와 남북통일에 많이 두고 있다. 이 기대가 이론상에서는 성립될 상 싶었는데,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가는 부분도 일부 있다. 현재 조선족 집거구에서는 한족학교로 가는 조선족 애들이 늘고,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연해주에는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지 않아 한국기업을 따라 이동한 조선족 자녀들의 민족교육이 문제로 되고 있다. 이외에도 처녀들의 한국결혼이 조선족 인구 마이너스성장의 중요한 요인으로 되고 있고, 총각들의 결혼난이 타민족 여성들과의 통혼을 부추기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엄마가 타민족이면 자식은 아버지 성을 탔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타민족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요소들이 다 동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조선족사회 주체성이 형성되고 경제력이 향상되기 전에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그래도 조선족들이 한국기업들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모국의 문화를 받아들일 기회가 많고, 역시 같은 원인으로 조선족이 새로운 집거구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집거구에 민족교육, 언론, 자치기구 등 조선족공동체에 필요한 요소들이 갖추어질 수만 있다면 조선족은 동화되지 않고 삶의 새로운 터전을 갖추고 씩씩하게 생존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가슴아픈 일이 또 있어요. 교수님들 중에는 우리의 모국어수준이 너무 낮다, 라고 나무라는 분들이 있어요. 참 큰 타격이죠. 중국서는 열심히 한글을 읽었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조선족학교에서 공부했지요. 우리는 한족학교에서 공부하는 조선족 애들이 한글을 모른다고 많이 비난했었지요. 저는 우리 글을 너무 사랑해요. 다른 민족의 글은 배우고 배워도 영원히 사전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 글은 그냥 며칠이면 배워낼 수 있죠. 우리 글을 읽노라면 너무 기묘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읽을수록 애착하게 되고, 이런 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조선족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 글 수준이 너무 낮다고 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슬펐어요. 한글수준은 높여야 하겠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가 우리 문화를 지켜온 것에는 긍지를 느껴요. 13억 인구대국에서 우리 글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대견스러워요. 물론 중국에서 배운 한글수준의 한계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죠. 세종 대왕님이 계신 땅에서 잘 배울 생각이예요. 그리고 조선족의 어문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박사과정에 12개 과목이 설치돼 있고 수료 기간이 2년 걸린다고 했다. 학점에 통과된 후 논문을 쓰기 위해 그는 최서해의 소설 60여 편에 소논문을, 수필도 소논문을 만들어야 했다. 최서해 소설에 반영된 인물형상에 대해서도 상세한 논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자면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고 하며 그녀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안경 뒤의 그녀 조용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그 속에 맺혀 있는 강한 의지를 보았다. 중국에서 꼭 학자로 성공하겠다는 그녀 마음이 반드시 성공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믿어진다.
우리의 이야기는 한시간 반이 걸렸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도 그녀가 너무 시간에 쪼들려하는 모습에 점심식사도 대접하지 못하고 배웅했다. 서울지리를 아는 사람들은 서울대에서 연희동까지의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잘 안다. 통화하기 전에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가 그처럼 바쁜 시간에 나를 찾아준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만나준 유학생들 모두가 가슴속에 따뜻하게 조선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힘이다. 그들과의 만남이 인생에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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